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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경마장을 운영하다가 적발된 장옥기.
그는 가택 연금과 사회 봉사를 마치고 취직했다.
그리고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며 다짐했었다.
‘나는 일과 결혼하겠어!’
이 맹세는 고작 삼 년만에 깨졌다.
장옥기는 중매 결혼을 하게 됐다.
부모님이 하도 강권해서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금작파의 삼영근자 금씨.
나이는 장옥기보다 두 살 정도 어렸다.
유학 도중, 용무 때문에 장서각에 방문했다가 장옥기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사실, 장옥기는 꽤 준수하게 생겼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그렇다는 의미였다.
장옥기의 과거 기행을 몰랐던 금씨는 일에 열중하는 진중한 모습만 보고 행동에 나섰다.
금작파에 있는 부모에게 수백 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 결과,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마침 두 문파가 합병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두 사람은 합동결혼식을 통해서 부부가 됐다.
참고로 장옥기는 그때까지 새색시 얼굴도 몰랐다.
스물세 살, 새신랑 장옥기는 다짐했다.
얼굴도 한 번 못 본 새색시라니...
정말 내키지 않는 혼인이군.
그래도 남편 된 도리는 다 해야겠지.
시간이 흘러, 어느새 결혼 12년 차.
자식은 아들, 딸, 딸, 딸, 아들, 아들, 딸.
장옥기는 칠 남매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어쩔 수 없었다.
장옥기는 결혼을 강권했던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열심히 방중술 수련에 힘썼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독 미인에게 약했다.
장옥기의 장녀, 장선화는 사랑 속에서 태어났다.
취미는 독서와 애완 토끼 돌보기.
최근에는 인형술에도 관심이 생겼다.
장선화의 나이는 올해로 열 살.
또래와 마찬가지로 글방에 다닐 나이였다.
그녀를 가르치는 선생은 호혜문이었다.
서란이 만났던 소녀가 바로 장선화였다.
애독자 장선화는 자기도 모르게 최애 소설의 연재 중단을 막은 셈이었다.
그렇게 서란은 여행을 떠났고, 여름이 됐다.
평소처럼 등교한 장선화에게 호혜문이 말했다.
“오, 선화야. 밤새 영근이 자라났구나.”
장선화는 정말로 기뻐했다.
“정말요? 그럼 저도 인형술사가 될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열심히 수행해서 축기에 성공하면 진짜 인형도 만들 수 있단다.”
장선화는 품속에서 토끼 인형을 꺼내 바라봤다.
범인이 만든 인형, 지금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부터 장선화는 수도자가 된다.
장선화는 신이 나서 물었다.
“선생님, 제 영근 자질은 어떤가요?”
진맥하던 호혜문이 말했다.
“일영근이잖아?”
오죽문이 또 뒤집어지고, 수뇌부가 또 소집됐다.
“일영근이다! 또 일영근이야!”
“천운은 어디로 흐르는가! 그건 바로 우리!”
“잘 있어라, 우리는 간다! 선계로!”
체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축제 현장.
가끔씩은 이렇게 발산해 줄 필요도 있었다.
즐길 만큼 즐긴 수뇌부는 이내 차분해졌다.
“류 수사가 입문한 시기가 대충 이십 년 전이었죠?”
“벌써요? 시간이 참 빠르군요.”
“일영근자를 이십 년 간격으로 발견하다니...”
누군가 이견을 제시했다.
“정확히는 삼백 년만에 찾은 거 아닙니까?”
“아니, 계산이 왜 그렇게 되죠?”
“류 수사는 유나라 사람이지 않습니까.”
“아참, 그랬죠.”
오죽문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착각이었다.
서란은 양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양나라 남서쪽 지역.
이곳은 오리 요리로 유명한 지방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왕족도 방문한다는 그 맛.
서란은 기대감에 애꿎은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당연히 오리고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리, 늦네...”
이십 년 전부터 기대했는데 드디어 먹게 됐다.
당시 축기기였던 서란이 어느새 결단기였다.
요리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서란은 애써 심호흡을 했다.
“후...”
그리고 보따리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몇 년 전, 여무진이 준 원영 의식 관련 서적이다.
하도 많이 읽었더니 온통 너덜너덜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선인이 되기에 앞서 사람부터 되어라.’
익숙한 첫 문장이 보였다.
이 책의 저자가 만든 독창적인 문구는 아니었다.
수선계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금언이었다.
서란이 책을 보고 있을 때, 요리가 나왔다.
요리를 나르던 하인들이 잠시 멈칫했다.
인형 사 자매의 수상한 차림새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삿갓을 쓰고 두꺼운 면사를 드리웠다.
인형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서란은 부잣집 여식처럼 꾸미고 있었다.
그래서 얼핏 귀인과 호위 무사들처럼 보였다.
서란 혼자서 방문하면 들여보내 주지도 않을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이런 수단을 사용했다.
하인들이 모두 나가고, 식사가 시작됐다.
오리 구이, 훈제 오리 냉채, 오리탕 등등.
서란은 미식가가 되어 요리를 즐겼다.
“맛있다, 맛있어!”
점점 줄어드는 오리고기.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맛있기는 한데...
이게 왕족까지 와서 먹을 정돈가?
솔직히 잘 모르겠네.
그때 옆방에서 어떤 대화가 들려왔다.
“도저히 예전 맛이 안 나네.”
“주방장 바뀐 다음부터 몇 년 째 이러더라.”
