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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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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 들고 가는 건 좀 별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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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윤지는 피식 웃으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조화 바구니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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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받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네가 사줬을 때도 내가 얼마나 기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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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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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옛날얘기를 꺼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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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말문이 턱 막혀서 아무 말 못 하자 피식 웃으면서 윤지가 등을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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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가자, 가서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들러야 할 곳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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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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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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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말한 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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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도 무슨 뜻인지 알겠기에 나는 그녀와 함께 병원 안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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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가장 높은 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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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병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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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굉장히 많이 깨졌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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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를 전부 부담한 게 윤지였기에 내가 슬쩍 묻자,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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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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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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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만 내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지불하는 거야. 냉정하게 말해서, 우린 이번 일에서 실패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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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을 보니 윤지에게 있어서 여러모로 배운 게 많은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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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병동은 각기 개인실이었기에 들어가야 하는 병실은 총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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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앞에 있는 정찬우의 병실로 들어갔는데, 뜬금없게도 거기에 다섯이 다 같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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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여기 다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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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만에 건달들에게 두들겨 맞은 우리 멋쟁이들이 같이 모여서 핸드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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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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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혼자 있자니 심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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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개인 병실 내어준 값을 전혀 못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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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구석에서 부드럽게 웃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이쪽을 향해 손짓으로 인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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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애들이 크게 다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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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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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만에 녹다운 되어버린 네 사람을 지켜준 게 바로 대머리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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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싸움도 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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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이것들이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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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랑 표진호가 나 때문에 군입대가 늦춰졌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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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다음날 바로 훈련소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번에 입원하면서 다시금 늦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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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사과할 생각으로 비싼 과일 바구니를 건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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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죽었네. 맞다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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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윽! 우지나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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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끝났는지 나를 향해 달려드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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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뭐라고 할 줄 알았으나, 둘은 환자인 것도 잊고는 나를 번쩍 들더니 병실을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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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군대 늦췄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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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아아아! 넘무 좋아아아! 개 좋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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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늘만 사는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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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서 고개도 못 들겠던 나의 양심을 돌려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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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안 간다고 좋아라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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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결국 가게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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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찍 다녀오는 게 좋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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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한테 사과를 해야 할지 아니면 웃으면서 받아줘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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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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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한 차례 지랄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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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가 헛기침하며 네 사람에게 각기 꽃다발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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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꽃 금지라도, 조화는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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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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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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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윤지의 선물을 보면서 썩 탐탁지 않아 한다. 뭔 꽃인가 싶었으나 윤지가 싱긋 웃으면서 손으로 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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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뽑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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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다들 꽃을 뜯고 내부를 열자 거기서 지폐가 쭉쭉 뽑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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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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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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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느님! 아아! 윤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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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도 안 가고, 용돈도 생겼다! 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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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까지 뽑힐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계속 나오는 지폐를 보면서 다들 불이라도 발견한 원시인처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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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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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기에 당황하며 묻자, 윤지가 윙크와 함께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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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좋아할 거 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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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방송인들이랑 같이 있다 보니까 이벤트를 할 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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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도 자주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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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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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를 하거나, 전동기구를 꼽은 채로 밖에 쇼핑하러 가거나, 캠핑 텐트에서 하거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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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존나 음란한 것들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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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라고 하니까 그런 것밖에 생각 안 나는 걸 보면 내 뇌가 썩은 건가 싶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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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도 비슷한 걸 떠올렸는지 살짝 얼굴이 붉어져서는 숨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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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좋아하는 네 사람에게 한 발짝 내민 윤지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더니 깊게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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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저희 측의 미숙한 대처로 여러분을 다치게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생하신 것에 비해서 다소 약소하나, 저희의 성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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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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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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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나쁜 건 그놈들이었는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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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루기 쉬워서 편하다고 해야 할지, 그냥 해맑아서 좋은 놈들이라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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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좋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윤지는 다행이라 답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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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아저씨 쪽으로도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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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계실 줄 몰랐어요. 나중에 따로 찾아뵈려고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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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나는 우리 멋쟁이들 지킨 것만 해도 충분해. 따로 찾아올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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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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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안 되겠으면 우진이라도 한번 빌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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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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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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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한테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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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끼쳐서 몸서리치자 윤지가 한 걸음 물러서더니 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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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안 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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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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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는 환한 미소. 