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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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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마!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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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동아리 문을 박차고 들어간 주희 선배의 일갈이 거칠게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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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불청객인 주희 선배의 기세에 밀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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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빠르게 내부를 훑어본 주희 선배는 씩씩거리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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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한강 못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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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큐대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로 묻는 말에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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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방 간다는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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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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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태양 노래방으로 간다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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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왜 자기 갈 곳을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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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든 커버를 쳐줄 거라는 나름의 자신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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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너 태양 노래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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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신: ㄴㄴ PC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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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신: 동방 애들한테 노래방 간다고 구라 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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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은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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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노래방이면 PC방이랑 거의 정반대니까 블러핑 치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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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실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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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는 놓쳤다는 생각에 조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동아리에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정중히 문을 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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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곤 핸드폰을 두드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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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선배? 태양 노래방은 반대 방향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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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묻자 주희 선배는 이를 으득 물면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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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끼 지금 PC방에 있다고 제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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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한테 제보를 받은 건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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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비상. 주희 선배 PC방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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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답이 없는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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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도망치는 중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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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시간, 뜻밖의 추격전을 펼치게 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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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다음은 김밥천국, 그다음은 당구장, 마지막으로 노래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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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강의 흔적만 남은 노래방 안으로 들어온 순간, 주희 선배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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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일단 진정하시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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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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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잡힌 내 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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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의 악력에 당겨져 그대로 노래방 탁자 위에 눕혀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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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그대로 내 위에 올라타며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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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도 놓치고, PC방도 놓치고, 김밥천국 그리고 노래방까지 놓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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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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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 그게 내 결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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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쪽 볼을 한 손으로 잡은 채로 웃으며 내려다보는 주희 선배. 좋은 향기와는 반대로 미소에서는 벌써부터 섬뜩함이 풍겨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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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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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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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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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력이 어찌나 강하신지 입술이 앞으로 쭉 내밀어진다. 주희 선배의 거친 숨소리가 입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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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신자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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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부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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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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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두 다리가 내 양팔 위에 얹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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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앉은 상태라 허벅지 안쪽이 훤히 보이지만, 청바지를 입고 계셔서 크게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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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나 깡패 아니다. 나도 적금 붓고 보험 들고 살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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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서언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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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우정이란 게 있어. 그런데 네가 내 우정을 짓밟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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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아니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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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깡패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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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손에 힘을 푸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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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마지막으로 나한테 말할 기회를 주려는 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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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취방! 자취방으로 간다고 했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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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내부 고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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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핸드폰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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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꺼내서 한강과의 톡을 보여드리자 주희 선배는 어처구니없다고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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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치킨, 피자, 보쌈? 이야, 우진아. 한몫 단단히 챙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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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게 뜯어낸 기프티콘을 보시면서 주희 선배는 다시금 손에 힘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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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회식! 회식하려고요! 조별 과제 끝나면 회식할 생각이었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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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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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내 위에서 내려오신 선배는 내 핸드폰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으시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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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만날 때까지 이건 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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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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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주희 선배에게 꼬리를 내린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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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타고 가시죠. 제가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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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주희 선배는 굳이 뒷자리에 나랑 같이 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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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를 한 손으로 내 뺨을 만지작거리시며 화를 겨우 참으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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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배의 애착 인형이 되어서 그냥 가만히 따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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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강의 자취방에 도착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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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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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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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밖에 두고 가달라고 요청 사항 적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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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배달 음식을 시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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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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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김밥천국에서 김밥 한 줄밖에 못 먹고 도망쳤으니까 배가 고팠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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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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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왜 이렇게 섬뜩하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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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두고……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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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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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주희 선배의 발차기가 한강의 복부를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가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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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는 나가 있어, 뒤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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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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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문이 닫히며 한강의 비명이 문밖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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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아아아악! 주희야 잠깐만! 자, 잠까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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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뼈 맞았어! 어억! 뼈 맞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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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잠시만요! 누님! 아니 이거 진짜 아닌……! 아악! 김우진! 김우지이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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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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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려고 했는지 문이 쿵 하고 흔들렸으나 내가 기대어 있기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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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색갸아아아! 나를 팔아아아!? 먹을 거 다 받아먹고 나를 팔았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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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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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헬멧을 쓰고 있는 배달원이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들고 있는 건 피자였는데 아무래도 한강이 배달한 게 온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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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 배달 오셨죠? 