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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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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

토요일.

오랜만에 주말에도 활발하게 글이 작성되는 대나무숲을 보고 있던 서예린은 옅은 숨을 내쉬었다.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마음이 요동치던 게 오늘에 와서는 조금 진정될 수 있었다.

‘하우으…….

허나, 다시 떠올리니 또 얼굴이 붉어지면서 화끈거렸다. 거리에 주저앉아서 울던 걸 정찬우만 봐서 다행이다.

당장 김우진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우느라 꼴이 엉망이었고 경찰이 오면서 소란이 일단락되었기에 서예린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렇게 돌아왔는데.

‘……그냥 어제 만날걸.

솔직히 말해서.

보고 싶었다.

김우진이랑 일단 뭐든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었다.

“아우우!”

누운 채로 이불을 뻥뻥 차는 서예린. 방금까지 대나무숲의 관리인이 되는 법에 대해서 보고 있었다.

솔직히 최근에는 대나무숲 관리자 때문에 복잡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또 김우진 때문에 복잡했다.

‘하아.

대나무숲 관리자에 대한 질문에도 이제 관리인은 따로 답하지 않는다.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관리자에게 따로 한 소리 듣고 있는 걸 수도.

  • 익명69: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정체를 숨김.

1:1 문의로 관리자에게 괜히 한마디 한 이후, 톡을 확인한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남자만 벌써 다섯이나 자신에게 톡을 보내왔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거나, 영화를 보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들.

그중에는 어제 자신에게 치근덕거렸던 강창식 선배도 있었다.

전부 정중하게 거절한 서예린은 슬쩍 김우진에게도 혹시 톡이 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게임하자고 해볼까.

PC방으로 가자고 하는 거다.

‘아니면 밥이라도 먹을까?

제육볶음을 먹자고 하면 나오지 않을까?

‘운동은…….

왠지 최이서랑 같이 나올 것 같다. 최이서가 싫은 것도 아니고 같이 나오면 좋긴 하지만.

‘둘이서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서예린은 김우진과 대화하고 싶었는데 최이서가 있으면 진솔하니 얘기를 못 하니까.

‘흐아.

일주일 정도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톡을 할 수 있었다. 그때 관리자에게 위로를 받고 김우진의 번호를 받으려고 국밥집으로 찾아갔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토, 톡 하나 보내는 게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심호흡한 서예린은 몇 번이나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 서예린: 뭐 하고 있어?

일단 되는대로 한마디 날려봤는데.

“…….”

10분이 지나도.

“…….”

20분이 지나도.

“……뭐, 뭐지.”

30분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이 시간에 아직 안 일어난 것도 아닐 테고, 톡을 보냈어도 다들 금방금방 답해주는 서예린이었기에.

“으음?”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장을 기다릴 뿐이었다.


“커억!”

명치에 꽂혀 들어온 박치기는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온몸을 날린 유아린 때문에 그대로 몸이 뒤로 넘어가 버렸고 덕분에 현관에 쓰러져 버렸는데.

“우하하하!”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그대로 나를 짓밟으며 내 자취방으로 들어가는 유아린.

말리려고 손을 뻗어봤으나 발목을 살짝 훑을 뿐 결국 막진 못했다.

신발도 슬리퍼라서 깔끔하게 벗어던진 그녀는 그대로 내 매트리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우하하! 내가 돌아왔다!”

내 매트리스에 누워서는 그대로 뒹굴뒹굴하기 시작한 유아린을 보면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쟤 냄새 빼려고 빨래를 그렇게 했는데 저러면 다시 냄새가 배기지 않겠는가.

“야! 나와!”

“으음! 우진이 스멜 굿!”

“이거 진짜 미친년이네!”

내가 바로 달려가서 이불을 뺏으려 들자 아예 양팔과 다리로 달라붙어서는 놓을 생각을 안 한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 포기한 나는 이불을 던지듯 놓으며 짜증 냈다.

“왜 왔는데!”

“내가 말이야.”

내 말에 꼬물거리며 이불을 붙잡은 채로 다시 매트리스로 올라가는 유아린.

누운 채로 매트리스를 펑펑 내리치며 말한다.

“하도 짜증이 나는 거야. 갑자기 관리인1호 같은 소리나 듣고. 대숲하려고 해도 다들 나한테 욕이나 해대고 있고.”

“그게 관리인의 숙명이야.”

“뭐, 그래. 솔직히 학교생활 좀 지루했는데 그런 거라도 해보는 거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해. 네가 관리자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데?”

생각보다 본인 역할을 쉽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유아린은 씨익 웃으며 중지를 든다.

“나한테 이런 거 시킨 너한테 엿 좀 먹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지.”

“…….”

“라며어언! 라면 가져왓!”

그러면서 자기 핸드폰을 보면서 실실거리고 웃기 시작한 유아린.

정말로 딱 나 짜증나게 하려고 여기 왔다는 게 느껴지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으나.

“너무 무방비한 거 아니냐?”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에 와서 매트리스에 누워있는 건 무슨 유혹하는 것도 아니고.

“음?”

내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면서 자신의 모습을 슬쩍 훑어보는 유아린.

그러더니 피식 웃으면서 되묻는다.

“왜. 꼴리냐?”

“하아, 행실 문제야. 충분히 짜증나게 했으니까 그냥 돌아가라.”

“흐음?”

