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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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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크흠.”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최이서.
평소에는 차지 않는 단아한 손목시계, 민지에게 코디를 부탁해서 입은 남색 코트와 하얀 블라우스까지.
한껏 꾸민 그녀는 민망하니 뺨을 긁적이고 있었다.
꾸미고 온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있었으나, 대놓고 약속이 있어 보이는 몸가짐에 말을 걸어볼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후우.”
내일이면 골드원으로 떠나는 김우진.
같이 가고 싶었지만 방학 동안 최이서도 여기서 할 일이 있었던 탓에 같이 가지 못했고.
그러면 두 달은 헤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최이서는 용기를 내어 오늘 데이트를 신청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부끄러웠지만 막상 지금에 오니 하길 잘했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약속 시간이 아직 좀 남았음에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것이 좀 의아할 정도 설렜으니까.
‘펴, 평소에는 자주 같이 다녔는데.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따로 만난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두근거리고 있다는 점에서.
최이서는 자신이 정말로 김우진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소소하게 다시금 깨달았다.
“음?”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김우진의 목소리. 생각보다 일찍 온 약속대상에게 방긋 웃으며 반겨주려고 몸을 틀자.
“……뭐야?”
거기엔 검은 운동복을 대충 걸치고 있는 김우진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어, 어라?”
중요한 건 김우진 본인 역시 당황하고 있다는 점이겠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서로 마주 보며 할 말을 고르던 와중.
먼저 입을 뗀 건 김우진이었다.
“우, 운동하려고 부른 거 아니었어?”
아뿔싸.
부끄러워서 일단 만나자고 했던 걸 그런 식으로 알아들었구나.
평소 운동에 열중하는 최이서였고 김우진을 그런 식으로 꼬드겨서 부를 때도 잦았으니까.
결국 평소 행실이 이런 착각을 만들었다는 것에 울상이 될 것 같았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잘못 말해줬구나.”
“……잠깐만, 나 금방 옷만 갈아입고 올게.”
무슨 목적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아챈 김우진은 얼른 옷을 갈아입겠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으나, 최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김우진을 잡았다.
“아냐 아냐! 그냥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
“미안해.”
“사과를 왜 해! 내, 내가 실수한 건데! 맞지, 우리 아직 사귀는 것도 아니니까…….”
뒷말이 살짝 서글펐는지 목소리가 작아졌고. 손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한 최이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약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최이서를 보던 김우진이 다급하게 이유를 만들어 냈다.
“아! 혹시 괜찮으면 나 옷 사는 거 좀 같이 가줄 수 있나?”
“옷……?”
“응! 내일 골드원 가는데 따로 옷이 없어서 좀 사려고.”
김우진이 건넨 일종의 배려 섞인 제안에 최이서는 멍하니 그를 보더니 살포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일 가는데 아직도 옷을 안 샀어?”
조심스럽게 옆으로 걸어간 슬그머니 낀 팔짱.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 * *
“훤칠하네.”
옷을 입고 나온 김우진을 보면서 최이서는 진심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변에 안현호나, 한강, 정찬우처럼 잘생긴 사람들이 많은 건 알고 있으나 최이서는 그래도 김우진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같이 동거 중인 민지가 말하길 콩깍지가 씌인 거라면서 뭐라고 해도 말이다.
“크흠, 어색하네.”
여자랑 옷 가게 오는 게 처음은 아닐 텐데도 괜히 불편해하는 김우진.
처음에는 그냥 옷 가게가 어색한 건가 싶었으나 전 여친이자 자신의 친구인 오윤지가 의류 쪽에 관심이 많던 걸 떠올리니 괜히 묘한 질투심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아마, 두 사람은 자주 이런 식으로 와서 옷을 고르곤 했겠지.
‘…….
최이서의 머릿속에 문득, 자신이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옳을까 라는 의문이 차오르기도 했다.
이미 헤어진 사이라고는 하지만, 친구의 전 남친과 이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괘씸하면서도 또한 윤리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지금까지 미뤄뒀던 깨달음에 도달하자.
방금까지 두근거리던 최이서의 감정이 다소 차분하니 가라앉았다.
툭.
갈색 코트를 걸친 김우진의 가슴팍에 손을 가볍게 얹는다. 그리곤 툭툭 두드리며 최이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갈까?”