대머리 아저씨랑은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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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에서 다시 얼간이로 돌아온 넷의 환호성을 받으며 병실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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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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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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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번에 워낙 일이 컸다 보니 혹시라도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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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온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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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말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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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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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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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다른 애들은 전부 방송 은퇴했는데, 포포는 우리 소속으로 계속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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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건공과 분들이 와주신 게 꽤나 컸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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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원래 본인도 그만하려고 했는데. 건공과 팬들을 보고는 계속하고 싶으니까 도와달라고 하더라. 이름은 좀 바꾸고 싶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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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장이 지어준 포포라는 닉네임에는 예전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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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포포는 무슨 쌍팔년도에 나올 법한 이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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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새출발한다는 느낌으로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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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끄덕이자 윤지도 심호흡하더니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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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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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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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 내가 많이 미숙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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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의 사과를 보면서 이런저런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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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본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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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경찰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신고해 봤자 대응할 방법을 이미 꿰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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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내부 기밀정보와 실체를 파악해서 확실한 증거를 얻고, 찌르고 싶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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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유아린은 꽤나 탐스러운 열쇠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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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쇼츠 하나로 그들이 눈독 들이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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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 접근한 게 아니라 황사장 쪽에서 접근했다는 거에서 의심받을 일은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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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때는 당황스럽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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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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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유아린을 거기서 볼 줄은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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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을 끌어들인 건 분명 윤지와 작은형 그리고 작은형수의 실수가 맞았다. 본인이 동의했다고는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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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잘 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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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이고 있는 윤지의 머리에 손을 툭 얹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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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아서 좀 강하게 쓰다듬어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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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잖아. 우리 이제 21살이야. 사장님이니, 회장 아들이니 하지만. 결국 아직 대학생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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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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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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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가 그동안 철두철미한 이미지였기에 다소 의아했으나, 오히려 그녀가 그만큼이나 급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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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착취당하는 방송인들을 구하고 싶었단 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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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으면, 다음에는 안 하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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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위로해 주자 윤지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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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어진 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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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그녀를 보면서 씩 웃어주자,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내 옷깃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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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한 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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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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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안겨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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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이라 사람들 다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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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기고 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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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 부리는 거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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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눈치를 살피며 슬쩍 양손을 펼치자, 윤지가 바로 달려들어서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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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는! 다시는 이런 실수 안 할 거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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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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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우진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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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네가 그런 판단을 한 건, 반년 동안 치열하게 노력해 왔던 탓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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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나한테 다시 돌아오겠다며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하려 했던 그녀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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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 약간 망가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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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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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축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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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가 우는 걸 보고 있자니 시큰한 감정이 들어, 그녀를 부드러이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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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니까, 유아린이랑 얘기나 잘 해봐. 그것도 성격이 더럽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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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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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잠깐 못 본 사이에 왜 이리 울보가 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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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 그런 말 하지 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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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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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근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윤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어서 모르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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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네가 좋아하니까…… 의도적으로 연기했던 것도 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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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야 작게 고백하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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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듣자,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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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색다른 모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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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시간을 주자 얼추 진정됐는지 울음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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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민주희 선배 번호 좀 줄 수 있어? 따로 찾아뵈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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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맹활약 해주신 주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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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괜찮아. 내가 따로 말씀드리니까. 그런 거 필요 없고 밥이나 한 끼 사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오늘 점심 같이 먹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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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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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나를 안고 있는 윤지의 손에 힘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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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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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을 만나러 가겠다는 윤지랑 헤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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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희 선배랑 점심을 먹기 위해서 시내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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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스테이크를 사주겠다고 내가 호언장담을 했기에, 스테이크 집 앞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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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오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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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사람이 있긴 했으나, 주희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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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10분은 남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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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기다리면 되겠거니 하고 핸드폰을 보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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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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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나를 두드리는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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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싶어서 슬쩍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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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봐놓고 아는 척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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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입던 용점퍼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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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달라붙는 베이지색 원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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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들려 있던 손은 갈 곳을 잃고 다소곳이 배 위에 얹어져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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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을 하셨는지 평소와 다른 화사함, 단정하게 아래로 향해 있는 묶은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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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주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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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주희 선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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