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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 최이서가 쓰고 있는 모자의 출처를 알아냈더라도. 어쨌든 강의는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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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서예린이 은근슬쩍 교태를 부리듯 미소를 흘리는 모습이 단순 유혹하는 게 아니라 경고처럼 느껴져서 살짝 무섭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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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고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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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였다면 원래 서예린, 최이서랑 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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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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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조별 과제 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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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모였을 때에 비해서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어쨌든 결국 모이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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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모였지? 그냥 제육으로 통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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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제육이었는데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라 주대장님께서 정하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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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주희 선배라고 해야 할까. 점심 메뉴 고르시는 판단이 아주 훌륭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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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단톡에 말했던 대로 오늘부터 촬영 들어가거든? 후딱후딱 해서 다음 주까지 촬영 끝내고 편집하는 걸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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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가지게 된 촬영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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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제작이라는 게 꽤나 귀찮은 과제였긴 해도 은근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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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접 시나리오를 짜고, 배우를 연기하는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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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랑 배역, 대본 다 톡에 올려뒀는데 안 본 사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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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주변을 둘러보는 주희 선배. 다들 별말 없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주희 선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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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안 봤다고 했으면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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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바로 촬영 들어가는 애들도 있고, 강의 때문에 빠지는 애들도 있어. 근데 저녁에는 무조건 모일 거야. 우리 배경이 야간이 가장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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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와 공포가 혼합된 짬뽕 같은 영화라서 야간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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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은 한강이었는데 그 새끼 뒤져서 현호가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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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적인다. 보통 주연이라면 부담스러워할 텐데 안현호는 크게 거부감이 없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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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연은 예린이가 맡을 거야. 그리고 2학년 여자애들 조별 과제에서 빠져서 대타로 와준 게 여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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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최이서와 유아린을 가리키는 주희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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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도와주기로 했어. 2학년 애들 빠진 건 내가 교수님한테 말씀 드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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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아마 2학년 여자 셋은 교수님한테 제대로 찍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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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조별 과제가 벌써 절망편으로 가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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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제육볶음이 나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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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아 주길 바라고, 하나는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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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건배사라도 하듯 주희 선배가 솔직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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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잘 들어. 그럼 조별 과제 씹캐리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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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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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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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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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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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강 다섯 시간이라니 정말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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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의 말은 꽤나 아프게 나를 찌르고 들어왔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 했으나 선배도 말실수를 했다 생각했는지 웃으면서 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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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 비는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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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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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대학 구석에 있는 벤치에서 촬영대기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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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핸드폰으로 촬영하면 되는 거라 촬영 기재도 필요 없으니 금방 시작할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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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문제가 묘한 곳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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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 쏘 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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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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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의 발음을 듣는 순간 선배가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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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벽에 부딪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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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대학에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개판인 발음을 구사하고 있는 안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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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대본도 제대로 못 외워서 계속 절고 있는 덕분에 촬영이 지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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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돈 노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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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놈아! 넌 이리와! 아오! 뒤졌다! 바로 교정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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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안현호를 끌고 가는 주희 선배. 덕분에 한가해진 서예린이 슬그머니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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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답장 안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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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곤 바로 쏘아붙이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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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까 전까지는 ‘우지나! 콜라 마실래?’, ‘강의 몇 시에 끝난다 했지?’처럼 해맑게 말해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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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무도 없어지니 바로 싸늘하게 변해서는 나를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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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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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답장이냐고 물었다간 진짜 혼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서예린이 허벅지를 꽉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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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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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모자, 네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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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거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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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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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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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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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긋 웃으면서 내 허벅지에 손을 얹는 서예린. 뭔가 신체접촉이 잦아진 것 같았는데 기분 탓으로 넘길 수 없는 빈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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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랑 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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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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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 화 안 내. 애초에 내가 너랑 뭐 대단한 사이라고 화를 내. 너도 여자친구 사귀고 다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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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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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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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과자 가지고 유혹하는 마녀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다 들키긴 했으며, 서예린 말대로 우린 딱히 그런 사이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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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고 갔어. 따로 그런 일은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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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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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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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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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이렇게 말해도 서예린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딱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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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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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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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변한 서예린을 보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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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분위기. 