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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이아금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다시 한 번 반복된 동대륙 모험기.
몇 번이나 각색한 탓에 반쯤 픽션이 되어 버렸다.
물론, 처음 듣는 이아금은 마냥 즐거웠다.
그 다음에는 전리품 자랑 시간이었다.
미목대회 삼등상, 천년토영목의 영롱한 자태.
영목에 일가견이 있던 이아금도 크게 놀랐다.
서란은 마지막으로 인형 사 자매도 소개했다.
내부에 탑재된 무수한 최첨단 기능들.
그야말로 동대륙 인형술의 정수나 다름없었다.
이아금의 반응은 오늘 본 것 중에서 최고였다.
“이거, 진짜로 언니가 만든거야?!”
“당연하지, 여기에 어떤 기술이 들어갔냐면...”
“진짜 대단하다!”
“그치, 대단하지? 특히 자가충전 기능이...”
“와, 나무를 깎아서 만든 인형이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언니 이런 쪽에도 재능이 있었구나. 사람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잘 할 수 있으면서 예전에는 왜 그런 거야?”
“응?”
서란은 이아금이 한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이아금은 지금 인형의 기능이 아니라 외형을 보고 감탄하는 중이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적당히 조형한 외견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인 내면을 보고 감탄해줬으면 했다.
“아금아, 인형 사 자매는 눈에서 광선도 나와.”
물론 큰 의미는 없었다.
“광선? 그건 언니가 저번에 만든 법기에서도 나오잖아. 그게 뭐 대단한 건가?”
그야말로 ‘인형이나 법기나.’ 라는 사고방식.
서란은 문외한이 꺼낸 무심한 발언에 제대로 긁힌 대다수의 IT업계 관계자들처럼 반응했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대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부질없는 설명을 쏟아냈다는 뜻이다.
서란은 손짓 발짓까지 총동원해서 설명했다.
“어때, 이해했니?”
“응, 완벽하게 이해했어.”
하나도 이해 못한 얼굴이었다.
언니가 그렇다니까 대강 수긍하는 눈치였다.
서란은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혼자 외치고 싶었다.
이거 정말 어려운 거라고!
와이파이 샤워기랑 비슷한 업적이라고!
내 성과를 더 조목조목 칭찬해 달라고!
물론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죽문에 널리고 널린 게 대나무 숲이니까.
아무 데서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면 된다.
하지만 끝까지 성능 칭찬은 못 들었다.
이아금은 황홀한 표정을 지은 채, 경국지색 시스터즈를 구경하며 연신 감탄하기 바빴다.
서란은 본격적으로 수행을 재개했다.
단약 섭취와 명상, 법술 공부 등등.
예전처럼 하루를 정력적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 같이 기상, 담청과 법보 한증막을 즐긴다.
여무진의 가르침대로 분신술에도 힘썼다.
남은 시간은 인형술을 공부하거나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관조했다.
물론 심마에 빠졌던 과거를 교훈 삼아 적절한 비율로 여가를 즐기기도 했다.
한번은 이아금을 만나러 약당으로 찾아갔다.
그러다 운좋게 연단 과정을 구경할 수 있었다.
돈 주고도 못 볼 진기한 광경을 봤다.
초보 연단술사 이아금은 거대한 솥에 물과 영초를 집어넣고 열심히 끓이고 있었다.
국자를 휘휘 젓다가 살짝 떠서 맛을 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으로 불을 뿜었다.
정화법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이 솥을 달궜다.
수도자마저 땀을 비 오듯 흘릴 정도의 고온이었다.
이아금은 내뿜는 숨결의 양을 조절하며 서서히 적정 온도를 찾아갔다.
서란은 이아금의 집중력에 감탄했다.
평생 남이 해준 단약만 꿀떡꿀떡 삼켰지, 단약이 이런 힘든 과정 끝에 완성되는지는 전혀 몰랐다.
앞으로는 절대 단약의 맛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외에도 서란은 오죽문 곳곳을 탐방했다.
호혜문과 함께하는 즐거운 거인살법 연구.
금영영과 함께하는 개허접 바둑 연전.
담청과 함께하는 대지모신 복각 이벤트.
동대륙에서 가져온 짐 정리도 끝마쳤다.
예금자 증명 옥패와 톱니바퀴는 기념품 상자에.
천년토영목은 장서각 개인 금고에 보관했다.
좀더 인형술 실력을 키우고 사용할 생각이었다.
현재 서란의 관심사는 당연히 인형술이었다.
정확히는 동대륙과 서대륙, 양 대륙에서 익힌 인형술을 하나로 접목시키는 게 주목적이었다.
서대륙 인형술의 정수는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인형애호가 엽관보의 ‘학습 인형 연구’였다.
너무 어려워서 예전에는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서란은 경건하게 연구서를 펼쳤다.
과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았다.
“엽 수사님!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가셨나요!”
연구서를 탐독하며 서란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인형술 불모지 서대륙에서 이 정도 인형술이라니.
그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던 고독한 세상에서 엽관보는 홀로 기적을 탄생시켰다.
운명의 장난으로 서대륙에 태어난 엽관보.
비운의 천재가 남긴 인생 최후의 심득.
그리고 동대륙 인형술의 정수를 깨우친 류서란.
