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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을 즐기던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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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 그러고 보니 기자들이 수사 반장이라고 부르더라? 승진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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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으로 빙과를 먹던 토토서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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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아. 승진한 지 꽤 됐지. 흑린역류혈사를 퇴치한 영웅들 중에서 우리 둘이 가장 눈에 띄지 않았나. 자네는 인간 수도자고, 나는 전직 장교였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좀 과분한 출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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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과분해. 그때 작전을 세운 것도, 다른 미궁언서들을 지휘한 것도 너잖아. 연쇄 실종 사건도 해결했고. 자신을 가져, 토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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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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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게 말이지. 순수하게 실적만 고려하면 나보다 우수했던 수사관도 몇 마리 있었거든. 그들을 제치고 내가 수사 반장이 된 건, 정치적인 이유도 적지 않았다네. 파벌 싸움 탓에 얻어 걸린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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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 싸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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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가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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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화국에는 두 개의 정치 파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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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수직갱도파와 수평갱도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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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나의 쟁점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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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 세계는, 미궁언서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외부 세계의 이종족과 교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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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갱도파는 개방 정책에 적극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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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수평갱도파는 쇄국 정책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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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파벌의 싸움은 오죽문과 지저 세계가 손을 잡은 천 년 전부터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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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갱도파는 상대 파벌을 이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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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을 위해 혐오와 공포를 휘두르는 선동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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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아는 게 공포 마케팅뿐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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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갱도파도 마찬가지로 상대 파벌을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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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을 위해 이종족과 붙어 먹는 매국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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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한 외세에 빌붙어 설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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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은 비등비등했고,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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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수직갱도파가 약간이나마 우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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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으로 얻는 풍족한 식량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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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흑린역류혈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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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발생하는 실종 사건에 두려워하던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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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한 줄 알았던 천적, 그리고 영웅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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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미궁언서, 두 종족이 협력해서 흑린역류혈사를 퇴치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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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미궁언서들은 외부 세계와의 교류에 한층 호의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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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뒤바뀐 태도는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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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갱도파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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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 세계가 몇 년 정도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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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갱도파는 전직 장교였던 토토서의 공적을 부각시키며 이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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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도자의 도움이 없었다 하더라도, 지저 세계는 흑린역류혈사를 물리칠 수 있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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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가 수사 반장이 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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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마친 토토서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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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겠지? 내가 왜 이러는지. 그래서 편지를 보낼 때도 승진 얘기는 일부러 뺀 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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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떠듬떠듬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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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게... 힘내, 토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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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자기 몫의 빙과를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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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는 빙과 2인분을 꿀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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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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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괜찮다네!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니까! 분위기가 좀 우중충해졌군. 다 먹었으면 이만 일어나지, 채굴 본부로 안내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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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요정을 나와 중심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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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청사들이 모여 있는 광장 한 가운데, 거대한 물체가 하나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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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미궁언서들이 흑린역류혈사를 집단 구타하는 상황을 표현한 동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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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옷은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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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걷고 있던 이아금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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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게 아까 말한 이십 년 전 사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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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두들겨 맞고 있는 뱀이 흑린역류혈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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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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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대화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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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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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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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하던 서란은 이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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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살면서 미궁언서를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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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렇게 주눅이 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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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난생처음 이종족과 만난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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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살며시 이아금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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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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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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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별말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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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의도는 전해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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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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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사이 좋게 걷고 있을 때, 앞서 가던 토토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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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물이 내가 일하는 수사 본부야. 이제 다 온 셈이지. 조금만 더 가면 채굴 본부가 나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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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토토서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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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궁언서들은 뭘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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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본부 앞, 서로 닮은 암컷 미궁언서 네 마리가 나란히 서서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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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을 막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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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 말라! 막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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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편을 돌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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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달라! 돌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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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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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여자들? 죄인을 풀어 달라고 시위하는 거야. 신경 쓸 필요 없네. 벌써 이십 년째 저러고 있으니까. 저래도 소용 없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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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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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궁금해진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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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이십 년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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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차라리 낫다네. 그나마 자매 전원이 탄원서를 제출해서 오십 년 형이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무기형이었어. 