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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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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장소는 뇌정산맥으로 정해졌다.
뇌정산맥은 남대륙 중부를 허리띠처럼 통째로 가로지르는 기나긴 산줄기였다.
북쪽 해안가에서부터 남하하는 모든 비구름을 가로막는 거대한 방벽이기도 했다.
비구름이 연중 하늘을 뒤덮고 번개를 내리긋는 탓에 뇌정산맥이라고 불린다.
서란은 옆에 있던 연구소장에게 물었다.
“뇌정산맥의 남쪽에는 뭐가 있나요?”
“커다란 사막이 있습니다.”
“사막이요?”
연구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일 년에 비가 내리는 날은 고작 며칠뿐인 혹독한 지역이죠. 심심하면 모래 폭풍이 불어 대는 탓에 사람이 살 만한 땅은 아닙니다.”
“저번에 누구한테 듣기로는 산맥 너머에는 신비문파라는 게 존재한다던데요?”
“물론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담수 근처나 해안가에는 드문드문 마을이 있으니까요. 규모는 작지만 수도문파도 몇 군데 존재하고요.”
탐험의 냄새를 맡은 서란이 눈을 빛냈다.
“오, 그러면 신비문파에 관한 소문이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소리네요?”
“신비문파가 존재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류 수사님께서 지금 생각하시는 모습이나 세간의 상상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좋게 말해서 비밀스러운 소수 정예 집단이지, 실상은 인지도는 물론이고 사람까지 부족한 약소 문파입니다.”
“아, 그렇군요...”
서란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만난 지 고작 며칠 밖에 안된 연구소장마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약관화한 태도였다.
원래부터 신비문파나 일인전승, 존재할 리 없는 0번기처럼 낭만적인 요소를 좋아한 탓이었다.
급격하게 시무룩해진 서란의 얼굴을 보다 못한 연구소장이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신비로운 무언가를 좋아하신다면 차라리 사막거인에 관한 문헌을 조사해 보시지요.”
“사막거인이요? 남대륙에도 거인이 삽니까?”
“예, 사막 지대 중심부에 살고 있습니다.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모래 폭풍 안쪽이 그들의 영역이죠. 다른 종족에게 배타적인 성향 탓에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지만, 수선연맹 문서고를 잘 뒤져보면 책 몇 권 분량은 나올 겁니다.”
“흠, 정말로 흥미롭군요...”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일행을 태운 식산대붕이 뇌정산맥에 도착했다.
공유된 시야로 지상을 내려다보자 산꼭대기에 건설된 의식용 제단이 눈에 띄었다.
깃발과 기둥이 여기저기 꽂혀 있는 걸 보니 사전에 진법을 설치해 둔 모양이었다.
서란은 식산대붕을 산중턱에 조심스레 착륙시켰다.
*****
의식 장소를 둘러보던 담청이 말했다.
“진법은 철거하거라.”
서란이 물었다.
“이거 번개를 모아주는 진법이라는데요?”
“여의주는 그런 방식으로 완성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천지영기의 흐름이나 날씨를 뒤틀지 않는 것이 핵심이지.”
“그래요? 알겠습니다.”
서란이 고개를 돌려 진법사들에게 외쳤다.
“진법 좀 철거해 주세요!”
남대륙 비전 진법, 철거 확정.
진법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애써 배치해 놓았던 깃발과 기둥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설치에는 며칠씩이나 걸렸지만 철거는 금방이었다.
잠깐 빈 시간이 생겼다.
천둥 번개로 시끄러운 산꼭대기.
굵은 빗줄기가 결계 표면을 타고 미끄러진다.
문득 궁금해진 서란이 물었다.
“담청 님, 여의주를 완성하고 진정한 용이 된다는 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그때부터 승천이 가능하다는 건 알겠는데, 다른 차이점은 없나요?”
발치의 물웅덩이를 바라보던 담청이 대답했다.
“나도 모른다.”
“정말요?”
“그래, 나는 다른 용을 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직접 도달한 경지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기본적인 수행 방법이나 의식 준비 같은 지식은 천기를 읽어 배운 것이지.”
“하긴,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아, 보세요. 드디어 진법 철거가 끝났나 봐요.”
“음, 그렇구나.”
수선연맹 관계자들은 의식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고 모두 산꼭대기를 떠났다.
의식용 제단 아래에는 서란과 담청, 둘 뿐이었다.
담청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마지막 계단을 디딘 담청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결심을 굳히고 의식을 시작했다.
담청의 아랫배에서 여의주가 빠져 나왔다.
여의주를 제단 꼭대기에 안치한 담청은 자리를 비우면서 서란에게 말했다.
“서란, 잘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담청 님.”
고개를 끄덕인 담청이 의식 장소를 떠났다.
날씨를 다루는 용의 권능이 무의식 중에라도 기상 현상을 왜곡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서란이 홀로 남은 이유는 혹시 모를 여의주의 분실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이 벼락을 내리긋는 산꼭대기.
유일한 목격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의주에서 오색찬란한 혼원법력이 뿜어져 나왔다.
의식이 시작된 것이었다.
서란은 집중해서 의식 과정을 관찰했다.
