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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된 지 3년 차, 많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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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금영영이 금작파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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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는 내팽개치고 내일 죽을 것처럼 놀던 어느 날, 외면하고 있던 현실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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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금영영의 부모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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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오죽문까지 온 두 사람은 딸을 양쪽에서 붙잡고 연행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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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이 질질 끌려가면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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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부탁이 있어! 내 방에 있는 책 좀 대신 반납해 줘! 그리고 서랍 안쪽 자작시도 꼭 태워 주고! 나 몰래 열어 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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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다독왕 금영영의 장기 집권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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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서란은 서른다섯, 금영영은 서른여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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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 마흔이 저렇게 추하기도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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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친구의 부탁을 착실하게 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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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싸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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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고 있는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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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간, 대문호 류서란은 정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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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이 세 권, 단편 소설은 자그마치 스무 권도 넘게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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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매일매일 수행까지 빼먹지 않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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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 줄여서 ‘인형인형’ 시리즈의 인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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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인형술 선호도가 덩달아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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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간절히도 바라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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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란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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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단 인형 제작 키트 무료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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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인형’ 저자의 인형술 취미 교실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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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인형술 홍보를 위한 수많은 노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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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스 멀티 유즈와 유사한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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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열심히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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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인형인형’의 팬이 된 독자들도 점차 인형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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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인형술의 흥망성쇠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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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망성쇠인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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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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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튤립 버블에 버금가는 성장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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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사와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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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제작 키트를 완성한 뒤, ‘인형술도 할 만 한데?’라고 생각한 독자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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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밀키트 좀 만들어 봤다고 갑자기 복어 요리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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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진짜 인형술을 목도한 뒤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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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은 소설로만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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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년 차, 버블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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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출판한 인형술입문서 개정판도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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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받는 건 딱 인형술만 망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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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인형’ 시리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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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여태까지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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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인형술을 사랑해 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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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선생님, 이런 심정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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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냥 ‘셜록 홈즈’ 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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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원고지를 내려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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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은 소설 주인공을 죽인 뒤, 길을 걷다가 우산에 얻어맞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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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후속작에서 주인공을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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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은 때려 줄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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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저절로 움직여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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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악당에게 차례차례 희생되는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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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이겼지만 악당의 자폭에 휘말린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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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사 소년이 죽고 홀로 남겨진 인형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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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 드리프트와 급전개, 몰살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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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쓴 글을 읽던 서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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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원고지를 갈기갈기 찢으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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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에서 썩 나가라, 이 마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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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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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은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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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야기 전개가 막힌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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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서 몸을 배배 꼬다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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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번 편까지만 마무리하고 그만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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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원고료 받으면서 연재한 소설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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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후원도 전부 거절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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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점차 연재 중단 쪽으로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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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란이 마음만 먹으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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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후원 닫은 무료 연재는 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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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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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결정하기에는 좀 어려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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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의논이라도 해 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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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적절한 상담역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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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과 의논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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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중정 연못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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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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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바위틈에 껴서 혼자 끙끙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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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쓰던 담청이 서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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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마침 잘 됐구나. 나 좀 도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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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제가 빼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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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담청의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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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쏙하고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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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틈새에 뿔이 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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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것 같아서 넣어 봤더니 안 빠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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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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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궁금증이 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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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은 호혜문에게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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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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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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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글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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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잠깐 일이 있어서 부재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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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서란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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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연재를 계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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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 홍보도 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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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고통까지 감내하며 더 쓸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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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돈도 안 받는데 뭘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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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대로 그만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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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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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말까지는 써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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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써야할 의미가 정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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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고심하고 있을 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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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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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이 서란을 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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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와르르 쏟아진 물건 중에는 서란이 쓴 ‘인형인형’ 단행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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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류서란의 팬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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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류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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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노련하게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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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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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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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터져 나오려던 환호성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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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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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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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책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특히 세 번째 장편소설, ‘마모된 톱니바퀴’ 편은 도대체 몇 번을 봤는지 몰라요. 한동안 밤을 새느라 수업 시간마다 졸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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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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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어디가 마음에 들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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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즉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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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인형이 아이를 지키려고 악당과 싸우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인형도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잖아요. 합리적인 판단을 하라는 악당의 협박 다음에 나온 대사가 잊혀지지 않아요. ‘내 톱니바퀴가 너무 마모돼서 오류가 생긴 모양이다.’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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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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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러면 인형술은 어떻게 해야 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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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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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형술에 관심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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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작가님이 쓰신 인형술입문서도 소장했어요. 인쇄와 제본 비용만 지불하면 살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라서 초판본이랑 개정판 둘 다 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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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입문서 내용은 어땠니? 어렵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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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은 조금 어려웠는데, 개정판은 정말 이해하기 쉽더라고요. 어쩌면 제 실력이 늘어서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요. 초간단 인형 제작 묶음이 도움 많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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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감격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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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열심히 공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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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저 열심히 했어요. 이거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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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품 안에서 직접 만든 인형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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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어설픈 부분이 많았지만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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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은 서란이 만든 동물친구들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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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형 귀엽죠? 동물친구들 너무 귀여워서 똑같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왜 인형술 책 안 내시나요? 입문서는 다 봐서 볼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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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말이 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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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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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 서적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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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 보는 줄 알아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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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느라 바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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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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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쓰려고... 요즘 좀 바빠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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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러셨군요!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저 소설이든 기술서든, 류 작가님이 쓰신 책은 다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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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떨어뜨린 학용품을 주워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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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은 마친 호혜문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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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 무슨 일로 보자고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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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침묵하던 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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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미안해요. 저,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어요. 제가 불러놓고 이런 소리해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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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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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괜찮으니까 어서 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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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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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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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호혜문의 뒷말을 못 듣고 뛰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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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늦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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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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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인간 화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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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빗속을 달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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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일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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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서든 소설이든 상관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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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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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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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작품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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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여태 자식을 사랑하지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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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힘들게 탄생시킨 작품에게도, 그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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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생에 그렇게도 영화를 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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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슬프거나 놀랍고, 끝내는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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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울 수만 있다면 장르도, 작품성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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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내면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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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쫄딱 맞고 돌아온 서란은 곧장 붓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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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라면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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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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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숨길 수 없는 진심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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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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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밤새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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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여서 인형으로 만드는 악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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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미학만을 고집하는 미치광이 인형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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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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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면 내 예술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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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인형술사 소년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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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간을 위한 것, 너는 그저 살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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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일행은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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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사 소년과 인형 소녀’의 네 번째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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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예술과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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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독자들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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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란이 휴재 통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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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재 및 자료 조사 여행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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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한 장만 덜렁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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