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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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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약은 귀하다.

일단, 연단술 자체가 난해한 학문이다.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한 사람 몫을 하기까지 필요한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 실력 있는 연단술사 집단을 육성하는 건 거대문파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대업이었다.

게다가 기술력만 있다고 끝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연단술사라고 해도 귀한 영초 없이는 단약을 조제할 수 없으니까.

어지간한 재력이 없다면 단약 한 알 구경해 보기도 전에 실패만 거듭하다가 파산할 터였다.

당연히 산수들에게 단약은 그림의 떡이었다.

무슨 재주로 그런 귀물을 손에 넣겠는가.

연단술은 입문조차 불가능하고, 혹시나 어깨너머로 배워도 재료가 없어서 실습은 꿈도 못 꾼다.

수도문파 밖으로 흘러나온 하품 단약조차 영석만 많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값이었다.

그것도 하품 따위가 아니라 상품 단약이었다.

이러면 안 살 수가 없었다.

심지어 서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일단 중독적인 CM송을 만들었다.

유명한 동대륙 민요를 가사만 살짝 바꿔 불렀다.

녹음기를 대량으로 살포해서 배움의 거리 어디를 가도 서란의 CM송이 들리는 지경이었다.

유명인을 이용한 대형 광고판도 제작했다.

모델은 당연히 본인이었다.

광고판 그림 속에서 잔뜩 꾸민 서란이 둥근 단약을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캐치프레이즈도 잔뜩 사용했다.

‘연기기용 상품 단약, 재고 소진 임박!

‘이거 안 드시면 최소 십 년은 손해봅니다!

‘거성원영 류서란은 무엇을 먹고 컸을까?

‘내 경쟁자가 절대로 알면 안되는 비장의 단약!

‘두 개를 사면 하나가 공짜!

그야말로 광고 마케팅의 정수.

동대륙 산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프로모션을 난생처음 경험하기도 했지만, 단약의 효능이 상상 이상이었던 탓이다.

오죽문이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단약만 먹는다고 경지가 오르는 건 아니다.

수선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머지 조건이 모두 충족됐다면, 한 알의 단약으로 난관을 돌파할 수도 있었다.

반값 행사 다음 날.

연기기 수사 일부가 축기에 성공했다.

그때부터는 홍보도 필요 없었다.

서란은 재빨리 판매 방식을 변경했다.

이제부터 모든 단약은 비밀리에 판매됐다.

귀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구매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산수들도 오히려 이런 방식을 선호했다.

힘없는 자가 보물을 자랑하면 화를 입는 법.

자칫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구매를 망설이던 산수들도 주머니를 열었다.

아무도 서란을 의심하지 않았다.

수많은 단약의 출처?

스승님이 심층부 고대 유적에서 찾았겠지.

갑작스러운 단약 판매?

원영기 수사가 되기 전부터 쓸모 없는 단약을 팔고 싶었는데 힘이 부족한 걸 염려했겠지.

비밀 판매를 고집하는 이유?

가격을 적어 놓고 공개적으로 파는 것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그렇겠지.

딱히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다.

서란은 그저 신중하게 처신했을 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단약 구매 문의가 줄을 이었다.

축기기용, 결단기용 단약도 불티나게 팔렸다.

비밀 판매 방식 때문에 누가, 얼마에, 몇 개나 구매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란은 과연 얼마나 많은 영석을 벌었나.

추측조차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정답은 오직 서란, 본인만이 알고 있다.

바로 그 점이 돈세탁의 핵심이었다.


전생의 서란은 경제 범죄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만약 내가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서란은 남자였을 때도 모범 시민이었다.

무단횡단도 거의 안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상상은 범죄가 아니다.

망상 속 서란은 회삿돈을 잔뜩 횡령하고, 투자 사기도 쳐 보고, 주가 조작마저 서슴지 않았다.

지루한 회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비결이었다.

본질적으로는 ‘교실에 쳐들어온 테러리스트를 물리칠 대응법’ 같은 중학생 공상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관련 지식이 남들보다 약간 더 많았기에 서란의 구상은 굉장히 구체적이었다.

이번 뱅크런 작전도 근본적으로는 전생에 샤워하다가 떠올린 영감에서 비롯됐다.

서란은 돈세탁을 위해서 단약을 판매했다.

이런 방식의 시장 교란은 가용 자금이 많을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얌전히 강의만 해서는 만족스러운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른 곳에서 가져오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석을 수송하는 수레 행렬이 전송진을 통해 동대륙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영석의 출처는 어인교단이 바친 공물이었다.

밀수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수림 심층부는 모조리 무인 지대다.

간혹 인형 탐험대가 심층부를 돌아다니지만, 그들은 어차피 돈 되는 길로만 다닌다.

오행인면목 순찰대만 좀 주의하면 된다.

태본곡까지 도착한 서대륙산 영석은 다음 날이면 단약 판매 수익으로 둔갑했다.

영석에 이름표가 붙어 있을 리도 만무하니, 원산지를 알아낼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절대 들킬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어느새 가을 강좌, 겨울 강좌가 모두 끝났다.

올해 하반기는 거성원영 서란의 독무대였다.

마치 블랙홀처럼 인지도와 영석을 빨아들였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거대문파를 등에 업은 결과는 대단했다.

