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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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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꼼짝 마! 이 새끼야!”
봉사 동아리 문을 박차고 들어간 주희 선배의 일갈이 거칠게 터져 나갔다.
동아리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불청객인 주희 선배의 기세에 밀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재빠르게 내부를 훑어본 주희 선배는 씩씩거리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한강! 한강 못 봤어?!”
손에 큐대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로 묻는 말에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 노래방 간다는 거 같은데요.”
“노래방?!”
“네에, 태양 노래방으로 간다고 그랬어요!”
얘는 왜 자기 갈 곳을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니는 거지?
내가 어떻게든 커버를 쳐줄 거라는 나름의 자신감인가?
- 김우진: 너 태양 노래방이냐?
- 병신: ㄴㄴ PC방.
- 병신: 동방 애들한테 노래방 간다고 구라 쳤어요.
그래도 사람은 맞구나.
태양 노래방이면 PC방이랑 거의 정반대니까 블러핑 치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후우, 실례했습니다.”
주희 선배는 놓쳤다는 생각에 조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동아리에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정중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그러곤 핸드폰을 두드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서, 선배? 태양 노래방은 반대 방향인데요?”
내가 묻자 주희 선배는 이를 으득 물면서 답했다.
“그 새끼 지금 PC방에 있다고 제보받았다.”
도대체 누구한테 제보를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 김우진: 비상. 주희 선배 PC방 가는 중.
또 답이 없는 한강.
아무래도 도망치는 중인 모양이다.
월요일 저녁 시간, 뜻밖의 추격전을 펼치게 된 우리.
PC방 다음은 김밥천국, 그다음은 당구장, 마지막으로 노래방까지.
우리가 한강의 흔적만 남은 노래방 안으로 들어온 순간, 주희 선배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선배, 일단 진정하시고 내일……!”
콱!
순간적으로 잡힌 내 턱.
주희 선배의 악력에 당겨져 그대로 노래방 탁자 위에 눕혀졌고.
선배는 그대로 내 위에 올라타며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동방도 놓치고, PC방도 놓치고, 김밥천국 그리고 노래방까지 놓쳤네?”
“……!?”
“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 그게 내 결론인데…….”
내 양쪽 볼을 한 손으로 잡은 채로 웃으며 내려다보는 주희 선배. 좋은 향기와는 반대로 미소에서는 벌써부터 섬뜩함이 풍겨져 오고 있다.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네?”
꽈악!
“우붑!?”
악력이 어찌나 강하신지 입술이 앞으로 쭉 내밀어진다. 주희 선배의 거친 숨소리가 입가에 닿는다.
“나는 배신자가 아닌데…….”
“우부부붑?!”
“그럼 너 아니냐?”
선배의 두 다리가 내 양팔 위에 얹어진다.
가슴에 앉은 상태라 허벅지 안쪽이 훤히 보이지만, 청바지를 입고 계셔서 크게 문제는 아니었다.
“우진아, 나 깡패 아니다. 나도 적금 붓고 보험 들고 살고 그래.”
“서, 서언배에!”
“나도 우정이란 게 있어. 그런데 네가 내 우정을 짓밟으면.”
“그, 그게 아니라아!”
“나도 깡패가 되는 거야.”
천천히 손에 힘을 푸는 선배.
선배는 마지막으로 나한테 말할 기회를 주려는 거였고.
“자, 자취방! 자취방으로 간다고 했습니다아!”
즉시 내부 고발자가 되었다.
“후, 핸드폰 꺼내.”
핸드폰을 꺼내서 한강과의 톡을 보여드리자 주희 선배는 어처구니없다고 웃으셨다.
“햄버거, 치킨, 피자, 보쌈? 이야, 우진아. 한몫 단단히 챙겼네?”
한강에게 뜯어낸 기프티콘을 보시면서 주희 선배는 다시금 손에 힘을 주셨다.
“회, 회식! 회식하려고요! 조별 과제 끝나면 회식할 생각이었습니다아!”
“…….”
천천히 내 위에서 내려오신 선배는 내 핸드폰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으시며 말했다.
“한강 만날 때까지 이건 압수다.”
“아, 그럼요! 형님!”
바로 주희 선배에게 꼬리를 내린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택시 타고 가시죠. 제가 내겠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주희 선배는 굳이 뒷자리에 나랑 같이 타셨다.
