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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2 KiB

서란은 전송진을 밟고 동대륙으로 날아왔다.

도착과 동시에 전송 문양을 박살낸 건 덤이었다.

스스로 퇴로를 끊어버린 지 벌써 오 년째.

서란도 그 동안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마땅한 귀환 경로는 결국 해로뿐이었다.

그래서 안전한 바다가 기록된 항해도를 수집했다.

대균열 탓에 영기가 고갈된 바닷가는 쓸모가 없어졌고, 항해도 가격도 덩달아 헐값이 됐다.

그렇게 모아 온 지도 뭉치가 어느새 한 상자였다.

덕분에 서대륙까지 이어진 항로를 찾았다.

이제는 뭘 타고 돌아갈지 정할 차례였다.

서란은 곧장 비행 법기 판매점으로 갔다.

“어서오세요, 어떤 비행 법기를 찾으시나요?”

“짐을 실을 수 있는 범선형 법기 중에서 가장 크고 빠른 게 뭔가요?”

접객원은 서란을 데리고 안쪽으로 향했다.

“이 물건은 어떠실까요? 화물도 많이 적재할 수 있고, 속도 역시 개인용 비행 법기 못지않죠.”

서란이 약간 아쉬운 듯 물었다.

“더 큰 건 없나요?”

“고객님, 이 법기보다 큰 규모의 비행 법기는 산수가 구매하실 수 없습니다. 수선계 국제법으로 금지하고 있죠.”

“그런 법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죠?”

“당연히 십대문파들이 만들었죠.”

패악질도 아주 골고루 부리고 있었다.

“그냥 이걸로 주세요.”

“따로 개수나 추가 구매가 필요하신가요?”

“혹시 목록이 있나요?”

“여기 있습니다.”

서란은 목록을 받아서 살펴봤다.

차량 구매 시 추가하는 옵션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위에서부터 긁어버렸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전부 추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접객원은 함박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혼자 남아서 차를 마시던 서란은 문뜩 잊고 있던 범선형 법기 하나를 떠올렸다.

지저 세계의 골칫거리, 흑린역류혈사를 퇴치한 대가로 받은 변신괴뢰선이었다.

죽순 로켓 만들 때 채석장에 박아두고 지금까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비행 법기 치고는 굉장히 느려터진 물건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변형 기능 만큼은 흥미로웠다.

나중에 돌아가면 잊지 않고 분해해 볼 작정이었다.

저 멀리서 접객원이 돌아왔다.

“고객님, 개수가 끝났습니다! 배달해 드릴까요?”

법술 덕분인지 정말로 빨리 끝났다.

“아뇨, 타고 갈게요.”

“예,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서란은 수표로 값을 지불하고 범선에 탔다.

태본곡으로 돌아간 서란은 천년토영목과 산더미처럼 쌓인 영석을 화물칸 내부에 차곡차곡 적재했다.

결단기 수사의 장거리 항해에 식량은 필요없었다.

화물칸을 가득 채우고도 남은 영석은 그냥 주거래 은행에 예치해 버렸다.

항해 준비를 마친 서란이 작별 인사를 했다.

“나 이만 갈게.”

곧은 줄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류 수사님, 꼭 다시 방문해 주세요.”

서란은 그렇게 대수림을 떠났다.

은닉 결계를 두른 범선이 동대륙 하늘을 날았다.

화물칸이 꽉 차서 배가 무거웠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서란의 마음만은 가벼웠다.

구름을 가르며 날던 도중, 속도가 느려졌다.

영기가 고갈된 동대륙 변방, 일명 무영지대였다.

서란은 잠시 조타를 멈추고 지상을 내려다 봤다.

영기의 자정 능력이 사라진 무영지대는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넘실거리는 탁기에 지표면이 전부 잠겨 있었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으엑...”

서란은 왝 구역질하곤 다시 조타륜을 잡았다.

어서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정토법력을 잔뜩 주입하자 범선이 가속했다.

범선은 금방 바다에 도착했다.

겨울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서란은 범선을 바다 위에 착륙시켰다.

연비 주행을 위해서였다.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수평선과 하얀 구름.

감탄을 금치 못할, 참으로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가슴 뜨거운 열혈남아라면 누구나 내면에 범선 한 척 정도는 품고 사는 법이니까.

그래서 바다사나이 서란도 참지 못했다.

“돛을 올려라!”

서란의 명령에 선원 인형들이 일제히 눈을 떴다.

범선을 살 때 추가 구매한 옵션 구성품이었다.

목각인형 스무 개가 일사불란하게 돛을 조정했다.

바람을 제대로 받은 돛이 활짝 펼쳐졌다.

짠 바닷바람에 서란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서란은 미리 구매한 안대를 한쪽 눈에 착용했다.

이제 아무도 선장을 막을 수 없었다.

“불침함, 출항이다!”

조타륜을 잡은 서란이 법력을 운용했다.

배 뒤쪽에 달린 추진기가 굉음을 내며 작동했다.

서란의 불침함(방금 작명했다.)이 급가속했다.

“가자, 전속력으로!”

항해도에 따르면 이 부근에는 암초가 없었다.

그래서 서란도 망설임 없이 속도를 냈다.

불침함은 서쪽을 향해서 맹렬히 전진했다.

서란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흐하하, 아하하하하!”

그리고 엄청난 충격이 불침함을 강타했다.

“흐아아아아!”

불침함은 굉음을 내며 반파됐다.

대소하던 서란도 타륜과 함께 나뒹굴었다.

