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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359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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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간식 도둑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좋아, 말해 봐. 내 간식은 왜 훔쳐먹었지?”
삼안묘는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그는 생각보다 긴 세월을 살아 온 요괴였다.
하지만 나이와 강함이 비례하지 않은 탓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허접한 환술뿐이었다.
그래도 눈치는 빨랐다.
애초에 요력도 변변치 않은 토끼 요괴 주제에 눈치까지 없었다면 죽어도 벌써 죽었을 것이다.
삼안묘의 눈이 바삐 움직이며 상대를 탐색했다.
가장 먼저 상대의 전력, 측정 불가.
동공에서 반쯤 액화된 법력이 줄줄 흘러나왔다.
하급 요괴 앞에서 힘자랑이나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체내에 과포화된 법력이 무의식 중에 새어 나오는 게 분명했다.
상식을 가볍게 압도하는 힘, 아마 사흉이 전부 달려든다고 해도 승산이 없을 것이다.
그런 판단과 함께, 삼안묘는 탈출을 포기했다.
도주를 시도하는 즉시, 뭐에 죽었는지도 모른 채 명계에서 깨어날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일말의 자비에 기대는 편이 낫다.
삼안묘는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언짢음이 살짝 엿보였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자세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 무관심이었다.
서로 간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격차를 고려했을 때,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답만 좀 잘하면 살려줄 것도 같았다.
삼안묘는 여러 가지 변명을 떠올리다가,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거짓말 치다 걸리면 그때는 진짜 수습 불가였다.
삼안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세 눈으로 서란을 올려다보며 싹싹 빌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랬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안 그럴 게요...”
서란이 말했다.
“아니, 과일이 그렇게 먹고 싶었으면 스스로 찾아 먹어야지. 남의 간식을 낼름 훔쳐먹으면 되나? 이 근처에는 뭐 과일이 없어?”
말을 마친 서란이 어디 한 번 변명해 보라는 듯한 시선으로 삼안묘를 빤히 바라봤다.
삼안묘는 눈알 세 개만 대굴대굴 굴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서란이 흔쾌히 변론 기회를 줬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
삼안묘가 조심스레 지적했다.
“저기, 이 근방에는 과일이 없습니다.”
서란이 물었다.
“과일이 없다고? 하나도?”
“예, 적어도 저는 본 적이 없네요.”
서란은 말문이 막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심층부에서는 화신기 수사 이외에는 어떤 존재도 하늘을 날 수 없었다.
그건 조류나 날벌레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벌이나 나비가 없어서 그런 건가?
수분 활동이 불가능해서?
아니면 나무가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혼이 뽑혀서 전부 죽은 건가?
서란은 과일 없는 삶을 상상해 봤다.
과일 애호가 입장에서는 정말로 끔찍한 지옥이었다.
삼안묘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란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아무리 그래도 도둑질은 아니지.”
삼안묘가 다시 한 번 앞발을 싹싹 빌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 게요...”
서란은 기꺼이 용서를 베풀어 줬다.
“아무튼, 반성하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마.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흠, 그래 그래. 바람직한 자세야.”
요괴에게마저 자비를 보이는 이 몸.
서란은 뒤로 돌아 멋지게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토끼 녀석이 당최 도와주질 않았다.
삼안묘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그런데 말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건과일, 안 드시면 혹시 제가 먹어도 괜찮을까요?”
“먹는다고? 땅에 떨어진 걸?”
“토끼가 다 그렇죠, 뭐.”
“나는 안 먹으니, 마음대로 해라.”
서란의 허락이 떨어지자 삼안묘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떨어진 건과일을 주워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손에 넣은 별미를 양볼이 터지도록 입안에 밀어넣고 만끽했다.
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삼안묘가 행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야,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먹는 과일이야.”
너무 맛있게 먹어서 서란도 안 물어볼 수 없었다.
“몇 년만에 먹는 건데?”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천 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천 년?”
서란은 깜짝 놀랐다.
요괴에게는 정해진 수명 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남에게 죽지만 않는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강해져서 마침내 대요괴가 된다.
천 년이면 어지간한 대요괴 만큼 나이가 많았다.
삼안묘의 나이가 천 살이 넘었다는 놀라운 사실, 서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천 살이 넘는다고? 네가?”
“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하지?”
삼안묘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글쎄요, 토끼 요괴라서?”
서란은 어렵사리나마 납득할 수 있었다.
*****
결과적으로 삼안묘는 서란에게 합류했다.
파티에서 그가 담당한 롤은 길잡이였다.
여기에서 천 년이나 살았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빠삭하게 알고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헤드헌터 서란의 안목은 이번에도 예리했다.
건과일 잔뜩 먹고 기분 좋아진 삼안묘는 생명의 은인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했다.
“이런 문양이 새겨진 석판, 혹시 본 적 있어?”
“그럼요, 저만 따라오세요.”
