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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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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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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차지 않는 단아한 손목시계, 민지에게 코디를 부탁해서 입은 남색 코트와 하얀 블라우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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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꾸민 그녀는 민망하니 뺨을 긁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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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고 온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있었으나, 대놓고 약속이 있어 보이는 몸가짐에 말을 걸어볼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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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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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골드원으로 떠나는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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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고 싶었지만 방학 동안 최이서도 여기서 할 일이 있었던 탓에 같이 가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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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두 달은 헤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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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용기를 내어 오늘 데이트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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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에는 좀 부끄러웠지만 막상 지금에 오니 하길 잘했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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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이 아직 좀 남았음에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것이 좀 의아할 정도 설렜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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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 평소에는 자주 같이 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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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따로 만난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두근거리고 있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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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자신이 정말로 김우진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소소하게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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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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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김우진의 목소리. 생각보다 일찍 온 약속대상에게 방긋 웃으며 반겨주려고 몸을 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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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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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검은 운동복을 대충 걸치고 있는 김우진이 서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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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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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김우진 본인 역시 당황하고 있다는 점이겠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서로 마주 보며 할 말을 고르던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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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입을 뗀 건 김우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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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운동하려고 부른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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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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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서 일단 만나자고 했던 걸 그런 식으로 알아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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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운동에 열중하는 최이서였고 김우진을 그런 식으로 꼬드겨서 부를 때도 잦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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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평소 행실이 이런 착각을 만들었다는 것에 울상이 될 것 같았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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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말해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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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나 금방 옷만 갈아입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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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목적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아챈 김우진은 얼른 옷을 갈아입겠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으나, 최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김우진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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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아냐! 그냥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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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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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왜 해! 내, 내가 실수한 건데! 맞지, 우리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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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말이 살짝 서글펐는지 목소리가 작아졌고. 손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한 최이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약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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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최이서를 보던 김우진이 다급하게 이유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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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 괜찮으면 나 옷 사는 거 좀 같이 가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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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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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일 골드원 가는데 따로 옷이 없어서 좀 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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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이 건넨 일종의 배려 섞인 제안에 최이서는 멍하니 그를 보더니 살포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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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가는데 아직도 옷을 안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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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옆으로 걸어간 슬그머니 낀 팔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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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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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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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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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입고 나온 김우진을 보면서 최이서는 진심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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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안현호나, 한강, 정찬우처럼 잘생긴 사람들이 많은 건 알고 있으나 최이서는 그래도 김우진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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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동거 중인 민지가 말하길 콩깍지가 씌인 거라면서 뭐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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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어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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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랑 옷 가게 오는 게 처음은 아닐 텐데도 괜히 불편해하는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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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옷 가게가 어색한 건가 싶었으나 전 여친이자 자신의 친구인 오윤지가 의류 쪽에 관심이 많던 걸 떠올리니 괜히 묘한 질투심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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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두 사람은 자주 이런 식으로 와서 옷을 고르곤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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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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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의 머릿속에 문득, 자신이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옳을까 라는 의문이 차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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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헤어진 사이라고는 하지만, 친구의 전 남친과 이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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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괘씸하면서도 또한 윤리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지금까지 미뤄뒀던 깨달음에 도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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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두근거리던 최이서의 감정이 다소 차분하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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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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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코트를 걸친 김우진의 가슴팍에 손을 가볍게 얹는다. 그리곤 툭툭 두드리며 최이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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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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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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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바뀐 자신의 분위기를 김우진도 눈치챘다는 걸 최이서도 알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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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감정들을 숨기는 게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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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시간에 흘러가게 두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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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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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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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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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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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로 둘이 사귀게 된다면 이런 시간이 매일 같이 계속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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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스스로가 바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최이서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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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김우진의 성욕과 이성이 갈등하는 상황도 있었는데 이마저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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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가슴에 내리 앉은 응어리는 생각보다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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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만났으나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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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도 마시자고 할까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자신의 마음에 눅진하게 가라앉은 질투와 추악함까지도 드러낼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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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무 무서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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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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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자신의 집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제 골드원으로 떠나게 된다면 두 달 동안 못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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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뭔가 기억에 남는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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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허무하리만치 무미건조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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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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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옷 가게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루만 지나면 다시 감정을 다 잡을 수 있겠으나 지금은 조금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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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들어가라. 방학 잘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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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도 오늘 최이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작게 웃으면서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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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두 달 동안 만나지 못하지만 반대로 고작 두 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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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잠깐만으로 두 사람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관계에 급진적 변화가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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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굳이 표현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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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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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정체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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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덜컥 겁이 난 최이서가 걸음을 멈췄으나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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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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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오는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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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것이라는 걸 알아채곤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든 최이서는 전화를 걸어온 이름을 보고는 흠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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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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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친구이자, 한동안 연락이 안 되던 윤지가 걸어온 전화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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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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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걱정된 김우진이 다가오자 한 템포 늦게 핸드폰을 확 감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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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은 이미 핸드폰에 적힌 이름을 봤는지 표정이 일그러지며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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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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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김우진의 감정이 무엇인지 읽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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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분노일까 아니면 그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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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처럼 무엇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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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야?