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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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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게 인사하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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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에 짙게 남은 눈물 자국은 방금 전까지 우리의 감정선이 극도로 치달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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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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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 같은 사랑은 없다고 말했는데, 왜 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하게 쳤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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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이었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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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심정이긴 했으나 그래도 너무 솔직하지 않았나 싶다. 좀 절제할 줄 알아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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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가려는 최이서를 다급하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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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서야. 우리 내일 다시 봐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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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이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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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다시 만나서 촬영해야 하는데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면 내일 볼 때까지 이불만 차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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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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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가 부를 줄 몰랐는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대답하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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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떻게든 분위기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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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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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또 막상 얘기하려니까 도대체 어떻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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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둘이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는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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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둘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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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으로 나오는 민지와 딱 만나게 되었다. 수면바지를 입고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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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쓰레기 투기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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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다 싶어서 곧장 한마디 하자 민지가 투덜거리면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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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서 차례인데 안 와서 내가 하는 거야…… 근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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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우리를 보더니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주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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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뭔 일 있었어? 내, 내가 타이밍을 잘못 맞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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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걸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대강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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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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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를 들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민지는 최이서의 눈물 자국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황급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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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무슨 일이야? 이서한테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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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스럽게 최이서를 끌어안은 민지가 나한테 버럭 외치는 걸 보면서 어깨에 힘이 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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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 안 했으니까 또 형님들 부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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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아픈 상처에 소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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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야, 쓰레기 냄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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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분명 네 편으로 온 건데 왜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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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 둘이 민지를 갈구자 축 처져서는 입술을 삐죽 내민다. 덕분에 분위기가 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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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하네 다들. 난 쓰레기 버리고 그 옆에 앉아 있을게. 타는 쓰레기니까 분리수거까진 필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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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터덜 쓰레기 버리러 가버린 민지를 내버려두고 나는 다시 최이서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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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그윽한 미소가 살짝 지어진 게 최이서도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렸다 생각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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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밝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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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 쪽을 힐끔 보면서 덧붙이는 최이서. 예전에 망상에 휩쓸리던 그때랑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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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도와준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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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용기를 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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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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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는 죄를 지었고 벌을 받았으니 개심해서 새사람이 된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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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슬 가볼게. 오늘 했던 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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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하긴 했으나 그리 말해주자 최이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풋 하고 웃음을 흘리면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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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한 말 흘려듣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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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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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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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답은 주지 못했으나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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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쓰레기장을 지나가면서 쓰레기봉투 옆에 쭈그려 앉아 있는 민지가 눈에 들어오긴 했으나 그냥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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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집에 가서 씻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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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를 켜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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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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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울려온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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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자정을 향해 가고 있는 와중에 울려온 거라면 보통 대나무숲 알림이었기에 별생각 없이 확인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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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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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뜬금없는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분명 아까 같이 촬영하고 헤어졌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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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드렁하니 전화를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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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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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깔린 유아린의 목소리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내게 간접적으로 알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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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집에 데려다준 다음에 나도 집 가는 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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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겠네? 