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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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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기관을 분해하던 연구원이 말했다.
“거대인형에 탑승한 채로 당당히 월경하겠다니, 이런 엉성한 작전이 과연 통할까?”
함께 작업을 하던 동료가 대답했다.
“안 통하면 뭐 어때,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는데. 속는 셈 치고 한번 해 보는 거지.”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
“걸려 봤자 쫓겨나기밖에 더해? 사절단으로 갔던 사람들도 그랬잖아. 경고는 하고 덤빈다고.”
걱정하던 연구원은 조금 안심한 듯 했다.
“그치? 괜찮겠지?”
“설마 별일 있겠어? 실제로 사절단도 부상자 한 명 없이 돌아왔잖아. 도망치면 그냥 보내 주나 봐.”
지나가던 선임 연구원이 두 사람을 나무랐다.
“거기, 두 사람. 잡담은 그만하고 해석기관 분해나 마저 하게. 안 그래도 바쁘고 정신 없으니까.”
찔끔한 연구원들은 조용히 작업을 계속했다.
확실히 바쁘긴 바빴다.
해석기관 분해 및 재조립, 냉각용 진법 설치, 식산대붕 개조 등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덕분에 수선연맹 전체가 부산스러웠다.
며칠 뒤, 드디어 해석기관을 전부 분해했다.
거대한 기계 장치를 망가뜨리지 않고 해체하는 일은 실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혹시 모를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서 모든 부속품마다 일일이 꼬리표를 달아야만 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해석기관의 부품들을 식산대붕의 배 속으로 옮기는 건 자안효 군단의 몫이었다.
올빼미 배달부들은 9할의 완충재와 1할의 내용물로 구성된 소포 상자를 연신 집어 날랐다.
인형의 머릿수가 원체 많은지라 운반 작업 자체는 금방 끝났다.
분해와 운반 다음은 당연히 재조립이었다.
선임 연구원의 지시하에 해석기관 조립 과정은 극도로 신중하게 진행됐다.
혹시 나중에 부품이라도 하나 남으면 대참사였다.
장치를 모조리 분해하고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수시로 편집증적인 중간 점검이 되풀이됐다.
“중간 점검 시간입니다.”
“그거 아까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따가 또 올 겁니다.”
결국 해석기관 조립은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그 다음은 진법 연구소가 나설 차례였다.
진법 번주(깃발과 기둥)가 여기저기 설치됐다.
해석기관의 발열을 해결해 줄 냉각용 진법이었다.
물론, 서란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사막거인을 속여 넘기려면 석상처럼 생긴 거대인형의 외형부터 손 볼 필요가 있었다.
인공물이 아니라 진짜 생물처럼 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서란은 축성개화공을 활용했다.
막대한 정목법력이 종자 보관소에 잠들어 있던 두 종류의 꽃씨를 발아시켰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외벽을 뚫고 자라난 꽃잎 다발이 식산대붕의 표면을 뒤덮었다.
암술이나 수술, 심지어 잎사귀조차 없었다.
오로지 희고 검은 꽃잎뿐이었다.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서란의 공법 숙련도는 이미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한 지 오래였다.
흑백의 거대한 꽃잎을 깃털처럼 휘감은 식산대붕.
석상처럼 보이던 원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외형만 보면 진짜 새처럼 보였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란은 처음 둔갑술을 배울 때 그랬던 것처럼 실제 흰머리오목눈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의태 기능을 만들어 냈다.
식산대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시늉을 했다.
새들이 흔히 보이는 몸짓을 흉내낸 것이었다.
실로 감쪽같은 의태 기능이었다.
관천망기 연구소나 진법 연구소는 물론, 원정대 사람들마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생물을 빚어 그 안에 생명이 깃들게 하는 것이 인형술이 추구하는 궁극점이라면, 서란은 그 목전까지 도달해 있었다.
인계 제일의 인형술사라 자칭할 자격이 충분했다.
새로 태어난 네오 식산대붕을 끝으로, 남대륙 수호대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
네오 식산대붕은 과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뇌정산맥을 넘었다.
하루에 9만 리씩 날아가는 수준은 아니지만 최고 속도가 음속에 살짝 못 미칠 정도는 됐다.
일행은 순식간에 사막 외곽까지 도착했다.
사구로 가득한 공간을 얼마나 날았을까, 저 멀리서 거대한 모래 폭풍이 모습을 드러냈다.
폭풍의 영향권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암흑천지가 펼쳐졌다.
식산대붕의 비행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남대륙 수호대는 금방 햇빛과 재회했다.
뜨거운 태양과 이글거리는 모래, 영속적인 모래 폭풍을 천연 방벽으로 삼은 탓에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비밀의 땅.
바로 사막거인족의 영토였다.
거대인형을 조종하던 서란이 물었다.
“담청 님, 혹시 주변에 사막거인이 있나요?”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담청이 말했다.
