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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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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채굴 본부 보관소를 둘러봤다.

물론, 여기 전시된 광물은 전부 비매품이었다.

그래서 서란은 공책을 꺼내서 목록을 작성했다.

나중에 한꺼번에 주문할 생각이었다.

지암서가 설명하면, 서란이 열심히 적는다.

구매 목록은 끝도 없이 길어졌다.

어깨너머로 공책을 확인한 이아금이 경악했다.

그래서 당장 서란을 만류했다.

“언니, 그걸 전부 사게?”

서란이 대답했다.

“응. 왜?”

“이거 다 쓸 수는 있어? 이렇게 충동 구매했다가 남으면 어쩌려고?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거 아냐?”

“남으면 좀 어때? 어차피 광물인데. 음식처럼 썩지도 않으니, 창고에 쌓아 두면 언젠가는 쓰겠지.”

이아금에게는 너무나 대범한 발상이었다.

“광물은 뭐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잖아. 다 돈 주고 사는 건데, 그렇게 대충 고르면 어떻게 해? 예산도 짜고, 비교도 해 봐야지. 그러다가 돈 떨어진 다음에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어쩌려고?”

“나 돈 많아.”

“언니가 무슨 돈이 있어? 문파에서 주는 예산은 전부 사용처가 정해져 있잖아. 남는 돈이라고 해 봐야 용돈 수준 아니야?”

“아금아, 네가 뭘 모르는구나.”

서란은 품 속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낱장마다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충 ‘쌀 다섯 수레’나 ‘콩 열 수레’ 같은 식이었다.

이아금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뭐야?”

“그건 오죽문이 지저 세계를 대상으로 발행한 식료품 교환 증서야. 증서를 가지고 물류 중심지로 가면 거기에 적힌 식량으로 바꿔 줘. 미궁언서 상인들은 지저 세계 주화보다 그걸 더 선호할 걸?”

“정말로 돈 대신 이걸 받는다고?”

“응, 그러니까 돈이나 다름 없지. 지저 세계랑 오죽문의 무역 협정은 알지? 원래는 실물을 주고 받았는데, 너무 번거로워서 몇백 년 전부터는 이런 방식으로 거래를 했다더라.”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음, 그럴 수 있지.”

참고로 이쪽은 서란의 전공 분야였다.

그래서 아는 척하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잠들어 있던 자본주의의 야수가 깨어날 뻔했다.

증서를 살펴보던 이아금이 다시 물었다.

“육류, 소금, 약초... 와, 별 게 다 있네? 아니, 잠깐만. 그래서 이 증서가 왜 언니 손에 있어?”

“어인족이 바친 공물 중에서 내 몫을 주고 샀어.”

“맞다, 공물이 있었지?”

시도때도 없이 성지에 방문하는 어인족 순례단은 결코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수입의 오 푼을 꼬박꼬박 챙겨왔다.

그렇게 모인 공물은 담청과 서란, 오죽문이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비율은 담청이 둘, 서란과 오죽문 하나씩이었다.

원래라면 오죽문은 국물도 없었겠지만, 마음씨 착한 서란이 자기 몫 절반을 뚝 떼어 줬다.

대지모신은 자비로우니까.

덕분에 오죽문 재정 담당자들의 마음 속에도 슬슬 신앙심이 싹트고 있었다.

똑똑한 이아금은 금방 사정을 이해했다.

그래서 더는 서란을 말리지 않았다.

부자가 돈 많이 쓰는 건 과소비가 아니었으니까.

일행은 두런두런 대화하며 걸었다.


공책을 거의 다 채운 서란이 물었다.

“지암서, 이게 끝이야?”

“아직 연구 중인 광물도 꽤 있다.”

“그건 어디에 있어?”

지암서는 서란을 자기 연구실로 안내했다.

“자, 눈으로만 봐라.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최근에 새로 발견된 것들이다. 덕분에 요즘 엄청 바쁘다.”

“아까 바쁘다고 한 거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그래, 나는 바쁘다. 항상 감사해라.”

조용히 있던 이아금이 물었다.

“지암서, 그런데 신규 발견 광물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요?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지암서가 시선을 내리깐 채 대답했다.

“그, 그건 수직갱도파의 새로운 정책 때문입니다. 하방 굴착 한계 심도 규제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예전보다 깊은 곳을 탐사할 수 있게 됐죠.”

서란과 이아금은 적잖이 당황했다.

항상 퉁명스러운 태도를 고수하던 지암서였다.

왜 갑자기 공손해진 건지 의문이었다.

서란이 물었다.

“지암서, 갑자기 왜 그래?”

지암서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내가 뭘 어쨌다는 거냐?”

이번에는 이아금이 물었다.

“아니, 방금 말투가 변했었다니까요?”

지암서가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제가요? 저는 언제나 이런 말투입니다.”

명백하게 수상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서란과 이아금은 일단 넘어갔다.

연구실을 둘러보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서란은 가장 눈에 띄는 광물을 가리켰다.

