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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371 lines
12 KiB
Markdown

최이서가 진심으로 원했다면 나도 다른 PC방으로 갈 의향이 있었다.
PC방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냥 제로PC방에 가겠다고 다시 말을 번복한 게 최이서였다.
- 어차피 평생 피할 수도 없으니까.
맞는 말이긴 하다.
괜히 학교에서 만나서 어색한 것보다는 차라리 이럴 때 만나서 앞으로 안현호를 대할 때 어떻게 할지 분위기를 잡아두는 게 낫겠지.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근처에 자리를 잡을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멀찍이 코트를 걸어두고 다시 세 사람에게 다가간다.
"하이, 등신들."
"얘 부른 사람 누구야."
반갑게 인사한 나를 보면서 바로 인상을 구기는 표진호. 뿐만 아니라 한강과 안현호도 썩 반기진 않는 눈치.
"너희 베프 됐네, 축하합니다."
박수치면서 얼간이들이 친해진 걸 축하해준다.
"안 불렀는데 어떻게 왔냐."
"누구야. 누가 불렀어."
"전 아닌데요."
"지랄들을 해라. 나도 과제 때문에 온 거야. 너희처럼 한가한 게 아니라."
이 새끼들 진짜 나 빼고 온 거였잖아?
솔직히 불렀어도 오진 않았을 텐데 불리지도 못했다는 게 이상하게 기분 더러웠다.
"야, 너도 왔으니까 옆에 앉아서 티켓팅 좀 도와줘. 유아이 콘서트 갈 거야."
"남자 셋이서?"
당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표진호. 하지만 뒤에 있는 안현호와 한강의 표정은 좀 달랐다.
"쟤네는 아닌 모양인데?"
턱짓으로 가리키며 묻자 표진호의 고개가 퍼뜩 돌아가며 배신자들을 색출했다.
"나는…… 여친이랑 갈 건데."
"전 이서한테 말해보려고요. 걔가 유아이 팬이라."
군대 가기 전에도 여자친구 사귀는 한강의 폼이 미쳐서 표진호랑 싸우기 시작했으나 그건 내버려두고.
"최이서가 유아이 팬이였어?"
"몰랐냐?"
승자의 미소를 짓는 안현호.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하나 싶었는데 등을 툭 치며 확 풍기는 상쾌한 향.
"우리 자리 어디야?"
하얀 스웨터를 입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꾸민 듯 아닌 느낌을 주는 최이서였다.
내 옆으로 오면서 안현호랑 다른 사람들과도 눈이 마주쳤는데 간단하게 손 인사하면서 넘어갔다.
"저쪽에 내 코트 걸어뒀어."
남자들에게서 쏘아지는 시선 탓에 어색하니 답했으나 최이서는 망설이지 않고 그쪽으로 냉큼 가버렸다.
최이서가 사라진 순간, 바로 쏘아지는 못난 놈들의 쓴소리.
"이 개새끼가 눈앞에서 NTR을 하고 있네!"
"나쁜 놈 만들지 마! 최이서랑 사귄 적도 없으면서 나를 이상한 애로 만드네?!"
기가막히다며 삿대질하는 안현호에게 곧장 중지를 날려줬다.
"예린이도 오니? 설마 예린이랑도 같이 있는 걸 내 눈앞에서 보여주려는 건 아니지?"
서예린이랑 PC방에서 밤을 지새운 게 몇 시간도 되지 않았기에 살짝 양심에 찔렸으나.
"미안한데 선배가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여자친구 벌써 생겼으면서 무슨 서예린을 언급하고 있어!"
이 새끼는 서예린 없으면 죽을 것처럼 굴면서 막상 할 건 다 하는 게 열 받는다.
"아린이랑도 막 그런 사이는 아니지?"
"걔는 진짜 아냐!"
악에 받쳐서 반박하자 표진호는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결론적으로 씩씩거리면서 나에게 증오를 표출하고 있는 건 안현호밖에 없는데 우리는 서로 중지를 들어 올리며 헤어졌다.
"빡큐."
"어, 쌍빡큐."
