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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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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익명90 맞아요.”
너무 시원하게 인정하는 이은우 양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쪽은 익명69. 그러니까 섹x좌 맞으시죠?!”
게다가 지금 보이는 모습은 보통 커뮤니티 이용자로서는 보기 힘든 반응.
의도치 않게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면 보통은 불쾌해하거나 부정하기 마련인데.
앞에 있는 이은우는 오히려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 만나는 날이 오네?”
“아니, 잠깐만요. 왜 저를 익명69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는지 물었으니 이은우는 히죽 웃으면서 내 가슴에 손을 얹는다.
깜짝 놀라서 황급히 몸을 뒤로 뺐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는지 혀로 입술을 핥는다.
“아우, 반응 맛있네요. 귀여워라. 1학년인 것 같은데 반말할게요?”
이거 미친년인가?
왜 대학에 들어오고 이상한 애들을 자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지.
“먹는 맛이 있겠네.”
“머, 머, 먹어요?! 저는 사람이거든요!”
“으응? 내가 먹히는 건가?”
서슴없이 섹드립을 쳐대고 있는 걸 보니까 왜 섹x좌 신봉자인지 잘 알 것 같았다.
“아니.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하고요. 왜 내가 익명69라고 생각했냐고요.”
내 말에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은우.
“대나무숲 관련해서 나를 찾아올 사람이 섹x좌밖에 없으니까.”
“…….”
“내가 정확하게 맞췄지? 영어영문과 관련 글에만 댓글 쓰는 거 보면 딱 그쪽 사람일 것 같았어.”
“…….”
“나름 합리적으로 추론했다고 생각했거든. 대나무숲에서는 이미 묻히긴 했는데 그래도 당사자는 뒤통수가 간지러워서 그냥 있을 수 없었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한숨이 쉬어졌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계속 내 몸에 손을 대는 게 일단 확실하게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저 아니거든요?”
“대나무숲에서랑 다르게 부끄럼쟁이네? 그런 애들이 또 속에 성욕을 잔뜨윽 쌓아두고 있지.”
와, 사람이 그렇게 안 보였는데.
진짜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그냥 봤을 때는 딱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 느낌이었는데 지금 나한테 말하고 있는 걸 보니 색기가 몸에서 줄줄 흐르고 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라는 뜻.
다시금 내 가슴에 손을 얹는 이은우. 은근슬쩍 엄지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꾹 누르고 가는 게 보통내기가 아니다.
“아 쫌!”
내가 화내며 몸을 다시 뒤로 빼자 주변에서 우리를 쳐다본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내가 섹x에 미친 익명69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겠지.
“뭐야? 싸우나?”
“축제에서 헤어지는 건가?”
“우와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 방금 소란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었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고.
물치과 천막 뒤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서 설명 드릴게요.”
여기서 익명69니 섹x좌니 하면서 얘기하는 것도 우스운 꼴이지 않은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따라오는 이은우. 호랑이 굴에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어쨌든 힘에서는 내가 이기니까 큰 문제 없겠지.
“흐응.”
술을 좀 마셨는지 붉어진 얼굴로 뒤에 있는 나무에 기대는 이은우.
첫 만남에서 보였던 소심해 보이던 캐릭터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내 앞에는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암컷이 놓여 있었다.
안경을 벗는 건 지극히 평범한 행위였으나 그것조차도 노골적인 유혹처럼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해본 적은 없는데.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목소리 잘 죽여 볼게.”
“진짜 죽이고 싶네.”
이마를 짚으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나 우선.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하고 갈 필요가 있었다.
“섹x좌는 아다지? 원래 커뮤에 그런 글 싸지르는 애들은 보통 동정이거든.”
“섹x좌 아니라고요.”
“에이, 뭘 여기까지 와서 부끄러워하고 있어.”
이런 게 연상의 여유인가?
피식 웃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내 고간 쪽으로 가 있는 게 뭔가 나체가 된 기분이었다.
