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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실은 그냥 놀러 갔다가 우진이 놀리려고 가슴을 만지게 했다고?”
“엉.”
“근데 막상 관계를 가지진 않았고?”
“그렇지.”
“후.”
유아린에게 상황을 전부 들은 최이서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더 험한 말을 하고 싶었을 텐데 잘 참았구나. 내가 들어도 유아린이 하는 말이 어이가 없었으나 저게 진실이라는 게 안타깝다.
“놀랍게도 전부 사실입니다.”
내가 양손을 펼치며 마술사처럼 대답하자 눈가가 꿈틀거리는 최이서.
아무래도 제대로 자극한 모양이었는데 여기서 조금 더 까불면 처맞을 것 같았기에 나는 헛기침하며 답했다.
“믿지 못할 것 같으니까 숨기려고 했던 거야. 근데 진짜로 저거 말고는 별일 없었어.”
굳이 따지자면 대나무숲의 관리자와 관리인의 관계였으나.
‘서예린 앞에서 그걸 말할 수는 없지.’
최이서 학번으로 만들어진 익명287이 영구 밴이 됐으니 최이서는 대나무숲에 이제 별 관심이 없다고 치더라도, 익명69로서 열심히 활동 중인 서예린에게 내가 관리자인 걸 밝힐 수는 없었다.
특히나 그녀와는 개인적으로 문의라는 명목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잦으니까.
당장에 어제만 해도 익명69가 나한테 품번 추천해 달라고 문의를 해왔었다.
“……진짜 미쳤네.”
유아린 가슴 만진 거 때문에 얼굴 붉히고 눈치를 보고 있는 서예린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렸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앞이랑 뒤가 다를 수 있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앞보다는 뒤가 유쾌하고 재밌긴 하다.
뭐 어쨌든.
자신에게 따지고 드는 최이서를 향해 유아린이 지긋지긋하다면서 대꾸한다.
“근데 내가 왜 취조받는 느낌으로 얘기해야 돼? 너 쟤랑 사귀니?”
대놓고 최이서에게 물어오는 유아린.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면서 대화에 집중한다.
“안 사귀고 있어.”
머뭇거리며 답한 최이서의 대답에 유아린은 마치 상대의 꼬리를 잡은 것처럼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따지고 든다.
“그치? 근데 왜 너한테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해? 김우진이랑 너 그냥 친구잖아. 쟤가 내 가슴을 만지든, 잠을 자든 무슨 상관이야.”
유아린이 말하는 건 좀 재수 없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랑 유아린이 물고 빨고 했더라도 최이서가 끼어들 이유는 없다.
“내가…….”
그렇게 이번 일은 유아린의 뻔뻔함과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행동으로 승리하는 건가 싶었는데.
“과대 임기 끝나면 우진이랑 사귈 수도 있으니까!”
거의 뉴스 헤드라인에 나와야 할 것만 같은 발언이 최이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는데 술 마신 것도 아니니까 그냥 부끄러워서 그런 거다.
“뭐?”
대답을 들은 유아린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나와 구경꾼인 서예린조차 지금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허나, 그런 우리의 반응에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는지 최이서는 팔짱을 끼면서 외쳤다.
“이번 학기에는 아직 축제도 남았고, 과대도 하고 있으니까 연애 안 할 건데…… 내년에는 모르는 거잖아.”
“어…….”
이제는 반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대답을 못하고 있는 유아린.
“내가 지금 가장 가까이 지내고 관심 있는 게 우진이니까 미, 미리 침 발라놓는 거야!”
얼굴을 확 붉힌 채로 빼액 소리치는 최이서.
이런 대답은 예상에 없었다며 당황한 유아린을 계속해서 몰아쳐 간다.
“그래서 우진이 근처에 이상한 애들 안 꼬이게 하려는 거야. 너 우진이한테 관심 있어?!”
이게 살을 주고 뼈를 취한 건지.
아니면 뼈를 주고 살을 취한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봤을 때는 최이서가 뼈를 준 것 같은데.
뭐, 어쨌든 폭탄발언 덕분에 대화의 주도권은 확실히 가져왔고, 명분도 낭낭하게 채워졌다.
“얘한테?”
최이서의 물음에 나를 휙 노려보는 유아린.
그러더니 인상을 와락 구기면서 외쳤다.
“미쳤니? 저런 애가 뭐가 좋다고!”
“뭔데.”
왜 갑자기 내가 얻어맞는 건데.
“매너도 똥인 데다가! 성격도 이상하고! 가슴 만져놓고 선은 못 넘는 소심한 놈한테 무슨 매력을 느껴?!”
“갑자기 왜 나를 때리는 건데.”
갑자기 두들겨 맞고 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런 유아린의 말에 최이서가 곧바로 대꾸한다.
“우, 우진이가 좀 이상한 면이…… 많긴 하지만!”
“많아?”
