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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시기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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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은 초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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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 금영영의 쾌락 없는 책임은 한 분기 가량이 더 이어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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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더 이상 비속어를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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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나쁜 말이며, 이러이러 해서 사용하면 안된다는 보호자들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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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평화가 도래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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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악의 없는 질문이 사람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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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흙 묻은 발로 방에 들어가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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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조곤조곤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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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묻은 흙이 방바닥을 더럽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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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언어 구사 능력이 좋아진 식산대붕이 다시 한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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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방바닥이 더러워지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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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이 열심히 청소를 했는데 도로 더럽혀 버리면 미안하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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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소를 해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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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능력을 손에 넣은 식산대붕의 부리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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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삼라만상에 의문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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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을 못 할 때도 호기심이 왕성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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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식산대붕의 문답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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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소를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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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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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활 공간은 깨끗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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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위생적인 환경에서는 병에 걸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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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이라는 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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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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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건강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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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의 방은 왜 돼지우리 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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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는 왜 병에 안 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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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수도자라는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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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축기기 수사는 더럽게 살아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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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저택에 청소는 불필요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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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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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리지 않는 수도자가 전염병이 창궐하는 걸 왜 걱정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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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나 가족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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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은 왜 수선을 시작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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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근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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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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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사회, 철학, 수선, 생물, 문화 등등 온갖 분야를 넘나드는 공방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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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논문 디펜스를 하는 대학원생의 심정에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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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식산대붕의 질문 세례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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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은 아기 새는 눈과 흙으로 더러워진 자기 발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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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모양이라고 지레짐작한 서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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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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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든 식산대붕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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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왜 제 발에 붙었다가 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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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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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도대체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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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왜 발에 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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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왜 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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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원리로 서로 다른 두 물질이 결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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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상호 작용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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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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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 전자, 원자, 원자핵, 핵, 뉴클리어, 양성자, 중성자, 쿼크, 업다운 업업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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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 서란은 자신의 두 생애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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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과 다를 바 없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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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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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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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간 상호 작용 같은 난해한 문제는 사회 과학 전공자가 아니라 자연 과학 전공자에게 문의해 줬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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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물리학뿐만 아니라 농담도 잘 하는 리처드 파인만 씨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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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해탈해 버린 서란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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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에 대한 답을 기다리는 똘망똘망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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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몽매한 이에게서 진리를 구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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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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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피보호자의 질문에 답변할 수 없을 경우, 보호자가 취할 가장 적절한 대응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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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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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해 도리어 화를 낸다면 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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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중수 행동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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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누차 인용했다, 너 자신을 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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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모르겠구나, 영영이한테 물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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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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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이는 책을 많이 읽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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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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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유식한 이유에 대해서 스무고개를 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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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질문마는 금영영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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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너무나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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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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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초목이 기지개를 켜는, 그야말로 시작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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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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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입학 날짜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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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도 글방 생활이 기대가 되는 모양인지 온종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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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서란과 담청, 금영영은 입학 당사자보다 몇 배나 더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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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등교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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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커다란 책보따리를 식산대붕의 목에 잘 둘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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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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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아, 글방 가서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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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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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란 물론 서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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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명칭은 인형박사이며, 국제 학회에서 수여해 준 수많은 칭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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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학회에 기여한 여러 업적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명예 천문박사 및 명예 고고학박사라는 칭호 또한 수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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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도 식산대붕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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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처럼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면 글방에도 금방 적응할 것이다. 긴장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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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용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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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도 한마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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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아, 혹시라도 힘든 일 있으면 바로 얘기해! 언니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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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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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환송을 받으며 식산대붕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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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만 보면 기숙 학교에라도 들어가는 건가 싶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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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오전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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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점심만 먹고 귀가한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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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삼인방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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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이 굳게 닫히고, 적막함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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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깬 건 서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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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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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안을 반짝이던 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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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들판을 벗어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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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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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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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쁨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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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잽싸게 소매에서 나팔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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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경력만 십 년이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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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현란한 즉석 연주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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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도 커다란 색안경을 쓴 채 춤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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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어디서 배워 왔는지 궁금해지는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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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맞은 몸짓과 대비되는 극도로 절제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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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연속 뒤공중제비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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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투대회 참가자다운 몸놀림으로 현장을 이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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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마나 책 읽으러 가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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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과 단 둘 만의 축제를 즐기던 서란은 나팔에서 입을 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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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죽화, 만들기를 잘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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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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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분신 식산대붕은 본체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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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년에 완공한 인공위성 금죽화 덕분에 활동 가능 범위가 대폭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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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었다면 꼼짝 없이 홈스쿨링을 통해서 식산대붕을 가르쳐야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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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은 본인들의 선견지명에 대한 자화자찬을 주고 받다가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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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반이 끝나기 전까지만 주어진 짧은 자유를 만끽하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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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냉큼 수련실로 들어갔고, 담청 또한 공을 챙겨서 놀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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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하녀 손을 잡고 걷던 식산대붕은 호혜문의 글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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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와 헤어진 식산대붕은 다급하게 증축한 것처럼 보이는 교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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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약 3m) 크기의 오목눈이가 등장하자, 소란스럽던 내부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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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는 다양한 나이대의 학생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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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등교한 여섯 살부터 내년이면 졸업하는 열 살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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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키가 큰 아이도 식산대붕에 비하면 절반이 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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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교실 뒤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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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커다란 책상과 방석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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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식산대붕의 지정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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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은 아기 새는 다른 학생들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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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누군가 말을 걸어줬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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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책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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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면학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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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축 처진 얼굴로 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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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아오자 마자 방에 들어가더니 벽 모서리를 바라보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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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만으로도 정말 침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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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서란이 식산대붕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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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니? 글방에서 무슨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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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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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벽 모서리에 얼굴을 박고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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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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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과 담청도 식산대붕을 어르고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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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아, 누가 괴롭혔어? 딱 말해 봐, 언니가 당장 가서 혼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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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실수라도 한 것이냐? 혹여나 그렇다고 해도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아직 첫날이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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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방은 계속해서 격려의 말을 하며 식산대붕의 꽃잎 깃털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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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식산대붕의 표면부에는 섬세한 압력 감지 센서가 내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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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처럼 쓸모 없는 감각은 구현하지 않았지만, 스킨십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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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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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저한테 말을 안 걸어요... 저 글방 안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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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관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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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아마도 식산대붕의 독특한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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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에는 호혜문 선생님도 도와주기가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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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할 수 없이 원론적인 조언을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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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라서 다들 쑥쓰러워하는 걸 거야. 대붕이 네가 먼저 말을 걸어 보는 건 어떠니? 며칠만 더 다녀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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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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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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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대붕이가 글방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그게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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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만 말하자면 죄다 쓸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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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식산대붕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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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오늘은 왜 글방 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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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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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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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을 잘 한 것 같아서 안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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