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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도착한 골드원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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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봐도 200명은 거뜬히 넘을 숫자의 대학생들이 호텔 앞에 모여서 줄을 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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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건물 하나 덜렁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부지를 매입해서 여러 부대 시설과 호텔들이 같이 마련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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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으로는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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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카지노 고객들을 위해 호텔을 지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골드원은 카지노 고객들에게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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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보니까 여기 워터파크랑 스키장, 쉬는 날에 직원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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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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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밖에서 줄을 선 채로 쫑알쫑알 거리고 있는 디자인과랑 연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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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사람 이름도 슬슬 알아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아까 일 때문에 거리만 더 벌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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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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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말대로 골드원에서는 호텔 근처에 스키장과 워터파크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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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으면 카지노만을 위한 호텔이 아니라 리조트 같은 걸로 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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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미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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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푹 찔러 넣으면서 중얼거린다. 어제 최이서랑 산 코트였는데 뭔가 옷을 잘 입게 된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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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미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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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계신 주희 선배. 다른 버스를 타고 왔던 선배와 합류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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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입으시던 용 점퍼가 아니라 단아하게 입고 계신 걸 보니 그래도 카지노 즐기러 온 건달이 아니라 직원처럼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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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이랑 워터파크요. 둘 다 결국에는 미끼상품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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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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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희 선배에게 웃으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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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카지노만 달랑 있어 봐요. 이미지도 별로고, 오는데 좀 거부감이 들 거 아니에요. 애들 있는 부모들도 못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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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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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 골드원 근처만 가면 전당포나 대부업 하시는 건달 형님들이 즐비해 있다. 카지노에서 돈 꼴아박은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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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그러니까 여름에는 워터파크랑 물썰매장으로, 겨울에는 스키장이랑 온천, 실내 수영장으로. 애들이 즐길 거리를 만들어 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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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과한 투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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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보면 큰 것도 아니고…… 그만큼이나 카지노 수입이 빵빵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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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여기 오고 싶다고 부모님들한테 먼저 말하게 한다는 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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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과 워터파크는 골드원으로 놀러 간다는 이미지를 카지노라는 부정적인 것에서 씻어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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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타고, 물놀이한 다음 뭐하겠는가. 밤에는 주변에 할 것도 없으니 카지노 한 번 스윽 들르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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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이 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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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대단하단 표정으로 금칠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번쩍거리는 거대한 호텔 건물을 올려다보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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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원은 산골에 위치한 호텔이다. 주변에 뭐 하나 볼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산골짜기에 덩그러니 놓여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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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대한민국의 어떤 호텔보다도 직원들을 위한 복지가 뛰어나고, 연봉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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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도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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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의 존재 하나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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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만큼 들어오기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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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이자 주희 선배도 고개를 끄덕이신다. 연봉이 세다는 소리에 혹한 듯 눈을 빛낸 주희 선배였으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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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스스로를 대리라고 소개하신 인원 체크하시는 분께서 마이크를 잡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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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원들 확인이 끝난 모양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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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쪽 줄부터 저 따라서 연회장으로 갈 겁니다. 옆줄은 꼬리 물면서 계속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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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기차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긴 줄이 형성되어서 우리는 함께 호텔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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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기라고 했던 것들 다 챙겨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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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돌아서 우리를 확인한 주희 선배.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 있는 서류들을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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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부터 계약이랑 방 배정 같은 설명회를 한다고 하루가 훌쩍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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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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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자, 뒤에 있던 서예린이 내 입을 손바닥으로 톡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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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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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이냐고 따지려 했으나 볼을 부풀린 채로 그대로 나를 지나쳐 가버리는 서예린의 뒷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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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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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진 않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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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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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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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도착했던 게 오후 3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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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시간을 연회장에 모여서 설명을 듣고 차례를 기다리고 했더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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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원에 있는 호텔 건물은 총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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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번에 온 알바생들은 그중 C동에서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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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위한 건물은 따로 있지만 이번에 알바생들이 많이 온 덕분에 아예 호텔 방을 대신 쓰게 됐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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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좋다고 떠들어댔으나 사실 C동은 가장 싸고, 카지노에서도 가장 먼 호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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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카지노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던 건물이라 지금 같은 성수기가 아니면 거의 예약을 안 받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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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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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찬우가 웃으면서 물어왔다. 