슬쩍 주변을 둘러본 유아린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고 있는 맨투맨 끝자락을 살짝 들추며 하얀 자신의 배를 보여준다.

뽀얀 피부와 더불어 배꼽이 보이는 모습은 분명 야릇했다.

“콘돔 있어?”

“야.”

“고자 쉑. 자신 없지?”

킥킥거리며 웃어대고 있는 유아린을 보자 인상이 팍 써졌고,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그대로 밀어 눕힌다.

“꺄앗!”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매트리스에 눕혀진 유아린. 헝클어진 옷 때문에 여전히 배꼽이 보이고 있으며, 내 한쪽 다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며 빼지 못하게 만든다.

콧잔등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적당히 해.”

누워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내가 그리 말하자 유아린은 오히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해보든가.”

분명 여기까지 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유아린은 거기에 한술 더 떠서는 내 손 하나를 잡더니 자신의 가슴 위에 툭 얹는다.

“응? 해보자고.”

“…….”

어이가 없었다.

얘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 싶었으나, 전 여친과 헤어지고 자위행위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순간적으로 욕망이 부풀었고.

뭉클.

유아린의 가슴 위에 얹어진 손을 한 번 오므리자 겉옷과 속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흐응.”

교성을 살짝 흘린 유아린.

이제는 나도 참기 힘들었기에 움직이려던 순간 씨익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는 유아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얘는 지금, 나한테 마음이 있는 게 아니구나.

어느 순간 갑자기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구나.

그 순간, 찬우가 떠올랐고.

깨닫는 순간 손을 확 떼며 몸을 뒤로 뺐고 유아린은 어느새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걸 참네?”

“너는 친구가 좋아하는 애니까.”

남자로서의 욕망에 져버려서 찬우를 배신할 뻔했다. 너무 갑자기 찾아온 기회에 나도 모르게 휘둘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대답이었는지 유아린이 무표정하니 나를 쳐다본다.

지금까지 내가 본 유아린의 표정 중 가장 무서운 얼굴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건데? 지난번에 갑자기 접근한 거부터 시작해서 나한테 왜 그래?”

친해지긴 했으나 정도가 과할 때가 분명 있었다. 가령 지금처럼 말이다.

“알고 싶어?”

“어.”

“정찬우한테 물어봐. 걔가 답 어떻게 하나 나한테도 말해주고. 궁금하네, 걔가 뭐라고 말할지.”

“…….”

“너랑 하면 나랑 정찬우 엮어주는 거 그만두지 않을까 싶어서 하려고 했던 거야. 뭐, 그리고 다가간 이유는…….”

뒷말을 흐린 유아린은 다시금 자기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옷매무새도 깔끔하게 다 잡은 걸 보아 그런 분위기로 갈 것 같진 않았다.

“야, 뭐가 됐든 내가 한마디만 할게.”

그런 유아린을 내려다보며 나는 진심으로 충고했다.

“그렇게 아무랑 자고 그러는 거 아니다. 정찬우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지난번에 민지 사건 때 봤던 옆 학교 남자들처럼. 충분히 나쁜 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내 말에 유아린은 슬쩍 시선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풋 웃는다.

“아무나 이러는 거 아닌데? 너라서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야.”

“어휴, 그러니까 그게 안 된…….”

“애초에 처녀딱지도 떼고 싶으니까.”

“……처, 녀?”

“어, 처녀.”

멍한 표정으로 유아린을 쳐다보자 그녀는 핸드폰으로 입가를 가리며 중지를 치켜든다.

“기회 끝났어, 병신아.”

“난 친구 배신 안 해. 그러니까 내 핸드폰 좀 줘봐. 찬우랑 절교하게.”

“흐하학! 미친놈!”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유아린이 저렇게 깔깔거리며 웃어대고 있는 걸 보니 또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농담이고. 이제 됐으니까 집에 돌아가. 너 진짜 여기 있으면 안 돼.”

“왜? 나 저녁까지 먹고 갈 건데? 치킨 시켜 먹자. 관리인 된 기념 회식 안 해?”

“……그건 나중에 해줄게. 나 바빠.”

앞으로 일 잘하라고 밥 사주는 정도는 해줄 생각이긴 했다.

지난번에 나 술 취했을 때 집에 데려다준 거랑 같이 퉁 쳐보자.

“바쁘다고? 뭐가 바쁜데?”

아, 귀찮게.

“개인적인 일이야. 바쁘니까 가라고.”

“아, 그러니까 그게 뭔데. 나 여기까지 오는 시간도 있는데 알아야 나가지.”

“후.”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는 유아린을 보며 나는 손으로 이마를 탁 치며 답했다.

“딸 칠 거임.”

“……어?”

“꼴려서 빼야 함.”

“아… 하?”

“그러니까 꺼져. 지금부터 심도 깊게 영상 찾아봐야 하니까.”

내 말에 잠깐 당황한 유아린은 뺨을 긁적이며 묻는다.

“걍 옆에서 해. 이쑤시개 문지르는 거 보인다고 문제 있겠냐.”

“찬우 불러서 데려가라고 해야겠다.”

“아 씨! 알았어! 나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하면 되잖아!”

“그냥 집에 좀 가라! 왜 우리 집에서 지랄인데!”

“관리자님! 1호기 배고파요! 밥 주세요!”

방금까지 진지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평소처럼 서로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