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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429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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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과 헤어진 나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빨랐다.
허나, 그것은 경쾌함보다는 분노에 가까웠고. 특히나 지그시 누르고 있는 내 감정을 대변하는 행위와 흡사했다.
기숙사로 돌아가야 했다.
기숙사에는 저녁 점호가 있는데 거기서 없으면 벌점이고, 벌점이 많이 쌓이면 쫓겨난다.
이제 학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벌점이 쌓이는 건 나 역시 바라는 게 아니었으나.
이미 나는 기숙사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끼익.
도로변에 정차한 고급 세단 한 대.
별 망설임 없이 뒷좌석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각진 턱선, 검은 정장, 무취, 낮은 음색, 목덜미에 살짝 보이는 점.
여러 특징이 있는 그는 나를 깍듯이 대하면서 가능한 실수하지 않으려 애쓴다.
운전도 부드러우면서 속도감 있는 게 최대한 불편사항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름조차 모르고, 직위, 소속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나에게 실수하지 않으려 어떻게든 애쓴다.
이런 삶이었다.
나는 저들이 누구인지 조금도 모르고, 관심조차 없지만.
저들은 나를 대함에 있어 인생의 전부인 듯 최선을 다해 보좌하려 했고, 보필하려 한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기, 김창호입니다!”
또한 나의 행동 하나가 생각지도 못한 여파를 몰고 오기도 한다.
차량 안에 차오른 긴장감.
목덜미에 맺힌 땀 한 방울.
자신이 혹시 뭔가 잘못한 걸까.
의문 탓에 수시로 확인하는 백미러.
개미를 쓰다듬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냥 귀여워서, 대견해서, 고마워서 쓰다듬어주고 싶을 뿐이지만.
그들은 그것에 압사당해 죽을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이름을 물어봤을 뿐이다.
나를 위해 늦은 시간 찾아와 운전해 주는 분에게 감사라도 전하고 싶었으니까.
정작 저분은 내가 이름을 물어본 것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치를 살핀다.
중요한 건.
우린 인간과 개미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거였다.
더 이상 뭔가를 묻지 않기로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는 그것의 속내를 찾으려 들겠지.
입을 꾹 다문 채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침묵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였다.
* * *
“고맙습니다.”
차량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선다.
문까지 열어주려고 했던 그에게 짧은 감사 인사만 건넨 채로 나는 거대한 저택을 눈에 담는다.
여기 살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원룸에서 지내다가 다시 이렇게 보게 되니 내가 얼마나 호화로운 곳에서 살아왔던 건지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대문이 열린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안의 셋째에게 사용인들이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하지 말라고 말해봤자 그들은 듣지 않을 테니.
괜히 보고 싶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께서 집안에서 나를 반겨주셨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고?!”
어머니는 평소와 똑같으셨다.
환하게 웃으면서 오랜만에 돌아온 막내를 반겨주신다.
나 역시 격해진 감정을 잠시 숨기며 어머니를 부드럽게 안아드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뵈러 왔어요.”
목적을 밝히자 나를 놓으신 어머니의 표정이 대번 어두워지셨다.
나는 늘 아버지와 좋지 않았으니까. 지금 갑자기 찾아온 것도 썩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신 거겠지.
어머니를 지나치는 와중.
“하나만 말해줄게.”
나를 향해 한숨을 내쉬면서 투덜거리신다.
“아버지라 부르는 건 큰 애 따라 하니? 네 아빠는 괜찮은데 나는 엄마라고 불러.”
“……오랜만에 봐서 그래.”
“애들이 귀여운 맛이 없어. 딸을 낳아야 했다니까? 내가 그래서 그날 밤에 더…….”
“말하지 마!”
분명 아까까지 진지했는데 엄마랑 얘기하니까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에휴, 싸우는 건 좋은데. 저녁은 먹고 가. 알았지?”
“알았어.”
“너 좋아하는 음식들로 해둘게.”
“엄마가 하는 거야?”
