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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항해는 정말로 재미없다.
이틀 정도 배를 탄다고 가정했을 때, 바다 구경이 주는 색다름은 두 시간을 채 못 간다.
나머지는 그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남대륙 원정대는 당연히 무료함 대책을 마련했다.
식산대붕에는 여가 시설도 완비되어 있었다.
도서관, 연무장, 수영장, 식목원 등등 규모는 다소 협소하지만 갖출 건 다 갖췄다.
원정대는 저마다 재주껏 시간을 죽였다.
취미를 즐기거나, 다른 이들과 사담을 나누거나, 못다 읽은 책을 마저 읽거나 했다.
당연히 수행을 하거나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서란은 이 틈에 육감을 다루는 훈련을 했다.
지금도 그럭저럭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보다 더 완숙한 경지에 도달하고 싶었다.
점차 팽창하던 구체형 감각의 부피는 어느새 식산대붕 전체를 영역 안에 둘 정도였다.
서란은 식산대붕 내부를 손금 들여다 보듯 훤히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원정대 구성원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감각의 선명도를 낮춘 상태였다.
낮은 해상도의 영상처럼 뭉개진 형태로 표현된 탑승객들은 저마다 바삐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중 유독 작고, 또 유독 바쁜 인영이 감지됐다.
머리에 삐쭉한 뭔가가 솟은 걸 보니 담청이었다.
담청은 마치 청소 로봇이라도 된 것처럼 식산대붕의 내부 시설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수영장에 들러서 첨벙거리다가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들춰 보더니 흥미를 잃고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잠시 혼자 공을 차고는 식목원에 입장했다.
거기서 애꿎은 꽃잎과 잎사귀를 잡아 뜯다가 식목원을 나와 서란이 있는 곳으로 진격했다.
서란은 명상을 멈추고 방문을 열었다.
막 문을 두드리려던 손님은 살짝 당황한 듯 했다.
눈을 똥그랗게 뜬 담청이 물었다.
“혹여 심심해서 나온 것이냐?”
제발 그렇다고 해 달라는, 간절함이 담긴 표정.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서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명상도 좀 질리네요. 뭔가 놀고 싶은 기분입니다. 아니면 맛있는 걸 먹어도 좋겠고.”
담청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있지 않느냐!”
서란과 담청은 사이좋게 여가 시설을 누볐다.
둘은 먼저 수영장으로 가 물놀이를 즐겼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식물도감을 빌린 뒤, 식목원에 있는 실물과 그림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연무장에서 함께 공까지 찼다.
옆구리에 공을 낀 담청이 말했다.
“서란, 너는 공을 정말 못 차는구나.”
“이건 제 본실력이 아닙니다. 너무 오랜만에 공놀이를 한 탓이죠. 보고 싶으십니까, 제 진심이?”
담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란은 짐짓 분한 것처럼 말했다.
“한 번 더 하시죠!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싫다, 너무 못해서 재미가 없구나!”
담청은 공을 던지고 연무장 밖으로 도망갔다.
서란도 재빨리 담청을 따라 내달렸다.
나 잡아 봐라 놀이는 한동안 계속됐다.
즐길 만큼 즐긴 둘은 자연스럽게 거주 구역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입이 심심해서 꿀차를 마실 요량이었다.
어차피 썩지도 않는 거, 원정 출발할 때 엄청 챙겨 온 터라 마구마구 먹어도 상관없었다.
우아하게 꿀차를 마시던 서란이 말했다.
“담청님, 그거 아십니까? 꿀은 먹는 대신 얼굴에 바를 수도 있습니다.”
“뭣하러 그런 아까운 짓을 하는 것이냐?”
“피부 미용을 위해서죠.”
“너도 발라 봤느냐?”
“아뇨? 저도 아금이한테 들었습니다.”
담청이 꿀차를 한 모금 마시곤 말했다.
“음, 맛있구나. 이런 걸 왜 얼굴에 바르는지 모르겠어. 먹는 게 남는 것인데.”
“그쵸?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깝게.”
둘은 하하호호 웃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알맞은 온도의 뜨뜻한 꿀차.
꿀을 듬뿍 넣은 탓에 정말 달았다.
그때, 굉음과 함께 식산대붕이 뒤흔들렸다.
덕분에 서란과 담청은 본의 아니게 마시던 꿀차를 얼굴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식산대붕을 공격한 건 이 인근 해역을 지배하는 요괴 군대였다.
귀상어를 닮은 그들은 우두머리인 여왕 귀상어의 명령에 따라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소나기처럼 발사된 귀상어 떼의 비늘이 식산대붕의 외벽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서란은 식산대붕을 제작할 때, 일부러 방어용 결계 생성 기능을 넣지 않았었다.
이렇게 거대한 인형을 결계로 완전히 뒤덮는 건 천문학적인 법력 소모를 동반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식산대붕의 기본 전투 방식은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견딘 다음 회복하는 것이었다.