주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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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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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꺼림칙해 보였는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일단 배달원은 다른 배달 때문에라도 피자를 놓고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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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지이이이이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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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피자를 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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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가 온 덕분에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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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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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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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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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 더 온 피자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가자 주희 선배가 기다렸다면서 자세를 고쳐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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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피자는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해서 페퍼로니 피자를 하나 더 주문해 드렸는데 마음에 쏙 드신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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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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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드세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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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옆에서 보던 한강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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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기프티콘으로 주문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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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연하게도 한강의 투덜거림은 우리에게 닿지 않았고, 무시한 채 피자나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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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주희 선배가 당구 큐로 때리려던 걸 참아서 주먹을 써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한강은 지금 여기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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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주희 선배가 냉정해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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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진짜 입대할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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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한 조각을 먹은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신 주희 선배. 한강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는지 미간을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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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해, 제발. 여자애한테 차인다고 군대로 빤스런 치는 게 맞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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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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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고백은 왜 해가지고. 어휴, 어쨌든 예린이한테는 내가 잘 얘기해 둘 테니까 어색하게 굴고 하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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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한강을 다시 조에 넣으려는 선배. 여기서 한강까지 빠지면 정말 조별 과제 폭파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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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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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뭐. 하아, 배역 바꿔서 주연 현호나 우진이로 하고 너는 조연으로 최대한 예린이 안 보게 해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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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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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나 주희 선배는 날카롭게 나를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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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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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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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는 입 다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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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당장에 한강을 달래주려고 저렇게 말하는 거고 나는 어차피 편집해야 되니까 주연은 안현호 쪽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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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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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말문을 여는 한강. 왜인지 슬그머니 무릎을 꿇는데 분위기가 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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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거 때문에 입대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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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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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찰싹 붙어서는 이마를 어깨에 찍으시는 주희 선배. 본인이 아프려고 하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내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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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저 새끼 주둥이 좀 막아봐! 제발 내 인생 그만 망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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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주희 선배 라이프 포인트는 이미 제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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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를 감싸면서 외쳤으나 한강은 슬쩍슬쩍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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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은 말이야…… 그때 예린이한테 고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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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닥쳐! 듣기 싫다고! 그냥 과제 한다고 해! 뭐 어려운 거 부탁하는 것도 아니잖아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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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억! 서, 선배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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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공포 영화 보는 여학생처럼 나를 꽉 안고 있는 주희 선배.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힘이 너무 세서 조여 죽을 것 같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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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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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존나 들이네! 이미 너 나락이야! 그냥 말해 개색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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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얼른 말해! 이러다 내가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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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끊어질 것 같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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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른 여자애랑 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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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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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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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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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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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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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와 내가 동시에 한강을 쳐다본다. 방금 우리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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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무 외롭기도 하고 내 신세가 처량해서. 일단 아는 여자애 데리고 집에서 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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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말이 빨라지기 시작하는 한강.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 모든 걸 털어놓겠단 나름의 굳은 의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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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부모님이 다음 날 아침에 자취방에 오셔서 들켜 버렸어! 그거 때문에 핸드폰 검사도 당해서 여자애들 관계 같은 거 다 보시고는 당장 자퇴하고 군입대하라고 시키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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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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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이런 부분에 많이 엄격하셔!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주희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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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고는 곧장 일어나서는 다른 방으로 도망치는 한강. 아까 무릎을 꿇은 건 일어나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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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를 꽉 안고 있던 주희 선배의 손에 힘이 풀렸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리며 무언가 찾는 걸 보고 나는 턱짓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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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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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뒹굴던 큐대를 잡으신 주희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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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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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한강이 있는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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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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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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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냥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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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오라고! 진짜 안 나오면 문 부순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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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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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리는 기세가 정말 부술 것 같았지만 이제는 나도 한강을 같이 줘 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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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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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선의의 경쟁하자고 말한 당일 바로 비겁하게 먼저 고백 박고 내 욕을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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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한테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해 놓고 정작 차이니까 심신의 위로를 위해 다른 여자랑 자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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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여자관계는 복잡해서 그걸 부모님한테 들켜 바로 입대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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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여러모로 대단한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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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거의 대학의 어둠편이지 않나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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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한테 하루 종일 두들겨 맞길 바라면서, 남은 피자를 마저 먹으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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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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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서 울려온 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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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핸드폰을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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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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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 전화를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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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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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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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하세요 서예린 양. 칭찬 감사해요. 섹x가 아주 만족스러우셨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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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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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톡에 자랑하시지 그랬어요. 우진이 그냥 전설의 쎅쓰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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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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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살아있는 떽뜨머신이라고 소개하지 그랬어. 그편이 좀 더 멋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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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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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 살아있는 피규어 년아! 얼굴 예쁜 거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 넌 부모님한테 효도해라! 그렇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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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그래도 일단 애들 연락 다 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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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래야지!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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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한테 외치면서도 주희 선배가 드디어 문을 따고 들어가 이불을 덮어쓰고 있는 한강을 쥐어 패는 걸 보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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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까 SNS에 영상 올렸던 사람한테 이렇게 글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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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깨달음을 얻은 내 말을 듣는 순간 서예린도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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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바로 할게! 우진이 너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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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을 한순간에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내 자신을 칭찬하며 전화를 끊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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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화가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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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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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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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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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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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끊어주면서 통화하기 싫다는 걸 어필하고 이제 주희 선배랑 같이 한강을 때리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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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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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울려온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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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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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통화를 끊으려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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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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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잡힌 다른 이름에 나는 심호흡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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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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