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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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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강의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들려오는 건 재촉하듯 째깍거리는 시계와 그것에 맞춰 움직이는 팬.
벅찰 정도로 힘들 때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어느새 종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생각하니 감회가 벅차올랐다.
“…….”
툭.
펜을 내려놓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단 말이 오늘만큼은 가슴에 울림을 선사해 왔다.
‘끝났다.
마지막 문항에 답을 적어놓은 뒤, 눈가를 꾹꾹 누르면서 숨을 고르자 드디어 현실감이 느껴졌다.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
이제 내일부터는 학교에 안 나와도 된다는 해방감이 찌릿하니 몸을 타고 올라왔다.
물론, 일주일 정도 있으면 바로 골드원 호텔로 가서 일하게 되겠지만 어찌 됐든 쉴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밀린 드라마랑 영화 같은 거 좀 싹 보고, 게임도 하고…….
이미 시험은 다 봤으나 머리로 잠깐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구상을 끝낸 후.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험이 끝났다.
* * *
- 익명171: 끝! 끝! 드디어 끝!
- 익명254: 드디어 학교랑 작별이다! 졸업생분들 수고하셨고 남은 저희도 열심히 학교 다녀 봐요!
- 익명67: 방학 동안 꿀 알바 하실 분 구합니다. 빵집인데 그냥 계산만 하면……!
- 익명93: 하, 시험 하나 남았다.
- 익명59(관리인1호): 고생했다. 방학 동안 대나무숲은 폐쇄한다.
↳ 익명278: 개소리임. 방학 동안 자격증이나, 알바 같은 거 때문에 여기는 그대로 운영함.
↳ 익명59(관리인1호): 시발.
- 익명11: 좆 같았고. 내년에 보자.
각기 시험이 끝난 시간도 다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다들 비슷한 감상을 공유하고 있겠지.
나 역시 대나무숲을 슬쩍 보곤 웃으면서 공지를 남겼다.
- 관리자: 겨울방학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담백하긴 해도 공지라는 건 원래 길게 쓰는 거 아니다. 흥얼거리면서 집에 가려는데 바로 온 톡.
- 유아린: 뭐함.
유아린인 걸 봐서는 내가 공지 올린 걸 알고 바로 톡을 보낸 모양.
방금 전까지 대나무숲을 하고 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 김우진: 방금 시험 끝나서 집에 가는 중.
- 유아린: ㅇㅋ
“……오키?”
그 뒤에 따로 답이 없는 걸 보면 용건은 그게 끝이라는 건데. 별 관심 없다는 걸로 보이기도 했으나 반대로 그거면 충분하다는 걸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 김우진: 오지 마.
혹시나 싶어서 슬쩍 톡을 보내자 조금 있다 답장이 왔다.
- 유아린: 뭐래.
- 유아린: 거길 왜 가 등신아.
“크흠.”
너무 예민했나.
최근 묘하게 유아린이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아서 혹시나 싶어 말했는데 좀 과했던 것 같기도 했다.
- 김우진: ㅈㅅ
헛다리 짚은 걸 사과하자 바로 온 답장.
- 유아린: ㅇㅇ 근데 맥주는 뭐 좋아함?
- 김우진: 안 온다며.
- 유아린: 안 가. 그냥 맥주 뭐 좋아하냐고.
- 김우진: 다 잘 마셔.
- 유아린: 하긴 네가 뭘 가리면서 먹겠니.
- 유아린: 집 냉장고에 맥주 넣을 곳은 있지?
- 김우진: ……안 온다며.
- 유아린: 안 간다니까?
이년 도대체 뭐지.
답장하지 않고 얼른 집으로 간다. 괜히 붙잡힐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집에서 간단히 씻고 나오자.
쿵쿵쿵!
“문 열어, 김우진!”
“미친년아 안 온다며!”
“아, 몰라!”
모르긴 뭘 모른다는 건지.
한숨을 내쉬면서도 일단 문을 열어주는 내가 싫어졌다.