내가 잡아 넣어서 잘 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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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듣던 이아금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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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언서는 평균 수명이 얼마나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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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는 못 산다네. 아무리 장수해도 오백 년 정도가 최대니까. 요수 치고는 짧은 편이지. 아, 도착했군! 저기가 바로 채굴 본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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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웅장한 건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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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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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는 건물 일층에서 친구를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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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두더지 한 마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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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토토서를 발견한 미궁언서는 황급히 멈춰선 다음, 신중하게 매무새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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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우연히 그 모습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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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언서는 태연하게 다가와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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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토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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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을 보고 있던 토토서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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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너는 여전히 잘 나가는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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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미궁언서, 지암서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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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 나가도 최연소 수사 반장 만큼 대단할까. 오늘은 어쩐 일이야? 얼굴 좀 보자고 하면 매번 바쁘다더니,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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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좀 부탁하려고. 혹시 시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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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즉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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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괜찮지. 응, 나 시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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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 우선 소개부터 해 줄게. 이쪽은 지상에서 온 인간들이야. 내 친구 류 수사, 그리고 친구 동생 이 수사. 두 사람도 지암서한테 인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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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이아금이 양팔을 벌려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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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류서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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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아금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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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떨떠름한 얼굴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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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지암서야. 채굴 본부 연구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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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토토서가 부연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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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 본부 연구소는 지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미궁언서들이 모이는 곳이지. 지암서는 나랑 동창인데,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전교 일등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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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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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는 공부 잘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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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냥 사관 학교 들어갈 정도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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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잘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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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던 지암서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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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바빠, 무슨 용건인지나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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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시간 많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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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오후에 일정이 하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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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있다는 소리에 토토서가 머리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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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기 있는 두 사람에게 채굴 본부 보관소 좀 안내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이 친구가 최상급 광물을 찾고 있거든, 채굴 본부는 지저 세계의 모든 광물을 보관 중이니까 괜찮겠다 싶었지. 오후 일정이면 잠깐 둘러보는 건 괜찮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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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전 일정도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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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즘 꽤 바쁘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일이 많다는데 밥 한끼 사는 정도로 부탁하기도 뭐하고. 방해해서 미안해, 지암서. 류 수사, 아쉽지만 광물 저장소를 몇 군데 돌아봐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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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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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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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바로 출발하지. 며칠 정도 걸리겠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원하는 광물을 찾을 때까지 내가 계속 도와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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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다급하게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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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만 토토서! 음, 그러니까... 아, 내 정신 좀 봐! 오전 일정은 내일이었군! 두 사람은 내가 도와주지, 마침 보관소에 갈 필요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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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서가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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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이다, 꼼짝없이 며칠 동안 돌아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식사 대접 꼭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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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아.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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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철저하구나, 연구원이라서 그런가? 음, 사흘 뒤 저녁 시간이 비네. 그때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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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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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부탁할게? 모르는 게 있으면 설명도 좀 해주고, 너 아는 거 많잖아. 나는 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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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남기고 토토서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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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이아금, 지암서는 보관소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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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 세계에서 발견된 온갖 광물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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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연구 목적으로 수집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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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근처에 놓인 광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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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 이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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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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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인데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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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분명히 알았는데 기억이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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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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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간의 미적 기준에 대해서 아시나요? 일단 큰 손발과 풍성한 털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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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가 고개를 돌려 서란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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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정말로 흥미로운 사실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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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혹시 이것도 아시나요?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답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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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관계에 대해서 잘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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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저만 한 전문가도 드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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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암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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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네, 물론 나는 짝사랑을 안 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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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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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지켜보던 이아금이 몰래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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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무슨 남녀 관계 전문가야! 연애도 한번 안 해 봤잖아!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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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은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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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너도 안 해 봤잖아. 그리고 나, 남녀 관계 전문가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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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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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영원히 알 수 없는 통찰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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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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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양심은 당연히 안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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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남녀 관계 전문가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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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남자, 여자를 둘 다 해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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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로맨스 영화 마니아로서 무수한 시청각 자료를 관람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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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권위자라고 자칭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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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지암서의 협조로 쾌적한 쇼핑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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