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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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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강의가 끝나니 시간은 벌써 저녁 7시. 도대체 왜 이 시간까지 강의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는 게 교수님도 표정이 어둡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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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들끼리도 각자 꿀 강의 시간 같은 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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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는 강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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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강의가 끝나고 원래 같았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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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쉽게도 가서 과제를 해야 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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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겁나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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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가 조금은 잘해졌는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냥 도망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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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한 서예린을 보는 게 조금 무섭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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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했다고 한 다음에 그냥 토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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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머리가 말하고 있으나, 몸은 당장 집에 있는 매트리스에 눕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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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나는 편집인데 촬영현장까지 같이 있을 필요가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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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민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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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것까지는 좀 무리라고 해도 일단 선배한테 가서 내가 촬영 현장까지 같이 있을 필요는 없지 않냐고 말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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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설득해 보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앉은 채로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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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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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려 한다! 체포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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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한 목소리가 강의실 문 앞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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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과 유아린이 호들갑을 떨면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으며, 마치 지키고 서 있는 것처럼 문 앞에 있는 최이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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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혹시라도 도망치지 않을까 생각해서 잡으러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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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도망쳐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 유아린이 재빠르게 달려와서는 내 목덜미를 부여잡고 아래로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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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쉑기! 잡았다! 가만히 있어!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고, 가서 그냥 노예처럼 일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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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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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내면서 유아린의 손을 쳐내자 녀석이 김빠진단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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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분위기 존나 못 읽음. 이러니까 친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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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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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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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 얘기할지 말하지 않았는데 벌써 알아차렸는지 호들갑 떨면서 어깨를 찰싹 때리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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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보다 한 템포 늦게 온 서예린이 웃으면서 옆자리에 둔 내 가방을 챙겨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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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가자. 주희 선배랑 다들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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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주희 선배를 언급하면서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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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나 하고 있지 왜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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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도망칠 것 같아서 우리끼리 잡아 온다고 말하니까 다녀오라고 하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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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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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외로 예상하기 쉬운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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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적중당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도망칠까 봐 가방을 챙기는 서예린과, 일으키는 유아린 때문에 결국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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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까지 가자 최이서는 뭐가 재밌는지 웃으면서 나름의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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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선배가 저녁 먹자고 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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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는 좀 잘하게 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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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주희 선배가 잘 가르치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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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눈앞에 있는데 영어 대사 몇 개 못 외우는 게 말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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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은 한강 두드려 패는 주희 선배를 못 봐서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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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양고기 무한리필 집 있거든? 거기 간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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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무한리필은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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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일본식으로 주점처럼 돼 있다는데. 한강 선배가 미안해서 오늘 쏘겠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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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기보단 그것마저 안 하면 진짜 주희 선배한테 불알 터졌으니까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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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멍석말이 당하던 모습이 선명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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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술 마시면 촬영 못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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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마시거나 조금만 마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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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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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아직도 내가 준 모자를 쓰고 있었으나, 서예린이 그걸 알아챘다는 것까진 모르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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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먹어봤냐? 나는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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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옆에서 끼어드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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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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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어봤는데? 꼬치 집에서 자주 팔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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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향신료 뿌려서 주나? 꼬치 집에선 그런 거 뿌려서 먹는 거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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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는 곳 꼬치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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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걸? 오기 전에 메뉴판 확인했는데 닭다리처럼 뼈에 고기 붙어 있던 사진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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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고기는 질이 좀 안 좋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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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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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리니까. 엌! 개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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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시발 새끼! 존나 재미없네! 아가리가 겸손할 줄을 몰라요! 떠오른다고 내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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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드립 한번 날렸다가 바로 유아린한테 두들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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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유아린이 미지의 고기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걸 조용히 보고 있던 최이서도 슬쩍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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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같은 거 아니야? 일본 훗카이도에선 징키스칸이라고 양고기 요리 따로 팔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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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가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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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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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도 그냥 너튜브로 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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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도 본 적 있는 것 같아. 그거 여행 너튜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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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양고기부터 시작해서 징기스칸, 일본 여행까지 이야기가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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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일본에 여행가면 어딜 가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얘기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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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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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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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느껴지는 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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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우연히 살짝 스친 거겠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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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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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이 엉덩이 한쪽을 꽉 잡으면서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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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삿포로 열차는 나도 타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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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옛날에 예능에서 나왔잖아. 그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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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랑 최이서가 안 어울리지만 화기애애하니 대화하는 틈을 타서 슬쩍 고개를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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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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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띤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서예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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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마주치자 손에 좀 더 힘을 주면서 엉덩이를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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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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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모양으로 뭐라고 한마디 해줬으나 서예린은 혀를 날름 내밀면서 손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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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억지로 손을 뒤로 빼서 서예린을 밀어낸 후에야 떼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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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미쳤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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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가 풀리니까 본인이 망아지인 줄 알고 날뛰는 게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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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배들 미리 가서 자리 잡아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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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톡을 확인한 최이서가 걸음을 멈췄다. 아예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하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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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타고 오라고 하시네…… 한강 선배가 다 내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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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렸다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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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로 택시를 부를까하다가 때마침 학교 입구에 정차 중인 택시가 있어서 그걸 타고 양고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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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아, 한강 선배랑 같이 밥 먹는 거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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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유아린이 서예린을 걱정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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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무렇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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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 상관 없다는 후련한 답을 내놓은 서예린. 