피부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있는 게 조금 고까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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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나랑 다르게 연회장에서 아주 바쁘게 지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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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야, 도대체 향수가 몇 개가 겹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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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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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에서 찬우한테 찝쩍거리던 여자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것들의 향수가 이것저것 섞인 냄새가 정찬우에게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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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라는 억제기가 깨진 찬우였기에 이제는 여성들의 관심도 은근 즐기고 있는 모습이 처음에는 보기 좋았지만, 그것도 과하니까 이제 짜증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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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시달리기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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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옆에 앉은 서예린과 유아린 덕분에 잠도 못 잤다. 졸려서 자려면 계속 깨우며 쓸데없는 말을 걸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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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은 종종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고, 유아린은 계속 짜증이 나 있는 덕분에 아주 열심히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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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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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최이서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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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만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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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얼굴을 파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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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여기 안 왔으면 최이서랑 오늘도 폭풍야스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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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 찬우 포함해서 네 명이랑 같이 살게 되었으니 혼자만의 해피타임으로 성욕을 풀 수도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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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6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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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금딸이 된 이상 아예 끝까지 참아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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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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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면 그냥 죽을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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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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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C호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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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홀에 들어온 반짝거리는 조명은 정말 이게 자주 사용하지 않는 호텔인가 싶을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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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데스크에서 카드키를 받아서 가려고 했으나 이미 얼굴도 모르는 우리 방 사람들이 받아 갔기에 엘리베이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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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머무는 객실은 8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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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이나 되는 높이에서 두 달 동안 지낸다는 게 생각보다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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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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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에 도착해 복도를 거닐고 있자니 활짝 열린 문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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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짐을 풀고 있는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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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나랑 찬우처럼 친구로 보였고, 남은 하나는 나이가 좀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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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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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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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이미 친해 보이는 둘이 깜짝 놀라며 저들끼리 뭔가 수군거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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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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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푸근하신 분께서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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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모였으니까 간단하게 자기소개하고 방 어떻게 나눌지 정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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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하게 사람들을 부르는 게 확실히 노련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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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둘러선 채로 먼저 소개하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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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상이라고 합니다. 스물여섯이고 가현대 식품조리학과에서 실습하러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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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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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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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기 중에선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겠지만 그래도 겉보기보다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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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재민입니다. 성이 특이해서 기억하기 쉬우실 거예요. 세신강대 호텔경영에서 나왔습니다. 스무 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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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랑 동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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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왁스로 바짝 올린, 성이 특이한 남자. 마른 편으로 스스로를 꾸미는데 꽤나 관심이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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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건입니다. 재민이랑 같은 과에 동갑이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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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덩치가 있는 민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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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덩치가 있으나 운동은 하지 않은 그런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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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입니다. 가현대 영어영문과에서 왔는데 실습은 아니고 그냥 알바입니다. 스무 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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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이 아니라니까 좀 놀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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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찬우가 어색하니 경직되어서는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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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현대 건공과 정찬우입니다. 저도 스무 살이고 알바로 같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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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는 의외로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잘 말을 못 거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PC방에서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과묵한 느낌이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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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방 나누기 쉽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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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재민이 바로 제갈 행동, 천하삼분지계를 시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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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총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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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니까 두 사람이 하나씩 쓰고 남은 하나가 거실에서 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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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들은 둘이 친구니까 같이 방 쓴다는 소리. 그리고 나랑 찬우도 친구니까 같이 방을 쓰면 대상 형님이 거실에서 지내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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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제가 거실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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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형님께서는 거실이 좀 불편하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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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실에서 지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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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손을 들며 끼어든다. 