“회장 마누라가 주방 들어가면 욕먹어 얘. 뭣도 모르면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주방 이모들이 얼마나 뭐라 그러는데.”
“…….”
참나.
우리가 그나마 가족으로 연결될 수 있는 건 엄마의 이런 성격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일단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마음을 좀 풀라고 엄마가 요령 있게 분위기를 환기시켜주었다.
평소였다면 나 역시, 너무 과격하게는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 꿈꿔왔던 순간이네.
아직도.
아직도 오윤지의 아련한 목소리가 귓가에 머금어져 있었다.
덜컹.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경을 쓰고 책을 읽던 아버지가 천천히 내 쪽을 쳐다본다.
똑같았다.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던 그때와 똑같은 모습.
“윤지한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음에도 아버지는 천천히 책갈피를 꽂은 채 책을 덮고, 안경을 벗는다.
대화의 흐름은 그 일련의 행위들만으로 아버지에게 넘어갔다.
당장이라도 끓어오를 듯하던 나를 반강제로 기다리게 만들면서 말이다.
“쯧, 애비한테 인사는 못 할망정.”
“뭐했냐고요!”
“그 애가 누구 딸인지는 알고 있는 거냐? 내 아들놈이 사형수 딸한테 눈 돌아갔는데 그걸 가만히 둘까?”
“윤지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 걔는 자기 아버지 얼굴 본 적도 몇 번 없어요!”
윤지가 배에 있을 때 감옥에 들어가셨다고 들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묻진 않았다.
그 아이가 말하고 싶지 않아 했으니까.
찾아보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것 역시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윤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와 아예 별개의 존재로 살아왔다.
“뒷조사하셨으면 다 알 거잖아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거! 예? 걔가 뭘 잘못했어요?!”
“없다.”
“……네?”
무뚝뚝한 아버지의 시선에선 일말의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 아이는.”
“아, 아니…… 그걸 아시면서!”
“그게 핏줄이라는 거다.”
목이 답답했다.
무언가 얇지만,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게 나의 목을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그게, 그게 핏줄이라는 거야.”
죄여오는 감각이 더욱 강해졌다.
붉은 빛을 띠는 그것은 심장박동처럼 두근거렸으며 뜨겁기까지 했다.
“아무 잘못 없지만, 핏줄이기에 이런 책임을 지는 거다. 너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내 핏줄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내가 품고 있는 거다.”
나의 목을 죄여오는 감각을 선사하는 건.
아버지의 핏줄이었다.
“우진아.”
쓴 숨이 흘러나오셨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내게 물어오고 있었다.
“왜 내가, 큰놈이 아니라 너를 후계자로 지정하려고 했는지…… 이제는 알겠냐?”
“그딴 걸 어떻게 알아!”
또 그 얘기라는 생각에.
울컥했던 감정이 분풀이라도 하듯 터져 나왔다.
“큰형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당신이 모르지 않잖아! 당신 마음에 들겠다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아온 형인데! 나한테 넘겨주겠다고 했을 때, 큰형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어?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집을 나왔다.
내가 계속 집에 있다가는, 큰형의 모든 노력을.
인생을 뺏을까 봐 겁이 났으니까.
“후우, 어리구나.”
그런 내 외침에도 아버지는 혀를 차며 대꾸하셨다.
“노력? 지식? 능력? 그런 건 말이다. 결국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거야. 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그거 없는 놈 본 적이 없다.”
“…….”
“중요한 건 본성이다. 그건 따라 하지 못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거야.”
“무슨 개소리를…….”
“큰놈은 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노력과 연기를 통해 숨기고 있지만 그건 가짜다.”
“…….”
“둘째는 사람이 좋아. 지 엄마를 닮았지. 애초에 논외다.”
“…….”
“너, 우진아.”
슬며시 지어진 미소는 섬뜩함과 묵직함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너다, 우진아.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소신 있지.”
“뭘 안다고!”
“그 애랑 내기를 했다. 내 도움이 없어도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아오면 허락하겠다고.”
허락.
그것을 믿고 오윤지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다.
