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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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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의 인면조는 홍순이라고 불렸다.
거창한 의미가 담긴 작명은 아니었다.
그저 입술이 붉고 예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인면조는 알에서 부화한 뒤, 생후 10개월 정도가 지나면 독립성을 갖춘다.
암컷 같은 경우에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우편 배달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홍순이 현 주인을 만난 것도 딱 그 나이였다.
옆집에서 어린 인면조를 받아온 장선화는 즉시 장서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초보자도 할 수 있는 인면조 훈련법’이라는 책을 대여했다.
왕도 소재의 모 인면조 애호가가 집필한 서적답게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배달부 양성 과정은 순식간에 끝났다.
당사자의 견해는 약간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장선화가 잘 가르친 탓은 아니었다.
훈련생의 자질이 워낙 비범했다.
홍순은 다른 인면조들보다 머리가 좋았다.
그냥 좋은 것도 아니고 엄청 좋았다.
인면조들의 지능 지수를 정규 분포 곡선의 형태로 나타내면 홍순은 우측 끝에 위치해 있었다.
당연히 언어 구사 능력 또한 탁월했다.
일반적으로, 인면조는 짧은 문장이나마 온전히 완성할 수 있어도 똑똑한 편이었다.
하지만 인면조 최고 아웃풋, 홍순 앞에서는 죄다 도토리 키 재기, 거기서 거기였다.
물론 프리스타일 랩 배틀마저 가능한 홍순의 언어 구사 능력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인이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표현이 약간 이상하지만, 홍순이 새대가리 흉내를 낸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간식을 많이 먹고 싶어서 그랬다.
그게 전부였다.
생후 6개월 무렵의 일이었다.
바글바글한 자매들 틈바구니에서 사유하던 홍순에게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다.
언어 구사 능력과 간식 획득률의 상관 관계였다.
또래에 비해서 언어 발달이 빠른 집단보다 ‘까까’를 반복하며 지푸라기나 우물거리는 쪽이 두 배는 높은 빈도로 간식을 받아 먹었다.
홍순은 조용히 경악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보온용 지푸라기와 간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무지성 바보 행동은 철저하게 계산된 바보 행동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홍순은 누구보다도 똑똑하게 행동했다.
장선화에게 간택된 것이 그 결과였다.
기대 이상의 훈련 성과를 보인 이유도 비슷했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한 셈이었다.
실제로 홍순은 칭찬과 간식을 배불리 먹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홍순의 간식 획득 전략은 점차 고도화되어 갔다.
이아금에게만 직설적으로 간식을 요구한 것도 맞춤형 전략의 일환이었다.
귀여움 대신 뻔뻔함이 먹힐 때도 있는 법이니까.
사료를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만족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순은 식산대붕과 만났다.
*****
최초의 탐사용 발사체가 천공 결계로 향하고 있을 무렵, 식산대붕은 담청이 애지중지 가꾼 선인장 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란이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애들은 원래 말 안 듣는다.
당황한 홍순이 식산대붕을 말렸다.
“지금 어디 가? 아니지? 들어가는 거 아니지?”
식산대붕은 고개를 돌리더니 짹짹거렸다.
새소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홍순은 대략적으로나마 알아 들었다.
“뭐라고? 구경만 할 거라고? 그러면 울타리 밖에서 구경해. 들어가지 말고.”
또 다시 짹짹.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너 구경만 할 마음 없지? 그런 거 맞지?”
부정의 짹짹.
“아니긴 뭐가 아니...”
추궁하려던 홍순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홍순과 식산대붕은 지금 대화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의사 전달에 그칠지라도 대화는 대화였다.
홍순이 물었다.
“혹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어?”
뒤늦게, 식산대붕도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와 대화해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제야 알아차렸다.
서로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 홍순과 식산대붕은 들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했다.
탐사용 발사체가 천공 결계 바깥으로 사출됐을 즘, 둘은 약간이나마 친해진 상태였다.
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장선화는 하루가 멀다고 서란의 저택에 방문했다.
인면조 한 마리도 덤으로 달고 왔음은 물론이었다.
크고 작은 두 조류는 항상 함께 놀았다.
식산대붕은 본체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이인조 강도단은 행인을 습격했다.
식산대붕이 수풀에서 튀어나와 외쳤다.
“삐삐!”
그리고 능숙한 목 꺾기가 이어졌다.
물론, 애꿎은 행인을 공격했다는 건 아니었다.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필살 각도로 자기 머리통을 갸웃거렸다는 뜻이었다.
군것질을 하며 서란의 저택으로 향하던 하녀는 남들이 들으면 시집 갈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자기가 먹던 닭꼬치를 넘겨줬다.
잔혹한 강도는 약탈 성과와 함께 사라졌다.
하녀들의 출퇴근 경로에서 멀지 않은 은신처, 홍순이 짝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산대붕, 닭꼬치를 물고 당당하게 입장.
어김없이 대박이었다.