“동쪽에서 사막거인 두 명이 다가오는구나. 거리가 꽤 되는데 용케도 본 모양이야.”
역시 멀리 보는 능력 하나 만큼은 용안 부럽지 않은 천리안이었다.
사막처럼 장애물도 없고 평탄한 지형에서 거인족의 눈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서란이 물었다.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오고 있나요?”
“저기, 저쪽이다.”
담청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거대인형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온갖 관측 장치가 덕지덕지 내장된 식산대붕의 시야로도 잘 안 보였다.
서란이 말했다.
“딱히 보이는 게 없는데요?”
“조금만 기다리거라 곧 보일 테니까.”
담청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일행의 눈에도 거인이 보였다.
근육질 체격의 사막거인 두 명이었다.
두 사내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누가 거인 아니랄까 봐 보폭도 굉장히 넓었다.
경보 수준으로도 저 정도 속도인데 작정하고 달리면 얼마나 빠를지 의문이었다.
마침내 두 사막거인과 거대 오목눈이가 마주쳤다.
*****
두 사막거인은 국경 수비대 병사들이었다.
선임 병사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새가 이렇게 크지?”
모래 폭풍에서 튀어나온 새는 정말 거대했다.
머리 높이가 선임 병사의 허리 부근까지 왔다.
400살쯤 된 어린아이 키가 딱 이 정도였다.
후임 병사가 말했다.
“이거 혹시 대붕 아닙니까? 그 어디냐, 바다 건너 북대륙에 서식한다는 커다란 새 말입니다.”
“그렇게 멀리 사는 새가 왜 여기에 있어?”
“하루에 9만 리를 난다는데 못 올 건 뭔가요?”
선임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리고 거대 오목눈이를 내려다봤다.
두 사막거인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거대 오목눈이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치켜들고 두 병사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후임 병사가 말했다.
“딱히 겁이 많은 성격은 아닌가 봐요. 낯선 존재를 보고도 도망칠 생각을 안 하네요.”
“저 덩치를 가지고도 겁이 많으면 웃긴 일이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선임 병사는 거대 오목눈이의 똘망똘망한 눈을 들여다 보며 고민했다.
침입자를 배제하는 것이 국경 수비대의 임무였다.
그런데 이 거대한 새도 침입자로 분류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허리춤에서 묶어 둔 보따리를 열심히 뒤적이던 후임 병사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십니까?”
“아니, 이 새도 내쫓아야 하나 싶어서.”
“예? 굳이요?”
선임 병사는 애써 소명감을 발휘했다.
“이 녀석 덩치 좀 봐. 거의 어린애 만하잖아. 어른은 몰라도 애들한테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
“글쎄요, 제 딸도 얘는 이길 것 같은데요?”
“자네 딸이 올해 몇 살이었지?”
후임 병사가 말했다.
“얼추 450살 정도 됐습니다.”
“와, 한창 귀여울 때네.”
“맞아요, 그래서 요즘 진짜로 살맛나요.”
“부럽네, 우리 딸은 컸다고 대답도 잘 안 해.”
“따님이 몇 살인데요?”
“이제 막 600살이야.”
“그거 사춘기네요, 확실합니다.”
“그런가 봐.”
잠시 후, 두 병사는 본분으로 돌아왔다.
후임 병사가 물었다.
“결국, 이 대붕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쩌긴 그냥 보고나 올리고 말아야지. 나가란다고 나가긴 하겠어?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이만 초소로 돌아가자.”
“아, 잠시만요.”
후임 병사는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휙 던졌다.
초록색 물체가 거대 오목눈이 근처에 떨어졌다.
눈치를 살피던 거대 오목눈이는 초록색 물체를 낼름 물고 날아가 버렸다.
초소로 돌아가던 길에 선임 병사가 물었다.
“아까 던진 건 뭐였어?”
“선인장으로 만든 간식입니다.”
“색이 좀 다르던데?”
“비법 양념이 들어가서 그런 겁니다.”
“하나만 먹어 봐도 될까?”
“잔뜩 있으니까 마음껏 드세요.”
두 사막거인 병사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
거대한 선인장 간식을 나눠 먹던 서란이 말했다.
“예상보다 일이 잘 풀렸네요.”
담청은 입 안에 든 음식물을 삼킨 뒤 대답했다.
“솔직히 너무 쉽게 통과해서 의아할 정도다.”
연구소장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저도 동감입니다. 사절단과 거대한 새, 두 경우에 보인 사막거인들의 상이한 반응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는군요.”
선임 연구원이 의견을 냈다.
“그냥 인간들을 싫어하는게 아닐까요?”
물론 머리를 맞댄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의문을 해결할 단서는 사막거인들에게 있으니까.
결국, 의미 없는 고민 따위는 내려놓고 선인장 잘라 먹는 일에나 몰두하기로 했다.
얼마 뒤, 일행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