아니, 오히려 여유마저 느껴지는 것이 묘하게 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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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못 참겠으면 나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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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은근슬쩍 허벅지 위에 놓은 손을 안쪽으로 들이미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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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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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퍼뜩 일어나서 서예린의 손을 피했는데, 그런 내 반응이 웃겼는지 서예린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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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 반응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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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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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우리 파트너 관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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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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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면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서예린.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일종의 경고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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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막 쓰고 다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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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관계 이후, 서예린이 뭔가 변해가고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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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미소를 남긴 채로 그대로 주희 선배와 안현호 쪽으로 가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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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토록 하고 싶다고 외쳐대던 섹x를 했다고 해도 저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건가 싶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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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변화를 오직 나만 알고 있다는 게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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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과 익명69가 동일 인물이나 숨기고 생활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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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로 웃으면서 얘기하는 게…… 영화의 주연을 꿰찰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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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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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에게 속성 강의를 받고 있는 안현호의 모습을 보면서 슬쩍 몸을 뒤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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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5시 강의가 시작하려면 좀 남아서 더 있어야 하는데, 서예린 덕분에 자리에 있는 게 좀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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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도대체 왜 저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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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변하고 있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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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바로 잡아야 하지 않나 싶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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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내가 뭘 할 수 있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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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꼬리 흔들면서 다가오면 넘어가는 게 나였지 않은가. 서예린 때도 그렇고 어제도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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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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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여기서 더 꿰이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생각하며 걷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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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아! 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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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난이가 아니라서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바로 등에 느껴지는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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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내 등을 때린 유아린이 씨익 웃으면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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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하는 거 아니었음? 왜 땡땡이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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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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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유아린을 보니까 괜히 심란하던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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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대놓고 나한테 시비를 걸고, 짜증 내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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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런 게 훨씬 마음이 편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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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분명 뒤숭숭하니 꿍꿍이가 있던 애였는데, 찬우랑 고등학교 관련된 일은 나랑 별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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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더 대하기 편해졌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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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가 있었지만, 그게 다 밝혀진 느낌이라서 대하기 편한 감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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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 사러 온 거야. 너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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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려고? 그럼 나는 하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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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네 돈으로 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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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색기, 말을 꼭 오해하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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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곤 편의점에서 초코몽을 집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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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제 촬영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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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중인 사람들한테 줄 음료수 대충 고르면서 묻자, 유아린은 꽤나 흥분된 듯 목소리를 높이며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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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솔직히 완전 기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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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영화 같은 거 좋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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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랑 각본 짜는 걸 꽤나 좋아했으니 유아린 입장에서는 자기 과제가 아니어도 끼고 싶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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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학점 잘 받으면 유아린도 같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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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찍으려면 멀었을걸. 아직 몇 장면 찍지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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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왜? 점심 먹고 2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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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보면 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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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과 부과대의 슈퍼 캐리 덕분에 진도가 못 나가는 중이니까. 그거 보면 유아린도 아마 자지러지면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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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빨리하고 싶다. 나 거울 보면서 연습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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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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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드렁하니 계산을 끝내고 다시 촬영 장소로 가려고 하는데 유아린이 나를 붙잡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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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연기하는 거 괜찮나 좀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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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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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빨리! 네 과제 내가 도와주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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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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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 음료수가 담긴 봉투를 놓고 유아린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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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산 초코몽을 꺼내 쫍쫍 거리며 마시더니 심호흡하고 나를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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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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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감정이 잘 담겨 있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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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 맡은 배역에 저런 게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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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 쿨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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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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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유! 에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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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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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마이 에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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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중지를 척 치켜 올리며 무슨 래퍼처럼 어깨를 들썩이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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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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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사가 대본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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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본을 제대로 안 봐서 잘 모르는데 정말 저런 게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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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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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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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욕 값이야. 어우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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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하단 표정으로 품에서 허시 초코 우유를 꺼내서 내 가슴에 때리듯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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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도망치듯 가버리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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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유아린의 등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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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진짜 미친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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