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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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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에 한 번 있는 미목대회.
참가자들이 대수림 표층부 전역에서 모여들었다.
미목대회가 열리는 태본곡은 오행인면목과 정원사들로 한창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예선전은 열흘에 걸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건 상위 오등까지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틀에 한 명.
한 치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기 위해, 참가자들은 여태까지 쌓아올린 결실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7일째 예선전, 정원사로 참가한 서란 역시 무대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굉장하네...”
가장 아름다운 나무를 뽑는 미목대회.
이런 종류의 대회에 참가하는 오행인면목들은 기본적으로 본인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강한 자기 확신이란, 흔히 더 큰 성취를 향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곤 했다.
미목대회 참가자들은 모두가 이 순간을 위해서 평생 동안 목피가 닳도록 노력해 왔다.
무용을 익히는 것도, 미모를 가꾸는 것도 무엇 하나 쉽고 편한 과정이 아니었다.
‘한 번 나가 볼까? 같은 어설픈 각오는 없었다.
그들은 오늘 이 자리에 목숨을 걸었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평생을 쏟는 건 고행이었다.
오직 고행자들만이 이런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삶을 불태웠기에 얻을 수 있는 찬란한 색채였다.
서란은 이 순간 깨달았다.
삶을 불태워, 태양처럼 빛났기에 일미목.
달처럼 빛났기에 월미목.
별처럼 빛났기에 성미목.
밤하늘 저 너머의 광체에 빗댄 미목대회의 상패 명칭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눈부신 광채를 내뿜던 참가자의 차례가 끝났다.
한 줌의 여력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불태운 참가자는 무대를 내려 가자마자 탈진했다.
그리고 곧장 다음 참가자가 무대에 올랐다.
옆에서 지켜만 봐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서란은 더 지켜보지 못하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기둥으로 형태를 잡고, 장막을 친 개인 대기실.
두꺼운 천을 걷고 들어서자 곧은 줄기가 보였다.
서란은 애써 태연한 표정과 어투로 물었다.
“곧은 줄기, 몸상태는 좀 나아졌어?”
곧은 줄기가 대답했다.
“잠을 설쳐서 조금 피곤했는데, 괜찮아졌어요.”
“다행이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 차례야. 머리에 얹은 장식은 어때? 춤출 때 거추장스럽지는 않겠어? 약간 정도는 지금도 조정할 수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해요. 정원사님이 잠도 안 자고 열심히 개량해 주셨잖아요. 이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으면 섬세한 배려가 느껴지거든요.”
“좋아, 그러면 기력은 어때? 내가 비옥토랑 영양제도 챙겨왔거든? 뿌리라도 잠깐 묻어 둘래?”
“아뇨,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요. 감사해요.”
서란도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현재 그녀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곧은 줄기는 속으로 같은 문구를 되뇌었다.
‘땅을 보지 마라. 몸을 곧게 펴라. 자신을 가져라. 땅을 보지 마라. 몸을 곧게 펴라. 자신을 가져라.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떨렸다.
온몸의 수액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은 줄기의 차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장막 너머에서 관계자가 말했다.
“302번 참가자, 무대 뒤에서 대기해 주세요.”
곧은 줄기는 외길을 따라 무대 뒤로 갔다.
여기부터는 정원사도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다.
정신을 뒤흔드는 긴장감도 최고조에 달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리깔리고, 무거운 장신구가 그녀를 짓눌렀다.
힘껏 다져 놓은 의지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죽어라 연습한 무용 동작마저 기억나지 않았다.
곧은 줄기의 차례가 왔다.
간신히 무대 위에 올랐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미 춤을 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미리 신청했던 반주가 흘러나왔다.
‘이래서는 안 돼! 최소한 부끄럽지 않도록...
곧은 줄기는 가루가 된 용기를 그러모았다.
그리고 땅을 기던 시선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멀리 관객석에 불타는 가지가 앉아 있었다.
극도로 짧은 찰나, 무수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여기에 있지? 자기 예선전은?
‘아, 나랑 예선전 날짜가 다르던가?
‘그렇지만, 뭘 위해서 목속성 예선전에?
곧은 줄기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타는 가지가 여기 있었다.
평생을 동경해 온 대상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녀가 바로 곧은 줄기의 태양이었으니까.
계속 되뇌이던 문구.
‘땅을 보지 마라. 몸을 곧게 펴라. 자신을 가져라.
오연한 시선, 곧은 자세, 그리고 자기 확신.
곧은 줄기는 이내 자신을 잊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발했다.
월광에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밝은 광채였다.
*****
서란이 정한 치장 방향성은 간단했다.
굵은 줄기와 가지란, 곧 체격적 우위와 같다.
실제로 곧은 줄기는 평균보다 높은 체고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운동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전면으로 내세우면 된다.
서란은 우선 곧은 줄기의 곁가지를 쳤다.
덥수룩하던 가지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머지는 석재 기둥을 중심으로 높이 엮어 올렸다.
위로 길쭉하게 솟은 잎사귀와 가지, 그 꼭대기에는 돌로 조각한 둥지와 인면조 조각상이 얹어졌다.
천년오행목 심사위원들은 곧은 줄기의 독특한 치장 양식에서 굉장한 파격성을 느꼈다.
가뜩이나 평균을 웃돌던 체고는 석재 장신구에 엮어 올린 가지 덕분에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과거부터 큰 키란 비범함의 상징이었다.
곧은 줄기는 마치 지상에 내려온 여신처럼 보였다.
힘찬 무용 동작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크고 길쭉한 줄기와 가지가 움직일 때마다 잔뜩 묶어 놓은 장식 천이 형형색색 휘날렸다.