“전에 있던 주방장이 요리를 진짜 잘했는데.”
“내 말이, 왕족까지 와서 먹고 갔잖아.”
“은퇴한 그 주방장은 요즘 뭐 하고 사나?”
“나이가 환갑이 넘었는데 하긴 뭘 해.”
“하긴,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있겠지?”
“몸도 안 좋아서 오래 못 살 것 같다더라.”
대화를 몰래 엿듣던 서란은 세월을 체감했다.
고위계 수사에게 이십 년은 찰나와도 같다.
하지만 범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십 년은 강산이 두 번은 바뀔 긴 시간이었다.
명성을 떨치던 요리사는 세월이 흘러 은퇴했다.
이제는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됐다.
서란은 세월의 무정함을 느꼈다.
그리고 애써 외면해 왔던 존재를 떠올렸다.
과거에 헤어진 자신의 육친이었다.
서란이 공녀로 끌려온 지도 이십 년이 넘었다.
그렇다면 서란의 부모는 지금쯤 60대 이상.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서란은 혈육이라는 존재가 낯설기만 했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현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여자로 다시 태어난 뒤에도 노력은 해 봤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가족이라는 건 도무지 친숙해지질 않았다.
어쩌면 전생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서란은 종종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반쯤 남은 요리가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
서란은 고민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훗날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고향에 방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서란은 유나라로 향했다.
유나라 중부에 위치한 촌락.
서란의 기억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고향 땅 어디에도 가족들은 없었다.
외모를 숨기고 수소문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고향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류씨 집안은 인근 도시에 있었다.
도시에 도착한 서란은 가족들을 찾아갔다.
가야할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근에서 손꼽히는 대저택에 살고 있었다.
남의 땅을 부쳐 먹던 서란의 집안은 어느새 가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해 있었다.
아마도 오죽문에서 보낸 재물 덕분일 것이다.
서란은 저택 앞에 가만히 섰다.
고민하는 중이었다.
충분히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데?
굳이 안쪽까지 들어가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나?
어차피 율법 때문에 모습을 보이지도 못하는데?
이대로 떠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때 대문이 열리면서 누가 나왔다.
서란을 꼭 닮은 예쁜 소녀였다.
비단옷을 입고 하인들까지 줄줄이 달고 있었다.
서란은 호기심에 근처 거지에게 물었다.
“저 아이도 류씨 가문 사람인가?”
거지는 얼굴을 가린 귀인에게 공손히 대답했다.
“예, 그렇습죠. 류씨 가주가 가장 아끼는 증손녀입니다요. 예전에 공녀로 끌려간 막내딸과 똑같이 생겼다고 아주 애지중지합니다.”
서란은 거지에게 몇 가지 더 물어봤다.
소녀의 할아버지는 서란의 큰오빠였다.
즉 족보상으로 서란에게 소녀는 종손이 된다.
그래도 신기할 정도로 닮기는 했다.
서란이 다시 물었다.
“공녀로 끌려간 막내와 닮았다고?”
“막내딸 초상화를 아주 쏙 빼닮았다고 하더군요.”
“초상화라고?”
서란은 의아했다.
초상화 같은 걸 그린 기억은 없었다.
애초에 소작농 집안에 무슨 돈으로.
거지가 말했다.
“유명한 일화가 있죠. 류씨 가문은 이 도시에 자리를 잡은 다음, 가장 먼저 화공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정말 엄청난 금은을 뿌렸죠.”
“그 다음에는 어찌 되었지?”
“도시의 화공을 전부 모은 류씨는 이상한 의뢰를 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막내딸을 그려달라고요. 순전히 가족들이 기억하는 외형 묘사만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그리도 쏟아 부었는데 안 될 게 있나요. 돈으로는 귀신도 부린다는데. 결국 류씨가 만족할 만한 초상화가 완성됐죠.”
서란은 말없이 동전 한 웅큼을 건네줬다.
은덩이를 주면 화만 불러올 게 분명했다.
거지는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서란은 밤이 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은닉술을 사용한 채 저택에 잠입했다.
저택을 수색한 끝에 초상화를 발견했다.
초상화는 노부부의 침실에 있었다.
서란은 가만히 초상화를 바라봤다.
초상화 속에는 열네 살의 서란이 웃고 있었다.
서른다섯이 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초상화 앞쪽, 바닥이 한 곳만 잔뜩 닳아 있었다.
꼭 사람 발자국 모양 같았다.
서란은 닳아버린 바닥 위에 섰다.
고개를 들자 바로 정면에 초상화가 보였다.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기가 초상화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노부부는 아마 이곳에서 딸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서란이 선 바로 이 자리에서, 아주 오랫동안.
딸을 그림으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란은 자기 초상화를 보며 조용히 울었다.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원래 사람은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우는 법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전생의 어린 시절에 배우지 못했던 것.
평생을 갈망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던 것.
죽었다 깨어나서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
서란은 마침내 사랑을 배웠다.
눈물을 닦은 서란이 잠든 노부부를 바라봤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알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자신을 낳고 사랑해 준 부모였다.
서란은 노부부의 무병장수를 빌며 회복술을 썼다.
수도자에겐 효과가 없지만, 범인에겐 달랐다.
노쇠한 육신이 약간이나마 건강을 되찾았다.
서란은 두 사람의 이마에 한 번씩 입을 맞췄다.
예전에는 미처 못한 작별 인사였다.
처음으로 가족에게 한 애정 표현이기도 했다.
침실에는 곧 노부부 둘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