“다만, 연락하면 안 된다고. 만나지도 말라고. 같잖은 편지를 남기려 한다는 걸 들어서 그것도 따로 치워뒀다.”
“당, 신이……!”
“말 끊지 말고 들어라.”
아버지의 입꼬리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을 때 지어지는 그런 미소였다.
“그래서 어땠지?”
결과는, 지금의 나였다.
“너는 아무렇지 않게 그 애를 잊어냈다. 방학 동안 슬퍼했지만, 결국 학교를 다시 다녔지.”
만약.
그리 덧붙이며 말을 이어간다.
“방학이 짧았다면 너는 더욱 금방 마음을 다잡았을 거고, 방학이 아니었다면 다음날 정신을 차렸을 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아니, 넌 그런 놈이다. 그리고 그런 너를 알고 있으니까 내가 후계자로 택했던 거고.”
“…….”
“그것뿐일까? 이제는 여러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고 들었다. 단순히 오윤지를 잃은 것에서 끝나지 않았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지.”
“…….”
“탐욕스러워. 그들이 너 때문에 힘들어할 건 생각도 안 하지? 아주 이기적이야. 위에 있는 사람은 그래야 된다.”
아.
“그러면서 그들 앞에선 웃고 있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열심히 한다는 명목으로 즐기고 있지.”
“…….”
“그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있어 정당성을 부여했겠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들과 지내왔던 수많은 시간들이 지금,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우진아, 너는.”
듣고 싶지 않았으나.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인간이구나.”
아버지의 선언은, 못을 박듯 나를 때리고 들어왔다.
* * *
밖으로 나온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그러기도 싫은 상황.
엄마 몰래 그냥 밖으로 나가려고 걸음을 재촉했으나.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익숙한 두 얼굴.
“아버지랑 이야기는?”
부회장인 큰형과.
“딱 봐도 안 좋게 끝났겠지.”
회사를 차렸다는 작은 형이었다.
“형들? 여기는 왜……?”
반가워해야 할지 아니면 거리를 두어야할지 모르겠는 상황.
멍하니 형들을 보고 있자니, 작은형이 내게 와서는 바로 어깨동무를 하며 외쳤다.
“네가 돌아왔다고 해서 형이랑 같이 왔지. 근데 일단 사우나부터 들어가자! 머리 복잡할 때는 사우나가 최고야! 형도 갈 거지?”
“옷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군.”
어깨를 으쓱거리면서도 사우나 들어가는 걸 거절하진 않는다.
집 지하에 따로 작게 목욕탕과 사우나가 있었기에 가는 데 오래 걸리진 않지만 솔직히 별로 땡기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국 형들에게 끌려가듯 가는 와중.
“너희 어디 가니? 저녁 차려뒀는데.”
엄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든다.
“사우나요! 형제들끼리 몸의 대화를 나누려고!”
“재운이도 가니?”
“네.”
“우진이도?”
“뭐, 가자고 하니까요.”
솔직히 커서 형들이랑 사우나 가는 게 좀 불편하긴 했으나. 이렇게 적극적으로 두 형이 요구해 오면 어쩔 수 없겠지.
“으음.”
엄마는 그런 우리를 보더니.
“그럼 엄마도?”
바로 따라오려 했다.
“뭔 엄마도야!”
“하아, 어머니.”
바로 제지하는 형들.
아니었으면 내가 말리려고 했다.
“쯧, 뭐 숨길 게 있다고 남정네들이. 니들 꼬추 새끼손톱만 할 때부터 내가 다 씻겨주고, 닦아주고 했어 이것들아.”
호들갑 떤다고 외치지만.
“엄마 우리 씻기는 것도 아줌마들한테 맡겼다고 들었는데?”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내가 씻겨주면 니들이 울잖아. 그래서 식모들이 까불지 말고 가라고 그랬어.”
엄마는 머쓱해하며 중얼거리더니 우리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총총걸음으로 주방으로 가버렸다.
“안주인님! 저희가 할게요!”
“그냥 소파 앉아서 TV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