남들이라면 진작에 중심을 잃었을 장신구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동작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소심함 속에 감춰진 눈부신 외모.
정원사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파격적 치장.
뿌리가 짓무르도록 연습한 무용 기본기.
그리고 동경하는 태양 곁에 서겠다는 열망.
그녀는 자기 전부를 불태우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곧은 줄기는 탈진한 상태로 관객석을 바라봤다.
남들처럼 불타는 가지도 박수를 치고 있었다.
7일째 예선전이 끝났다.
서란과 곧은 줄기는 돌아가서 죽은 듯이 잤다.
시간이 흘러 남은 예선전 일정도 모두 끝났다.
예선 참가자 곧은 줄기, 본선 진출.
그녀는 살벌한 경쟁률을 뚫고 살아남았다.
목속성 예선전 최종 등수는 일등이었다.
서란은 정말 기뻐했다.
“내가 그랬잖아, 너 예쁘다고! 곧은 줄기, 네가 올해 참가한 목영인면목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야! 예선전 일등이라니, 출발이 굉장히 좋아! 본선에서도 이대로만 가자! 일등까지, 일미목까지!”
서란은 일등이라도 맡겨 놓은 것처럼 말했다.
참고로 곧은 줄기가 미목대회 본선에서 높은 등수를 차지할수록 서란의 이득도 커졌다.
삼등에게 수여되는 천년오행목은 단 하나였지만, 이등에게는 각기 다른 속성 세 개였다.
만약 그녀가 일미목이 되기라도 하면 천년오행목 다섯 종류를 전부 받을 수 있었다.
서란은 화수목금토 다섯 가지, 오속성 천년오행목으로 만든 변신합체 거대인형을 꿈꿨다.
물론, 서란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
스물다섯 오행인면목이 선보인 놀라운 무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미모 점수와 무용 점수를 합산한 천년오행목 심사위원들이 미목대회 최종 순위를 발표했다.
곧은 줄기는 삼등이었다.
“목영인면목, 곧은 줄기. 삼등, 성미목!”
관객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새로운 성미목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꿈이 산산조각 난 서란만 혼자 중언부언했다.
“어라, 일등은? 내 화수목금토 천년오행목은?”
그러거나 말거나 대회 절차는 계속됐다.
“수영인면목, 흐르는 잎사귀. 이등, 월미목!”
일등은 저번 회차 대회와 동일했다.
“화영인면목, 불타는 가지. 일등, 일미목!”
대회 마지막 절차, 상패 수여식이 시작됐다.
일미목을 중심으로 좌우로 선 월미목과 성미목.
영예로운 칭호가 새겨진 상패가 전달됐다.
열광하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도중, 옆자리의 불타는 가지가 넌지시 말했다.
“너는 여전히 자세가 곧구나.”
오직 옆자리에게만 들릴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곧은 줄기는 분명히 들었다.
엄청난 전율이 줄기와 가지를 타고 내달렸다.
‘그 날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냥 예의상 한 말이 아니었어.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던 거야.
떨리는 음성으로 곧은 줄기가 물었다.
“저는 그때 당신이 봤던 별이 됐나요?”
“아니.”
대답을 듣고 충격받은 곧은 줄기에게, 불타는 가지는 어린 시절처럼 시원스레 웃으며 덧붙였다.
“너는 태양처럼 빛났어.”
미목대회가 끝났다.
*****
미목대회 다음날.
서란은 금방 기운을 차렸다.
우수한 회복 탄력성 덕분이었다.
애초에 삼등 성미목이 된 것도 기적이었다.
그래서 더는 아쉬워하지 않고 현재를 즐겼다.
서란은 천년토영목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분명히 목재건마는, 마치 점토처럼 부드러웠다.
중단전에 있는 토영근이 천년토영목과 감응했다.
천년토영목의 농밀한 토영기에 과할 정도로 심취한 서란에게 곧은 줄기가 물었다.
“내일이 남성 부문 미목대회 본선인데, 함께 보러 가실래요? 불타는 가지도 같이요.”
“나는 안 될 것 같아. 가 봐야 할 곳이 있거든.”
“어디를 가시나요?”
서란은 잔뜩 눌려 발갛게 변한 얼굴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갈 거야.”
“이렇게 급히요?”
“응, 외유가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더 있으면 정들어서 떠나기 힘들어질 것 같아.”
곧은 줄기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렇군요,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원사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영원히 변할 수 없었을 거예요.”
“내가 더 고맙지, 천년토영목도 얻었는데.”
서란과 곧은 줄기는 현격한 체구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서로를 끌어안았다.
“나중에라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서란이 대답했다.
“글쎄다, 먼 미래에는 어쩌면?”
“오행인면목은 수천 년을 살아요. 계속 기다릴 테니까, 반드시 다시 만나요.”
“응, 꼭 그러자.”
반 년이라는 짧은 인연을 끝으로, 서란과 곧은 줄기는 헤어졌다.
진실로 종족을 초월한 아름다운 우정.
정말로 멋진 광경이었다.
물론 ‘무명으로 미목대회에 첫 출전해서 성미목을 탄생시킨, 파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가지치기 및 치장 솜씨로 화제 몰이를 한 신규 정원사 류서란’을 찾아온 오행인면목 손님들은 당황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허름한 영업장 앞에는 팻말이 하나 서 있었다.
‘정원사 류서란, 오늘부로 폐업합니다.
물이 밀려 들어오는 상황에서 사공이 노를 안 젓고 나룻배에서 냅다 뛰어내려 버렸다.
참으로 인상적인 퇴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