홍순이 사악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인간들은 바보야.”
기분 좋은 짹짹.
“훌륭해, 대붕아.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야.”
신이 나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던 식산대붕이 입에 문 닭꼬치를 내밀었다.
“나보고 먼저 먹으라고?”
짹짹.
“고맙다, 대붕아. 절반씩 나눠 먹자.”
둘은 사이좋게 닭꼬치를 나눠 먹었다.
“맛있다. 그치?”
수긍의 짹짹.
“기다리고 있어, 이번에는 내가 갔다 올게.”
홍순은 은신처 밖으로 포르르 날아갔다.
식산대붕은 쓸데없이 고성능인 기억 장치에 방금 먹은 닭꼬치의 맛을 저장했다.
허기도 느끼지 않는 인형이 군것질거리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제작자가 미후각 기관을 설치했으니까.
정확히는 화학 성분 감지기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시제품이지만, 원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무의미했다.
어차피 장선화 말고는 관심도 없을 테니까.
아무튼, 식산대붕이 삼킨 음식물은 곧장 통로를 타고 법화 소각 장치로 운반됐다.
그리고 압도적인 화력에 즉시 소각.
식산대붕은 꺽 하고 귀엽게 트림을 했다.
잠시 후, 홍순이 과자를 한 봉지 물고 돌아왔다.
“나 왔어, 대붕아. 이거 좀 봐. 크지?”
짹짹.
“맞아 맞아. 귀여운 척 좀 했다고 귀중한 식량을 통째로 넘기다니, 인간들은 역시 바보야.”
둘은 밀가루 과자의 달콤함을 음미했다.
홍순과 식산대붕의 교우는 3년이 넘게 이어졌다.
그 시간은 식산대붕을 많이 바꿔 놓았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랬다.
좋은 점은 명확했다.
식산대붕은 더 이상 서란이나 담청이 곁에 없다고 세상 서럽게 통곡하지 않게 됐다.
어느 정도 자립심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쁜 점 또한 명확했다.
홍순의 행실을 그대로 보고 배웠다.
살짝 건방진 말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함부로 냉수도 못 마신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
진술을 듣던 서란이 물었다.
“그러면 대붕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도 여태 몰랐다는 소리네? 그러니까, 새들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언어 말이야.”
“예, 그건 저도 놀랐습니다.”
“하긴...”
홍순은 잽싸게 구두 반성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겠죠. 지난 3년 간 순진무구한 대붕이 앞에서 인면조 중심적인 사상과 정서 교육에 악영향을 주는 각종 비속어를 남발한 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더불어 간접적으로나마 금 수사님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드렸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음은 물론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노력 또한 약속 드리겠습니다.”
본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받은 대상의 명시, 정중한 반성과 잘못의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
유성우보다도 드문 정석적인 사과문이었다.
즉석에서 구술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담청이 한마디했다.
“정말로 반성하는 것 같구나. 일부러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이만 용서해 주자꾸나.”
서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담청 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번에는 구두 경고로만 넘어가도록 하지.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예, 그럼요.”
“선화야, 내가 대신 따끔하게 혼냈으니까 어서 위로해 줘라.”
장선화는 홍순의 얼굴을 무차별 폭격했다.
뺨, 이마, 뺨, 뺨, 다시 이마.
뽀뽀 세례가 인면조의 조막만 한 얼굴을 덮쳤다.
장선화는 울먹이며 말했다.
“홍순아, 정말 장하다.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반성하다니, 다 컸구나.”
“아니, 그만 좀...”
“누가, 누가 이렇게 이쁘래. 응?”
서란은 장선화를 외면하고 친구나 보살폈다.
“영영, 정신 좀 차려 봐. 대붕이가 너를 싫어해서 바보라고 한 게 아니라니까? 홍순이가 하도 인간은 바보라고 하니까 인간과 바보가 동의어인 줄 안 거야. 저거 봐, 지금도 아무한테나 바보라고 하고 있잖아.”
사경을 헤매던 금영영은 즉시 부활했다.
“그치? 내가 오해한 거지?”
“그럼, 대붕이가 너 되게 좋아하는 거 알잖아?”
“휴, 십년감수했네.”
촌극을 지켜보던 담청이 물었다.
“그런데 대붕이는 이제 어쩔 생각이더냐? 하루라도 빨리 나쁜 말버릇을 고쳐야 할 터인데.”
홍순의 얼굴을 온통 침 범벅으로 만들던 장선화가 의견을 냈다.
“호혜문 선생님의 글방으로 보내죠?”
서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맞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호혜문.
오죽문에서 가장 큰 글방의 선생이자, 유소년 교육의 거장, 걸어다니는 효자 효녀 제조기, 덤으로 절세미인.
앵무새처럼 ‘바보’를 연발하고 다니는 식산대붕을 바른 생활 아기새로 되돌려 줄 희망이었다.
그렇게 식산대붕의 입학이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