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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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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것의 일환으로 그냥 혼자서 진득하게 영화나 볼 생각이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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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눈에 계속 밟히긴 했지만, 어쨌든 영화 볼 때는 별문제 없겠거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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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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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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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전편은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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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안 봤는데. 그냥 때리고 부수는 영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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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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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뒷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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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자신의 뒷자리에서 떠들고 있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민주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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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은 편도 아니라서 주변 좌석도 비어 있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들킬 수도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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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꾹 다문 민주희는 의도적으로 눕듯이 앉아, 괜히 조금이라도 시선을 받지 않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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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래도 영화는 좀 조용히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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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상황이긴 했으나 어쨌든 영화가 시작되면 두 사람을 신경 쓸 일은 따로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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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믿으며, 민주희는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광고를 보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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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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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들려온 신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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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퍼뜩 놀란 민주희의 눈이 크게 뜨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살짝 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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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으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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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애써 참고는 있지만 유아린의 신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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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 미친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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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여기서,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런 행위를 하면 어쩌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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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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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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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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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글맞은 김우진과 애써 참는 유아린의 목소리를 들으니, 우뚝 몸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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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신음은 계속 이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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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희의 머리에는 자연스럽게 뒷좌석이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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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강압적으로 유아린의 하반신에 손을 넣고 장난감 다루듯 움직이는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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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김우진에게 하지 말라고 저항은 해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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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는 다르게 몸은 바라고 있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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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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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뜨거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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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팔걸이에 올려두었던 손이 자신도 모르게 하반신으로 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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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의 신음은 야릇했고, 김우진은 그녀를 유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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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것이 자신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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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쳐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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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상이 차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손이 아래로 내려가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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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마사지 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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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르던 몸의 산통을 깨는 유아린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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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너튜브 보고 배웠음. 손이랑 발 마사지 받았는데, 발은 나중에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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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튜브로 다 보고 배우네. 마사지는 진짜 시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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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잘한다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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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 잘하……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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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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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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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마사지가 시원하면 뭐 얼마나 시원하다고 그딴 소리를 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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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민주희 정신 좀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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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머리를 한 대 퍽 때린 민주희는 콜라나 다시 한 모금 마시며, 슬슬 시작하려는 영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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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했냐,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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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비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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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와 봐. 괜히 주변 사람들한테 비명 들리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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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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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는 약간의 다툼이 일어난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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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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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시간표를 다시 짤 수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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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다섯 시간 공강에서 드디어 벗어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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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 떠오른 정상적인 시간표를 보면서 방긋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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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 신청한다고 고생 좀 했지만 그래도 결과물이 만족스러워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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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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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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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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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했으나 몸에 스며있는 여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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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2학년이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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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지내는 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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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숙사생들끼리 허물없이 지낼 줄 알았는데 반대로 은근히 선을 긋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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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가끔 엄청 시끄러울 때도 있고. 봐선 안 되는 장면을 볼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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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무슨 학교에 세 들어 사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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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생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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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없으면 그냥 혼자 학식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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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도 집에 있으니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따로 PC방에 갈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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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날 일이 없다는 게 가끔 답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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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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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눈에 들어온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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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최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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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만둔다고 했는데 어느새 다시 과대를 하고 있는 그녀와 옆자리에는 부과대인 안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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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는 1학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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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네 둘이 1학년 과대랑 부과대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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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최이서랑 안현호가 과 대표 역할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면서도, 요령 등을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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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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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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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받고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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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테이블을 다시 보자 여전히 화기애애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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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기묘한 감정에, 나는 어느새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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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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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앞에 서서 갑자기 말을 걸었음에도 나를 본 최이서는 살포시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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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과대랑 부과대 도와주고 있어. 