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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간식 도둑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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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말해 봐. 내 간식은 왜 훔쳐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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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는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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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각보다 긴 세월을 살아 온 요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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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이와 강함이 비례하지 않은 탓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허접한 환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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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눈치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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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요력도 변변치 않은 토끼 요괴 주제에 눈치까지 없었다면 죽어도 벌써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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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의 눈이 바삐 움직이며 상대를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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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상대의 전력, 측정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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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공에서 반쯤 액화된 법력이 줄줄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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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요괴 앞에서 힘자랑이나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체내에 과포화된 법력이 무의식 중에 새어 나오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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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가볍게 압도하는 힘, 아마 사흉이 전부 달려든다고 해도 승산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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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판단과 함께, 삼안묘는 탈출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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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를 시도하는 즉시, 뭐에 죽었는지도 모른 채 명계에서 깨어날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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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일말의 자비에 기대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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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는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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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짢음이 살짝 엿보였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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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 무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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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간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격차를 고려했을 때, 일견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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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만 좀 잘하면 살려줄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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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는 여러 가지 변명을 떠올리다가,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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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치다 걸리면 그때는 진짜 수습 불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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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세 눈으로 서란을 올려다보며 싹싹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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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죄송합니다... 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랬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안 그럴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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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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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과일이 그렇게 먹고 싶었으면 스스로 찾아 먹어야지. 남의 간식을 낼름 훔쳐먹으면 되나? 이 근처에는 뭐 과일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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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서란이 어디 한 번 변명해 보라는 듯한 시선으로 삼안묘를 빤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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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는 눈알 세 개만 대굴대굴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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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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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흔쾌히 변론 기회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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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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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조심스레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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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이 근방에는 과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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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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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 없다고?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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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적어도 저는 본 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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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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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 보니, 심층부에서는 화신기 수사 이외에는 어떤 존재도 하늘을 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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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조류나 날벌레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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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벌이나 나비가 없어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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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활동이 불가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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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나무가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혼이 뽑혀서 전부 죽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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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과일 없는 삶을 상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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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애호가 입장에서는 정말로 끔찍한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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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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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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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아무리 그래도 도둑질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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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다시 한 번 앞발을 싹싹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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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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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기꺼이 용서를 베풀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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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반성하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마.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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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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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래 그래. 바람직한 자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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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에게마저 자비를 보이는 이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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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뒤로 돌아 멋지게 떠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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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토끼 녀석이 당최 도와주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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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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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그런데 말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건과일, 안 드시면 혹시 제가 먹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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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다고? 땅에 떨어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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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다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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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 먹으니, 마음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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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허락이 떨어지자 삼안묘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떨어진 건과일을 주워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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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손에 넣은 별미를 양볼이 터지도록 입안에 밀어넣고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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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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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행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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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먹는 과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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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맛있게 먹어서 서란도 안 물어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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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만에 먹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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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천 년 정도 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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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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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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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에게는 정해진 수명 같은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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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에게 죽지만 않는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강해져서 마침내 대요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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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면 어지간한 대요괴 만큼 나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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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의 나이가 천 살이 넘었다는 놀라운 사실, 서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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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살이 넘는다고?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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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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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렇게 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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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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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토끼 요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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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어렵사리나마 납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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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삼안묘는 서란에게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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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그가 담당한 롤은 길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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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천 년이나 살았으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빠삭하게 알고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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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서란의 안목은 이번에도 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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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과일 잔뜩 먹고 기분 좋아진 삼안묘는 생명의 은인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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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양이 새겨진 석판, 혹시 본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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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저만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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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는 서란을 데리고 동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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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언덕을 하나 오르자 저 멀리 대균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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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 주변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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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명계와 너무 가까워서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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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문득 궁금해져서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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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대균열 근처까지 가 본 적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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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제가 바보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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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 심층부에서 천 년 이상 거주한 삼안묘도 대균열 근처까지는 한 번도 다가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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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이는 매를 맞지 않아도 깨닫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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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탐험가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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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배낭에서 꺼낸 긴 밧줄을 무표정한 인형(일호)의 허리에 칭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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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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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의 물음에 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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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살짝 고개만 내밀어 볼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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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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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잘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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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호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대균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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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목을 대지에 박아 넣은 채, 서서히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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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나머지 인형들은 밧줄을 꽉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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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에 접근할수록 인력이 점차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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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그만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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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말렸지만 서란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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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니까? 저기 봐, 지금도 멀쩡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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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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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의 인력이 인형을 지반 채로 뽑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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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인형들은 즉시 밧줄을 손에서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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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일호가 대균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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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야 공유 법술이 아직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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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이틈에 대균열 안을 재빨리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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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모습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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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지반이 갈라져서 생긴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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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에 맞춰 제작한 요철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마치 우물 벽처럼 보이는 인위적인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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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은 지형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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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야 공유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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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원을 하나 잃은 뒤,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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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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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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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가 석판을 본 곳은 어떤 지하 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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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들어가면 석판이 잔뜩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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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숫자가 하나 준 인형들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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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묘를 따라가서 이 그림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석판을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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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혼자 남아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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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까 그 광경은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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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인위적으로 만든 구조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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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용도로 그런 걸 만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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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아까부터 같은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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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은 동대륙 전체에 해악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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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이 초래한 영기의 불균형, 혹은 명계에 의한 지형 침식 등이 대표적 예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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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 봐도 굳이 대균열을 만들어서 동대륙 전체를 엉망으로 만든 의도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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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열심히 고민했지만,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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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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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이라서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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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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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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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커다란 천장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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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몇 개가 고리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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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감상하라는 게 제작자의 의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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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그림은 인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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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사대륙, 그리고 의문의 화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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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북쪽, 남쪽 대륙에서 출발한 긴 화살표가 전부 동대륙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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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림은 시체 더미를 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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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원판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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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를 보니 전부 요괴 시체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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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그림에는 사람이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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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꽂힌 막대기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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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톱니바퀴가 배경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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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그림도 사람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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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그림과 이어지는지 막대기를 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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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에 그려진 톱니바퀴 역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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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그림은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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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판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그 위에 쌓여있던 시체가 모조리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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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그림에서 원판은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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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대균열의 정체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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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걸 잔뜩 모아서 차곡차곡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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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를 당기면 기계 장치가 작동하고, 물건을 잔뜩 올려둔 구멍 덮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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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쓰레기는 모조리 아래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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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은 일종의 쓰레기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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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면 덮개를 열어서 쓰레기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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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순식간에 명계로 빨려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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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다시 닫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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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 수선계를 기형적으로 비틀어버린 대균열은 항거할 수 없는 종말이나 재앙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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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안 닫힌 쓰레기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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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명계와 연결된 탓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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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편중된 영기의 분포, 양극화 때문에 몰락해 버린 약소문파, 명계 침식으로 인한 오행인면목의 서식지 감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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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동대륙에서 경험한 모든 사회 문제의 원인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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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쓰고 뚜껑 안 닫은 사람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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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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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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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삼안묘와 인형들도 전송 석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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