“섹x좌가 아니면 너는 누군데? 대나무숲 관련해서 나를 찾아올만한 사람이 없는데?”
그러면서 계속 추파를 던져대고 있는데 일단 정체를 밝히기 전에 궁금증을 좀 해소하고 싶었다.
“왜 섹x좌를 만나려고 한 건데요? 아니, 왜 정체를 밝히겠다고 헛저격을 한 거예요?”
이제야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자신의 턱선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입을 연다.
“따먹으려고.”
“……네?”
“따먹으려고 그랬다고. 딱 봐도 성욕은 왕성한데 동정인 남자애가 떡하니 먹어달라고 글 싸지르고 있는데 그거 그냥 두면 쓰냐?”
와.
“나 이제 대학원에 조교까지 해야 되거든? 우리 과 신입생들 건드리긴 좀 그렇고,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 만나기엔 취향이 안 맞네?”
“그래서요?”
“그러니까 활동 시기를 봤을 때 1학년에 아무것도 모르는 걸로 보이는 남자애 하나 잡아다가 섹프로 지내려고 했지.”
우와.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아까 부끄럼쟁이들이 안에 성욕은 잔뜩 쌓아두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게 본인 이야기라는 걸 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소심해 보이던 외형과 다르게 막상 몸 안에는 성적 욕구가 폭발하고 있는 중이라는 거.
“그렇게 호응한다고 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름 재밌었어. 호감도 올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아쉬운 거였지.”
그러면서 다시 나한테 한 걸음 다가온다. 은근슬쩍 내 다리 사이에 무릎을 집어넣으며 속삭였다.
“근데 정답이었네? 그것도 대박으로 걸렸어.”
“거리 두세요. 몇 번을 말합니까.”
손으로 밀어내며 단호하게 선언한다.
“아니라니까요.”
워낙 부정을 많이 해서 그런 걸까. 이제는 조금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은우에게 나는 잠깐 고민했으나.
“저는 익명69가 아니라.”
생각해 보면.
고작 커뮤니티 관리자 역할이었다. 이걸 가지고 내가 돈을 벌거나, 이득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게시판 교통정리 정도만 하는 거뿐이니까.
“대나무숲 관리자예요.”
의외로 묵직하지 않은 진실을 툭 털어놓는다. 서예린 같은 애들한테나 들키면 안 되는 거였지 사실 다른 사람한테는 큰 문제 없지 않은가.
“관리자라고?”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혹스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이은우.
어벙하니 입을 벌리고는 뭔가 말하려고 더듬더듬하지만 정작 말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익명69한테 괜히 이상한 집착하지 마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니까.”
애초에 여자다.
“괜히 서로 정체 가지고 떠보지도 말고요. 오늘은 교훈을 주러 온 거예요. 익명 커뮤니티라는 장소에서 정체 까발리겠다고 까불지 마요.”
“…….”
“이렇게.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내가 아니라 진짜 정신 이상한 애였으면 위험할 수도 있었어요.”
아무리 대학 커뮤니티라서 최소한의 커트라인은 존재한다고 해도.
그래도 언제 어디서 이상한 놈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혹시라도 오늘 일 가지고 대나무숲에 쓰거나, 말 나오기 시작하면 그땐 각오하시고요.”
얼추 정신을 차린 이은우는 차분하게 심호흡하고는 뒤에 있는 나무에 기대며 팔짱을 낀다.
“뭐 어떻게 할 건데? 글 삭제하고 차단하는 걸로 막을 수 있니? 그냥 커뮤 관리자잖아.”
비웃음을 내걸고 있는 이은우를 쳐다보며 나는 묵직한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이쪽에서 한 걸음 내딛었고 이은우의 바로 앞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경고했다.
“담당 교수님한테 당신이 뭐 하고 다니는지 로그 캡처해서 보내줘?”
“……어?”
“내가 공지로 한번 올려봐? 내 정체도 밝혔으면 그쪽도 까일 생각해야지. 익명90이 나잇값 못하고 1학년 신입생 낚아서 호텔 끌고 가려는 섹x에 환장한 년이라고 털어볼까?”
