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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니 밖에서 하늘을 본다.
어두운 하늘.
산골이라 촘촘하게 보이는 별.
은은한 빛을 내는 달.
문득, 최근 들어 하늘을 보는 일이 잦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작은형이 하늘을 많이 보면 어른이 되는 거라고 했는데.’
고민할 거리가 많아지고,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고 했다.
지금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였으나.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신을 찾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고민을 품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신을 부른다.
뭐, 나야 종교를 가질 생각은 따로 없기도 했고.
전지전능한 힘을 빌어야 상황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거기서 그쳤지만 말이다.
“잘 해결했니?”
어느 순간 옆으로 다가온 주희 선배.
발걸음 소리도 내지 않고 오셨으나 딱히 놀라진 않았다.
방금까지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셨는지 몸에는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이서랑은 아까 얘기했고. 아린이한테도 규아가 도와줘서 찾아갔다고 들었어. 방금 예린이랑도 따로 시간 보낸 것 같고.”
결국 목표였던 세 사람과의 대화를 끝냈다.
생각보다 간단했으나, 막상 결과는 생각과 정반대로 나와 버렸다.
“어때, 애들이 좀 납득해? 표정들은 딱히 힘들어 보이진 않던데.”
“후우, 선배.”
그래, 누군가 상담할 필요성은 있으나.
그게 주희 선배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선배의 고백을 거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말해봐. 괜찮으니까.”
하지만 선배는 언제까지고 선배였다.
나에 대한 마음은 이미 정리되셨는지 아무렇지 않게 상담을 들어주시겠다는 말에.
“사실은요.”
나는 이마를 움켜쥐며 그녀들이 내놓은 대답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는 5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고, 그냥 결과의 보고만 있었기 때문인데.
어느새 선배 역시 나와 같이 멍하니 달을 올려다보면서 연초를 입에 물고 있었다.
“아, 미안하다. 담배 안 피는 애 앞에서.”
“아뇨, 괜찮아요.”
“고민하면서 담배 피는 게 습관이라. 후우, 그래서 너는 애들한테 다 거절하겠다고 말한 거였구나.”
“네, 그렇죠.”
“그럼 그, 오윤지? 걔랑 사귀려고 했었어?”
“……아마, 아니요.”
오윤지랑은 언젠가 다시 얘기를 나눠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애들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내가 또 누구랑 사귄다는 건 애매했다.
“지쳤구나.”
그런 나를 보며 선배는 툭하고 그리 중얼거리셨다.
지쳤다?
“애들한테 시달리느라 지친 걸로 보이는데.”
“그건 아니에요.”
주희 선배는 나를 걱정해서 해준 말이겠지만, 지쳤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걸 가지고 시달리거나, 지쳤다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
“…….”
내 대답에 주희 선배는 연기를 내뿜더니 등을 툭 쳐주신다.
“들어가자. 장기자랑 한다고 따로 강당도 하나 빌려뒀더라.”
“팬션에 강당이 있어요?”
“MT 오는 학교가 많아서 그런 쪽으로 준비해 둔 곳이 꽤 있어 요즘은.”
그렇구나.
근데 장기자랑이라니.
1학년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건 좀 재밌을 것 같긴 했다.
선배랑 같이 강당 쪽으로 가자 이미 애들이 바닥에 앉아서 무대 쪽을 보고 있었다.
맨 뒤에는 교수님들도 계셨는데 이미 맥주 한 캔씩 하시면서 구경 중이다.
‘이거 끝나면 본격적으로 술 마시겠구나.’
고기도 좀 남았고, 안줏거리가 잔뜩 식당에 쌓여있기도 했다.
술 마시기 전 적당히 흥을 돋우려는 거겠지.
2, 3학년들은 따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기에 그쪽으로 갔고.
애들이랑 살짝 떨어져 서 있던 최이서가 손짓했다.
보니까 교수님들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가려고 구석에 일어나 있는 모양이었다.
“우진아.”
최이서 쪽으로 가려던 나를 부르는 주희 선배.
멋쩍은 표정으로 갸웃거리시더니 다시금 등을 두드려주신다.
“너무 고민하지 마라. 지금은 그냥 머리 좀 식혀.”
“네, 감사합니다.”
주희 선배는 그리 말하며 쿨하게 등을 보이고 3학년 자리로 가셨다.
3학년이 몇 없었기에 눈에 띄긴 했으나 나한테 고백했던 일은 정말 없던 게 되어 있었다.
‘다행이네.’
좋은 선배 하나 잃을 뻔했다.
주희 선배가 쿨하고 멋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예린이랑 얘기는 좀 해봤어?”
가까이 가자 물어오는 최이서.
나는 크게 다른 반응하지 않고 덤덤하니 답했다.
“응, 얘기는 좀 했지. 다음부터는 괜히 싸우지 말라고 주의를 주긴 했어.”
“잘했네.”
“너는? 1, 3학년이랑 얘기한다고 했잖아.”
“으음, 말은 했는데.”
말은 했는데?
“알잖아, 결국 소문이라는 게 어떻게 통제할 수 없다는 거.”
“그건 그렇지.”
특히나 내가 대나무숲의 관리자라서 더욱 잘 알고 있다.
이쪽에는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진짜처럼 여겨져서 부풀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말이다.
“아, 이제 시작한다.”
최이서는 따로 다른 말이 없었다.
장기자랑이 시작하는 걸 보면서 애들이 열심히 준비했다는 말만 덧붙여줄 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가현대 영어영문과 여러분. 이번 장기자랑의 MC를 맡은 2학년 부과대 안현호입니다.”
