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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뭐야. 진짜 연말이네.”
12월 말에 잡힌 유아이 콘서트 일정을 보니 애매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티케팅을 성공하고도 썩 표정이 좋지 않은 걸 이상하게 느낀 최이서가 커피를 마시면서 물어왔다.
“아니, 공연 보러 갈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서.”
왜냐면 이맘때 나는 강원도에 있는 골드원 호텔로 가서 일할 생각이었으니까.
주희 선배한테 말해보니 자리가 많아서 그냥 가면 다 일 시켜준다고 한다.
거기서는 따로 숙식 지원도 가능하고 산골이라서 굳이 나가서 돈 쓸 필요도 없으니까 돈 없는 대학생에겐 꽤나 매력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호텔경영이나 식품조리 같은 곳에서 처음에는 실습 때문에 가도 나중에는 따로 알바 하러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할 정도니 꽤나 괜찮은 알바자리라는 소리겠지.
“알바하는 구나.”
“응, 집에서 돈 안 받으려고. 그래서 2학년부터 기숙사도 들어갈 건데. 거기서 면접 볼 때 방학 기간 동안 알바하는 것도 꽤 가산점으로 붙을 수 있다더라.”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걸 간접적으로 어필하는 방법이라고 했던가.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적을 잘 받는 거라고 익명90…… 그러니까 물치과 화석 이은우가 말해줬지만 말이다.
“흐음.”
뭔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최이서.
“뭐 이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겠지. 정 안 되면 너한테 양도하고 네가 다른 애들이랑 보러 가면 되잖아.”
“……됐어, 네가 성공한 건데. 너랑 가는 거 아니면 굳이 안 갈래.”
살짝 감동 받았는데 억지로 아닌 척하면서 헛기침하자 최이서가 슬쩍 웃는다.
“감동 받았으면서 안 받은 척하네.”
얘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뭐, 콘서트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과제부터 해야지? 내가 도와줄 테니까 얼른 하자.”
얼른 주제를 돌리는 최이서. 말대로 일단 과제부터 끝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도 나중에 가고 싶으면 말해. 티켓 줄 수 있으면 줄 테니까.”
아니면 내가 취소하고 바로 예매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편집 프로그램을 다시 키면서 그리 말하자 최이서도 살포시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해왔다.
‘뭔가 분위기가…….’
서예린이랑 유아린이 같이 있을 때는 정신없이 싸우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편안하니 마음도 한결 놓이는 느낌이다.
“제가 아니라니까요! 저 새끼가 시킨 거예요!”
“시킨다고 그대로 다 해? 어? 다 하냐고!”
“아오! 이거 어쩔 거냐고! 나 여친한테 무조건 티켓팅 성공한다고 말해뒀단 말이야!”
뒤에서 얼간이들의 기묘한 비명이 들려오긴 했으나 그냥 못 들은 척하면서 넘어간다.
안현호가 계속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지만 어차피 실행범은 저 자식 아닌가.
하지만 당연하게도.
“야, 김우진!”
“이 쓰레기 자식아!”
사건의 전말을 전부 들은 표진호와 강한강은 나를 죽이겠다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어? 네가 사람이야? 사람이냐고!”
“이서야 안녕? 미안한데 잠깐 얘 좀 데려가도 괜찮을까?”
무식하게 나한테 따지고 드는 표진호.
적장을 잡으려면 말을 쏘라 했던가. 최이서에게 먼저 말을 거는 강한강.
둘이 무슨 당근과 채찍이라도 되는 것처럼 꽤나 정신없이 밀어붙여 왔으나.
“싫은데요.”
방금까지 풋풋하니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던 최이서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했다.
마치 과에서 처음 그녀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
‘생각해 보니까.’
최이서는 원래 이런 분위기였다는 게 새삼 떠올라서 좀 놀랐다.
무표정하니 강한강과 표진호를 노려보는 최이서는 천천히 다리를 꼬면서 둘을 올려다본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싸늘한 그녀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두 사람. 특히나 표진호 같은 경우는 지난번 유아린한테 데인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움츠러든다.
