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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수선 동아리, ‘이 시대의 지성인들’의 첫 번째 단기 과제는 향로 법보 연구였다.

법보에 내재된, 시공간을 다루는 권능에 대해서 탐구해 볼 생각이었다.

준비물은 법보와 전대 용신의 연구 일지였다.

향로의 주인이 대담한 발언을 꺼냈다.

“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분해?”

인형술사 혹은 연기술사였던 서란과 장선화, 금영영은 차례대로 거품을 물었다.

“담청 님, 그건 아닙니다!”

“맞아요, 재조립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요!”

“차, 차라리 비파괴 검사를 하죠!”

다행히도 담청은 활짝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다.

덕분에 향로 법보는 손괴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제작자 삼인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담청이 물었다.

“그래서, 그 비파괴 검사라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이냐?”

금영영은 어릴 적 배웠던 지식을 상기해 냈다.

“비파괴 검사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아무튼 검사하면서 물건을 부수지만 않으면 되거든요.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용녀님의 용안이나 서란의 육감 정도가 있겠네요.”

“오, 그러면 바로 시도해 보자꾸나.”

“용녀님께서 내부를 살펴 보시고 그림으로 묘사해 주세요. 제가 붓과 종이를 가져 오겠습니다.”

그때, 서란의 좌뇌와 우뇌가 동시에 번뜩였다.

잊고 있던 담청의 그림 실력을 떠올린 것이었다.

점수를 후하게 매겨도 상형 문자 수준이었다.

서란은 막 일어나려던 금영영을 만류했다.

“영영, 앉아 있어. 내가 대신 갈게.”

“뜬금없이? 뭐, 알았어.”

“금방 올게.”

동아리실을 나선 서란은 인형 공방으로 향했다.

설계도를 그릴 때 사용하는 문방구가 보였다.

서란은 종이와 붓, 그리고 인형 하나를 챙겼다.

서둘러서 돌아온 서란에게 담청이 말했다.

“벼루나 먹은 안 가져 왔느냐?”

“이거 먹물 내장형 붓이에요.”

“오오, 신기하구나.”

금영영이 도자기 인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인형은 왜 가져왔어?”

“용안으로 투시한 향로 법보의 내부 구조를 대신 그려 줄 화공 인형이야. 이러면 담청 님은 관찰에만 집중하실 수 있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비파괴 검사가 시작됐다.

담청은 눈을 크게 뜨고 향로를 응시했다.

삼라만상을 들여다보는 용안의 권능이 발휘됐다.

복잡한 내부 구조가 한 눈에 들어왔다.

담청은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구조가 좀 이상한 것 같구나...”

서란이 화공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자, 번개를 날려 주세요!”

“알겠다.”

담청의 사슴뿔에서 한 줄기 번개가 발사됐다.

번개는 멀뚱멀뚱 앉아 있던 인형에게 직격했다.

도자기 인형은 회로를 타고 질주하는 전기 신호를 해석해서 흑백의 평면 이미지로 치환했다.

화공 인형의 손이 바쁘게 움직었다.

담청이 목격한 광경이 종이 위에 펼쳐졌다.

순식간에 복잡한 설계도가 완성됐다.

서란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설계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걔, 이게 뭐야?”

그림을 들여다 본 장선화도 한마디 거들었다.

“선생님, 혹시 인형이 망가진 건 아닐까요?”

“그런가?”

“몇 대 때려 보죠.”

두 사람은 화공 인형의 등판을 퍽퍽 쳤다.

기계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유용한 방법이었다.

고장의 원인이 회로에 낀 이물질이라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고쳐지곤 했다.

금영영은 인형이 그린 설계도를 살펴봤다.

실제로 결과물은 엉망진창이었다.

내부 구조는 이리저리 뒤엉켜 있고, 군데군데에 미처 묘사되지 않은 빈 공간도 눈에 띄었다.

금영영은 담청에게 물었다.

“용녀님, 이 그림의 묘사가 정확한가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틀린 구석이 없구나.”

“그렇다면 법보 내부의 공간이 왜곡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게 타당하겠네요. 이것도 시공간을 조종하는 힘의 일종일까요?”

애꿎은 인형을 매질하던 이인조가 멈칫했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깬 건 장선화였다.

“인형이 고장난 게 아니었나 봐요.”

“하긴, 내 작품이 그렇게 허접할 리 없지.”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여기저기 실금이 간 도자기 인형은 동아리실 구석으로 얼른 치워 버렸다.

다소 소란이 있었지만 공동 연구는 계속됐다.

이 시대의 지성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 모인 네 사람은 죄다 문외한들이었다.

서란과 장선화의 전공 분야는 인형술이었다.

금영영은 수선 동아리 유일의 연기술사였지만 법기 관련 고등 교육을 이수하지 않았다.

담청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수선 동아리의 향로 법보 연구는 첫 발자국을 내딛자 마자 꼬꾸라졌다.

이 시대의 지성인들은 뜬구름 잡는 추측만 주고 받으며 시간을 죽였다.

그러다가 정오가 됐다.

칼 같은 배꼽시계 보유자, 장선화가 말했다.

“배 고픈데 점심 먹고 하죠?”

네 사람은 사이좋게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에 들어선 금영영은 당황했다.

“뭐야, 여기 있던 식탁 어디 갔어?”

평소에 식사를 하던 커다란 원탁이 안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나마 보이긴 했다.

피자로 치면 8조각 중 2조각만 남은 상태였다.

서란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식탁? 눈앞에 있잖아.”

“아니, 사분의 일밖에 없잖아.”

“아, 그거? 기분 전환 겸 모양 좀 바꿨어.”