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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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의 목소리는 평소와 그대로였다. 예전 고등학교 때와 하나도 다를 거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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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말하면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다소 독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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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로 전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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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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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겉도는 말을 하기엔 지금 최이서의 마음이 그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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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오윤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의 본론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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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방학했지? 민지랑 같이 나 좀 도와주러 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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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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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알바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 시간 많이 잡아먹지도 않을 거고. 엄청 대단한 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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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게. 밖이라서 민지랑 얘기도 해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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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좋게 생각해 줘. 나쁜 일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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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한 후, 뚝 끊어버린 오윤지. 정말 딱 서로 할 말만 했다는 게 오히려 원래의 두 사람답다면 다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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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의 걱정 어린 시선이 김우진에게로 조심스럽게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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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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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꾹 깨물고, 주먹을 꽉 쥔 채로 생각 이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김우진을 보자니 자신도 모르게 그를 꽉 안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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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 괜찮아! 네가 있는 걸 모르니까 그냥 나한테 일 얘기만 하고 끊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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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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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처진 김우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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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연약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며 또한 그것이 오윤지라는 여자가 그의 안에 얼마나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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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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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숨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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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괴로움으로 점철된 김우진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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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고 있다는 게…… 참, 뭐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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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그렇기에 여러 여인들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거절하고 있는 본인과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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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오윤지의 말은 김우진에게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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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 오늘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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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겨 있는 최이서를 부드럽게 밀어낸 김우진은 천천히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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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원 호텔로 가기 전,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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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김우진에게 있어 인상적인 하루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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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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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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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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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골드원 호텔로 가는 버스에 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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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맥주를 마셔도 잠이 오지 않았다. 차라리 독한 술을 사 올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 다음 캔을 까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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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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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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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벌써 0시. 지금 따로 올 손님이 있나 싶어서 문으로 향하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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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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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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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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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돌아온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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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주자 밖이 많이 추웠는지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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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내게 팍 건네면서 최이서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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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후, 춥다. 혼자 마시고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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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옷 가게에서부터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은 최이서였기에 걱정됐는데 지금은 또 좀 괜찮아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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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목소리에 나는 종이봉투를 확인하면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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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좀 심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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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있는 건 와인과 작은 케이크. 편의점에서 사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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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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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긴 했기에 웃으면서 묻자, 최이서는 코트를 벗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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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생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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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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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일…… 아니, 이제 오늘이구나. 어쨌든 오늘 골드원 간다니까 하루 일찍 만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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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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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따로 생일 같은 걸 챙기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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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괜히 적적하게 마시고 있을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왔지. 민지가 서프라이즈 파티 해줬는데 미안하다고 말하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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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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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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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 집처럼 자리에 앉는 최이서를 따라 나도 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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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너도 같이 동봉되어 있었기에,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않고 깔끔하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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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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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언제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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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억이 흐릿해서인지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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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 대신 맥주잔에 따라진 와인을 홀짝이며 최이서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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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를 한 입 먹고는 맛있다고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방금까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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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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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최이서에게 나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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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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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를 입에 문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본 최이서는 괜히 못 들은 척 맥주잔을 내밀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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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잔을 부딪친 다음 와인을 들이켰다. 편의점 와인이라고는 해도 비싼 건지 꽤나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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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확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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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내가 원래 이런 와인류 쪽에 좀 약한 편이기도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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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움을 느끼며 최이서를 바라본다. 뭔가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케이크와 와인을 번갈아 가며 먹고 있는 모습은 배가 고팠나 의문이 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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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이거 먹고 자고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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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딸딸한 기분으로 묻자 최이서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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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종이봉투 하나가 더 있었는데 아마 거기에 본인이 입을 옷이나 세면도구를 가져온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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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게 남자 무서운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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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솔직히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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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톤이 흔들리는 게 내 스스로도 취했다고 느끼고 있기도 했고, 지난번에도 콘돔 없다고 최이서가 안 하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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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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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성인용품 가게에서 콘돔만 박스 째로 사왔으니 있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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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네에, 콘돔 사 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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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척, 능글맞게 그리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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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이랑 똑같은 상황이라고 휘청거리면서 포기했다고 연기하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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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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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올라온 작은 사각형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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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최이서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과 콘돔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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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올랐던 붉은 취기가 확 날아가는 걸 느끼며 그녀를 퍼뜩 쳐다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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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포크를 물고 있는 최이서는 일부러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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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한껏 붉어진 얼굴은, 묵묵하니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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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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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야, 와인을 따다가 실수했던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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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집에서, 그놈이랑 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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