“그, 그게 있잖아, 이서야. 사실은…….”
눈치를 보던 한강이 냉큼 자신들의 사정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기에 나는 바로 일어서서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
“난 잘못한 거 없어!”
아니다.
내가 잘못한 거 나도 안다.
“개소리하지 마!”
저 멀리서 만신창이가 되어서 찬우의 위로를 받고 있는 안현호가 버럭 소리쳤으나 나는 더욱 뻔뻔하게 나오기로 했다.
“이서야, 저것들 말 듣지 마! 나만 믿어!”
최이서가 저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최대한 밀착마크 해주려는데 아예 내 등 뒤로 외치는 한강.
“우리가 거의 한 시간 전부터 여기서 티켓팅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
“듣지 마!”
바로 양손으로 귀를 감싸며 막아주고 나한테 시선을 고정시켜 주었다.
이게 무슨 난리냐고 최이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나름대로 절박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 저항을 할 뿐이었다.
“나만 봐! 이서야! 헤, 헤드셋! 헤드셋으로 노래 듣자!”
“이거 잡아당겨! 이서한테 설명하면 아마 데려가라고 할 거야!”
“넌 죽었다!”
바로 표진호와 한강이 내 등을 잡고 당기기 시작했는데 이서의 귀를 막고 있는 손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무기력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야.”
어이없다 못해 상황 자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최이서. 나는 둘에게 붙잡힌 채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는데.
“저기, 조용히 좀 해주세요.”
주변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쏟아졌기에 잠깐의 틈이 생겼다.
둘을 뿌리치고 다시 냉큼 자리에 앉은 나는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혀서 그대로 누워버렸다.
의자 팔걸이에 팔을 감아서 버틸 준비를 끝냈다. 아무리 저것들이라도 여기서 나를 때리거나 하진 못하겠…….
폭.
허벅지에 느껴지는 따스한 무게감.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하고 있는 내 위에 올라탄 최이서는 부끄러움에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한강과 표진호에게 말했다.
“제, 제가 혼낼 테니까 이만 가세요.”
“…….”
“……시발.”
현타가 온 표정으로 나와 최이서를 번갈아 가며 보던 표진호는 이마를 탁 치며 몸을 틀었다.
“김우진 개새끼, 꼭 내 후임으로 와라.”
녀석의 뺨에 흐르는 건 눈물이었을까. 알 것 같았지만 그냥 모른 척해주자.
“제발 죽어라 김우진. 두 번 죽어라.”
표진호의 등을 두드려주며 같이 떠나간 한강. 방금까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 치고는 꽤나 평화롭게 끝났고.
그 중심에는 최이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끼릭.
눕혔던 의자를 다시 일으킨다.
“흐엣?!”
순간적으로 최이서와 거리가 확 좁혀졌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의자를 당겨서 컴퓨터 앞으로 가져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시켜. 내가 더 사줄게.”
덕분에 살아남았는데 이 정도는 사줄 수 있지. 방긋 웃으면서 말하자 내 무릎에 여전히 앉아 있는 최이서는 손을 들어서는 내 뺨을 잡아당긴다.
“너 뭐했어.”
“……별거 아히야.”
“얼른 말해.”
싸늘한 최이서의 시선에 결국 나는 안현호를 매수해서 두 사람의 컴퓨터를 끄라고 지시했다는 걸 실토했다.
“어휴, 바보야. 그렇게까지 티켓팅 하고 싶었어? 너 유아이 팬 아니잖아.”
“네가 팬이라며…….”
반 정도는 저것들이 괘씸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최이서가 팬이었기에 티켓팅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시무룩해진 나를 보면서 최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무릎에 앉아 있으니 얼굴이 옆에 있어서 숨결이 바로 뺨을 훑고 지나가는 게 간지럽다.
나름대로 이 자세에 익숙해진 느낌이었으나 슬슬 일어나려는 최이서.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는지 하나 더 물어왔다.