“……그래.”
갑작스레 바뀐 자신의 분위기를 김우진도 눈치챘다는 걸 최이서도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감정들을 숨기는 게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았기에.
그저 시간에 흘러가게 두길 바랄 뿐이었다.
* * *
쇼핑도 했고.
밥도 먹었고.
영화도 봤다.
생각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로 둘이 사귀게 된다면 이런 시간이 매일 같이 계속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스스로가 바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최이서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김우진의 성욕과 이성이 갈등하는 상황도 있었는데 이마저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에 내리 앉은 응어리는 생각보다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오전에 만났으나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
술이라도 마시자고 할까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자신의 마음에 눅진하게 가라앉은 질투와 추악함까지도 드러낼 것만 같아.
그래서 너무 무서웠기에.
“이만 갈게.”
최이서는 자신의 집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제 골드원으로 떠나게 된다면 두 달 동안 못 본다.
그러니까 뭔가 기억에 남는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허무하리만치 무미건조한 인사.
‘아, 오늘 왜 이래.
아까 옷 가게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루만 지나면 다시 감정을 다 잡을 수 있겠으나 지금은 조금 힘들었다.
“그래, 잘 들어가라. 방학 잘 보내고.”
김우진도 오늘 최이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작게 웃으면서 보내준다.
앞으로 두 달 동안 만나지 못하지만 반대로 고작 두 달일 뿐이다.
그 잠깐만으로 두 사람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관계에 급진적 변화가 있을 리 없었다.
허나 굳이 표현하자면.
정체.
그래, 정체되겠지.
순간 덜컥 겁이 난 최이서가 걸음을 멈췄으나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우웅!
울려오는 핸드폰.
자신의 것이라는 걸 알아채곤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든 최이서는 전화를 걸어온 이름을 보고는 흠칫했다.
- 윤지 -
고등학교 친구이자, 한동안 연락이 안 되던 윤지가 걸어온 전화였으니까.
“왜 그래?”
핸드폰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걱정된 김우진이 다가오자 한 템포 늦게 핸드폰을 확 감췄지만.
김우진은 이미 핸드폰에 적힌 이름을 봤는지 표정이 일그러지며 손짓했다.
“받아줄 수…… 있나?”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김우진의 감정이 무엇인지 읽기 어려웠다.
저건 분노일까 아니면 그리움일까.
최이서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처럼 무엇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고.
- 이서야? 오랜만이네.
오윤지의 목소리는 평소와 그대로였다. 예전 고등학교 때와 하나도 다를 거 없는.
좋게 말하면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다소 독선적이었다.
“무슨 일로 전화했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의미 없는 겉도는 말을 하기엔 지금 최이서의 마음이 그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오윤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의 본론을 꺼내 들었다.
- 이번에 방학했지? 민지랑 같이 나 좀 도와주러 올 수 있어?
“……도와달라고?”
- 응, 알바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 시간 많이 잡아먹지도 않을 거고. 엄청 대단한 것도 아냐.
“생각해 볼게. 밖이라서 민지랑 얘기도 해봐야 해.”
- 그래, 좋게 생각해 줘. 나쁜 일 아니니까.
그리 말한 후, 뚝 끊어버린 오윤지. 정말 딱 서로 할 말만 했다는 게 오히려 원래의 두 사람답다면 다웠으나.
최이서의 걱정 어린 시선이 김우진에게로 조심스럽게 향한다.
“…….”
입술을 꾹 깨물고, 주먹을 꽉 쥔 채로 생각 이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김우진을 보자니 자신도 모르게 그를 꽉 안아주고 있었다.
“괘, 괜찮아! 네가 있는 걸 모르니까 그냥 나한테 일 얘기만 하고 끊은 거야.”
“알아.”
축 처진 김우진의 목소리.
이렇게까지 연약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며 또한 그것이 오윤지라는 여자가 그의 안에 얼마나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냥.”
쓰라린 숨이 흘러나온다.
후회와 괴로움으로 점철된 김우진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잘살고 있다는 게…… 참, 뭐 같네.”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그렇기에 여러 여인들의 관심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거절하고 있는 본인과 다르게.