끼익.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온 건 유아린과 정찬우. 둘이 맥주를 바리바리 싸 들고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우진아.”
“외로운 너를 위해 우리가 같이 있어주기로 했다!”
“찬우도 왔어? 잘됐다!”
“뭐야, 왜 정찬우만 반기냐.”
맥주가 담긴 비닐봉지를 내미는 유아린의 입술이 삐죽 내밀어진다. 본인보다 정찬우랑 더 친해 보이는 게 기분 나빴던 모양인데.
“찬우한테 줄 거 있거든.”
들어온 찬우에게 나는 바로 유아린이 지난번에 만들고 간 흉물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꺼야, 가져가.”
“저, 거 뭐야?”
“유아린이 만들고 간 흉물이야. 지난번에 이름도 지어줬는데…… 그, 뭐였지?”
본인 집처럼 냉장고에 맥주를 넣고 있는 유아린이 심드렁하니 답한다.
“우진이와 찬우.”
“그런 이름 아니었잖아.”
“딜도 쪽이 우진이고 박힌 쪽이 찬우야.”
“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 아저씨 사건 누가 아린이한테 말했어?”
이미 범인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되묻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찬우에게 조언을 해주려고 했으나, 녀석의 싸늘한 시선이 이미 내게 꽂히고 있었다.
“우연히 말한 거야…… 아저씨랑은 연락하고 지내니?”
“당연히 아니지!”
아니면 아닌 건지 호들갑 떨 정도인가. 그분 그래도 좋은 사람처럼은 보였는데.
씩씩거리면서 화장실에 가버리는 찬우와 콧노래와 함께 들썩거리는 어깨로 대충 자리를 깔고 있는 유아린.
“뭐 하러 온 건데?”
“놀자고. 너도 시험 끝났잖아.”
“그건 맞지.”
“그리고 우리 같이 골드원 가는데 서로 우애도 돈독하게 다지고, 가서 뭐할지 알아보면 좋잖앙.”
“그것도 그렇……뭐?”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멍하니 유아린을 쳐다보자 녀석은 입가에 손을 가져대며 브이 자를 하고는 앙큼하게 웃어 보였다.
“가서 일 열심히 하장?”
“너도 간다고?”
“우리 고등학교 친구들 전부. 주희 선배한테 말했더니 바로 소개해 주시던데? 덕분에 겨울방학에 꿀 알바 찾았지 뭐.”
“……그래, 차라리 잘됐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 많은 게 지내기 편하겠지. 거기서는 따로 내어준 숙소에서 몇 명씩 지내게 될 텐데 찬우라면 같이 지낼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안주 뭐 먹을까? 시켰어?”
“집주인이 시키셔야죠. 술은 우리가 사 왔는데요.”
뭔 개소리냐는 유아린의 대답에 나는 핸드폰으로 배달 앱을 켰다.
“닭갈비 시킨다.”
“아, 맥주에 뭔 닭갈비야. 치킨 같은 거 시켜.”
“밥 추가해서 닭갈비 시킨다.”
내가 집주인이야.
단호한 나를 보며 투덜거리던 유아린은 그나마 최후의 저항을 해본다.
“그럼 치즈 닭갈비로 시키자!”
“개소리야! 어딜 닭갈비에 치즈 같은 걸 얹고 있어!”
자고로 닭갈비는 그냥 먹어야 제맛이지 않겠는가.
“정찬우 나와 봐! 그냥 닭갈비야 치즈 닭갈비야!”
“나, 나 배가 좀 아파!”
저 새끼는 남의 집 오자마자 똥 싸고 있네. 얼굴이 잘생긴 거 아니었으면 그냥 쫓아냈는데.
이상하게 똥 싸는 자세도 섹시할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럽다.
“저건 필요할 때 도움이 안 돼요.”
“윽!”
들렸던 건가.
꽤나 찬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발언이었으나 유아린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게 달려들었다.