삼안묘는 서란을 데리고 동쪽으로 갔다.
낮은 언덕을 하나 오르자 저 멀리 대균열이 보였다.
대균열 주변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였다.
아마도 명계와 너무 가까워서 그런 것 같았다.
서란은 문득 궁금해져서 질문했다.
“혹시 대균열 근처까지 가 본 적도 있어?”
“아뇨, 제가 바보도 아니고...”
대수림 심층부에서 천 년 이상 거주한 삼안묘도 대균열 근처까지는 한 번도 다가가지 않았다.
영리한 이는 매를 맞지 않아도 깨닫는 법이었다.
하지만 탐험가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서란은 배낭에서 꺼낸 긴 밧줄을 무표정한 인형(일호)의 허리에 칭칭 감았다.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삼안묘의 물음에 서란이 대답했다.
“대균열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살짝 고개만 내밀어 볼 생각이야.”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참나, 잘 보라고.”
일호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대균열로 향했다.
단숨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목을 대지에 박아 넣은 채, 서서히 접근했다.
서란과 나머지 인형들은 밧줄을 꽉 잡고 있었다.
대균열에 접근할수록 인력이 점차 강해졌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죠?”
삼안묘가 말렸지만 서란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괜찮다니까? 저기 봐, 지금도 멀쩡히...”
괜찮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명계의 인력이 인형을 지반 채로 뽑아버렸다.
서란과 인형들은 즉시 밧줄을 손에서 놨다.
인형 일호가 대균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시야 공유 법술이 아직 작동했다.
서란은 이틈에 대균열 안을 재빨리 관찰했다.
내부의 모습은 놀라웠다.
단순히 지반이 갈라져서 생긴 게 아니었다.
규격에 맞춰 제작한 요철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마치 우물 벽처럼 보이는 인위적인 형태였다.
대균열은 지형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시야 공유가 끊어졌다.
*****
파티원을 하나 잃은 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대균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소였다.
삼안묘가 석판을 본 곳은 어떤 지하 시설이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석판이 잔뜩 있습니다.”
서란은 숫자가 하나 준 인형들에게 명령했다.
“삼안묘를 따라가서 이 그림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석판을 가져와.”
서란은 혼자 남아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아까 그 광경은 뭐였지?
분명히 인위적으로 만든 구조물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용도로 그런 걸 만든 거야?
서란은 아까부터 같은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다.
대균열은 동대륙 전체에 해악을 끼친다.
인력이 초래한 영기의 불균형, 혹은 명계에 의한 지형 침식 등이 대표적 예시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굳이 대균열을 만들어서 동대륙 전체를 엉망으로 만든 의도를 모르겠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열심히 고민했지만,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란은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건물 안이라서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게 보였다.
“어?”
바로 커다란 천장화였다.
그림 몇 개가 고리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순서대로 감상하라는 게 제작자의 의도 같았다.
첫 번째 그림은 인계의 모습이었다.
동서남북 사대륙, 그리고 의문의 화살표.
서쪽, 북쪽, 남쪽 대륙에서 출발한 긴 화살표가 전부 동대륙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번째 그림은 시체 더미를 묘사하고 있었다.
시체가 원판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생김새를 보니 전부 요괴 시체인 듯 했다.
세 번째 그림에는 사람이 한 명.
바닥에 꽂힌 막대기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무수한 톱니바퀴가 배경을 가득 채웠다.
네 번째 그림도 사람 그림이었다.
이전 그림과 이어지는지 막대기를 당기고 있었다.
배경에 그려진 톱니바퀴 역시 움직였다.
다섯 번째 그림은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원판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그 위에 쌓여있던 시체가 모조리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여섯 번째 그림에서 원판은 다시 닫혔다.
서란은 대균열의 정체를 깨달았다.
쓸모없는 걸 잔뜩 모아서 차곡차곡 쌓는다.
레버를 당기면 기계 장치가 작동하고, 물건을 잔뜩 올려둔 구멍 덮개가 열린다.
그러면 쓰레기는 모조리 아래로 떨어진다.
대균열은 일종의 쓰레기통이었다.
필요하면 덮개를 열어서 쓰레기를 버린다.
쓰레기는 순식간에 명계로 빨려들어 간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다시 닫는 방식이었다.
동대륙 수선계를 기형적으로 비틀어버린 대균열은 항거할 수 없는 종말이나 재앙이 아니었다.
그냥, 안 닫힌 쓰레기통이었다.
단지 명계와 연결된 탓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극도로 편중된 영기의 분포, 양극화 때문에 몰락해 버린 약소문파, 명계 침식으로 인한 오행인면목의 서식지 감소 등등.
서란이 동대륙에서 경험한 모든 사회 문제의 원인이 밝혀졌다.
쓰레기통 쓰고 뚜껑 안 닫은 사람 탓이었다.
서란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때마침 삼안묘와 인형들도 전송 석판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