이 시간까지 같이 있었으면 가로등 밑에서 키스라도 박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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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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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쉬면서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유아린이 다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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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아니! 미안해! 진짜 미안하니까 딱 한 번만 나 좀 도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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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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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톡으로 주소 보낼 테니까 거기로 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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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곤 전화를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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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과제 끝나면 그냥 집에 갈 것이지 뭘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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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하면서도 일단 유아린이 톡으로 보낸 주소로 향한다. 오늘 여러 가지로 유아린 관련해서 묘한 얘기들이 들어왔기에 일단 가보는 게 좋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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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 찍어준 장소는 좀 뜬금없으나 동네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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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애들이 돌아다니는 장소가 아니라 불량한 학생들이 괜히 갈 곳 없을 때 보이는 장소였기에 장소부터가 딱 불길한 느낌이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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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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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의 머리색이 워낙 밝은 톤이라서 밤에 멀리서 봐도 바로 유아린인 걸 알 수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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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맞은편에 서 있는 덩치 큰 남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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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꾸미긴 했으나 다소 어색한 느낌. 딱 봐도 지나가다 함부로 눈 마주치면 안 되겠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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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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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본 유아린이 바로 손을 흔들면서 달려온다. 살갑게 인사하면서 끝을 올리는 걸 보면 딱 봐도 연기 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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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와서는 팔짱을 끼는 유아린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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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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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속삭이며 묻자 유아린이 바로 허벅지를 꼬집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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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말만 맞춰줘. 진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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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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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급한 걸 보면 확실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거 딱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기에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확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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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남자 앞으로 데려간 유아린이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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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보셨죠? 얘가 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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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은 아니고요. 그냥 같은 과 다니는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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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유아린의 말을 끊으며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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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썩어버린 유아린은 나를 노려봤고, 오빠라던 분도 표정이 기묘하게 변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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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바로 오빠분에게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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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아린 같은 과 친구. 김우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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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당하게 나오자 저쪽에선 오히려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악수를 받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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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진호라고 합니다. 아린이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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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표진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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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느낌이 들긴 했는데 이렇게 딱 보니까 애들이 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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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혹시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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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소를 입가에 걸친 채로 계속해서 묻자 표진호는 내 흐름에 휘말려서는 말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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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부터 아린이한테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연락을 좀 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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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런데 저를 남친이라고 이 쓰레기가 불러낸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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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내 등에 주먹질을 하고 있는 유아린. 진짜 아프니까 그만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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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심하세요. 저는 얘 남자친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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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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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저한테 막 질투하시거나 욕하시거나, 뒤에서 때리려고 오시거나 그럴 필요 전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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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문이 흐르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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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엮여봤자 좋을 거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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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유아린 남자친구라고 했으면 어떤 봉변을 당했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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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나쁜 놈아! 말 한 번만 맞춰달라니까 그게! 그게! 그게 그렇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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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내 등을 두드리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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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틀어서 녀석의 손목을 낚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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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나를 남자친구인 척하려고 했던 네 심보가 더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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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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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없으면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하면 되는 거 아니냐? 뭐가 무서워서 이런 거짓말까지 치려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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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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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는 주먹질하고 그러셨을 수도 있겠지! 딱 봐도 떡대도 좋으시니까 그러고 다니셨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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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표진호 형님을 가리키며 외치자 형님의 몸이 움찔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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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 몇 살이야! 형님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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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스물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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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주희 누님이랑 동갑이시네. 지금 저 나이를 드셨는데 아직도 주먹질하고 살아가실 것 같아?! 형님 이미 손 뗀 지 오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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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뭘 알아 미친 새꺄! 오늘 처음 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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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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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냥 지껄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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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형님한테 마음이 가는 걸 어쩌라고! 형님이 남자답게 고백을 박으셨으면 너는 여자답게 솔직하게 답해야 하는 거 아냐? 어디서 남친 있는 척 밑장 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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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진짜 죽여 버리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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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흥분했는지 발로 지면을 쿵쿵 내리찍는 유아린. 저거 맞으면 진짜 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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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씀드려! 