아무래도 처음에는 정신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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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 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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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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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둘을 힐끔 보자, 두 사람은 나한테 바로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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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1학년 과대 김규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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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과대 한민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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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학년 김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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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여자가 과대에 남자가 부과대인가. 의외로 최이서랑 안현호 느낌이 나는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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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볼일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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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일하게 여기서 나를 노려보고 있던 안현호가 결국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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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 없으면 얼른 꺼지라는 뉘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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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은 없는데. 그냥 심심해서? 옆에서 들어도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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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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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욕이 박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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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는 오랜만에 최이서랑 같이 있는 시간이니 내가 끼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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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나도 비킬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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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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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으니까 합석은 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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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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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는 분명하게 했기에 나는 결국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안현호의 인중이 히죽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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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끝나니까 옆 테이블에서 잠깐만 기다려. 저녁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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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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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같이 저녁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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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오 인중 원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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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에 기숙사라서 심심하다고 했는데 바로 저녁 약속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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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에 따로 저녁을 먹자고 할 생각이었는지 안현호의 표정이 굳어졌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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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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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호: 왜 방해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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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나한테 온 톡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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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방해는 무슨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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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호: 씹새끼. 예린이랑 사귀는 거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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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니도 한강 선배랑 같이 여자 만나러 다니잖아. 왜 아직도 이서한테 관심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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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호: ……우진아, 남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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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연락이 왔으나 대부분 개소리였기에 그냥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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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게 맞나 싶은 상황이긴 했어도, 어쨌든 감정이 따르는 대로 행동한 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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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정도 지났을까, 최이서가 웃으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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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아직 저녁 먹기엔 시간이 좀 있으니까 헬스장 가서 운동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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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거기까진 예정에 없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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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면서 운동하면 각성 효과도 있고 좋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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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헬스장에서 커피 마시면서 하는 사람들이 많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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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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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팔짱을 끼며 나를 끌고 가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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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아까 테이블을 지나치는데 1학년 과대와 부과대 그리고 안현호가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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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대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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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에서 소문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1학년들도 금방 알게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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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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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김우진이라고 소개했을 때, 살짝 표정들이 어두워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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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아무렇지 않게 팔짱 끼고 가는 걸 보면 얘도 은근 남들 눈치 잘 안 보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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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1학년들 사이에서도 안 좋은 소문 도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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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서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기에 2학년 동급생들은 나쁘지 않게 봐주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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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이나 4학년은 여전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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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관이야,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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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이서는 팔짱을 더욱 꽉 끼면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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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렇게 질투도 해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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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투가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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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흥, 내가 현호랑 같이 있어서 막 걱정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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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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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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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나였다면 그냥 커피나 마시면서 갈 길 갔겠으나, 이번에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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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안현호가 아는 형들이랑 같이 방학 동안 여자들 엄청 만나고 다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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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할 말은 아니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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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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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정치질을 해본 건데 바로 역공을 맞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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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가서 땀 좀 빼고, 저녁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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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래. 가자. 홈트로 단련된 내 체력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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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직도 하고 있어? 꽤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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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최이서가 걸음을 멈추고는 내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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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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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서 가슴을 만지거나 배를 훑는 등 기이한 행동을 이어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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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 흐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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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괴더니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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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침음을 흘리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옆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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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몸이 좀 좋아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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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내가 또 집에서 할 게 없는 한량이라 열심히 운동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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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저녁은 뭐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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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육이나 먹을까? 시골밥상 제육 안 먹은 지 좀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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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최이서는 입술을 삐죽이더니 다른 걸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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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집에서 제육을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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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됐어, 귀찮게 뭘. 제육 싫으면 다른 거 먹든가. 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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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돈까스 시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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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시켜. 배달비가 얼마인데. 헬스장이랑 돈까스집도 별로 안 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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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도 별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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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뭐 먹고 싶은데? 샐러드 맛집 이딴 것만 아니면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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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민지랑 어제 고기 삶아서 먹었는데 그거 남았거든? 가서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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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 뜬금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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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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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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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자, 어쨌든 헬스장부터 가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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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거 거기 월간 이용권을 끊어야겠다. 