얼간이들은 내버려두고 최이서 쪽으로 가자 이미 자리를 잡은 채로 의자에 푹 감싸여 있는 모습.
거의 잠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밥 먹었어?"
"아직. 운동한 다음에 먹으려고 굶었지."
이미 점심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밥을 안 먹었다니.
"뭐 먹을 거 시켜. 내가 사줄게."
익숙한 주문화면을 키면서 말하자 최이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가를 가린다.
"크흠, 크흠."
"뭐야,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뭐 먹지."
내 쪽으로 몸을 내밀고 이것저것 훑어보는 최이서. PC방에 있는 음식들은 다 칼로리가 있는 것들이라 좀 고민하는 모양이었는데.
'슈발.'
살짝 어깨가 닿거나, 은근슬쩍 흉부가 팔에 스치는 게 묘하다.
어제도 그렇고 원래 PC방이 이렇게 야릇한 장소인가?
"매운 라면 먹을래."
냉큼 라면을 담고 커피도 두 잔 시켜서 주문을 넣었다. 찬우가 가져오기까지 좀 남았으니 메일로 보내둔 자료들을 다운받고 있자니 최이서가 주변을 힐끔 둘러보며 작게 속삭였다.
"커, 커플 같네."
"……."
"사줘서 고마워."
어제 서예린이랑 유아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최이서. 덕분에 기분은 좋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너 일 시키려고 사주는 건데."
괜히 퉁명스럽게 말해봤으나 최이서는 내가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도와줄게."
포근하다고 해야 하나.
몽실거린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게 최이서와 함께해서 그런 거라는 걸 모를 정도로 둔하진 않았다.
마침 찬우가 음료랑 라면을 가져다줬고. 그걸 먹고 시작하려고 최이서를 기다리는 와중.
"그러고 보니까 너 유아이 팬이야?"
아까 안현호가 말했던 게 떠올라서 묻자 최이서는 라면을 호롭 먹으면서 끄덕였다.
"응, 나 플리에도 유아이 노래가 대부분이야. 운동할 때도 듣고."
"저쪽에서 애들이 유아이 콘서트 티켓 예매한다는데? 아마 연말콘서트 같은 거 아닐까?"
"진짜? 좋아하긴 하는데 콘서트 같은 거 가볼 생각은 안 해봤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 당연히 그렇겠지.
"시간도 얼마 안 걸릴 것 같은데 우리도 티켓팅이나 해볼까?"
내가 그리 말하자 멍하니 나를 보던 최이서는 라면을 꿀꺽 삼키곤 조심스럽게 묻는다.
"……데이트하자고?"
"왜 그런 식으로 엮으십니까. 그냥 콘서트 보러 가는 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최이서는 냉큼 티켓팅 하는 사이트를 켠다.
하지만 이런 걸 해본 적이 없는 우리였기에 조금 막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냥 새로고침만 계속하고 있으면 되는 건가?"
"몇 시에 티켓 풀리는지 알아?"
"여기 보니까 3시부터 예매시작이라는데?"
"10분 정도 남았네."
뭔가 꿀팁이라도 찾아볼까 싶다가 생각해 보니까 저쪽에서 이미 열을 내면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잠깐 가서 물어보고 올게."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얼간이들이 있는 쪽으로 간다. 마침 찬우도 10분 남았다고 그쪽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아, 오지 마. 너까지 오면 다 모이는 거라서 그때 생각난다고!"
"엄밀히 따지면 대머리 아저씨가 없으니까 다 모인 건 아니지."
"우욱!"
안현호의 핀잔에 너스레 떨며 답하자 이상하게도 찬우가 피해를 입고 얼굴이 하얗게 뜬다.
"우리도 티켓팅 할 건데 꿀팁 좀 주라."
보니까 우리가 보는 시계랑 다른 시계로 시간을 보고 있는데 저런 건 어디서 찾은 걸까.
"꺼져 김우진!"
"엿 먹어 기만자 새끼야!"
바로 중지를 들어 올리는 병신들.
한강과 표진호가 혀까지 내밀며 나를 조롱한다.
"어딜 티켓팅을 하려고. 우리가 경쟁자를 늘릴 것 같냐?"
