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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채굴 본부 보관소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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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 전시된 광물은 전부 비매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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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란은 공책을 꺼내서 목록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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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한꺼번에 주문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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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설명하면, 서란이 열심히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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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목록은 끝도 없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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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로 공책을 확인한 이아금이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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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장 서란을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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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걸 전부 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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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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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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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 쓸 수는 있어? 이렇게 충동 구매했다가 남으면 어쩌려고?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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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면 좀 어때? 어차피 광물인데. 음식처럼 썩지도 않으니, 창고에 쌓아 두면 언젠가는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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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에게는 너무나 대범한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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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은 뭐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잖아. 다 돈 주고 사는 건데, 그렇게 대충 고르면 어떻게 해? 예산도 짜고, 비교도 해 봐야지. 그러다가 돈 떨어진 다음에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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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돈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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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무슨 돈이 있어? 문파에서 주는 예산은 전부 사용처가 정해져 있잖아. 남는 돈이라고 해 봐야 용돈 수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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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금아, 네가 뭘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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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품 속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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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장마다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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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쌀 다섯 수레’나 ‘콩 열 수레’ 같은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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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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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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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오죽문이 지저 세계를 대상으로 발행한 식료품 교환 증서야. 증서를 가지고 물류 중심지로 가면 거기에 적힌 식량으로 바꿔 줘. 미궁언서 상인들은 지저 세계 주화보다 그걸 더 선호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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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돈 대신 이걸 받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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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러니까 돈이나 다름 없지. 지저 세계랑 오죽문의 무역 협정은 알지? 원래는 실물을 주고 받았는데, 너무 번거로워서 몇백 년 전부터는 이런 방식으로 거래를 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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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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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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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쪽은 서란의 전공 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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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는 척하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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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던 자본주의의 야수가 깨어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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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서를 살펴보던 이아금이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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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 소금, 약초... 와, 별 게 다 있네? 아니, 잠깐만. 그래서 이 증서가 왜 언니 손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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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족이 바친 공물 중에서 내 몫을 주고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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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공물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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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때도 없이 성지에 방문하는 어인족 순례단은 결코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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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의 오 푼을 꼬박꼬박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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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인 공물은 담청과 서란, 오죽문이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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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은 담청이 둘, 서란과 오죽문 하나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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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오죽문은 국물도 없었겠지만, 마음씨 착한 서란이 자기 몫 절반을 뚝 떼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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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모신은 자비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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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오죽문 재정 담당자들의 마음 속에도 슬슬 신앙심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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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이아금은 금방 사정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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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는 서란을 말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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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돈 많이 쓰는 건 과소비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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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두런두런 대화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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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을 거의 다 채운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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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이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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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연구 중인 광물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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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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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는 서란을 자기 연구실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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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눈으로만 봐라.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최근에 새로 발견된 것들이다. 덕분에 요즘 엄청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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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바쁘다고 한 거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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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바쁘다. 항상 감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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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있던 이아금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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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그런데 신규 발견 광물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요?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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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시선을 내리깐 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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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수직갱도파의 새로운 정책 때문입니다. 하방 굴착 한계 심도 규제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예전보다 깊은 곳을 탐사할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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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이아금은 적잖이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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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퉁명스러운 태도를 고수하던 지암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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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공손해진 건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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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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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갑자기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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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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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어쨌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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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아금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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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방금 말투가 변했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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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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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저는 언제나 이런 말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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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하게 수상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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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과 이아금은 일단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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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을 둘러보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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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가장 눈에 띄는 광물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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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저 보라색 광물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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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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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자광석영이라고 한다. 자줏빛 광채를 내뿜는 석영이라 그리 부르지. 원리는 아직 모르겠다만, 내부를 통과한 법력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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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자광석영도 공책에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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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광물들의 효능도 물어봤지만, 아직 연구 중이라 밝혀진 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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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시 방문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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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여태 작성한 목록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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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광물 이름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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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이 정도만 사도 충분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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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일은 교역 본부에 맡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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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하고자 하는 광물 목록을 넘기면 잘 포장해서 오죽문까지 운송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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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으니까 대금도 선불로 치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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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밖에서 누군가 지암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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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연구원, 잠깐 시간 괜찮나?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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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서란을 콕 집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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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녀올 테니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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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연구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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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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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좀 이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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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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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궁언서, 지암서말이야. 나한테 보이는 태도랑 언니한테 보이는 태도가 전혀 다르잖아. 말투도 존댓말이랑 반말이 뒤섞여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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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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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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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조금 이상해. 무서워할 거면 언니를 무서워하는 게 맞지, 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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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의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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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막 원영기에 도달했을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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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호기심이 든 이아금은 영안술을 사용한 채 서란을 바라본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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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혼이 탈색되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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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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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여무진에게 힘을 갈무리하는 방법을 배운 뒤부터는 조금 견딜 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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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격차란 본디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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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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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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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영안이 없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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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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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언서들은 영안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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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영안을 가진 요수 자체가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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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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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시선을 내려 서란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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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한참이나 작은 키, 미궁언서들의 평균 신장도 얼추 저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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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키 때문에 태도가 다른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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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돌아오자, 이아금은 곧장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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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혹시 영기를 느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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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굴쭈굴해진 지암서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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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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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한 이아금은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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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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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자기보다 키가 커서 무서워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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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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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잠깐 곰으로 둔갑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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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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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공중제비를 휙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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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커다란 회색곰 한 마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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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키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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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의 가면이 즉시 분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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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헤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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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지암서가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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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이아금, 정신을 차린 지암서는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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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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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시켜서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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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채굴 본부는 지저 세계 최고의 집단이니까 너도 어디 가서 무시당하면 안 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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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지암서는 소심한 미궁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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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란과 이아금에게 보여준 ‘고압적인 연구원’의 모습은 순전히 컨셉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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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튀어나온 존댓말은 이아금이 너무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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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갑자기 내적친밀감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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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변했지만, 서란도 예전에는 꽤나 내성적이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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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갑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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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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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는 딱히 없었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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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육감 덕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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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지암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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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말실수를 걱정하다가 해야 할 말을 제때 못하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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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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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반대로 성급하게 말을 꺼냈다가 집에 돌아가서 밤새 후회한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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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항상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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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솔직하고 싶지만, 다른 이들이 내 약한 면모를 보고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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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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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갑옷처럼 두른 냉담함으로 마음을 보호하지만, 문득 시리는 외로움에 눈물이 나오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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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에 들어갔다 나오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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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를 사랑해 주는 상대를 만나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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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네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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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냉철한 이성으로 따져 보니, 그런 행운은 도저히 나에게 찾아올 것 같지 않아서 절망스럽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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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마,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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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다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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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지암서... 내가 왔으니까. 내가 꼭 너의 사랑을 이루어 줄게. 우리 함께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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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는 감격스러운 눈으로 서란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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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제야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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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두더지 요수가 서로를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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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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