“치즈 닭갈비! 시켜! 적어도 그걸로 먹자고! 사리 추가!”
“아오! 뭔 사리야! 볶음밥을 추가해야지!”
그나마 내가 키가 커서 핸드폰을 든 손을 번쩍 들자 유아린은 닿지 못했다.
어떻게든 뺏어 보겠다며 깡충깡충 뛰는 게 대략 두 번. 서예린이었다면 여기서 울상이 되어서는 짜증 냈겠으나 유아린은 다르다.
“이 색기가!”
무슨 나무라도 타는 것처럼 성큼성큼 내 위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어억!”
너무 뜬금없는 상황에 순간 힘이 풀릴 뻔했으나 내가 누구인가. 시험 기간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홈트를 하고 있는 김우진이다.
……시험 기간에는 홈트가 왜 그렇게 재밌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단한 고목처럼 버티고 선 나는 손을 뒤로 빼면서 유아린이 잡지 못하게 만들었고.
씩씩거리며 올라탄 유아린은 내 목에 손을 두르고, 다리를 허리에 감아둔 상황.
서로 버둥거리다가 숨도 거칠어졌고, 땀도 살짝 흘렸는데 거기에 서로의 뺨도 슬쩍 닿는 게 기분이 묘하다.
“…….”
입을 꾹 다문 채 매달려 있는 유아린.
“뭐 하냐.”
어이가 없어서 묻자 녀석은 꿍얼거리듯 작게 속삭였다.
“몰라.”
“얼른 내려와. 찬우 나온다.”
“싫어. 치즈 닭갈비 먹을 거야.”
“…….”
“아니면 안 내려감.”
“얼큰한 양념에 어딜 치즈 같은 양놈들 것을 넣으려고!”
“치즈 닭갈비.”
“아, 그냥 먹어도 맛있어.”
“치즈 닭갈비.”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해진 나는 얼른 유아린을 떼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녀석의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밀어냈으나.
“흐으응!”
묘한 신음만 들을 뿐 결국 떼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유아린이 더 힘을 줘서 완전 밀착했으니.
“아, 알았어! 치즈 닭갈비!”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으나 유아린은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사리 추가.”
“이년이…….”
“사리 추가!”
“알았어! 사리 추가!”
“……음료수.”
“너 이거 재밌어서 즐기는 거지?!”
“흐히히!”
정답이었는지 드디어 내려온 유아린. 가쁜 숨을 내쉬면서 가까스로 유아린을 떼어냈고, 녀석은 내 핸드폰을 받아서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찬우.
“야 이 똥쟁아. 너 때문에 치즈 닭갈비 먹게 생겼잖아!”
어떻게 남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일단 똥부터 싸재낄 생각하냐고 따지고 들자 찬우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미안, 속이 안 좋았네.”
그러더니 힐끔 우리 눈치와 방 공기를 보고 짓는 어색한 미소.
“나 집에 갈까?”
“갑자기 뭔 소리냐.”
“그냥…… 그게 좋아 보여서?”
뭔가 눈치챈 듯 기묘한 말을 흘리는 찬우.
그런 녀석은 무시한 채로 이미 사이드 메뉴까지 시키고 있는 유아린.
“……나도 화장실.”
묘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일단 화장실로 간다. 가서 세수도 좀 해야겠다.
쿵.
화장실로 들어가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라면 쾌쾌해야 할 화장실이 여전히 쾌적했으니까.
잘생긴 놈은 냄새도 안 나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휴지가 없는데?
생각해 보니까 휴지가 거실에 있지 않았는가. 왜인지 묻지는 않길 바란다.
어쨌든 휴지가 없으면 정찬우는 어떻게 뒤처리를 한 걸까.
냄새도 없고, 뒤처리할 방법도 없다. 근데 물만 내린 걸 보면 그냥 볼일을 보지 않았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했고.
“…….”
정찬우가 의도적으로 나와 유아린만 있을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줬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뭔가.
꽤나 복잡한 술자리가 찾아왔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