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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의 인면조는 홍순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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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의미가 담긴 작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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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입술이 붉고 예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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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조는 알에서 부화한 뒤, 생후 10개월 정도가 지나면 독립성을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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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같은 경우에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우편 배달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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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이 현 주인을 만난 것도 딱 그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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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서 어린 인면조를 받아온 장선화는 즉시 장서각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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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초보자도 할 수 있는 인면조 훈련법’이라는 책을 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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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소재의 모 인면조 애호가가 집필한 서적답게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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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부 양성 과정은 순식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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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견해는 약간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장선화가 잘 가르친 탓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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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생의 자질이 워낙 비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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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은 다른 인면조들보다 머리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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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은 것도 아니고 엄청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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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조들의 지능 지수를 정규 분포 곡선의 형태로 나타내면 홍순은 우측 끝에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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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언어 구사 능력 또한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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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인면조는 짧은 문장이나마 온전히 완성할 수 있어도 똑똑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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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면조 최고 아웃풋, 홍순 앞에서는 죄다 도토리 키 재기, 거기서 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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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리스타일 랩 배틀마저 가능한 홍순의 언어 구사 능력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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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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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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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이 약간 이상하지만, 홍순이 새대가리 흉내를 낸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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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을 많이 먹고 싶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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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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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 무렵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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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바글한 자매들 틈바구니에서 사유하던 홍순에게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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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구사 능력과 간식 획득률의 상관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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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에 비해서 언어 발달이 빠른 집단보다 ‘까까’를 반복하며 지푸라기나 우물거리는 쪽이 두 배는 높은 빈도로 간식을 받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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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은 조용히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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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부터 보온용 지푸라기와 간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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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성 바보 행동은 철저하게 계산된 바보 행동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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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은 누구보다도 똑똑하게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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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에게 간택된 것이 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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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의 훈련 성과를 보인 이유도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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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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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홍순은 칭찬과 간식을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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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를수록 홍순의 간식 획득 전략은 점차 고도화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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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에게만 직설적으로 간식을 요구한 것도 맞춤형 전략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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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 대신 뻔뻔함이 먹힐 때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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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를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만족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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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홍순은 식산대붕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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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탐사용 발사체가 천공 결계로 향하고 있을 무렵, 식산대붕은 담청이 애지중지 가꾼 선인장 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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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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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원래 말 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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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홍순이 식산대붕을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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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 가? 아니지? 들어가는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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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고개를 돌리더니 짹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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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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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홍순은 대략적으로나마 알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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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구경만 할 거라고? 그러면 울타리 밖에서 구경해. 들어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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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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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너 구경만 할 마음 없지? 그런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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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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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긴 뭐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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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궁하려던 홍순은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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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과 식산대붕은 지금 대화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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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의사 전달에 그칠지라도 대화는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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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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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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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식산대붕도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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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누군가와 대화해 본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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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제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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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 홍순과 식산대붕은 들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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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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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용 발사체가 천공 결계 바깥으로 사출됐을 즘, 둘은 약간이나마 친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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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구조물 건설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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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는 하루가 멀다고 서란의 저택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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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조 한 마리도 덤으로 달고 왔음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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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두 조류는 항상 함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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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본체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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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인조 강도단은 행인을 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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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이 수풀에서 튀어나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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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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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능숙한 목 꺾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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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꿎은 행인을 공격했다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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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필살 각도로 자기 머리통을 갸웃거렸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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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것질을 하며 서란의 저택으로 향하던 하녀는 남들이 들으면 시집 갈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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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가 먹던 닭꼬치를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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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강도는 약탈 성과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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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의 출퇴근 경로에서 멀지 않은 은신처, 홍순이 짝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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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 닭꼬치를 물고 당당하게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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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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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이 사악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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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역시 인간들은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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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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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해, 대붕아.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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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나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던 식산대붕이 입에 문 닭꼬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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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먼저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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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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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대붕아. 절반씩 나눠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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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사이좋게 닭꼬치를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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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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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긍의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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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어, 이번에는 내가 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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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은 은신처 밖으로 포르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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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쓸데없이 고성능인 기억 장치에 방금 먹은 닭꼬치의 맛을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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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도 느끼지 않는 인형이 군것질거리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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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가 미후각 기관을 설치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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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화학 성분 감지기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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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시제품이지만, 원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무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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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장선화 말고는 관심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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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산대붕이 삼킨 음식물은 곧장 통로를 타고 법화 소각 장치로 운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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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압도적인 화력에 즉시 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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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꺽 하고 귀엽게 트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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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홍순이 과자를 한 봉지 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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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 대붕아. 이거 좀 봐. 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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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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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맞아. 귀여운 척 좀 했다고 귀중한 식량을 통째로 넘기다니, 인간들은 역시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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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밀가루 과자의 달콤함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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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과 식산대붕의 교우는 3년이 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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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은 식산대붕을 많이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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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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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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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더 이상 서란이나 담청이 곁에 없다고 세상 서럽게 통곡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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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자립심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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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쁜 점 또한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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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의 행실을 그대로 보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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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건방진 말투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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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함부로 냉수도 못 마신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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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을 듣던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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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붕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도 여태 몰랐다는 소리네? 그러니까, 새들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언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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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건 저도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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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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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은 잽싸게 구두 반성문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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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제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겠죠. 지난 3년 간 순진무구한 대붕이 앞에서 인면조 중심적인 사상과 정서 교육에 악영향을 주는 각종 비속어를 남발한 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더불어 간접적으로나마 금 수사님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드렸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음은 물론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노력 또한 약속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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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받은 대상의 명시, 정중한 반성과 잘못의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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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우보다도 드문 정석적인 사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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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구술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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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고 있던 담청이 한마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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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반성하는 것 같구나. 일부러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이만 용서해 주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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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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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번에는 구두 경고로만 넘어가도록 하지.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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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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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야, 내가 대신 따끔하게 혼냈으니까 어서 위로해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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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는 홍순의 얼굴을 무차별 폭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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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 이마, 뺨, 뺨, 다시 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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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세례가 인면조의 조막만 한 얼굴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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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는 울먹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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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아, 정말 장하다.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반성하다니, 다 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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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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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가 이렇게 이쁘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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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장선화를 외면하고 친구나 보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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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정신 좀 차려 봐. 대붕이가 너를 싫어해서 바보라고 한 게 아니라니까? 홍순이가 하도 인간은 바보라고 하니까 인간과 바보가 동의어인 줄 안 거야. 저거 봐, 지금도 아무한테나 바보라고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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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을 헤매던 금영영은 즉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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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내가 오해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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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붕이가 너 되게 좋아하는 거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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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십년감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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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극을 지켜보던 담청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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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붕이는 이제 어쩔 생각이더냐? 하루라도 빨리 나쁜 말버릇을 고쳐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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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의 얼굴을 온통 침 범벅으로 만들던 장선화가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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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 선생님의 글방으로 보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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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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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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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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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문에서 가장 큰 글방의 선생이자, 유소년 교육의 거장, 걸어다니는 효자 효녀 제조기, 덤으로 절세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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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처럼 ‘바보’를 연발하고 다니는 식산대붕을 바른 생활 아기새로 되돌려 줄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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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산대붕의 입학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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