오히려 물어본 유아린이 당황할 정도로 문제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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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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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확실히 일본풍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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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키보다 좀 더 작은 벚꽃 나무 모형이 있었고, 일본인형이나, 애니 피규어, 등불 같은 것들이 나름 운치 있게 마련되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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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인테리어도 일본 드라마 같은 곳에서 볼 법한 주점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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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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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겨주는 한강 선배. 웃고는 있지만 그늘이 진 걸 보면 돈이 꽤 깨지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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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트롤 짓을 하고 가시는데 이 정도는 지불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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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들 꼬신다고 쓰시던 돈을 우리한테 쓰시는 걸로 퉁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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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군대 가면 돈 쓸 일도 별로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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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테이블에 맥주잔들이 올려져 있었는데 특히나 주희 선배는 이미 꽤 마셨는지 500cc 맥주잔이 벌써 반이나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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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무슨 정치 얘기하는 아저씨처럼 옆에 안현호를 딱 붙잡고 앉혀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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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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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암 쏘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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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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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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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새끼야. 혀 뽑아서 여기 화로에 같이 구워 줄까? 발음이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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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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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직까지 안현호를 가르치는 모양. 하지만 내가 강의 들어가기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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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주희 선배도 저 정도면 만족하실 텐데 술이 들어가서 좀 격해지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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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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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쏘 쏘리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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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가져와. 우설로 먹어야겠다. 우진아,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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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은 나한테 바로 물어보시는 선배. 안현호와 눈이 마주친 나는 바로 눈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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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먹으면 쟤랑 키스하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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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웩,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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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를 들고 안현호 입에 넣으려던 선배는 바로 내려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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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내가 구우려고 했는데 직원 분께서 따로 구워주셔서 그냥 얌전히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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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오늘 촬영 더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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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심스럽게 묻는 최이서. 밥만 먹고 과제를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술을 마시면 전부 취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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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는 곧장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금 안현호를 째려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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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워낙 잘해줘서 오늘 찍으려던 분량 초과해서 찍었어. 왜냐면 한 장면도 제대로 못 찍은 놈이 하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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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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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후까지 다 외우고, 연습해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부터 제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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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가 나오는 장면들을 찍어야 했는데 그걸 못 찍었으니, 다른 배역의 애들 쪽 분량을 더 찍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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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일은 안현호의 독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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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희가 도와주는데 제육볶음 하나 사준 건 좀 그렇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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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육이 뭐 어떠냐고 되받아치려다가 겨우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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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일정 계산 해보고 충분히 여유로울 것 같아서 쉬는 거니까 걱정 마라. 오늘 해보니까 생각보다 촬영이 길진 않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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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야 핸드폰으로 그냥 촬영 버튼 누르면 시작이니까. 조명이나 오디오 같은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배우만 잘하면 촬영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단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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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너희도 마셔. 오늘 고생 많았고, 이제 시작이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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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의 허락이 떨어졌고,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맥주를 시키며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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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놓인 화로의 열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듯, 우리 테이블도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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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강의가 있으니 술은 적당히 조절해서 마시고 있으나 어쨌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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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기회라 여겨 은근슬쩍 주희 선배의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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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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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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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려고 일어서려던 선배는 내 부름에 어정쩡한 자세로 다시금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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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편집을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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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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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각본도 제가 제안했지 않습니까? 유아린의 도움을 받게 된 게 제 덕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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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렇지. 아주 이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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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시는 선배. 분위기가 좋았기에 나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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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편집 기술 같은 걸 좀 배우고 있거든요. 그래서 최근 시간이 좀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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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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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학점 잘 받으면 좋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너튜브 편집자 알바 같은 거 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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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없지만 그냥 둘러대는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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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실은 최근 시간이 좀 부족합니다. 강의에 공부에 편집에…… 제가 촬영까지 따라다니기가 조금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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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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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나는 배역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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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할 때 구도 같은 거나 주의 사항을 듣긴 하지만 사실 그런 건 톡으로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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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빼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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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을 바로 말하자 주희 선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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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야. 너한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었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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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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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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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가 활짝 올라가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주희 선배에게 대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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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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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게 있으면 그럴게. 근데 가능하면 안 부르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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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빠지면 나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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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반대편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아린이 웃으면서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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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서 녀석을 쳐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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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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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를 내리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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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내 기분을 더럽게 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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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빠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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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연습한다는 거 못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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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자 유아린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면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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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노트북에 편집 프로그램이나 깔고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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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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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깔아두고 그런 말하고 있는 건 아니지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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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내 허벅지를 꽉 잡으시는 주희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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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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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안 깔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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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 척하려고 했던 거지 진짜 열심히 하려던 생각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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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편집이라고 해봐야 영상 붙이고, 자막 달고 하는 게 끝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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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왜 럭키 안현호가 된 기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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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대본 안 외운 저 새끼랑 비슷한 거 아닌가 싶어서 살짝 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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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노트북 있지? 꺼내서 보여줘. 쫄리면 뒤지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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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를 잡았다 생각했는지 유아린이 웃으면서 외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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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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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가 맛있다면서 맥주를 좀 많이 마신 최이서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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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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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의 흐름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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