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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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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르으은!”

소파에 누운 채로 투정 부리듯 발버둥 치는 유아린을 보고 있자니 뭔가 가슴에서 막 올라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떠오르는 말은 있는데 간단하게 입에 담고 싶지 않았고, 함부로 내뱉기에는 다소 약하게 느껴진다.

어휘력이 딸린다는 생각은 평생 별로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되니까 스스로의 국어 실력에 대해서 회의감마저 느껴지는 상황.

“나, 나 막…….”

“막? 막막?”

말을 더듬으면서 어정쩡하니 서 있자 유아린은 히죽거린다.

“몸이 뜨거워.”

그리 말하자 유아린은 누운 채로 슬며시 입고 있는 옷을 살짝 올린다.

뽀얗게 드러난 하얀 배꼽이 나의 뜨거운 머리를 더욱 가열시킨다.

“우리 우지니 몸이 뜨거워요? 누나 보고 막 흥분되세요?”

“이게 무슨 감정인지 잠깐 내 안에서 정리 좀 해도 될까?”

“……자, 잠깐만.”

호들갑스럽게 부르르 떨면서 말하자 유아린은 당황했는지 슬그머니 소파에 앉는다.

“지, 진짜 흥분한 건 아니지?”

“조용히 해봐! 할 말 고르고 있으니까!”

머리가 뜨거워서 유아린에게 다급하게 외치며 대꾸한다. 녀석은 괜히 옷을 추스르며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으나 나는 심호흡하며 말을 고르고 고르다 결국 포기했다.

“죽인다는 말보다 더 험한 말이 뭐가 있지.”

“…….”

“뭐? 흥분? 흥분되지. 너를 아주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선 어떤 걸 떠올려야 될지 잘 모르겠어.”

“…….”

“내가 어휘가 부족해서 죽이고 싶다는 말보다 더 심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너무 아쉽다.”

“…….”

“내가 서예린한테도 똑같은 말한 적 있는데. 부모님한테 감사해라. 너는 어렸을 때 태권도 안 배웠으면 여기서 나한테 죽었어.”

“……부모님 감사해요.”

화가 어떻게 이렇게 머리끝까지 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냥 속여서 들어오게 한 건 넘어갈 수 있는데.

라면 끓여오라면서 깔짝거린 순간 이성의 끈이 어딘가 날아간 기분.

초등학생이 옆에서 나한테 쨉 날리면서 “좆밥 새꺄, 내가 우리 반 짱인데 맞짱 까자.” 라고 까부는 느낌.

“어휴, 그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네.”

머리를 긁적거린 유아린은 힐끔 나를 보면서 말했다.

“화내지 말고 일단 가서 너구리로 좀 끓여와. 계란 풀지 말고, 꼬들꼬들하게.”

“…….”

“라면 어디 있는지 알려줘?”

“오늘 둘 중 하나 죽자. 경찰에 신고해라.”

팔을 걷어붙이고 다가가자 녀석은 깔깔거리면서 곧장 내 쪽으로 양다리를 벌린다.

“나 주짓수 너튜브 최근 보고 있거든? 누워서 싸우는 게 나한테 유리함.”

주짓수에서 자주 보던 자세이긴 했는데 막상 그걸 보니 살짝 야릇…….

“하긴 개뿔. 넌 뒤졌다 유아린.”

바로 유아린한테 달려들자 녀석은 냉큼 다리를 내 목에 걸면서 팔 하나를 잡더니 암바에 들어간다.

기술명은 잘 모르는데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서는 꽤나 자세는 잘 나온다.

하지만 실전에선 처음 해봐서 그런지 제대로 기술이 걸리지 않은 데다.

유아린의 몸무게가 가볍고, 나는 자그마치 홈트 한 달 차의 건장한 청년이다.

“우랴아아!”

양팔에 힘을 줘서 매달린 유아린을 들어 올린다. 깜짝 놀란 유아린은 허벅지로 내 팔을 조이며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쓴다.

“자, 잠깐만! 스톱! 스톱! 알았어! 내가 미안해! 내려줘!”