외부로 빠져나온 혼원법력이 여의주를 에워쌌다.
그리고 서서히, 정말 서서히 회전했다.
오색 연무의 흐름은 너무나 느린 나머지 서란의 육감으로도 간신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멈춘 것이나 다름 없던 법력의 흐름은 점차 빨라졌고, 회전 반경도 확연히 좁아졌다.
계속해서 밀집되던 오색 연무의 폭풍은 자연스레 여의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침내 눈부신 번개가 여의주를 강타했다.
서란은 눈을 더 크게 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여의주는 한참 동안 잠잠했다.
서란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진짜로 이게 끝이야?
원영 의식도 이거보단 요란하지 않았나?
혹시 뭐 잘못된 거 아니야?
서란은 잽싸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똑똑히 목도했다.
여의주 안에 담긴 거대한 천체를.
고요히 일렁이는 오색찬란함.
실로 태양에 필적하는 수준의 광채였다.
서란의 육감은 파편화된 단서를 모으고 이리저리 조립한 끝에 어떠한 진상에 도달했다.
방금 지켜본 광경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다.
그건 별의 탄생 과정이었다.
자신의 소우주에 별을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여의주를 완성하고 진정한 용이 된다는 의미였다.
서란은 홀린 듯 담청의 여의주를 바라봤다.
여의주는 계속해서 혼원법력을 생성하고 있었다.
수도자들처럼 천지영기를 흡수해서 법력으로 변환하는, 그런 범상한 방식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었다.
*****
담청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꺼림칙한 것인가.
영문 모를 기분에 답답할 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서란이 외쳤다.
“담청 님, 이것 좀 보세요! 별이에요!”
담청은 발끝을 응시하던 시선을 들었다.
완성된 여의주 내부의 천체가 보였다.
그 순간, 담청은 모든 의문을 잊었다.
저도 모르게 내밀어진 담청의 손.
서란은 대수롭지 않게 여의주를 건넸다.
그 즉시 용과 여의주가 공명했다.
막대한 혼원법력이 밀물처럼 담청의 작은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벼락에 맞은 듯한 감각과 함께 뇌영근이 자라나고, 사슴뿔과 용안이 눈부시게 빛났다.
여의주는 어느새 담청의 아랫배로 녹아 들었다.
마침내 진정한 용으로 재탄생한 담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부러질 듯 뒤로 젖힌 목과 초점을 잃은 두 눈.
담청의 용안은 뇌정산맥을 뒤덮은 먹구름과 인계를 감싼 결계, 그리고 공허 너머를 꿰뚫어 봤다.
그리고 끝내 선계까지 그 시선이 닿았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광활한 세계.
키가 구름까지 닿는 거인과 천공을 유영하는 용,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수한 영물들.
가 본 적은 없지만 평생을 그리워한 영혼의 고향.
선계가 용을 부르고 있었다.
한층 더 강해진 용의 본능, 승천을 향한 맹목적인 갈망이 어린 용을 부추겼다.
천 년의 생애와 오죽문에서 보낸 수십 년, 그 모든 시간이 망각의 바다로 가라앉았다.
용의 뇌리에 새로운 지식이 흘러 들어왔다.
세상의 중심, 승천문, 항거할 수 없는 영기의 흐름, 차원 압력, 공허를 가로지르는 여정.
천기를 읽는 사슴뿔과 삼라만상을 들여다보는 용안이 제공하는 승천만을 위한 지식들이었다.
그 밖의 다른 기억이나 감정은 모조리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중이었다.
세상의 중심을 가로막은 독안룡.
남대륙의 자연재해 문제.
그리고 이름 모를 소녀까지.
전부 마찬가지였다.
마치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듯 했다.
여의주를 잃어 버리고 동굴을 나선 이후부터 용을 괴롭히던 모든 의문과 고뇌가 씻겨 나갔다.
머리를 비운 용의 육체가 무게를 잃고 떠올랐다.
드디어 승천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용은 세상의 중심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 난데없는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용은 저도 모르게 지상을 내려다봤다.
저마다 악기를 들고 흥겨운 곡조를 연주하는 군중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인간이 있었다.
조그만한 나팔을 연신 불어 대는 소녀였다.
망각의 바다 깊은 곳에서 어떤 기억이 부상했다.
여의주를 되찾고 떠나려던 과거의 어느 날.
대지를 밟고 선 인간, 하늘을 나는 용.
처음으로 이름을 가지게 된 순간.
변온동물에게 인간의 체온은 너무나 뜨거웠다.
화상처럼 새겨진 기억과 감정이 부상했다.
덕분에 용은 자신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내 이름은 담청.
담청은 또렷한 시야로 소녀를 바라봤다.
잃어버린 여의주를 돌려준 인간.
존귀한 존재가 되고 싶다던 수도자.
종종 나를 위한 거짓말을 하던 친구.
그래, 나의 친구 류서란.
연관된 기억과 감정이 줄줄이 부상했다.
세상의 중심을 가로막은 독안룡, 남대륙의 자연재해 문제, 그리고 오죽문과 금작파의 사람들.
인계에는 아직 해야할 일이 잔뜩 남아 있었다.
담청은 하늘을 일별한 뒤 지상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