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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장소는 뇌정산맥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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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정산맥은 남대륙 중부를 허리띠처럼 통째로 가로지르는 기나긴 산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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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해안가에서부터 남하하는 모든 비구름을 가로막는 거대한 방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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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이 연중 하늘을 뒤덮고 번개를 내리긋는 탓에 뇌정산맥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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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옆에 있던 연구소장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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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정산맥의 남쪽에는 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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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사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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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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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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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일 년에 비가 내리는 날은 고작 며칠뿐인 혹독한 지역이죠. 심심하면 모래 폭풍이 불어 대는 탓에 사람이 살 만한 땅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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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누구한테 듣기로는 산맥 너머에는 신비문파라는 게 존재한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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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담수 근처나 해안가에는 드문드문 마을이 있으니까요. 규모는 작지만 수도문파도 몇 군데 존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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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의 냄새를 맡은 서란이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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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러면 신비문파에 관한 소문이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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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문파가 존재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류 수사님께서 지금 생각하시는 모습이나 세간의 상상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좋게 말해서 비밀스러운 소수 정예 집단이지, 실상은 인지도는 물론이고 사람까지 부족한 약소 문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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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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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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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고작 며칠 밖에 안된 연구소장마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약관화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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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신비문파나 일인전승, 존재할 리 없는 0번기처럼 낭만적인 요소를 좋아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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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시무룩해진 서란의 얼굴을 보다 못한 연구소장이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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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무언가를 좋아하신다면 차라리 사막거인에 관한 문헌을 조사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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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거인이요? 남대륙에도 거인이 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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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사막 지대 중심부에 살고 있습니다.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모래 폭풍 안쪽이 그들의 영역이죠. 다른 종족에게 배타적인 성향 탓에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지만, 수선연맹 문서고를 잘 뒤져보면 책 몇 권 분량은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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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정말로 흥미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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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일행을 태운 식산대붕이 뇌정산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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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된 시야로 지상을 내려다보자 산꼭대기에 건설된 의식용 제단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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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과 기둥이 여기저기 꽂혀 있는 걸 보니 사전에 진법을 설치해 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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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식산대붕을 산중턱에 조심스레 착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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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장소를 둘러보던 담청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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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은 철거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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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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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번개를 모아주는 진법이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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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는 그런 방식으로 완성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천지영기의 흐름이나 날씨를 뒤틀지 않는 것이 핵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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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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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고개를 돌려 진법사들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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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 좀 철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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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륙 비전 진법, 철거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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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애써 배치해 놓았던 깃발과 기둥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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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에는 며칠씩이나 걸렸지만 철거는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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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빈 시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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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번개로 시끄러운 산꼭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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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빗줄기가 결계 표면을 타고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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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진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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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여의주를 완성하고 진정한 용이 된다는 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그때부터 승천이 가능하다는 건 알겠는데, 다른 차이점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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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치의 물웅덩이를 바라보던 담청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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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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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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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다른 용을 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직접 도달한 경지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기본적인 수행 방법이나 의식 준비 같은 지식은 천기를 읽어 배운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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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아, 보세요. 드디어 진법 철거가 끝났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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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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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연맹 관계자들은 의식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고 모두 산꼭대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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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용 제단 아래에는 서란과 담청,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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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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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계단을 디딘 담청은 잠시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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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내 결심을 굳히고 의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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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의 아랫배에서 여의주가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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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제단 꼭대기에 안치한 담청은 자리를 비우면서 서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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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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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담청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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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인 담청이 의식 장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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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를 다루는 용의 권능이 무의식 중에라도 기상 현상을 왜곡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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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홀로 남은 이유는 혹시 모를 여의주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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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이 벼락을 내리긋는 산꼭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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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목격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의주에서 오색찬란한 혼원법력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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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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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집중해서 의식 과정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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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로 빠져나온 혼원법력이 여의주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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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서히, 정말 서서히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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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연무의 흐름은 너무나 느린 나머지 서란의 육감으로도 간신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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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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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것이나 다름 없던 법력의 흐름은 점차 빨라졌고, 회전 반경도 확연히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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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밀집되던 오색 연무의 폭풍은 자연스레 여의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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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눈부신 번개가 여의주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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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눈을 더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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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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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의주는 한참 동안 잠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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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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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로 이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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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 의식도 이거보단 요란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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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뭐 잘못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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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잽싸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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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똑똑히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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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 안에 담긴 거대한 천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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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일렁이는 오색찬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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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태양에 필적하는 수준의 광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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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육감은 파편화된 단서를 모으고 이리저리 조립한 끝에 어떠한 진상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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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지켜본 광경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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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별의 탄생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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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우주에 별을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여의주를 완성하고 진정한 용이 된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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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홀린 듯 담청의 여의주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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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는 계속해서 혼원법력을 생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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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들처럼 천지영기를 흡수해서 법력으로 변환하는, 그런 범상한 방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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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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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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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렇게 꺼림칙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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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모를 기분에 답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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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 멀리서 서란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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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이것 좀 보세요! 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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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발끝을 응시하던 시선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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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여의주 내부의 천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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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담청은 모든 의문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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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게 내밀어진 담청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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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대수롭지 않게 여의주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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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즉시 용과 여의주가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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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혼원법력이 밀물처럼 담청의 작은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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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에 맞은 듯한 감각과 함께 뇌영근이 자라나고, 사슴뿔과 용안이 눈부시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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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는 어느새 담청의 아랫배로 녹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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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진정한 용으로 재탄생한 담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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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질 듯 뒤로 젖힌 목과 초점을 잃은 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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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의 용안은 뇌정산맥을 뒤덮은 먹구름과 인계를 감싼 결계, 그리고 공허 너머를 꿰뚫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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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내 선계까지 그 시선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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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가득 메우는 광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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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구름까지 닿는 거인과 천공을 유영하는 용,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수한 영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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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본 적은 없지만 평생을 그리워한 영혼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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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가 용을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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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강해진 용의 본능, 승천을 향한 맹목적인 갈망이 어린 용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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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생애와 오죽문에서 보낸 수십 년, 그 모든 시간이 망각의 바다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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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뇌리에 새로운 지식이 흘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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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 승천문, 항거할 수 없는 영기의 흐름, 차원 압력, 공허를 가로지르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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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를 읽는 사슴뿔과 삼라만상을 들여다보는 용안이 제공하는 승천만을 위한 지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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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다른 기억이나 감정은 모조리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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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을 가로막은 독안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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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륙의 자연재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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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름 모를 소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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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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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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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잃어 버리고 동굴을 나선 이후부터 용을 괴롭히던 모든 의문과 고뇌가 씻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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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비운 용의 육체가 무게를 잃고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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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승천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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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세상의 중심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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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난데없는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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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저도 모르게 지상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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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악기를 들고 흥겨운 곡조를 연주하는 군중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인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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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한 나팔을 연신 불어 대는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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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바다 깊은 곳에서 어떤 기억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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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되찾고 떠나려던 과거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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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밟고 선 인간, 하늘을 나는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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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이름을 가지게 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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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온동물에게 인간의 체온은 너무나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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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처럼 새겨진 기억과 감정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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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용은 자신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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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이름은 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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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또렷한 시야로 소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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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의주를 돌려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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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존재가 되고 싶다던 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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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를 위한 거짓말을 하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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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의 친구 류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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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된 기억과 감정이 줄줄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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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을 가로막은 독안룡, 남대륙의 자연재해 문제, 그리고 오죽문과 금작파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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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계에는 아직 해야할 일이 잔뜩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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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하늘을 일별한 뒤 지상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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