아무리 그래도 연장자 형님께 대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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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가 괜찮나 싶었는데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별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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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고작 문 하나 지나면 바로 내가 있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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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이면 혼자 쓰고, 넓고 좋네요. TV도 보면서 잘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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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지낼 곳이 정해졌으니 우리는 빠릿빠릿하게 짐을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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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계속 찬우 쪽을 보는 세신강대 출신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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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시선이 찬우에게 원하는 게 있어 보였는데 찬우도 그걸 놓치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슬쩍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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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사람, 계속 나 쳐다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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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 관심 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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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야! 그건 대머리 아저씨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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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대머리 아저씨 너한테 연락 안 하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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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묻자 찬우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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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거 때문에 할 말 있었는데. 지난번에 나한테 이렇게 톡 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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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똥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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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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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덕거리면서 찬우랑 놀고 있자니 세신강대 듀오가 방 밖으로 나오면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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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호텔 지하에 음식점도 몇 개 있던데 거기서 회식이라도 하면서 룸메이트끼리 좀 돈독해지는 거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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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재민이 무슨 병법 소개하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하자 옆에 있던 동기인 민동건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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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형님께서도 나쁘지 않으신지 알겠다고 답하고 옷을 갈아입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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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동의했기에 간단하게 겉옷만 걸치고 나가려는데 슬쩍 다가오는 제갈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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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민동건이 콧김을 뿜어대면서 뭔가 흥분한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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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기…… 괜찮으시면 좀 꾸미고 가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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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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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찬우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나는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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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가 낚싯밥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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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드는 물고기들 중 하나라도 어떻게든 낚아채겠다는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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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라는 떡고물의 가루라도 주워 먹겠단 너무나 스무 살 남자다운 욕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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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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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방에서 한창 방을 조율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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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방, 403호에서는 이미 방을 나누고 짐을 푸는 데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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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다섯이서 아는 얼굴들이니 그냥 다섯이서 같이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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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과 유아린 그리고 디자인과 연영과. 이렇게 하면 넷에 추가로 민주희가 합류하면서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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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희는 워낙 털털한 성격이었기에 넷만 아는 사이였어도 소외감 같은 건 크게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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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구조는 똑같았기에 민주희가 거실에서 지내기로 했고, 서예린과 유아린이 같은 방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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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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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있는 서예린이 부르자 간편한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유아린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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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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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같은 거 외에 따로 여행 다녔을 때 정도 말고는 같이 지낸 적이 없기에 살짝 두근거리고 있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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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들썩이고 있자니 서예린의 고심에 찬 눈동자가 유아린에게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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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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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쏘아온 묵직한 질문에 저도 모르게 턱하고 말문이 막힌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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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예린은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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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네가 우진이 손 만지작거리는 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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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건 그냥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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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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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살짝 갸웃거린 서예린이 성큼성큼 유아린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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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아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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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 순간 겁이 질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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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청순함의 대명사인 서예린인데 흐트러져 뺨이 눌어붙은 머리카락이 섬뜩함을 연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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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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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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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뭐라 대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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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려고 유아린은 가까스로 입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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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절대 아냐! 내가 걔를 왜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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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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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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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부정하는 유아린의 모습에 서예린은 잠시 고민하더니 옅은 숨을 흘리며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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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우리 이렇게 있으면…… 우진이 뺏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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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아한다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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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뺏기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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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상이 되어서는 친구한테 어떻게든 변명하는 유아린이었으나 이미 서예린에겐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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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는 거 어때? 지금 마침 이서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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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아! 예리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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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골드원에 있는 두 달 동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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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자 하고 유아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서예린은 그렇게 알겠다면서 몸을 틀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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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치킨 먹으러 가자! 언니가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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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티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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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가 치킨 사준다는 말에 다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서예린의 뒷모습을 보며, 유아린은 저도 모르게 흐른 식은땀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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