최이서 쪽을 쳐다보며 되물었으나 그녀는 이미 내 쪽은 보지도 않고 있다.
“농담도 아슬아슬하고. 종종 이상한 드립이나 치고 그러긴 하지만!”
“……집에 가도 되나?”
나 너무 아픈데.
“어쨌든 좋은 애야!”
패기는 실컷 두들겨 패놓고 막상 반창고로 붙여주는 건 좋은 애라는 거구나.
아주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네.
“내가 그렇게 이상하냐?”
옆에 있는 서예린에게 슬쩍 확인하자 뺨을 긁적이면서 작게 고개만 끄덕인다.
지는 대나무숲 섹x좌인 주제에.
어제 내가 추천해 준 품번으로 뭐했는지 묻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여러 사건이 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가 가라앉지를 않는 최이서였다.
“미쳐가지고…….”
최이서는 아까 자신이 했던 발언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과대 임기 끝나면 우진이랑 사귈 수도 있으니까!’
다시금 떠오르는 그때의 발언.
사실상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유아린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내뱉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게 멍청한 짓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오오오오! 최이서 미쳤어! 미쳤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집 앞에 다 왔으나 부끄러움에 쪼그려 앉아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최이서.
어딘가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백을 했다는 것도 부끄러운데 과정과 결과가 최악이었다는 것 역시 한몫했다.
‘싸우다가 고백하는 미친년이 도대체 어디 있냐고!’
유아린이 김우진에게 계속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당시에는 가장 컸다.
심지어 가슴까지 만지게 할 정도로 유아린이 억척스럽게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본인 말로는 관심 없다고 하지만…….’
세상 어떤 여자가 관심도 없는 남자에게 가슴을 만지게 해주겠는가.
‘김우진은 묘하게 맹한 부분이 있어서 괜히 끌려다니다가 어쩌다 사귀게 되거나 할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막상 생각해 보니까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덜컥 겁이 났다.
‘하아.’
솔직히 말해서.
말을 하기 직전까지도 최이서는 자신이 김우진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뚜렷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었다.
편하고, 친했으나 다른 여자랑 같이 놀았다고 말하면 괜히 불편해진다.
그게 질투라는 걸 유아린과의 대화를 통해 확신했고 결국 최이서는 참지 않고 내지른 것.
유아린이라는 위협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근데 언제부터지.’
민지 사건 때부터 시작해서 김우진이랑 몇 번이고 같이 다니거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심심하게 좋아하게 됐다는 감상.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인 대사나 상황은 없었으나.
반대로 일상 속에서 마음을 허락하게 됐다는 게 오히려 특정 사건이나 말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흐으.”
다음부터 어떻게 봐야할까.
일단 월요일에는 겹치는 강의가 없으니까 다행히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화요일은 아침 일찍부터 같은 강의가 잡혀있다.
조금 두근거리고 걱정스러우면서도.
아까 아무렇지 않게 없던 일처럼 넘어갔던 김우진의 모습이 아른거려 괜히 짜증에 주먹이 쥐어졌다.
만약 화요일에 만났을 때.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걸어온다면……?
“그땐 진짜 죽을 줄 알아, 김우진.”
“응, 잘 들어가.”
“조심히 들어가 아린아.”
복잡한 표정의 서예린을 집에 데려다준 후, 유아린은 기지개를 켰다.
‘일이 이상해졌네.’
김우진과 관련된 일이 좀 복잡해졌다. 유아린 스스로도 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김우진한테 접근한 건 예린이 때문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에게 관심이라곤 조금도 없는 건 물론이요, 오히려 피하던 서예린이 처음으로 남자에게 관심을 보였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느꼈던 것처럼 서예린이 조금이라도 질투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시작은 부정적인 마음이었으나, 끝까지 그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김우진과 사귀거나 할 생각은 없었고. 어쨌든 그도 서예린이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걸 알면 그쪽을 선택할 테니까.
주목적은 서예린의 질투.
심심한 대학 생활에 작은 유흥거리이자 친구를 향한 음침하고 소심한 복수였으나.
‘왜 이상한 애가 자극을 받아가지고.’
서예린이 아니라 최이서가 유아린의 행동에 자극을 받아서 질러버렸다.
설마 그렇게 고백할 줄은 몰랐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자신이 그만큼 위기감을 조성했다는 거겠지.
‘아,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유아린이 나서지 않아도 김우진한테 최이서는 다가갈 테고, 자신보다 더 위협적인 라이벌이 나타났으니 서예린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했다.
‘그런 애가 뭐가 좋은 거야.’
유아린은 김우진을 생각하며 혀를 찼다.
서예린도 최이서도.
과에서 손에 꼽히는 인기인들인데 어째서 그런 애한테 관심을 가졌나 싶었다.
당장에는 사랑까진 가지 않았어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일단 분명했으니까.
‘외모는 내 스타일 아니고, 성격도 별로야, 나쁜 애는 아니지만 어울리는 친구도 없어.’