“닥쳐! 넌 이대로 떨어져 죽을 준비해라.”

“야! 오빠! 주인님! 잠깐만요! 저 진짜 큰일 나요! 하지 마요!”

“라면 네가 끓여올 거야!?”

“계란에 파까지 넣어드릴게요!”

마음 같아서는 바닥에 꽂아버리고 싶지만 일단 라면을 끓여온다니까 그냥 소파에 던져주기로 했다.

소파는 푹신하니까 그대로 내리꽂는 순간.

“억!”

허리에 힘이 풀리면서 앞으로 몸이 쏠렸고 그대로 유아린의 위에 나도 같이 쓰러졌다.

“…….”

“…….”

미묘한 상황.

얼굴이 붉어진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유아린은 꼼지락거리다 주먹으로 내 옆구리를 때렸다.

“어억!”

“이 새끼 야동을 얼마나 봤으면 이런 식으로 작업을 걸지?!”

“내가 처맞은 것도 억울하고, 너희 집에서 라면 끓이라고 들은 것도 억울한데. 너 꼬시려고 작업 쳤다는 게 진짜 세상에서 제일 억울해!”

“닥쳐!”

괴로움에 바닥을 나뒹굴면서도 할 말은 해주자 유아린은 씩씩거리면서 부엌으로 가버렸다.

어쨌든 덕분에 혼자 있게 되어서 대충 몸을 추스른 다음 유아린이 끓여온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보통 저런 러브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있었으면 서로 눈치 보면서 쭈뼛거리거나, 얼굴을 붉히는 게 왕도적인 전개인데.

“이 자식 젓가락 놀림 좀 봐라? 너 방금 한 젓가락으로 한 봉지는 가져간 거 알아?”

“별걸 따지네. 우리 집 라면으로 내가 끓여서 먹는데 너한테 그런 소리 들어야 하냐?”

“쓰읍, 손님맞이를 제대로 해야지. 너 지금 혼자서 너희 가족에 대한 이미지를 전부……!”

“뭐, 엄마 부를까? 일본여행 중인데 지금 통화하게 해줘? 사장님 나오라고 해?”

“왜 즐겁게 여행 중이신 부모님을…… 야! 계란 노른자를 혼자 다 가져가네?!”

“내 접시 국물에 풀어 먹어야징!”

우리는 그런 풋풋함 없이 그냥 서로 누가 더 라면 많이 먹는지 가지고 싸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든든하게 먹은 후,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로 나오자 유아린도 나를 보더니 코트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뭐야, 나 배웅 나오려고?”

이제 가려는 걸 알았는지 배웅해 주나 싶었으나.

“뭐래. 편의점 가는데?”

“그래, 뭘 기대하겠냐.”

혀를 차면서 밖으로 나선다.

“야, 근데 새벽 대나무숲에 이상한 짤 올리는 애들은 어떻게 하냐?”

“뭘 어떻게 해. 다음날 차단하면 되지. 그런 짤 올라오면 애들이 저거 왜 삭제 안 하냐고 글 올리거든? 그럼 보지 말고 그냥 삭제해. 이거 꿀팁임.”

“오, 애들 던져주고 나는 혐짤 안 보는 거네?”

“그치. 그래서 나는 가끔 일부러 늦게 반응할 때도 있어. 혐짤 올린 애들이 먼저 보고 저거 왜 삭제 안 하냐고 발광하거든.”

“씹 꿀팁이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아린. 오늘 관리자로서 또 하나 가르쳐줬구나 싶어서 어깨를 으쓱 올리자, 그걸 본 유아린이 바로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다시 낮춘다.

어느새 편의점 앞에 도착했는데.

“잠깐 기다려봐.”

바로 가려던 나를 둔 채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유아린. 금방 들고나온 건 초코몽과 허시 초코우유였다.

“자.”

하지만 뜬금없게도 나한테 초코몽을 건네는 게 아닌가.

“뭔데. 저게 내 꺼잖아.”