고개까지 젖히며 신나게 웃느라 전방 주시를 태만히 한 결과였다.

갑판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돛이 달린 기둥은 뚝 부러졌고, 선원 인형들 역시 충돌과 함께 튕겨나가 바다에 빠졌다.

선체가 우리 다 죽는다며 절규하고 있었다.

서란은 뽑힌 타륜을 두 손에 들고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리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심해거인이었다.

생김새는 평범한 여자아이였지만, 머리 크기가 서란의 불침함보다 거대했다.

심해거인이 이마를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었다.

서란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불침함은 최고 속도로 심해거인과 충돌했다.

해수면 아래에서 머리를 내밀던 심해거인의 이마를 냅다 들이박은 것 같았다.

서란이 과실 비율을 고민하고 있을 때, 어린 심해거인이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귀가 아니라 몸으로 듣는 소리였다.

심지어 선체까지 드드드드 진동시켰다.

서란이 다급히 사과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렁찬 울음소리 때문에 안 들렸으니까.


잠시 후, 심해거인 소녀가 울음을 그쳤다.

“힝, 아파...”

애를 달래느라 지친 서란이 힘없이 말했다.

“정말 미안해. 그런데 왜 이런 얕은 곳에 있니?”

심해거인은 이름처럼 심해에 산다.

덩치가 너무 커서 머리까지 전부 잠기는 곳이 심해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심해거인의 아이가 이런 연해 한복판에 있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심해거인이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혼자 놀러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서란은 불쌍한 마음에 물었다.

“언니랑 같이 갈까? 부모님 찾아 줄게.”

“엄마 아빠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어요.”

서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배웠구나. 언니는 그만 갈게, 잘 있어.”

서란은 반파된 불침함을 몰고 떠났다.

그리고 저 멀리 얼마쯤에서 반전했다.

다시 심해거인 앞으로 돌아온 서란이 말했다.

“다시 만났네, 우리 이제 모르는 사이 아니지?”

심해거인이 아리송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 그런 것 같아요...”

“좋아, 이름이 뭐니?”

“저는 소소예요.”

이름이 약간 안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서란은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불침함이 앞장서자 소소가 따라왔다.

서란의 미아 보호는 얼마 가지 않아 끝났다.

수평선 너머에서 원근감을 무시하는 존재감의 심해거인 둘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아빠!”

“소소야! 우리 딸, 소소!”

“어디 갔었니, 걱정했잖아!”

극적인 가족 상봉 현장으로 서란의 불침함(반파)이 엉금엉금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류서란이라고 해요.”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 함께한 소소가 외쳤다.

“이 언니가 나 여기까지 데려다줬어!”

부모 심해거인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서란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물론 서란의 진심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 말씀 마세요!”

“맞습니다, 우리 소소를 도와주셨는데!”

“아니...”

심해거인들은 서란을 집까지 초대할 기세였다.

서란이 아무리 사양해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갈 길이 바쁘다는 말까지 하고서야 심해거인의 친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빠 심해거인이 물었다.

“그런데 은인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서대륙으로 가고 있습니다.”

엄마 심해거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세상의 중심을 통과하시려고요?”

“안전한 항로가 거기뿐이니까, 아마도 그렇겠죠?”

소소가 대뜸 소리쳤다.

“언니, 거기로는 가면 안 돼! 나쁜 용이 살고 있단 말이야!”

“용?”

엄마 심해거인이 서란의 물음에 대답했다.

“예, 독안룡이 세상의 중심을 가로막고 지나가는 모든 존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독안룡이요?”

“아, 그건 별명입니다. 한쪽 눈이 없어 그리 부릅니다. 용이란 원래 이름 없는 영물 아니겠습니까.”

서란은 난생처음 듣는 소리에 당황했다.

“독안룡이 세상의 중심에서 길을 막고 있다고요?”

“벌써 이천 년도 더 된 일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수백 년 전에는 비승을 시도하던 화신기 수사를 죽인 일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흉폭하네요!”

서란은 독안룡의 존재가 동대륙이나 서대륙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인계에서 화신기 수사를 죽이는 것이 가능한 존재는 여의주를 완성한 용뿐이었다.

승천 직전의 용이 작정하고 살육을 벌이면 화신기 수사라고 해도 살아서 도망갈 수 없었다.

왜 승천을 안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이대로 세상의 중심으로 향하는 건 자살 행위였다.

서란은 곧장 배를 돌렸다.

“몰랐으면 목숨이 위험할 뻔했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가 볼 게요.”

소소가 손을 흔들었다.

“언니, 잘 가!”

떠나려는 서란에게 아빠 심해거인이 말했다.

“이 정도로는 은혜를 다 갚을 수 없죠. 제가 괜찮은 무술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원래 다른 종족에게 유출해서는 안되지만, 이제는 상관없겠죠.”

아빠 심해거인이 전심술을 사용했다.

전심술은 특정 정보를 타인에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법술의 일종이었다.

참고로 서란도 동대륙에서 배웠다.

블루투스 파일 전송을 마친 서란이 물었다.

“이렇게 막 알려주면 벌 받는 거 아닌가요?”

“저희 종족은 이미 반쯤 망했습니다.”

서란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독안룡이?”

“아뇨, 저출산 문제로 그만...”

“아...”

정말 친숙한 사회 문제였다.

덕분에 서란도 금방 납득했다.

덤으로 소소가 심해거인의 마지막 핏줄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심해거인 가족과 헤어진 서란은 할 수 없이 배를 돌려서 동대륙으로 복귀했다.

서란, 세 칸 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