생각해 보니까 그렇다.
저런 통통 튀는 애를 1학기 때는 왜 몰랐을까?
좀 괴팍하긴 해도 나름 매력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야! 부르잖아!”
그때.
유아린의 정수리를 내리치는 손날. 깜짝 놀란 유아린이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잔뜩 짜증내는 김우진이 있었다.
“김, 우진?”
“아오! 무슨 생각 하고 있는데 사람이 불러도 대답도 없어.”
“그냥…….”
“뭘 얼버무려. 또 나쁜 생각 하고 있었겠지.”
어떻게 알았지.
“여기 왜 있어?”
분명 아까 전에 헤어질 때 상처받은 것처럼 혼자 터덜터덜 가버리지 않았는가.
“너한테 할 말 있으니까 왔지.”
“할 말?”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김우진은 눈치도 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일요일에는 종교 동아리에서 원래 도배 글 자주 올려. 그거 괜히 건드리면 벌집 찌르는 꼴이야.”
“아아.”
무슨 얘기인가 했는데 대나무숲이었구나.
‘타이밍 진짜.’
눈치가 있는 듯 없는 김우진을 보면서 유아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지금처럼 머리가 복잡할 때 다른 얘기까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너한테 욕하면 바로 차단 박아버려. 문의는 어차피 나한테만 오니까 상관하지 말고.”
“어.”
“관리인으로서 품위를 지키란 말이야. 내 부하인 네가 휘둘리면 괜히 나도 위엄이 없어지잖아.”
“그래.”
“차단은 가능하면 하루만 주는데 한 번 받은 걸로 또 받은 애들은 사흘 정도 주고.”
“알았어.”
“그리고 아까처럼 괜히 네가 덤터기 쓰면서 나 피해자 만들려고 하지도 말고.”
“알았…….”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고개를 돌린 유아린. 시선을 맞추자 김우진은 점퍼 주머니에 있던 초코몽을 꺼내 든다.
“오늘 고생했다. 이거 마셔.”
“…….”
그러면서 반대편 주머니에서 꺼낸 건 본인의 허시 초코 우유였다.
서로 다른 브랜드의 초코우유를 샀다는 건데. 지난번에 초코몽 먹던 걸 기억했던 모양이다.
초코몽을 받아 가는 유아린에게 김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히 이상한 걸로 애들이랑 싸우지 마라. 좋은 애들이야.”
“나는?”
왜 이런 걸 물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유아린은 그냥 한번 물어보고 싶었고.
“넌 나쁜 애지.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계속 다른 사람 자극하고 있잖아.”
너무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금 차갑게 식어가는 분위기. 유아린은 방금 받은 초코몽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에 휩쓸렸으나.
“근데 나름 이유가 있어 보여.”
덧붙인 말이 무슨 뜻인가 싶었다.
“서예린이랑 정찬우 그리고 너. 셋이 고등학교 때 무슨 일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거 때문에 좀 삐뚤어진 것 같고.”
정답이었다.
하지만 김우진도 딱 거기까지만 알 뿐이지 자세한 내막을 알진 못했다.
“이유가 있으면 뭐가 달라져?”
어차피 나쁜 년인데.
그리 덧붙이며 퉁명스럽게 유아린이 묻자 김우진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유가 있어서 나쁜 놈이 되었다. 그럼 원래는 착한 놈이었다는 소리 아니냐?”
단순하다.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봐도 저렇게 볼 수 있나 싶을 정도.
“단순한 새끼.”
유아린이 그리 톡 쏘아서 말하자 김우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초코우유에 빨대를 꽂고 한 모금 마신다.
“네가 복잡한 거야.”
그리 답하는 김우진을 보면서 유아린은 뭔가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김우진이랑 대화를 하면서 조금 바람을 쐰 느낌.
“아까 전에, 내가 애들한테 네 방 간다고 했을 때.”
“음?”
“너 일부러 가자고 말했지. 분위기 괜히 이상해지는 거 망가트리려고. 화살촉 너한테 돌리려고.”
“몰루. 기억 안 남.”
더 이상 대화는 안 하겠다는 듯 거의 다 마신 허시를 쪽쪽거리며 빨아댄다.
그런 반응에 한숨을 내쉬며 이상한 기분이 들다가도, 문득 그가 자신과 함께 걸어주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음?’
집 가는 길이 겹치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옆에서 걸어주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그가 자신을 배웅해 주고 있다는 걸 유아린은 눈치챘고.
별말 없이 나름의 배려가 행해지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
유아린은 그가 준 초코몽에 빨대를 꽂으며 걸어간다.
보폭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그가 이미 맞춰주고 있었으니까.
쪼옵.
초코몽이 평소보다 달았다.
“아오! 달잖아!”
이상한 기분이 되는 걸 막아야 했기에 유아린은 김우진의 엉덩이에 돌려차기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