어깨동무를 한 손으로 내 뺨을 만지작거리시며 화를 겨우 참으시는 모습.
나는 선배의 애착 인형이 되어서 그냥 가만히 따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한강의 자취방에 도착했고.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밖에 두고 가달라고 요청 사항 적었는데…….”
그 와중에 배달 음식을 시켰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아까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밖에 못 먹고 도망쳤으니까 배가 고팠을 거다.
끼이익.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왜 이렇게 섬뜩하게 느껴질까.
“음식 두고……어억!”
뻐억!
바로 주희 선배의 발차기가 한강의 복부를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가셨고.
“우진이는 나가 있어, 뒤지기 싫으면.”
쿵!
그대로 문이 닫히며 한강의 비명이 문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악! 아아아악! 주희야 잠깐만! 자, 잠까아아악!”
“뼈, 뼈 맞았어! 어억! 뼈 맞았다고!”
“제발 잠시만요! 누님! 아니 이거 진짜 아닌……! 아악! 김우진! 김우지이이인!”
쿵!
도망치려고 했는지 문이 쿵 하고 흔들렸으나 내가 기대어 있기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이 개색갸아아아! 나를 팔아아아!? 먹을 거 다 받아먹고 나를 팔았어어어어!?”
“저기요?”
그때 헬멧을 쓰고 있는 배달원이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들고 있는 건 피자였는데 아무래도 한강이 배달한 게 온 모양.
“아, 여기 배달 오셨죠? 주고 가세요.”
“……네.”
뭔가 꺼림칙해 보였는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일단 배달원은 다른 배달 때문에라도 피자를 놓고 가버렸다.
“기무지이이이이이인!”
“하와이안 피자를 시켰어?”
피자가 온 덕분에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았다.
* * *
“배달이요.”
“네엡!”
한 판 더 온 피자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가자 주희 선배가 기다렸다면서 자세를 고쳐 잡는다.
하와이안 피자는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해서 페퍼로니 피자를 하나 더 주문해 드렸는데 마음에 쏙 드신 모양.
“우진아 잘 먹을게.”
“많이 드세요 선배.”
그걸 옆에서 보던 한강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내가 보낸 기프티콘으로 주문한 거잖아.”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강의 투덜거림은 우리에게 닿지 않았고, 무시한 채 피자나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나마 주희 선배가 당구 큐로 때리려던 걸 참아서 주먹을 써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한강은 지금 여기 없었겠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주희 선배가 냉정해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야, 너 진짜 입대할 건 아니지?”
피자 한 조각을 먹은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신 주희 선배. 한강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는지 미간을 찌푸린다.
“적당히 해, 제발. 여자애한테 차인다고 군대로 빤스런 치는 게 맞냐고.”
“아니…….”
“그러게 고백은 왜 해가지고. 어휴, 어쨌든 예린이한테는 내가 잘 얘기해 둘 테니까 어색하게 굴고 하진 않을 거야.”
어떻게든 한강을 다시 조에 넣으려는 선배. 여기서 한강까지 빠지면 정말 조별 과제 폭파되겠지.
“그게…….”
“또 뭐. 하아, 배역 바꿔서 주연 현호나 우진이로 하고 너는 조연으로 최대한 예린이 안 보게 해준다고.”
“엥?! 저요?”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나 주희 선배는 날카롭게 나를 노려본다.
“할 말 있냐?”
“아뇨.”
배신자는 입 다물어야지.
뭐, 당장에 한강을 달래주려고 저렇게 말하는 거고 나는 어차피 편집해야 되니까 주연은 안현호 쪽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주희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 한강. 왜인지 슬그머니 무릎을 꿇는데 분위기가 싸하다.
“사실 그거 때문에 입대하는 거 아니야.”
“아, 제발.”
내 옆에 찰싹 붙어서는 이마를 어깨에 찍으시는 주희 선배. 본인이 아프려고 하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내가 아프다.
“우진아 저 새끼 주둥이 좀 막아봐! 제발 내 인생 그만 망치라고.”
“그만해! 주희 선배 라이프 포인트는 이미 제로라고!”
주희 선배를 감싸면서 외쳤으나 한강은 슬쩍슬쩍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 실은 말이야…… 그때 예린이한테 고백하고.”
“제발! 닥쳐! 듣기 싫다고! 그냥 과제 한다고 해! 뭐 어려운 거 부탁하는 것도 아니잖아 미친놈아!”