그런 명언이 있지 않은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고.
뭐, 진짜 의미는 다르다고 해도 어쨌든 여기서도 쓰일 수 있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정체’라는 같은 패를 쥐고 있었다. 다만, 이쪽은 스페이드 에이스라는 점이 문제겠지.
“대학원도 들어가고, 조교도 한다고 했지? 물치과 학생들이 너 볼 때마다 수군거리게 만들어 줘?”
졸업한다면 상관없을 수도 있겠지. 배 째라고 그냥 나설 수도 있었겠지. 물론, 그래도 본인 손해밖에 없겠지만.
“아, 아니… 마, 말할 생각은 없었……!”
쿵!
이은우의 머리 위, 나무에 손을 찍는다. 키가 작은 편이었기에 딱 좋게 위협할 수 있었다.
“의외로 말이야.”
이제야 처음 봤을 때의 소심하던 모습이 나타났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은우를 내려다보며 승리감이 담긴 미소를 지어줬다.
“섹x에 미친 새끼라고 소문나면 기분 엿 같더라?”
이건 확신할 수 있다.
“내가 그쪽 덕분에 한 번 겪어봤거든.”
축제 시작할 때.
섹x좌라고 소문났던 거 때문에 여기저기서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했으니까.
“우리 어디 갈 때까지 가볼까? 그냥 평범한 대학 커뮤니티 관리자랑 대학원 가고 조교까지 하면서 나잇값 못하고 섹x에 미친 여자랑 올인 싸움하면 누가 이득이냐?”
와다다 말을 쏟아내면서도 확실히 나는 꿀릴 게 없다는 게 머리로 정리되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울상이 되어서는 나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아, 아니 내가 뭔가 하겠단 소리가 아니라……!”
“말 놓지 마.”
기세를 잡으려고 이를 으득 물며 경고하자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그, 제, 제가 폭로하겠다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여쭤본 거뿐이에요.”
“…….”
“입 다물고 있을게요! 대, 대나무숲에 쓴 글도 다 제 망상이었다고 쓸게요!”
“후.”
“그러니까…… 부, 부탁드립니다. 저 아직 학교 다녀야해요. 교수님 보수적인 분이라 이런 거 알면 진짜 큰일 나요.”
겉모습과 내면이 다르다.
내가 처음 이은우를 봤을 때, 겉모습에서부터 헤픈 여자의 느낌이었다면 이런 협박도 통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익명 뒤에 숨어서 남자를 낚아야 할 정도로, 그녀는 학교에서 나름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더 꿀릴 게 많은 저쪽은 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서로 얼굴 붉힐 일 만들지 맙시다.”
몸을 뒤로 빼며 깊게 숨을 들이킨다. 찬바람 덕분에 뜨거워졌던 분위기가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이은우가 대나무숲에 익명69에 대한 저격이 자기 망상이었다는 걸 쓰는 것까지 본 후 나는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저, 저기요?”
나를 부르는 이은우.
뭐가 더 남았나 싶었는데 우물쭈물하면서 물어왔다.
“혹시 저도 관리인 2호기 되는 건가요?”
“…….”
“아, 아니. 지난번에 보니까 관리자의 정체를 알아내면 관리인이 된다고 들어서…….”
그러고 보니 유아린이 그런 글도 썼었지.
“대학원에 조교까지 하는 사람이 뭔 관리인이에요. 그냥 조용히 대학 생활하다가 가세요.”
“아, 넵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뭔가 서운해 보이는 표정의 이은우.
하지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를 내버려둔 채로 영문과 부스로 돌아왔다.
‘하나 해결인가.
좀 어지러운 사람이긴 했으나 그래도 나름 해결됐음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집에 가야겠다.
어차피 이제 주점이 운영하는 것도 아니니까 몰래 짐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려 홀 천막 쪽으로 들어선 순간.
“기무지이이인!”
왜인지.
거나하게 취한 서예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