"가서 과제나 하세요! 티켓팅은 자비나 배려 같은 거 없어. 승자가 다 먹는 독식게임이야! 이기면 장땡이라고!"
"제발 군대로 꺼져."
"어, 너도 올 거야!"
"너 내 후임이다. 수고해라."
"이, 이, 이병 기, 기, 김우진!"
"저,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씹새끼들."
져버린 나는 어깨가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 한강과 표진호가 내 선임으로 있는 걸 상상하니 아찔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근데.
"울지 말고 말해라 병신들아."
"흐어엉!"
"훌쩍."
한강과 표진호의 눈에 눈물이 고인 걸 보면서 혀를 차자 놈들은 울지 않은 척 냉큼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직 지들도 겪지 않은 걸 나한테 대입시키려고 드니까 지들도 아프지.
어쨌든 티켓팅 꿀팁은 절대 안 알려줄 것 같아서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슬쩍 안현호에게 손짓하며 몰래 부르자 녀석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불량스럽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왜."
"꿀팁 좀 알려줘. 이서 가고 싶어 해."
"너랑 가게 내가 두겠냐?"
"이서한테 네가 도와줬다고 말하면 그래도 지금보단 기회가 좀 생기지 않을까?"
"……."
"너 이미지 족팡난 거 이번 걸로 조금이라도 만회하면 되는 거 아니냐?"
"……."
"솔직히 최이서가 너랑 사귀는 건 나도 싫긴 해. 근데 친한 친구 정도로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하루 술 처먹고 개판 친 우정이야? 아님 사랑이야?"
어깨동무하고 웃으며 작게 속삭이자 안현호의 표정이 슬슬 맛이 간다.
녀석은 슬쩍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티켓팅 꿀팁을 알려줬고.
나는 아까 그놈들이 괘씸해서 한 가지 더 지시했다.
"그건 좀……."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안현호는 망설였으나 나는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야, 정신 차려. 쟤들 이제 곧 군대 가. 저것들이 티켓팅 성공해서 좋아하는 표정 볼 거야? 아님 이서가 티켓팅 성공해서 웃는 거 볼 거야?"
"……."
"티켓팅 성공한 이서가 너한테 현호야 고마웡! 하는 거 듣고 싶지 않아?"
내 말에 결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인 안현호. 그러곤 다시 본인 자리로 돌아간다.
됐다.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사악한 웃음에 세 사람 자리를 지나가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파이팅."
갑자기 내가 응원해 주니 뭔가 싶은 두 사람이었으나 무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왔어? 말해줬어?"
"응, 시계가 다른 게 있더라고."
나는 안현호에게 들은 꿀팁을 빠르게 전수해 준 후, 그대로 티켓팅을 준비한다.
"뭐, 뭔가 떨린다."
"수강 신청하는 느낌이네."
"딱 그거다."
웃으면서 얘기를 이어가던 와중 슬슬 시간이 됐기에 나는 최이서에게 경고했다.
"혹시."
"응?"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냥 못 들은 척하고 티켓팅 하는 거야. 알겠지?"
"……그게 뭔 소리야. 너 뭐했어."
"별거 아냐. 10초 남았다!"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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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 개새끼야! 갑자기 컴퓨터를 왜 끄냐고!"
"이거 미친놈인가?! 오늘 한 시간 전부터 이것만 기다렸는데! 또라이냐?!"
"엥?"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는 최이서.
"두 놈 재꼈고."
승자의 미소가 절로 지어진 나는 티켓팅을 이어갔고.
"……진짜 됐네."
엄청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두 자리 붙여서 티켓팅에 성공했다.
"아, 나는 안 됐다."
아쉬워하는 최이서. 하지만 내가 된 걸 보여주자 환하게 웃으면서 기뻐한다.
마지막으로.
슬쩍 일어나서 저쪽을 보자 두들겨 맞고 있는 안현호.
그러면서도 시선은 이쪽으로 향해 있었기에 나는 윙크에 엄지까지 들어주었다.
"현호야 고마웡!"
"씨발 놈아! 너 말고!"
하지만 내가 성공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