마이크는 안현호가 잡았다.
의외로 어울리기도 했고, 친화력 자체가 좋다 보니 애들의 호응도 잘 이끌었다.
어두워진 강당.
조명 빛이 들어오며 1학년 애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해댄다.
썩 보기 좋았다.
1학년들은 정말로 내 뒷담화를 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애들이 순박하게 신내고 있었고.
다른 학년들은 그걸 보면서 웃고 떠든다.
그러던 와중 주머니에서 울려온 전화.
- 오윤지 -
그녀의 이름이 핸드폰에 떠 있다는 게 생각보다 감격스러웠다.
고작 반년 전만 해도 언제라도 이 번호로 전화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지금은 좀 거북함을 느끼는 걸 보니까 우스웠다.
최이서를 두고 밖으로 나간다.
다들 강당에 모여 있다 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분에 편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지금 MT 중이야?
“어, 애들 장기자랑. 아마 이거 끝나고 술 마시지 않을까 싶네.”
- 사람 엄청 많겠네?
“엄청 많아.”
- 그런 거 딱 싫어했잖아.
“……그치.”
맞는 말이었다.
역시 오윤지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학교의 누구보다도 나의 성향이나 취향 등을 잘 아는 건 오윤지이긴 했다.
그녀와는 모든 걸 공유하고 싶어 했으니까.
전 여친이랑 이렇게 통화하는 건 미국에서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내 물음에 오윤지는 사무적으로 답해왔다.
- 아, 이번에 포포 관련해서 고마웠다고. 덕분에 다시 방송도 시작했어.
대나무숲 난리 났겠네.
건공과에서 도배하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그래, 그거 때문이었구나. 힘내라고 해. 나는 방송 잘 안 보지만.”
- 응, 전해줄게.
용건은 그게 끝이겠거니 싶어 전화를 끊으려 했는데.
- 무슨 일 있어?
크게 걱정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내게 와닿는 걱정이었다.
부담을 주지 않고, 그냥 툭하고 물어본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고민을 전부 쏟아낼 뻔했다.
“왜? 목소리가 안 좋아 보여?”
나름 평소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 그냥. 분위기? 내가 이런 쪽으로 눈치가 좋잖아.
“그래, 그랬지. 덕분에 뭐 숨길 수도 없었지.”
- 흐흥, 맞아. 그때 기억해? 네가 밴드동아리 들어가는 거 나한테 숨겼다가 걸린 거.
“……왜 아픈 상처를 또 쑤시냐.”
- 굳이 아득바득 러브송 불러주겠다고 밴드부에 들어갔었는데.
“하아, 그치. 맞아.”
1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에 나름 로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밴드동아리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전부 여자였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 밴드부가 아니라 애니 동아리였잖아. 그것도 특이 취향을 가진.
“……사귀는 사람 있다니까 공인지 수인지 물어볼 때는 진짜 아찔했다.”
- 하필이면 밴드 애니 코스프레를 해서 착각했었지. 에휴, 내가 거기 이상하니까 잘 알아보라고 했지. 애초에 밴드동아리는 사람 잘 안 뽑아.
“알았다니까. 그래서 바로 나왔잖아.”
자연스럽게 잔소리 중인 오윤지.
뭐라고 할까.
예전 사귀는 때가 떠오르는 대화였다.
- ……우리 사귈 때 생각나네.
그건 오윤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자연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윤지야.”
생각해 보니까 그렇다.
“헤어지자.”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 …….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헤어짐은 용기가 필요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이별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윤지는 묵묵부답이었으나,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냥, 그냥 대학 때 사귀었던 거뿐이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한 번쯤은 거쳐 가는.
그런 시간이었을 뿐이다.
“힘들고, 괴로울 수 있지만.”
그걸 겪어봤던 나였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내가 그런 애를 왜 좋아했지 하고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네가, 나와 사귀었던 걸 부끄럽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한참을 대답이 없었다.
울먹임도, 숨이 거칠어지지도 않았다.
그저 할 말을 정리하는 그녀를 기다려주고 있자니.
- 김운 대표님이 나한테 물어보긴 했어. 네가 좋은 이유가 뭐냐고.
작은형이?
- 이렇게 노력할 정도로 너를 좋아할 이유가 있냐고. 뭔가 계기가 있었냐고.
그 말에 나도 잠깐 고민이 됐다.
내가 오윤지를 언제부터 좋아했었는지 말이다.
뚜렷한 기억은 없었다.
그냥 윤지가 고백했고, 자연스럽게 그걸 받아줬었다.
- 삶이 드라마인 줄 아나 봐.
흘러 들어오는 웃음소리.
- 어떤 상황 덕분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 이런 경우는 사실 드물잖아.
그건 그렇다.
윤지가 내게 고백했을 때도.
그냥 둘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걷는 중이었으니까.
- 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야.
“…….”
- 어느 순간 깨닫는 거지. 내가 이미, 저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아이스크림을 먹던 와중 갑자기 윤지가 고백해 온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슬퍼 보이진 않았다.
이별을 선언했으나, 반대로 윤지는 나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 어느 날, 내가 너를 기억했을 때는.
단호한 확신이 담긴 말은.
-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다고 웃을 거야. 너는 그런 사람이야.
은은한 달빛처럼 고요하게 나를 위로해 줬다.
늘 당당했고.
눈치가 빨랐으며.
소신 있게 행동하지만.
종종 섬세한 면을 보여준다.
그것도 오직 내게만.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이런 부분이었다.
나는 이런 부분 때문에.
이 아이를 좋아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