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2 KiB
하루가 더 지나 축제의 마지막 날.
여전히 제육볶음은 인기가 많았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오늘은 다른 손님을 받지 않는단 거였다.
이미 이틀 차에 작년 수익을 몇 배나 뛰어넘은 덕분에 굳이 오늘까지 일을 하지 않기로 한 것.
덕분에 우리 부스는 영문과 전용 주점이 되어서 즐기는 중이었다.
‘이럼 오지 말 걸 그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축제는 굳이 참석하지 말 걸 그랬단 생각도 들었으나.
앞선 이틀 동안 바빠서 찾지 못했던 익명90을 찾기에 딱 좋은 시간이긴 했다.
‘이제 와서 굳이 찾아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미 진즉에 끝난 떡밥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할 필요가 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찾아보고 싶긴 했다.
내가 놈에게 느꼈던 기묘한 감정과 더불어서 익명69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는 물치과 화석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서예린한테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말도 했으니.’
뭐, 약속했다고는 해도 그것에 무게감을 크게 두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교수님들이랑 더불어서 학생들의 술자리가 한창이니 대충 제육 좀 굽다가 물치과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우리 이쁜이 어디있냐아아!”
술에 거나하게 취하셨는지 소주병을 든 채로 내 쪽으로 걸어오는 민주희 선배.
이번에 고생한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다섯 손가락에 무조건 들어갈 사람.
주방을 진두지휘하면서 단시간에 애들을 성장시키고, 주방 동선이나 메뉴 관련해서도 민주희 선배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진심으로 이 선배랑 같이 조별 과제를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선배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대어 왔다.
술 냄새와 더불어 무게감이 확 느껴지는 게 참 격정적인 사람이었다.
“왜여서 또 혼자 일하냐아. 가자, 가서 술이나 진탕 마시자. 오늘 쉴 수 있는 것도 네 덕분이라니까아?!”
“어후, 선배 엄청 취하셨네.”
교수님들이랑 같이 있던 걸 보긴 했는데 꽤나 취하신 모습.
선배는 바로 나를 끌고 본인이 앉아 있던 테이블로 데려갔는데.
대부분이 2학년이었으며 특히나 나랑 별로 좋지 않은 인연이 대부분인 한강 선배가 있었다.
다른 선배들은 나를 보면서 은근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민주희 선배는 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 그냥 술을 내게 건네셨다.
“짠해! 짠!”
생각 이상으로 불편한 술자리.
민주희 선배를 따라 다른 선배들도 나랑 잔을 부딪치면서 술을 마신다.
그러다 주희 선배가 교수님들에게 불려가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선배들이 슬쩍슬쩍 나를 보면서 뭔가 미묘한 공기가 차오른다.
‘그냥 갈까.’
서로 불편한 자리니 이만 실례하겠다고 일어서려 했으나 맞은편에 앉은 한강 선배가 내 잔에 술을 따라주며 묻는다.
“지난번에 노래방에서 이상한 오해 해서 미안했다.”
“아, 네.”
사과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겠거니 싶었다. 그것에 크게 연연하거나 무게감을 두지 않았다.
왜냐면 딱 봐도 나한테 정말 미안해하기보다는 대화를 트기 위해서 하는 말처럼 느껴졌으니까.
“우진아, 남자대 남자로 얘기해 보자.”
술잔을 내미는 한강 선배.
나도 잔을 부딪치고 쭉 들이킨 후 끄덕였다.
“네, 말해요.”
“너 진짜로 예린이랑 아무 사이 아니냐?”
“하.”
소주 때문에 쓴 건지 아니면 주제가 썩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서예린을 정말 좋아하니까 사귀고 싶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쯤 되니까 집착이 아닌가 싶었다.
“뭐가 궁금하신 건데요?”
되물음에 살짝 주춤거린 한강 선배. 이제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다 보니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고 판단해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퍽이나 마음에 든다.
“너 예린이랑 친하잖아. 걱정되니까 그러지.”
“뭐가 걱정되는지 말을 해주셔야죠. 썸 타거나, 사귀거나, 호텔가거나 뭐 그런 게 걱정되세요?”
내 질문에 순간 움찔한 한강 선배. 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들도 나를 보면서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나랑 엮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풀풀 드는 게 보기 좋다.
“선배, 저도 나름대로 선배 응원했거든요? 근데 서예린이 싫다고 그러잖아요.”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지만. 그건 나무 얘기고.
사람은 아니다. 특히나 여자 같은 경우는 말이다.
오히려 실패한 고백을 계속 이어가면 더욱 굳건하게 철벽을 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정도면 그냥 보내줘요. 눈만 돌리면 선배한테 관심 있는 여자가 널렸는데 왜 꼭 서예린한테 그래요.”
“우진아, 선을 좀 넘는 것 같네.”
“이미 선 밖에서 대학 생활하고 있는데 모르셨나? 지난번에 3학년 선배들이 갠톡으로 저 불렀는데 모른 척한 적도 있어요.”
곱창집에서 곱창 낸 다음 3학년 선배들이 부를 때가 있었는데 그냥 무시하면서 다니는 중이었다.