“지암서, 저 보라색 광물은 뭐야?”

지암서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말했다.

“저건 자광석영이라고 한다. 자줏빛 광채를 내뿜는 석영이라 그리 부르지. 원리는 아직 모르겠다만, 내부를 통과한 법력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다.”

서란은 자광석영도 공책에 적어 넣었다.

다른 광물들의 효능도 물어봤지만, 아직 연구 중이라 밝혀진 건 별로 없었다.

나중에 다시 방문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란은 여태 작성한 목록을 살펴봤다.

수많은 광물 이름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일단은 이 정도만 사도 충분할 것 같았다.

나머지 일은 교역 본부에 맡기면 된다.

구매하고자 하는 광물 목록을 넘기면 잘 포장해서 오죽문까지 운송해 줄 것이다.

귀찮으니까 대금도 선불로 치를 셈이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지암서를 불렀다.

“지암서 연구원, 잠깐 시간 괜찮나?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지암서가 서란을 콕 집어서 말했다.

“잠깐 다녀올 테니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라.”

그러더니 연구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아금은 의아했다.

“언니,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저 미궁언서, 지암서말이야. 나한테 보이는 태도랑 언니한테 보이는 태도가 전혀 다르잖아. 말투도 존댓말이랑 반말이 뒤섞여 있고.”

서란이 대답했다.

“네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것도 조금 이상해. 무서워할 거면 언니를 무서워하는 게 맞지, 왜 나를?”

이아금의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서란이 막 원영기에 도달했을 때의 일이었다.

문득 호기심이 든 이아금은 영안술을 사용한 채 서란을 바라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 영혼이 탈색되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다행히 여무진에게 힘을 갈무리하는 방법을 배운 뒤부터는 조금 견딜 만해졌다.

압도적인 격차란 본디 그런 것이었다.

이아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서란이 말했다.

“혹시 영안이 없어서 그런가?”

이아금이 물었다.

“미궁언서들은 영안이 없어?”

“애초에 영안을 가진 요수 자체가 드물어.”

“그래?”

이아금은 시선을 내려 서란을 바라봤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작은 키, 미궁언서들의 평균 신장도 얼추 저 정도였다.

설마 키 때문에 태도가 다른 건가 싶었다.

지암서가 돌아오자, 이아금은 곧장 질문했다.

“지암서, 혹시 영기를 느낄 수 있나요?”

쭈굴쭈굴해진 지암서가 대답했다.

“예? 아, 아니요...”

혹시나 한 이아금은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지암서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정말로 자기보다 키가 커서 무서워한 모양이었다.

이아금이 말했다.

“언니, 잠깐 곰으로 둔갑해 봐.”

“그래.”

서란은 공중제비를 휙 돌았다.

그러자 커다란 회색곰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연구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키가 컸다.

지암서의 가면이 즉시 분쇄됐다.

“헤, 헤엑...”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지암서가 기절했다.


서란과 이아금, 정신을 차린 지암서는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서란이 말했다.

“선배들이 시켜서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예, 예... 채굴 본부는 지저 세계 최고의 집단이니까 너도 어디 가서 무시당하면 안 된다면서...”

놀랍게도, 지암서는 소심한 미궁언서였다.

지금까지 서란과 이아금에게 보여준 ‘고압적인 연구원’의 모습은 순전히 컨셉이었던 셈이다.

가끔씩 튀어나온 존댓말은 이아금이 너무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그랬다고 한다.

서란은 갑자기 내적친밀감이 샘솟았다.

지금은 좀 변했지만, 서란도 예전에는 꽤나 내성적이었던 탓이다.

외국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갑고 그랬다.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 했다.

근거는 딱히 없었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어쩌면 육감 덕분일지도 모른다.

서란이 지암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혹시 말실수를 걱정하다가 해야 할 말을 제때 못하고 그래?”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래서 반대로 성급하게 말을 꺼냈다가 집에 돌아가서 밤새 후회한 적은?”

“저, 항상 그래요!”

“가끔은 솔직하고 싶지만, 다른 이들이 내 약한 면모를 보고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나 걱정이 돼?”

“허억!”

“그래서 갑옷처럼 두른 냉담함으로 마음을 보호하지만, 문득 시리는 외로움에 눈물이 나오곤 하니?”

“제 안에 들어갔다 나오신 것 같아요!”

“언젠가 나를 사랑해 주는 상대를 만나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네네네네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냉철한 이성으로 따져 보니, 그런 행운은 도저히 나에게 찾아올 것 같지 않아서 절망스럽고 그래?”

“예! 마, 맞아요!”

서란이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 지암서... 내가 왔으니까. 내가 꼭 너의 사랑을 이루어 줄게. 우리 함께 힘내자.”

지암서는 감격스러운 눈으로 서란을 바라봤다.

“왜, 왜 이제야 오셨나요...”

사람과 두더지 요수가 서로를 끌어 안았다.

이아금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