“어억! 서, 선배 아파요!”
무슨 공포 영화 보는 여학생처럼 나를 꽉 안고 있는 주희 선배.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힘이 너무 세서 조여 죽을 것 같다는 점.
“그러니까…….”
“뜸 존나 들이네! 이미 너 나락이야! 그냥 말해 개색갸!”
“그래 얼른 말해! 이러다 내가 죽겠다!”
허리 끊어질 것 같아 진짜!
“다, 다른 여자애랑 잤거든.”
…….
………….
……………….
“뭐?”
“시발?”
주희 선배와 내가 동시에 한강을 쳐다본다. 방금 우리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그게 너무 외롭기도 하고 내 신세가 처량해서. 일단 아는 여자애 데리고 집에서 잤거든?”
갑자기 말이 빨라지기 시작하는 한강.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 모든 걸 털어놓겠단 나름의 굳은 의지일까?
“근데 부모님이 다음 날 아침에 자취방에 오셔서 들켜 버렸어! 그거 때문에 핸드폰 검사도 당해서 여자애들 관계 같은 거 다 보시고는 당장 자퇴하고 군입대하라고 시키셨거든!”
와.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이런 부분에 많이 엄격하셔!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주희야아아아!”
그리 말하고는 곧장 일어나서는 다른 방으로 도망치는 한강. 아까 무릎을 꿇은 건 일어나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나를 꽉 안고 있던 주희 선배의 손에 힘이 풀렸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리며 무언가 찾는 걸 보고 나는 턱짓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거실에 뒹굴던 큐대를 잡으신 주희 선배.
“그래, 고맙다.”
그리고는 한강이 있는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저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그래.
넌 그냥 죽자.
“나와! 나오라고! 진짜 안 나오면 문 부순다아!”
쾅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기세가 정말 부술 것 같았지만 이제는 나도 한강을 같이 줘 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 새낀 사람인가.
나한테 선의의 경쟁하자고 말한 당일 바로 비겁하게 먼저 고백 박고 내 욕을 하지 않나.
서예린한테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해 놓고 정작 차이니까 심신의 위로를 위해 다른 여자랑 자질 않나.
그런 와중에 여자관계는 복잡해서 그걸 부모님한테 들켜 바로 입대를 하지 않나.
아주 여러모로 대단한 선배다.
이 정도면 거의 대학의 어둠편이지 않나 싶을 정도.
주희 선배한테 하루 종일 두들겨 맞길 바라면서, 남은 피자를 마저 먹으려는데.
우웅!
주머니에서 울려온 진동.
슬쩍 핸드폰을 확인하자.
- 서예린 -
서예린이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세요?”
- 그, 우진아…….
“네, 안녕하세요 서예린 양. 칭찬 감사해요. 섹x가 아주 만족스러우셨나 봐요?”
- …….
“그냥 단톡에 자랑하시지 그랬어요. 우진이 그냥 전설의 쎅쓰킹이라고.”
- 미안…….
“아니면 살아있는 떽뜨머신이라고 소개하지 그랬어. 그편이 좀 더 멋있네.”
- 죄, 죄송합니다.
“닥쳐! 살아있는 피규어 년아! 얼굴 예쁜 거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 넌 부모님한테 효도해라! 그렇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 그, 그래도 일단 애들 연락 다 씹고 있어!
“당연히 그래야지! 넌……!”
서예린한테 외치면서도 주희 선배가 드디어 문을 따고 들어가 이불을 덮어쓰고 있는 한강을 쥐어 패는 걸 보고 있었는데.
“……야, 아까 SNS에 영상 올렸던 사람한테 이렇게 글 남겨.”
기발한 깨달음을 얻은 내 말을 듣는 순간 서예린도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 바, 바로 할게! 우진이 너 천재다!
지금 상황을 한순간에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내 자신을 칭찬하며 전화를 끊는 순간.
바로 전화가 다시 왔다.
우웅!
- 유아린 -
- 여보세……!
뚝.
바로 끊어주면서 통화하기 싫다는 걸 어필하고 이제 주희 선배랑 같이 한강을 때리려고 했는데.
우웅!
다시 울려온 전화.
“아, 좀.”
또 통화를 끊으려 했으나.
- 최이서 -
화면에 잡힌 다른 이름에 나는 심호흡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