형님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셨을 거 아냐! 그쵸? 딱 봐도 상남자인 형님께서는 솔직한 대답을 듣길 원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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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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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에 휩쓸리기 시작한 진호 형님 쪽으로 가서 등을 툭툭 두드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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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죠, 저 썅년한테 고백 박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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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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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외친 유아린이 결국 감정을 토해내듯 외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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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선배 싫다고요! 선배 때문에 예린이랑 사이 틀어졌던 것도 빡치고요! 걔한테 질투하게 된 내 자신도 싫고요! 정찬우 개새끼가 제 고백 깠던 것도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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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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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같이할 때 은근슬쩍 다가오던 거 땀 냄새 나서 싫어요! 애들한테 뒤에서 저는 자기 꺼라고 막 경고하던 것도 짜증 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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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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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계속 도장 나오라고 하는 것도 좆같고! 주변 애들한테 연락하면서 저 찾는 것도 좆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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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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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거절했던 거 같은데 이렇게 치근덕거리는 거 존나 싫고요! 첫사랑이니 뭐니 하면서 따라다니는 것도 엿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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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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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사랑은 지독하게 부숴놓고 저한테 이러는 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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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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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입는 거 문돼충 느낌이라서 싫고요! 걸음걸이도 팔자라서 싫고요! 향수 뿌리는 것 같은데 너무 많이 뿌려서 싫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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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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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냄새도 존나 나서 싫고요! 애들 기강 잡는 것도 싫고요! 밤에 이렇게 찾아온 것도 싫고! 기다렸다면서 그윽하게 쳐다보는 것도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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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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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것도 싫고! 저한테 센 척하는 것도 싫고! 톡 보내는 것도 싫고! 전화 거는 것도 싫고! 다른 애들 때문에 눈치 봐야 하는 것도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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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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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차였다고 다른 애들 집합시키거나 분풀이할 거 생각하면 싫고! 삥 뜯었으면서 돈 자랑하는 것도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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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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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는 거 싫고요! 가래 뱉는 거 특히나 좆같고요! 성희롱하는 것도 씨발이고! 정작 다른 여자도 종종 밝히는 게 엿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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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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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냥 싫어! 아니, 어떻게 내가 선배를 좋아할 수 있어요?! 선배한테 바짝 쫄아서 정찬우 그 개병신이 제 고백도 거절하고! 어?! 저 지킨다고 찬우랑 예린이 강제로 맺어주려고 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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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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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고백? 고백? 엿 먹어 개새끼야! 너 때문에 고등학교 조졌는데! 내가 현역이었으면 넌 나한테 처맞고 바로 병원에서 쪽쪽이나 빨고 있어 이빨 다 깨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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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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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그리고 하나만 말해주는데. 너랑 겨루기 할 때 애들이 그냥 져주던 거야 개새끼야! 그러니까 대회 가서 입상도 못 하지! 선수한다고 깝치더니 스물둘에 지도자의 길을 걷는 건 도대체 뭐냐? 대회에서 처맞고 이불에 지도 그린 다음에 생각을 고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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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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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후회되지? 고딩 때는 세상이 내 꺼임 쿰척쿰척하고 다녔는데 막상 밖으로 나오니까 어이쿠? 그냥 좆밥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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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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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한테 그렇게 지랄지랄! 학교에서 그렇게 지랄지랄! 근데 이게 웬걸? 네가 지랄지랄하던 사람들이랑 장소가 사실 너를 지켜주고 있었던 거 지금은 알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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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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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인성부터 고쳐 이 새끼야! 그러다가 군대 가서 개 처맞아! 왜? 선임한테도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고 해라? 너 2학년 때 3학년 선배들한테 그랬다며! 수능 준비하는 사람들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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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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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볼만하겠다. 요즘 핸드폰도 쓴다니까 영통 걸어라. 팝콘 들고 기다릴게! 바로 중대장 소환! 대대장 소환! 연대장 소환! 하나하나 계급장 떼고 싸우다 보면 이 새끼 대통령이랑도 싸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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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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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만아! 축하한다! 계급장 떼고 대한민국을 드셨네! 그때 되면 와라, 그럼 내가 가랑이 벌려서라도 사귀어줄 테니까 시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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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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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거리면서 표진호를 노려보는 유아린. 나는 천천히 유아린에게 다가가 뭔가를 건네주는 시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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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에게 쥐어지는 합격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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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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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게 없어서 대충 주는 시늉만 했는데 의외로 잘 받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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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표진호가 흥분해서 달려드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말로 이미 살해당하셨는지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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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멋지십니다. 남자답게 고백 박고 남자답게 까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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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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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터덜터덜 떠나가는 표진호. 나는 어깨를 두드려주며 핸드폰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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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소주나 한잔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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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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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마비라도 되셨는지 아무 말 없이 그냥 나한테 번호를 찍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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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좀 진정이 되셨는지 슬쩍 유아린을 쳐다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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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다 씨발년아 같은 소리하면 죽인다 씨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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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미 링에서 내려왔는데 왜 또 때려!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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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결국 그대로 떠나가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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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남은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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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 선배 좀 무서웠는데. 한 번 말문이 트이니까 그냥 쏟아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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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워낙 많이 했기에 호흡이 거칠어진 녀석을 보면서 나는 씨익 웃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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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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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음에 유아린도 웃더니 주먹을 슬쩍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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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후련해서 살짝 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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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민 주먹에 나도 주먹을 맞대주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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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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