착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오윤지의 말은 김우진에게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갈게, 오늘 즐거웠어.”
안겨 있는 최이서를 부드럽게 밀어낸 김우진은 천천히 몸을 틀었다.
골드원 호텔로 가기 전, 마지막 날.
여러모로 김우진에게 있어 인상적인 하루라 할 수 있었다.
* * *
까득.
“후우.”
내일 골드원 호텔로 가는 버스에 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아무리 맥주를 마셔도 잠이 오지 않았다. 차라리 독한 술을 사 올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 다음 캔을 까려던 순간.
똑똑.
밖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벌써 0시. 지금 따로 올 손님이 있나 싶어서 문으로 향하며 묻는다.
“누구세요?”
“나야.”
“……최이서?”
뜬금없이 돌아온 최이서.
문을 열어주자 밖이 많이 추웠는지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양손에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내게 팍 건네면서 최이서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아후, 춥다. 혼자 마시고 있던 거야?”
아까 옷 가게에서부터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은 최이서였기에 걱정됐는데 지금은 또 좀 괜찮아진 느낌.
가벼운 목소리에 나는 종이봉투를 확인하면서 대답했다.
“그냥 좀 심란해서?”
안에 들어있는 건 와인과 작은 케이크. 편의점에서 사 온 모양이었다.
“뭐야,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려고?”
슬슬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긴 했기에 웃으면서 묻자, 최이서는 코트를 벗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나 오늘 생일이야.”
“……?!”
“네가 내일…… 아니, 이제 오늘이구나. 어쨌든 오늘 골드원 간다니까 하루 일찍 만났던 거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따로 생일 같은 걸 챙기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너 괜히 적적하게 마시고 있을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왔지. 민지가 서프라이즈 파티 해줬는데 미안하다고 말하고 왔어.”
“…….”
“얼른 앉아.”
이제는 제 집처럼 자리에 앉는 최이서를 따라 나도 자리에 앉는다.
오프너도 같이 동봉되어 있었기에,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않고 깔끔하게 열었다.
‘지난번?
그때가 언제였더라.
맥주를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억이 흐릿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와인잔 대신 맥주잔에 따라진 와인을 홀짝이며 최이서를 쳐다본다.
케이크를 한 입 먹고는 맛있다고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방금까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고마워.”
그런 최이서에게 나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웅?”
포크를 입에 문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본 최이서는 괜히 못 들은 척 맥주잔을 내밀었고.
우리는 서로 잔을 부딪친 다음 와인을 들이켰다. 편의점 와인이라고는 해도 비싼 건지 꽤나 맛있었다.
“어우, 확 오네.”
방금까지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내가 원래 이런 와인류 쪽에 좀 약한 편이기도 했기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최이서를 바라본다. 뭔가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케이크와 와인을 번갈아 가며 먹고 있는 모습은 배가 고팠나 의문이 들 정도.
“야, 너 이거 먹고 자고 갈 거야?”
알딸딸한 기분으로 묻자 최이서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까 종이봉투 하나가 더 있었는데 아마 거기에 본인이 입을 옷이나 세면도구를 가져온 모양.
“다 큰 게 남자 무서운 줄도 모르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솔직히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목소리 톤이 흔들리는 게 내 스스로도 취했다고 느끼고 있기도 했고, 지난번에도 콘돔 없다고 최이서가 안 하기도 했으니까.
‘솔직히 있긴 한데.
지난번 성인용품 가게에서 콘돔만 박스 째로 사왔으니 있긴 했으나.
“아쉽네에, 콘돔 사 올 걸.”
없는 척, 능글맞게 그리 중얼거린다.
지난번이랑 똑같은 상황이라고 휘청거리면서 포기했다고 연기하고 있자니.
툭.
테이블에 올라온 작은 사각형 상자.
그게 최이서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과 콘돔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차올랐던 붉은 취기가 확 날아가는 걸 느끼며 그녀를 퍼뜩 쳐다봤고.
입에 포크를 물고 있는 최이서는 일부러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나.
부끄러움에 한껏 붉어진 얼굴은, 묵묵하니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아, 맞다.
그리고 이제야, 와인을 따다가 실수했던 때를 떠올렸다.
서예린 집에서, 그놈이랑 했던 바로 그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