“근데 안현호가 왜 네 말을 들어줘? 쟤 저기서 맞은 거 같은데?”
“…….”
너를 가지고 안현호한테 딜을 쳤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말았다.
이건 말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이서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방긋 웃으면서 묻자 최이서가 눈을 작게 뜨며 슬그머니 내 목에 팔을 두른다.
“말해.”
“우, 우리 이 자세로 있으면 큰일 아냐?”
“말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본다니까?”
“쓰읍, 말하라니까?”
“나 섰어! 하반신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갔다고!”
어떻게든 최이서를 떼어내려고 해선 안 될 말까지 해버렸다. 솔직히 거기까지 내가 떨어지진 않았기에 실제로 세우고 있진 않지만.
내 이미지를 버리면서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고, 최이서는 실제로 자신도 모르게 힐끔 아래로 시선이 갔지만.
“너 이런 게 한두 번이야? 상관없는데?”
“미친.”
슈퍼 당당 최이서.
오히려 내 목에 감은 손에 더 힘을 줘서 마치 헤드락에 걸린 것처럼 목이 뻐근해졌다.
몸을 비스듬히 돌려서 옆으로 앉은 최이서는 반대 손으로 내 뺨을 누르며 묻는다.
“얼른 말해.”
졌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오는 최이서는 이길 수 없었기에.
“그, 그게…….”
플스 샀다고 아내에게 보고하는 남편처럼 푸념하듯 털어놓자.
꽈악!
내 뺨을 누르고 있는 최이서의 손가락에 힘이 꾹 들어간다. 무슨 지건도 아니고 이빨 빠질 것 같다.
“미안해.”
아무 말도 없이 뺨을 꾹 누르고 있는데 오히려 이게 화를 막 내는 것보다 더 무섭다.
“미안하다니까.”
“…….”
“미안하다고! 뭐라고 말이라도 해라! 무섭다!”
뺨에 구멍 뚫릴 것 같다.
천천히 손을 뗀 최이서.
하지만 여전히 목에 두른 팔은 놓지 않았고,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는 것도 조금도 기세가 줄지 않았다.
결국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화면에 나타난 메뉴를 보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골라. 진짜 다 사줄게…….”
최이서의 등을 스치며 손을 뻗어 마우스를 잡는다.
졸지에 최이서를 품에 안은 것 같은 자세가 되었으나 뭐가 됐든 그녀의 화는 풀리지 않겠지.
시무룩하니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쪽.
“……음?”
갑자기 뺨에서 느껴진 부드러운 촉감. 퍼뜩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최이서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니 그, 시무룩한 게 좀 귀여워서…….”
“이 정도면 조울증 아냐?”
어이없다고 그녀를 쳐다보자 다시 손가락으로 뺨을 꾹 눌렀고, 다시 모니터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쪽.
그리곤 뺨에 똑같이 느껴진 감촉.
이번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나도 부끄러움을 느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야, 이번에는 뭐야.”
“아까 누른 거 아플까 봐.”
그래서 뽀뽀해 준 건가?
아픈 게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쪽.
“그, 그만해라. 나 힘들다.”
쪽.
“이번엔 또 뭔데.”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입맞춤에 서서히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심장이 열이라도 받은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으며, 온 신경이 뺨에 몰려 있는 것만 같은 착각 속.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당연하게도.
“이거…….”
하반신이었다.
조심스럽게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간 최이서. 나는 괜히 못 본 척하면서 억지로 모니터에 화면을 두고 있으나 갈 곳을 잃은 마우스 포인터는 이리저리 의미 없는 움직임만 반복했다.
“이, 익숙해! 네가 이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방금과는 다르게 허벅지에 감촉이 느껴지고 있음에도 최이서는 붉어진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
“…….”
“…….”
“……어, 어우. 조, 좀 과하네.”
점점 더 힘이 들어가 본모습을 선보이며 최이서를 찌르는 하반신 탓에.
조심스럽게 내게서 일어나 다시 옆자리로 돌아가는 최이서였고.
밀려오는 수치심에, 집에 가고 싶어진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