모든 기록을 경신하고, 모든 상을 독식했다.

시상식 역사상, 수상 목록에서 이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했던 인물은 단언컨대 서란이 유일했다.

서란의 스물일곱 번째 수상 소감을 마지막으로 연말 시상식도 막을 내렸다.

영석이나 인지도는 충분히 모였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서란은 평소처럼 일상을 보냈다.

며칠 뒤, 수도자 몇 명이 서란을 찾아왔다.


십대문파 쌍룡문은 지금 아수라장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수림 인근의 영기 농도가 급감한 게 벌써 십 년 전이었다.

천문학적인 시설 유지비를 감당하느라 매일매일 막대한 영석이 녹아내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은행이 보유한 영석까지 끌어다 쓴 덕분에 간신히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반 년 전 등장한 류서란이 다 망쳤다.

거성원영 류서란이 가을 강좌를 개설하자, 수많은 산수들이 은행 예금을 인출했다.

이자 좀 받는 것보다는 원영기 수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살짝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은행은 버텨 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단약 장사를 시작했다.

값비싼 상품 단약,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훌륭한 중품 단약,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품 단약.

심지어 영석이 살짝 부족한 경우에는 단약 가격을 할인해 주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재산 규모에 관계 없이 대다수의 산수들은 단약 하나 정도는 구매할 수 있었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이윤 극대화가 아닌 총수입 극대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자기 이득까지 포기해 가면서 산수들 영석을 털어 먹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은행이 얻어 맞았다.

은행의 총예금이 가파르게 줄어 들었다.

이미 지급준비율을 한계까지 낮춘 상황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은행 문 닫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은행이 망하면 쌍룡문도 무사하지 못한다.

수뇌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시설 유지비로 사용하고 남은 영석을 급하게 은행 금고에 돌려놓았다.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

덕분에 은행은 파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쌍룡문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수도문파가 말라 죽을 판국이었다.

지금 당장 막대한 영석이 필요했다.

쌍룡문 수뇌부는 연일 의논했다.

“영석, 영석이 필요해...”

“은행 담당자에게 채무자들을 독촉하라고 할까요? 대출금 명목으로 빌려준 금액도 적지 않은데... 대수림 유명 강사 중에도 우리한테 빚을 진 인사들이 꽤 많거든요.”

“그 방법도 힘들 것 같습니다. 이미 최대한도로 쥐어짠 상태입니다. 좀 더 강압적인 변제 수단이 없는 건 아닌데 하나같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차라리 창고에 쌓아 둔 보물을 조금 내다 팔죠. 문파가 망하면 보물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들 단약 사 먹는다고 영석을 탕진한 지 오래라고.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급한 상황에서 애써 팔아봤자 제값은커녕 구매한 값의 절반도 채 못 받아. 생각을 좀 하고 발언해라.”

“맞습니다. 일단 이번 위기만 넘기면 수십 배는 비싸게 팔 수 있을텐데 그렇게는 못 팔죠.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지금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당장 열흘 안에 영석을 못 구하면 재배 시설이 멈춘다고요! 과욕을 좀 버리세요!”

“뭐, 임마?! 너 몇 살이야!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놈이 미쳐 가지고!”

“아니, 싸우지 좀 마세요!”

“뭐 해! 말려!”

“다들 예민한데 언성 높이지 맙시다...”

“아주 콩가루야, 콩가루. 쌍룡문도 끝났네...”

“의장! 저 두 사람 좀 퇴장시켜!”

회의장은 삽시간에 도떼기시장처럼 변했다.

고함과 삿대질, 몸싸움이 오고갔다.

이러다가 서로 법술이라도 사용할 기세였다.

그때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잠깐, 잠깐! 저한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다들 잠시만 진정해 주세요!”

의장이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요, 들어나 봅시다.”

“상식적으로, 지금 산수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거성원영 류서란 아닙니까.”

성난 목소리가 말했다.

“도대체 뭘 들은 거야! 우리가 급한 상황에서 거래를 하면 안된다고! 지금 문파의 보물을 헐값에 넘기겠다는 거냐?!”

“아뇨, 아닙니다! 발상을 전환하자는 겁니다. 굳이 판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보물을 미끼 삼아서 류서란을 우리 문파로 영입합시다. 듣자하니 경지에 비해서 나이도 꽤 어리지 않습니까. 잘하면 화신기 수사가 될지도 모르죠.”

곰곰이 생각하던 의장이 말했다.

“마침 원영기 수사가 탐낼 보물이 하나 있었죠.”

발안자가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바로 목선과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보물을 몇 개 더 내줄 수도 있겠죠. 어차피 영입만 하면 한 식구가 되는 셈인데 뭐가 아깝겠습니까. 대신 부탁을 하나 하는 겁니다. 가진 영석을 일정 기간만 은행에 예치해 달라고.”

“오,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군요.”

“예, 훗날 상황이 좋아진 뒤에 넉넉히 보상해 준다고 하면 서로 마음 상할 일도 없지요.”

이후, 쌍룡문은 오랜만에 정상적으로 회의했다.

그리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원영기 수사 류서란, 최우선 영입 대상.

대수림 끄나풀에게 지령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