최심부에 위치한 인형핵이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저장된 법력들을 운용해서 인형의 내구성을 강화하고 손상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외벽에 새겨진 폭발의 상흔이 마치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인형핵의 다음 목표는 적대 세력의 말살이었다.
식산대붕의 거대한 부리가 열렸다.
그리고 공장식 양계장처럼 생긴 격납고 안에 고이 잠들어 있던 자안효 군단이 눈을 떴다.
인형 생산 공장이 한시도 쉬지 않고 찍어낸 탓에 그 수효가 어느덧 수십만이었다.
격납고에서 사출된 올빼미 인형들은 식산대붕의 식도를 날아서 부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짙은 먹구름으로 암흑천지인 해상이었다.
자안효 군단의 안광 탓에 얼핏 보면 오목눈이가 자줏빛 광채를 내뿜는 것만 같았다.
올빼미 군단이 공격을 시작했다.
불가청비가시 광선이 귀상어 군단을 난도질했다.
모선인 식산대붕의 지시 덕분에 한 치의 낭비도 없이 표적을 배분할 수 있었다.
요괴 무리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양측을 합하면 백만이 훌쩍 넘는 대규모 전투.
하늘에서는 올빼미 군단이 파괴광선을, 바다에서는 귀상어 군단이 비늘을 난사하고 있었다.
광선 폭격에 휩쓸린 요괴가 바스러지고, 대공 사격에 격추된 인형이 기능을 정지했다.
하지만 소모전만으로는 결코 서란의 올빼미 군단을 이길 수 없었다.
폭발의 여파로 추락하던 올빼미는 모선이 공급해 준 법력으로 손상된 추진기를 복구했다.
그리고 수면에 닿기 직전에 날개를 활짝 펴고 다시금 하늘로 솟구쳐 비상했다.
이와 비슷한 광경이 전장 곳곳에서 목격됐다.
그야말로 불사의 군단이었다.
여왕 귀상어는 끝내 후퇴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봐도 승리할 가망은 없어 보였다.
귀상어들은 그 즉시 수면 아래로 입수했다.
후퇴하는 사이에도 무수한 병사가 희생됐지만,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피해는 점차 줄어만 갔다.
물이 장벽이 되어 파괴광선을 막아 준 것이었다.
여왕은 귀상어 군단을 이끌고 곧장 심해 밑바닥까지 도망칠 작정이었다.
상공에서는 식산대붕의 필살기를 사용하려는 서란을 담청이 말리는 중이었다.
“서란, 그만두거라.”
“왜 그러세요? 저 녀석들 심해로 도망가잖아요. 필살기 한 방이면 싹 없앨 수 있다니까요?”
난데없는 꿀팩 덕분에 안 그래도 뽀얀 피부가 한층 반들반들해진 담청이 말했다.
“너만 때리는 건 불공평하지 않느냐.”
“듣고 보니 그러네요.”
담청은 식산대붕의 부리를 통해서 밖으로 나왔다.
한 손에는 내부에 오색 안개가 자욱하게 감도는 여의주를 들고 있었다.
안개의 찬란함과 밀도를 보아하니 여의주의 완성이 목전에 다가온 모양이었다.
담청이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용의 혼원법력과 공명한 여의주가 발광했다.
일대의 바람이 작은 구슬 하나로 압축됐다.
그 시점에서 귀상어 여왕과 그녀의 군단은 심해 밑바닥까지 퇴각하는데 성공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칠흑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용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용에게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용의 눈, 용안에서 비롯된다.
당연하겠지만, 흑백을 가리는 권능에 비하면 심해를 꿰뚫어 보는 것 따위는 하찮은 일이었다.
패주한 채 심해에 웅크린 여왕과 군단은 무사히 적을 따돌렸다고 안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담청은 아직도 그들을 직시하고 있었다.
용의 분노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내리꽂혔다.
한 점에 압축된 폭풍이 휘몰아쳤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하늘에서 바다로 쏘아졌다.
담청의 용오름은 마치 투창처럼 해수면에서부터 아득히 먼 해저를, 바다 전체를 관통했다.
용의 일격에 직격으로 맞은 귀상어 여왕과 그녀의 군단은 영문도 모른 채 전멸했다.
시원하게 화풀이를 마친 담청이 물었다.
“그런데, 위험한 바다에는 저런 요괴 무리가 산재해 있는 것이냐?”
싱크 탱크 구성원 중 하나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처치가 곤란한 요괴 시체를 모조리 원해에 내다 버린 탓이죠. 시체의 요기에서 요괴가 태어나고, 그렇게 태어난 요괴들이 싸우면서 또 다시 요괴 시체가 쌓이는 걸 수천 년 동안 반복된 결과입니다.”
서란이 물었다.
“그럼 동대륙에 있던 대균열은 외해 정화 사업의 일환이었을까요? 계속해서 퇴적되는 요괴의 유해를 명계에 내다 버리기 위한?”
“저희 고고학자들은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역시 해양 쓰레기 처리는 중대 사항이었다.
출발한 지 어언 9개월, 원정대는 무수한 요괴 군단을 격파한 끝에 남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