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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기관을 분해하던 연구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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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인형에 탑승한 채로 당당히 월경하겠다니, 이런 엉성한 작전이 과연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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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작업을 하던 동료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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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통하면 뭐 어때,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는데. 속는 셈 치고 한번 해 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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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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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 봤자 쫓겨나기밖에 더해? 사절단으로 갔던 사람들도 그랬잖아. 경고는 하고 덤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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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던 연구원은 조금 안심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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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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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별일 있겠어? 실제로 사절단도 부상자 한 명 없이 돌아왔잖아. 도망치면 그냥 보내 주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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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선임 연구원이 두 사람을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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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두 사람. 잡담은 그만하고 해석기관 분해나 마저 하게. 안 그래도 바쁘고 정신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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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한 연구원들은 조용히 작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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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바쁘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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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기관 분해 및 재조립, 냉각용 진법 설치, 식산대붕 개조 등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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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수선연맹 전체가 부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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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드디어 해석기관을 전부 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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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기계 장치를 망가뜨리지 않고 해체하는 일은 실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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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를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서 모든 부속품마다 일일이 꼬리표를 달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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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인 해석기관의 부품들을 식산대붕의 배 속으로 옮기는 건 자안효 군단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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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배달부들은 9할의 완충재와 1할의 내용물로 구성된 소포 상자를 연신 집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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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머릿수가 원체 많은지라 운반 작업 자체는 금방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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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와 운반 다음은 당연히 재조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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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연구원의 지시하에 해석기관 조립 과정은 극도로 신중하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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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중에 부품이라도 하나 남으면 대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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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를 모조리 분해하고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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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편집증적인 중간 점검이 되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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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점검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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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까도 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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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또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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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석기관 조립은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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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진법 연구소가 나설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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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 번주(깃발과 기둥)가 여기저기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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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기관의 발열을 해결해 줄 냉각용 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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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란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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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거인을 속여 넘기려면 석상처럼 생긴 거대인형의 외형부터 손 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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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물이 아니라 진짜 생물처럼 보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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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란은 축성개화공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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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정목법력이 종자 보관소에 잠들어 있던 두 종류의 꽃씨를 발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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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으로 이루어진 외벽을 뚫고 자라난 꽃잎 다발이 식산대붕의 표면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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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술이나 수술, 심지어 잎사귀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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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희고 검은 꽃잎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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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서란의 공법 숙련도는 이미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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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거대한 꽃잎을 깃털처럼 휘감은 식산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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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처럼 보이던 원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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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만 보면 진짜 새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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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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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처음 둔갑술을 배울 때 그랬던 것처럼 실제 흰머리오목눈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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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걸 토대로 의태 기능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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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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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흔히 보이는 몸짓을 흉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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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감쪽같은 의태 기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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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천망기 연구소나 진법 연구소는 물론, 원정대 사람들마저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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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을 빚어 그 안에 생명이 깃들게 하는 것이 인형술이 추구하는 궁극점이라면, 서란은 그 목전까지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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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 제일의 인형술사라 자칭할 자격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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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난 네오 식산대붕을 끝으로, 남대륙 수호대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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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식산대붕은 과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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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뇌정산맥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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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9만 리씩 날아가는 수준은 아니지만 최고 속도가 음속에 살짝 못 미칠 정도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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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순식간에 사막 외곽까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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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로 가득한 공간을 얼마나 날았을까, 저 멀리서 거대한 모래 폭풍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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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영향권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암흑천지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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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산대붕의 비행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남대륙 수호대는 금방 햇빛과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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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과 이글거리는 모래, 영속적인 모래 폭풍을 천연 방벽으로 삼은 탓에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비밀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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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사막거인족의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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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인형을 조종하던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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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혹시 주변에 사막거인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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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담청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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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사막거인 두 명이 다가오는구나. 거리가 꽤 되는데 용케도 본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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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멀리 보는 능력 하나 만큼은 용안 부럽지 않은 천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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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처럼 장애물도 없고 평탄한 지형에서 거인족의 눈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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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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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오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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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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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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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인형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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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온갖 관측 장치가 덕지덕지 내장된 식산대붕의 시야로도 잘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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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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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보이는 게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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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리거라 곧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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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의 말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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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나자 일행의 눈에도 거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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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 체격의 사막거인 두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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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내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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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거인 아니랄까 봐 보폭도 굉장히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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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보 수준으로도 저 정도 속도인데 작정하고 달리면 얼마나 빠를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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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두 사막거인과 거대 오목눈이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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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막거인은 국경 수비대 병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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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병사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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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새가 이렇게 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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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폭풍에서 튀어나온 새는 정말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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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높이가 선임 병사의 허리 부근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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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살쯤 된 어린아이 키가 딱 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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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병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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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혹시 대붕 아닙니까? 그 어디냐, 바다 건너 북대륙에 서식한다는 커다란 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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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멀리 사는 새가 왜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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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9만 리를 난다는데 못 올 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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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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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리가 있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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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대 오목눈이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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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막거인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거대 오목눈이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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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고개를 치켜들고 두 병사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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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병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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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겁이 많은 성격은 아닌가 봐요. 낯선 존재를 보고도 도망칠 생각을 안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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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덩치를 가지고도 겁이 많으면 웃긴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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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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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병사는 거대 오목눈이의 똘망똘망한 눈을 들여다 보며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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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를 배제하는 것이 국경 수비대의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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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거대한 새도 침입자로 분류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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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서 묶어 둔 보따리를 열심히 뒤적이던 후임 병사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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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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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새도 내쫓아야 하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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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굳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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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병사는 애써 소명감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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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 덩치 좀 봐. 거의 어린애 만하잖아. 어른은 몰라도 애들한테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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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제 딸도 얘는 이길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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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딸이 올해 몇 살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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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병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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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450살 정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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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한창 귀여울 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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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그래서 요즘 진짜로 살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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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네, 우리 딸은 컸다고 대답도 잘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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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이 몇 살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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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600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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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사춘기네요,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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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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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두 병사는 본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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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병사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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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대붕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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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긴 그냥 보고나 올리고 말아야지. 나가란다고 나가긴 하겠어?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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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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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초소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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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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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병사는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휙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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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물체가 거대 오목눈이 근처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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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를 살피던 거대 오목눈이는 초록색 물체를 낼름 물고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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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로 돌아가던 길에 선임 병사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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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던진 건 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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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으로 만든 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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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좀 다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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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 양념이 들어가서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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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먹어 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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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있으니까 마음껏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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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막거인 병사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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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선인장 간식을 나눠 먹던 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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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일이 잘 풀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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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입 안에 든 음식물을 삼킨 뒤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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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너무 쉽게 통과해서 의아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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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장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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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동감입니다. 사절단과 거대한 새, 두 경우에 보인 사막거인들의 상이한 반응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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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연구원이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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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인간들을 싫어하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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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머리를 맞댄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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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을 해결할 단서는 사막거인들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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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의미 없는 고민 따위는 내려놓고 선인장 잘라 먹는 일에나 몰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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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일행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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