운동까지 집에서 하니까 너무 학교에만 박혀 있는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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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라도 하러 밖으로 나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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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도 거기서 운동하던 걸로 알고 있으니 가끔 심심하면 같이 가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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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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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옷자락을 잡고 당기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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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싶었는데 부끄러운지 살짝 고개를 돌린 채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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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냥 밥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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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운동하자며. 나도 홈트로 단련된 성과를 좀 보여주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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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운동하면, 힘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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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는 거야. 힘들라고 운동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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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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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잘못 먹었냐고 묻고 싶어도 따로 먹은 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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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계속 눈치를 보더니 결국 다가와서는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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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민지 오늘 집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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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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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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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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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면 힘들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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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을 다른 곳에 쓰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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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밥 먹으러 본인 집으로 가자던 최이서의 말들이 이해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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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존나 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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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이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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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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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지 바로 내 등을 때려대는 최이서였으나, 오히려 그런 행동들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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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최이서 아주 그냥 발정 나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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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헬스장 가! 너 오늘 기어서 집에 가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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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안 가죠. 오늘 운동은 밤에 시작이죠. 기는 건 최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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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을 붉힌 채로 달려드는 그녀를 피해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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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금방 잡히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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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럴 거면 처음에 헬스장은 왜 가자고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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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으로 나가면서 최이서에게 묻자, 이미 잔뜩 삐진 그녀는 고개를 휙 돌린 채로 대답도 안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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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알았어. 발정 났다고 한 거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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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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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뭐 때문에 화난 거야. 대낮부터 유혹하는 야한 여자라고 해서? 아니면 남자 몸 만져서 발정 났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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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 다 알면서 물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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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를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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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몸을 만지작거린 다음부터 묘하게 행동이랑 말투가 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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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다시 투덕거리기 시작한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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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폼 미쳤다. 몸으로 여자 꼬시…… 잠깐만! 때리지- 어억! 잠깐만요! 진짜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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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손이 워낙 맵다 보니 명치에 꽂힌 주먹에 바로 몸을 웅크리며 고통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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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짜증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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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리고 있는 내 머리채를 잡은 채로 끌고 가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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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광경이 되긴 했으나, 일단 같이 가고는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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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끄는 차량 한 대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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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진한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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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근처에도 가면 안 될 것 같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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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나 하면서 전전하는 대학생들을 물리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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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고급 스포츠카에 기댄 채로 서 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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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의 색상과 동일하게 붉게 물든 웨이브 진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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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낀 그녀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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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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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친 오윤지의 부름에 나도 모르게 흠칫 떨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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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도 오윤지를 보더니 나를 슬그머니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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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서랑 같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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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이서랑 같이 왔음에도 여유로운 몸짓으로 다가온 그녀는 웃으면서 차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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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있어? 있어도 괜찮으면 내가 우진이 좀 데려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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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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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드라이브? 저게 우진이 드림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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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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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외침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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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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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관심 있는 차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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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차량에 관심이 적은 내가 직접 찾아볼 정도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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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드림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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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드림카라고 했었어. 정확히는 나중에 같이 타고 드라이브 다닐 때 저런 차를 태워주고 싶다고 말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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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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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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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마를 탁 때리며 그 당시의 김우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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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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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중에선 넓어 보인다는 게 이유였지. 카섹x 할 때 좋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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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어허어허! 어딜 옛날 일을 꺼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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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하게 내가 오윤지의 입을 막았으나, 이미 최이서의 싸늘한 시선은 꽂혀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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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같이 드라이브 좀 하자. 옛날얘기 나도 더 할 생각 없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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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껴온 오윤지. 그녀의 장미향은 마치 흩뿌리는 페로몬과 같은 느낌이라, 순식간에 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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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야 양보 좀 해줘? 내가 알바비도 두둑하게 넣어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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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끌고 가려는 오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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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안 끌려가려고 다리에 힘을 줬지만, 의외로 애가 힘이 좋아서 실랑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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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르은? 가자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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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데요! 저는 그쪽 이미 잊었어요! 누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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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전 여친이래? 그냥 친구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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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남편이라고 왜 부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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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버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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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 부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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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 카섹x 좋아하지 않아? 해보고 싶다며? 가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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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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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래도 너 카섹x 말할 때마다 힘 풀리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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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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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진일퇴의 상황이 반복되는 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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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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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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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나도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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