허시를 가리키며 묻자 유아린은 초코몽을 내 가슴팍에 던지곤 냉큼 빨대를 꽂아 허시를 마셔댄다.

“오늘은 이게 땡김.”

“뭐야.”

“너도 초코몽 먹어봐. 그거 맛있음.”

“사주는 거니까 맛있게 먹을 순 있지.”

그대로 초코몽을 마시면서 가려는데 유아린이 총총거리며 따라오는 게 아닌가.

“……어디 가냐?”

또 어디 가나 싶었는데 유아린은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며 중얼거린다.

“PC방.”

“왜?”

“너 가서 과제 더 하려는 거 아냐?”

“……맞긴 맞는데.”

“같이 가. 어차피 나 집에 혼자라 심심함. PC방에서 밤새우는 것도 해보고 싶었고.”

뭐, 따라온다는 애를 굳이 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보고 있자니 유아린이 마시던 허시를 내밀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야, 이거 맛없는데? 바꾸자.”

“그러게 그냥 먹던 거 먹으라니까.”

“빨대만 바꾸면 되잖아. 얼른.”

한숨을 내쉬며 나는 초코몽을 내밀었고 빨대만 서로 바꿔 꽂은 채로 다시 초코우유를 쫍쫍거리며 PC방으로 향했다.

혹시 밖에 잠깐 다녀온 사이 찬우가 알바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들어가는데 등이 떠밀려진 탓에 넘어질 뻔했다.

“너 때문에 나 방금 머리 깨질 뻔했어!”

“어휴, 찬우가 있겠니? 걔 내일부터 풀인데 오늘 저녁에 들어오겠냐고.”

“……틀린 말이 아니라 더 짜증 나네.”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자리를 잡으려 두리번거린다. 편집에 불이 붙은 지금 최대한 진도를 뽑기 위해 선택하긴 했으나.

막상 PC방에 오니까 이미 오늘 할 분량 거의 끝냈는데 꼭 다시 해야 할까 싶은 기분.

“웹툰이나 좀 볼까.”

“과제 한다며. 얼른 자리나 잡아.”

“흐으.”

깊은 한숨을 푹 내쉰 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스트레칭을 해준다.

마음을 좀 다 잡은 뒤, 대충 구석 자리로 가려고 하는데.

‘아까 우리 자리 뺏겼네.

나랑 유아린이 있던 자리에 검은 후드집업에 후드를 쓰고, 헤드셋까지 쓰고 있는 한 사람.

뭔가 익숙한 실루엣이었기에 슬그머니 다가가자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는 서예린이었다.

“얘는 왜 여기 있지.”

“뭐야, 예린이네?”

헤드셋 때문에 우리말이 들리지 않는지 게임에 열중 중인 모습이 참으로 열정적이었기에.

뭔가 장난칠 거리가 없을까 싶어서 고민하고 있자니 유아린이 냉큼 달려가 의자 뒤에서 서예린의 눈을 손으로 가린다.

“누구게!”

“어? 어엉?!”

헤드셋 때문에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야도 갑자기 보이지 않으니 당황한 서예린이 다급하게 얼굴로 손을 뻗었으나 내가 그걸 낚아챈다.

“히익!?”

뭔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서예린. 당황해서는 허우적거리는데 우리는 킥킥거리며 그걸 보고 즐긴다.

한 명 더 있었으면 영상이라도 찍었을 텐데.

“아, 알바 분! 누, 눈이 안 보……!”

“헙!”

서예린 정도의 힘은 한 손으로도 제압 가능했기에 양 손목을 한 손으로 잡아두고 이번엔 입을 막는다.

입이 틀어 막힌 서예린은 어떻게든 탈출해 보겠다며 내 손을 깨물었고.

“억! 침 묻었어!”

깜짝 놀라며 손을 빼자, 서예린이 환하게 웃으면서 외쳤다.

“아, 우진이 맛이다!”

“……우진이 맛?”

이게 뭔 소리냐며 쳐다보는 유아린이었으나 나는 말문이 막혀서 뭐라 답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