담청은 잽싸게 바람잡이 역할을 수행했다.

“어쩐지, 식당이 훨씬 넓어 보이더라니! 선화야, 네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으냐.”

“탁 트인 개방감이 아주 인상적이군요. 매일 보던 지루한 공간, 하지만 작은 변화가 조미료로써 가미되어 새로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5점 만점에 5점 드리겠습니다.”

“나도 동감이다. 색다르게 꾸며진 식당을 보니 한층 식욕이 샘솟는구나. 어서 먹자꾸나.”

네 사람은 원탁(25%만 남음)의 둥근 바깥 부분, 원호를 따라서 옹기종기 앉았다.

왼쪽부터 담청, 금영영, 서란, 장선화 순서였다.

금영영을 둘러싸는 노골적인 위치 선정이었다.

심마 전문가가 알려 준 열두 번째 대처 방안, 일명 ‘좁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기’였다.

담청은 돼지고기 반찬을 집어서 금영영의 접시 위에 살포시 올려 놓았다.

서란도 이에 질세라 닭고기 반찬을 집어 줬다.

열네 번째 대처 방안, ‘반찬 집어 주기’였다.

장선화는 눈치껏 흐름에 탑승했다.

“선생님, 이 오리고기 좀 드셔 보세요.”

“고맙구나, 선화야. 자, 너도 소고기 먹으렴.”

“소고기 살살 녹는다!”

금영영은 이 상황이 이해가 잘 안됐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옆자리에서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금영영은 머뭇거리며 오리고기를 담청의 접시 위에 올려 놓았다.

“용녀님, 많이 드세요.”

“정말 고맙구나.”

“뭐, 뭘요...”

화기애애하던 식사 시간이 끝났다.

달달한 꿀차를 마시던 도중, 땅이 흔들렸다.

식산대붕의 등장이었다.

담청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창문을 열고, 사슴뿔이 창틀에 안 걸리도록 요령껏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물고 휘파람을 몇 번 불었다.

연달아 실패한 뒤에, 그냥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있느니라!”

그러자 쿵쿵거리는 땅울림이 점점 멀어졌다.

담청은 밖으로 내밀었던 머리를 회수했다.

창틀에 사슴뿔이 탁 걸려서 한 번 멈칫.

이내 머리를 요리조리 돌려서 무사히 탈출했다.

턱을 괴고 있던 서란이 담청에게 말했다.

“쟤도 조만간 어떻게든 해야겠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다음 연구 주제는 대붕이 소형화로 할까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금영영이 물었다.

“아니, 향로 법보 연구는 어쩌고?”

서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전문가들한테 연구 용역을 의뢰하자. 기술 분석이든 역설계든 알아서 해 주겠지. 비파괴 검사도 우리 같은 초짜들보다는 연기술사들이 하는 게 훨씬 안전할 테고.”

배가 불러서 평소보다 현명해진 담청도 동의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구나.”

그냥 인형술이 좋은 장선화도 동의했다.

“명안이네요.”

다들 동의하자 금영영의 생각도 그쪽으로 쏠렸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

수선 동아리, 첫 번째 공동 연구 해결!


식산대붕의 분신은 이틀만에 완성됐다.

1장(약 3m) 정도 되는 앙증맞은 신장.

푹신푹신한 꽃잎 깃털과 뭉툭하고 부드러운 부리.

체형이 하도 둥글둥글해서 굴릴 수도 있었다.

타인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끼칠 가능성 전무.

하지만 정신적인 위해는 가할 수 있었다.

치명적으로 귀여운 탓이었다.

장선화가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숨이... 숨이 안 쉬어져요...”

나머지 세 사람은 익숙한 듯 막내를 무시했다.

금영영이 물었다.

“이제 본체와 분신을 연결하면 끝인가?”

서란이 대답했다.

“응, 맞아. 담청 님, 바로 출발하시죠.”

“알겠다.”

일행은 담청의 오색 구름을 타고 식산대붕의 거대한 부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어실까지 직행했다.

심장처럼 박동하는 식산대붕의 인형핵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란은 가지고 온 의식 연결 장치를 주변에 놓인 단말기 중 하나에 찰칵 꽂았다.

원터치로 새로운 기능이 손쉽게 추가됐다.

전부 모듈화 설계 덕분이었다.

이로써 식산대붕 소형화 프로젝트가 완료됐다.

서란은 의식 연결 장치, 호접지몽 기관의 작동 버튼을 꾹 눌렀다.

인형핵의 박동이 대폭 약해졌다.

담청이 물었다.

“성공한 것이냐?”

“예, 본체가 동면 상태에 접어들었으니 식산대붕은 분신으로 깨어났을 거예요.”

“갑자기 작아진 몸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겠구나. 어서 가서 달래 주자꾸나.”

일행은 제어실 출입구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조명을 끄던 서란은 뭔가를 발견했다.

표면이 고대 문양으로 뒤덮인 원기둥이었다.

어떤 기억이 망각의 저편에서 툭 튀어나왔다.

“맞다, 원기둥.”

서란은 화영기를 듬뿍 머금은 고대문명의 원기둥을 들고 제어실을 나섰다.

이것도 나중에 연구 용역 맡길 작정이었다.

기껏해야 온도 조절기 정도겠거니 싶었다.

밖으로 나오던 도중, 금영영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연결 범위의 한계는 어떻게 해결할 거야? 아직은 본체 근처에서만 작동하잖아.”

“벌써 생각해 놨지.”

“뭔데? 자안효 군단을 이용한 중계 방식?”

서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통신 시설을 통째로 하늘에 띄울 거야.”

마침내 본체 외부로 나왔다.

분신 식산대붕이 푸른 들판을 뛰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