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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집에 살 때는 사우나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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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종종 들어가서 몸 좀 녹이고, 피로를 풀고 하는 당연한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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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해서 1년 살아봤다고, 집에 목욕탕과 사우나가 있는 게 얼마나 축복된 삶인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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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아아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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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소리치고 있는 작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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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작은형은 배가 더 나와서 진짜 아저씨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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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를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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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도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탕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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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은 부회장 역할을 하느라 꽤나 바쁠 텐데도 생각보다 몸이 탄탄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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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홈트를 해왔던 나보다 훨씬 몸이 좋은 걸 보니 PT라도 받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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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는 무슨. 내 여친은 곰 같은 남자를 좋아해. 그래서 일부러 찌우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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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곰이 아니라 그냥 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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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우리 여친이 내 배 만지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하여간 형은 센스가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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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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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큰형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욕탕에 몸을 덥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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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욕탕에 들어갔는데, 뜨끈한 물에 피로가 풀리며 복잡하던 머리가 약간은 쉬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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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고 있자니 작은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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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랑은 무슨 얘기 했냐? 윤지 관련해서 싸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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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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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아버지도 너무 고지식하다니까? 윤지 아버지 관련해서 신경 쓰이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걔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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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휘적거리며 투덜거리는 작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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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랑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그녀의 사정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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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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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큰형이 그것에 반박하며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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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집안도 아니고 기업 회장의 아들이다. 아버지이며 회장이기에 당연히 자잘한 흠이라도 있어선 안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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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 상관이야.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하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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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욕망으로 움직여선 안 되는 자리니까. 우리의 행보 하나하나에 회사 사람들의 가정이 휘청거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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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복잡하게 생각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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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탁 치며 작은형이 꿍얼거렸으나, 큰형도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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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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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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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말고 다른 여자애들과도 관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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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세 명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우리 막내가 인기가 너무 좋아도 문제야?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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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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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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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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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답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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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 사람을 정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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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옳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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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감싸 쥔 채 고민하다 문득, 큰형을 휙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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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대학 때 여자 많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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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아! 우리 형님은 아주 지렸지. 나랑 다르게 그냥 여자들이 막 달라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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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장 아들인 걸 다들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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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다르게 큰형은 회장 아들이라는 게 이미 다 알려진 채로 대학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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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회의감이 담긴 표정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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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왜 지금 형수를 골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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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큰형은 무뚝뚝하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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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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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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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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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다웠지만 그렇다면 형수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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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녀를 고른 이유였고, 그 아이도 알고 있다. 나는 회사가 전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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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형이 여자랑 사귀나 싶었더니 이런 느낌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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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살짝 처지자 작은형이 바로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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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장이 말하는 대로 행동했지. 방송에서 처음 봤을 때 딱 느꼈어. 아, 이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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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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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든 접근해 봤지. 나름대로 머리도 굴리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결국 내 매력으로 꼬실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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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 여자친구는 인터넷 방송인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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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사업도 그 사람을 주축으로 구성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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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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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너무 상반된 상황이었기에 내가 답을 내리는 데 딱히 큰 도움은 안 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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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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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를 부르는 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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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큰형은 진지했지만, 지금만큼은 진지함이 미묘하게 달랐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인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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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부회장으로서 노력하던 큰형이 아니라. 어릴 적 무엇 하나 모르던…… 배려심 넘치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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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운이는 다른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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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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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의 선택을 했으나, 우리의 결과는 같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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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하핳! 형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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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은 웃어댔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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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서 그런 선택을 해왔던 거고,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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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암, 우리 여친님이랑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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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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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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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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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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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우리와 마찬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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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시 지어지는 미소에서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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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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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믿음을 받는 게 옳은가 싶기도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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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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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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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가 했던 말들에 대해서 무엇 하나 반박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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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쓰레기라고 했지, 정작 실제로 나의 행동의 무게감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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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싶지 않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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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이 이어지는 게 마음 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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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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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힘든 건 스스로가 그런 인간이라는 게 결과적으로 증명됐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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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미운 건 물론이거니와, 자책감 탓에 모든 인연이라도 끊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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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작은형은 웃으면서 총을 쏘듯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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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유머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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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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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작은형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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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은근 의리도 있어. 이익을 챙기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도가 지나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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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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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감도 나름대로 갖추고 있어. 평균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없는 사람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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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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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말을 잘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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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큰형으로 시선을 돌린 작은형. 큰형은 헛기침을 한 번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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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법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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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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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탓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경우도 잦다. 형으로서 썩 좋게 보이진 않지만…… 그건 네 장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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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나 좋은 놈이라고 위로라도 해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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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좋은 놈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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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좋은 놈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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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하는 두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뭔 말을 하려는 거냐고 되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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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무작정 나쁜 놈도 아니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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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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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적인 인간은 없다,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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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큰형의 미소가 보였던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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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아버지가 말한, 그것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면…… 나와 운이가 이렇게 위로를 해주지도 않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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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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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아이들이, 너를 마음에 품지도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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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은 그 이상 내게 뭔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제 조용히 입을 닫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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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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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나마, 나라는 사람에 대해 긍정해 준 잠깐의 시간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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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이나마 마음이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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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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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씻고 나온 다음, 저녁도 같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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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함께 드셨으나, 아까 내게 얘기하던 때와는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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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미소와 함께 한마디만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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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 같이 먹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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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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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로 돌아갈까 했지만,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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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내가 쓰던 방에 들어가기 전, 엄마가 내게 따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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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안 자도 괜찮아? 우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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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울어. 애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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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잖아. 내가 봤을 땐 아직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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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호들갑도 심하다고 얼른 가라고 말하자, 엄마는 웃으면서 어깨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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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니까 좋네. 가끔 와,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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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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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무서우면 엄마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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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부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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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냉큼 가버리는 엄마. 하여간 나이를 먹어도 저 성격은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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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들어가려 문고리를 잡았는데 문득, 옆방에 있는 큰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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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묻고 싶은 것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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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는 묻지 못했지만, 큰형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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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장 형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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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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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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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따윈 안중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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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안으로 바로 들어갔는데 화상통화를 하고 있는 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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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보니 형수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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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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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 역시 인사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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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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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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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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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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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예의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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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도 토하러 가고 싶은데 억지로 여기 서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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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얘기 잘 나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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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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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끊기고,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킨 큰형이 나를 무덤덤하니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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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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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걸 없던 일로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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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하고 들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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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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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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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꾹 다문 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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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막 그러지 않았나? 회사에 가장 이익이 될 여자라서 선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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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 묻자 큰형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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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여자다. 그것이 주요한 선택 요인이었지만, 장기적으로 보기 위해선 결국 감정이 뒷받침되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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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은 사랑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회사에 도움이 될 사람을 골랐다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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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회사 때문에 감정도 없이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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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찾아왔지. 본론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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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꺼지라는 말을 나름 매너 있게 해주는 큰형.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과거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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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원에서 만났을 때, 왜 형이 윤지랑 거래하고 뒷조사한 것처럼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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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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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계속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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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지에게 듣기 전까지는 아버지랑 관련이 있다는 걸 조금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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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골드원에서 큰형은,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을 벌인 것처럼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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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큰형은 그냥 이야기를 전해주는 정도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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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한 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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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으나, 생각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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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버지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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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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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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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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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큰형은 미소와 함께 얼른 나가라고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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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말해줌으로써 내가 큰형 때문에라도 아버지를 막 미워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질이 약아빠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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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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