“걔한테 너무 집착하지 맙시다. 보기 흉해요.”
“하아, 너 예린이한테 관심 있구나.”
“얘기를 또 엿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시네.”
어이가 없어서 한숨만 푹푹 쉬어졌다.
“네네, 맘대로 생각하세요. 이젠 말하는 것도 지치네. 저는 이만 갑니다.”
짜증이 나서 바로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어차피 물치과로 가야 했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지긋지긋하네.’
서예린이랑 정찬우 보면 너무 예쁘고 잘생긴 것도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물치과 4학년 이은우였나.’
졸업하고 대학원에 조교까지 한다는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현대판 노예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나름 세련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은가.
물치과 부스로 가자 거기도 자기들끼리 나름의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교수님들 사이에 끼어 있는 4학년 하나를 수소문해서 찾을 수 있었는데.
“저 찾으셨다고요?”
“…….”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었다. 작은 체구에 부스스한 머리, 거기에 아담한 가슴과 동그란 안경까지.
‘여자였어?!’
익명90부터 해서 이은우라는 이름까지.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여자라는 게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이은우 맞으시죠?”
“네, 맞아요. 왜 부르셨냐고요.”
혹시나 싶어서 내가 되묻자 저쪽에선 짜증 내면서 한숨을 내쉰다.
갑자기 찾아온 나를 경계하고 있는 거였는데.
“대나무숲 이용하시죠?”
“…….”
순간 움찔하고 떨린 이은우 양.
그걸 본 순간 멈추지 않고 바로 찌르고 들어간다.
“익명90, 맞죠? 당신 찾아왔어요.”
그리 말하자 이은우의 표정이 멍하니 그리고 천천히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아…… 아아아!”
그리곤 뭔가 깨달았는지 손뼉을 짝 치고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헤벌쭉한 표정에서는 욕망이 차올랐고.
“익명69님이시군요.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찾아와 주시다니!”
“님이요?”
뭔가 과할 정도로 올려 부르는 호칭에 뭔가 싶었는데 바로 내게 찰싹 달라붙어서는 히죽 웃어댄다.
“오, 오늘 밤에 시간 있으세요?”
순간적으로 어제 최이서가 물어봤던 질문이 퍼뜩 떠올랐다.
누가 호텔에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왜일까.
그 질문이 이렇게 빠르게 현실로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이가 없다니까?”
“그니까. 예린아 너 진짜 조심해라. 언니들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니야.”
“남자는 남자가 더 잘 봐, 걘 진짜 아냐.”
어느새 2학년 테이블로 끌려온 서예린은 따라주는 소주를 홀짝이면서 선배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강과 함께 있는 다른 선배들이 김우진에 대해서 얘기하는 중이었다.
“우진이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어요?”
믿을 수 없다며 서예린이 되묻자 기다렸다는 듯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래, 너한테 관심 있는지 물어보니까 부정하진 않던데?”
“괜히 여지 남겨두는 거 봐라. 혹시 자기한테 기회가 있으려나 하는 거지.”
“이번에 일 열심히 해서 좀 좋게 봤는데 결국 똑같네.”
“너한테 사심 품고 있는 게 뻔하다니까?”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간다. 2학년들의 호들갑스러운 말을 들으며 결국 서예린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다녀와.”
“에휴, 심란하게 만들었네.”
“우리가 미안해.”
선배들의 말을 뒤로한 채 천막 밖으로 나선 서예린. 숨을 고르더니 입가에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 뭐야… 김우진.’
선배들은 김우진이 서예린에게 찝쩍거리니 조심하라고 말해줬으나.
‘흐흐, 관심 없는 척하더니 은근 신경 쓰이나 보네?’
오히려 서예린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우진이 지금 어딨지?’
이거 가지고 놀려볼 생각에 서예린은 김우진을 찾았으나.
천막 안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매스꺼운지 초코몽을 마시고 있는 유아린이 구석에 보였다.
“아린아, 우진이 봤어?”
“……김우진? 없어?”
주변을 둘러본 유아린도 김우진이 없는 걸 깨닫고는 혀를 차며 답했다.
“물치과 갔나보네.”
“물치과? 왜?”
그 말에 유아린은 슬쩍 서예린을 보더니 다시금 입에 빨대를 물었다.
“몰라.”
“…….”
너무 대충 대답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서예린은 일단 알겠다고 말한 후 슬며시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물리치료학과. 물리치료학과.’
부스를 확인하며 간다.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거 거절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는데.
‘어라?’
막상 물치과 부스에는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을 뿐 김우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가?’
다시 돌아갈까 싶으면서도 일단 주변을 둘러보려 했는데.
물리치료학과 천막 뒤.
나무 그늘에 가려져 있으나 사람 목소리가 살살 새어 나왔다.
“아니라니까요.”
‘우진이다!’
듣는 순간 바로 눈을 똘망하게 뜨며 그쪽으로 향하는 서예린.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오면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천막 근처에서 기다렸는데.
“저는 익명69가 아니라.”
안에서 들려오는 김우진의 목소리는.
“대나무숲 관리자예요.”
알딸딸하니 취해있던 서예린의 정신을 말똥하게 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