서란은 일련의 연쇄 속에서 어떤 천명을 느꼈다.
“엽 수사님,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제가 당신의 유지를 잇겠습니다! 반드시 궁극의 인형술을 완성시키겠습니다! 반드시!”
하늘까지 울려퍼질 굳건한 눈물의 맹세.
옆방에서 얌전히 자고 있던 금영영이 깨어났다.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러운 것 같았다.
금영영은 귀마개를 끼우고는 다시 눈을 붙였다.
다음 날, 아침부터 서란은 인형술에 몰두했다.
목표는 하루 열 번, 감사의 연구서 정독.
다섯 번 정도 읽었을 때, 손님이 방문했다.
수뇌부의 일원이었다.
“류 수사, 혹시 보고서는 아직 멀었습니까?”
“아, 맞다.”
서란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쩐지 뭘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니.
보름 가까이 소식이 없자, 독촉이 왔다.
서란은 부랴부랴 동대륙 보고서를 작성했다.
오죽문-금작파 공동 수뇌부가 모였다.
의제는 ‘적절한 동대륙 접근법’이었다.
수뇌부는 서란의 동대륙 리포트를 속독했다.
정신 나간 분량이었지만, 다들 금방 읽었다.
서류를 수백 년 넘게 읽으면 싫어도 이렇게 된다.
보고서의 내용은 생각보다 충실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수뇌부는 익숙하게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결국 접촉을 하기는 해야겠죠?”
“아예 무시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이죠.”
“기형적인 세력 구도 탓에 낭비되는 인적, 물적 자원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정된 비승을 고려하면, 공법이나 법술 수집에 중점을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보고서를 보니까 범인으로 살다가 죽는 영근보유자들이 너무 많군요. 방법이 아예 없을까요?”
“그 부분은 그냥 포기하죠. 전송진이 있는 대수림 심층부를 통과할 수 있는 건 고위계 수사뿐이지 않습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결국 명계의 인력이니, 침식 지대니 하는 게 문제군요. 해결 방법도 마땅치 않고.”
“대균열도 닫혔으니 금방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침식 지대가 정화되는 것보다 우리가 비승하는 게 더 빠를 것 같군요.”
“차라리 전송진을 대수림 밖에도 만든다거나?”
“전문가들이 연구 중이기는 한데...”
“전송 문양의 해석이나 제작법 복구 가능성은 지금 거론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끼리 여기서 이런다고 크게 의미나 있겠습니까? 지금 보유한 동대륙에 대한 정보라고 해 봐야 류 수사의 보고서뿐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내용은 충실하지만, 결국 혼자서 수집한 정보입니다. 이 정도로는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이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서대륙과 동대륙은 수도문파의 구조부터 산수 문화까지 너무 이질적이에요.”
“옳은 말씀입니다. 특히 거대문파들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필수적입니다. 그나저나 십대문파 비판 항목은 왜 이렇게 방대합니까? 나머지는 부실한데 여기만 이상할 정도로 분량이 많군요.”
“외교 대상의 대분류도 너무 많습니다. 오행인면목, 열 개의 거대문파들, 점점이 자리잡은 약소문파들, 심지어 산수 집단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류 수사의 활동 반경은 태본곡에만 집중되어 있죠.”
“게다가 대균열을 닫은 여파로 벌어질 혼란도 문제입니다. 현시점에서는 어떤 예측을 해도 예언가 흉내에 불과할 겁니다. 정보도, 시간도 더 필요해요.”
회의 결과, 여론이 한쪽으로 몰렸다.
가장 큰 문제는 정보 부족이었다.
결국 동대륙에 관한 의사 결정은 잠정 보류됐다.
하지만 그게 수동적인 대응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공동 수뇌부는 어떤 조직을 동대륙에 파견했다.
총책임자 금중패가 전송진을 넘었다.
스무 명의 결단기 수사도 함께였다.
그들은 전송진이 있는 궁전을 거점으로 삼았다.
이들의 임무는 외교가 아니라 첩보였다.
일부는 산수로 위장해서 태본곡에 잠입한다.
동대륙은 독특한 수선 문화 덕분에 연고 없는 결단기 수사가 대뜸 등장해도 전혀 의심받지 않는다.
요원들은 동대륙에 녹아들어 인맥을 쌓고 정보망을 구축할 것이다.
나머지는 최후방 거점인 전송진 궁전을 지킨다.
주변에 있는 호전적인 요괴들을 모조리 구축하고, 대균열 인근 유적을 탐색할 예정이었다.
전송진만 사수하면 일이 틀어져도 후퇴할 수 있다.
금중패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즐기며 말했다.
“일단, 현지 협력자라는 삼안묘부터 찾아라.”
“예!”
요원 일부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떠났다.
“타격조는 우선 요괴 퇴치부터 하지.”
“예!”
잠시 후, 무수한 지진파가 대수림을 강타했다.
외교관 겸 토속성 공법 전문가 금중패가 첩보 조직 책임자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외교관의 덕목은 첩자의 덕목이기도 했다.
심지어 지상전에서 그보다 강한 이도 드물었다.
금중패라면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었다.
전쟁도, 외교도 정보 수집부터 시작된다.
그야말로 최고의 인선이었다.
금중패가 기대감에 중얼거렸다.
“반갑구나, 새로운 세상아.”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