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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에 한 번 있는 미목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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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대수림 표층부 전역에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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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가 열리는 태본곡은 오행인면목과 정원사들로 한창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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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전은 열흘에 걸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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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건 상위 오등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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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생각하면 이틀에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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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기 위해, 참가자들은 여태까지 쌓아올린 결실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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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째 예선전, 정원사로 참가한 서란 역시 무대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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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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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나무를 뽑는 미목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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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대회에 참가하는 오행인면목들은 기본적으로 본인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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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한 자기 확신이란, 흔히 더 큰 성취를 향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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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 참가자들은 모두가 이 순간을 위해서 평생 동안 목피가 닳도록 노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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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을 익히는 것도, 미모를 가꾸는 것도 무엇 하나 쉽고 편한 과정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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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나가 볼까?’ 같은 어설픈 각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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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오늘 이 자리에 목숨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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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목표를 위해 평생을 쏟는 건 고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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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고행자들만이 이런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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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불태웠기에 얻을 수 있는 찬란한 색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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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이 순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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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불태워, 태양처럼 빛났기에 일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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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처럼 빛났기에 월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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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빛났기에 성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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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저 너머의 광체에 빗댄 미목대회의 상패 명칭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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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광채를 내뿜던 참가자의 차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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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여력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불태운 참가자는 무대를 내려 가자마자 탈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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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장 다음 참가자가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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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지켜만 봐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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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더 지켜보지 못하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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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으로 형태를 잡고, 장막을 친 개인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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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천을 걷고 들어서자 곧은 줄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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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애써 태연한 표정과 어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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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 몸상태는 좀 나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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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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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설쳐서 조금 피곤했는데, 괜찮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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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 차례야. 머리에 얹은 장식은 어때? 춤출 때 거추장스럽지는 않겠어? 약간 정도는 지금도 조정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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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충분해요. 정원사님이 잠도 안 자고 열심히 개량해 주셨잖아요. 이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으면 섬세한 배려가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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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러면 기력은 어때? 내가 비옥토랑 영양제도 챙겨왔거든? 뿌리라도 잠깐 묻어 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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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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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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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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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녀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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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속으로 같은 문구를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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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지 마라. 몸을 곧게 펴라. 자신을 가져라. 땅을 보지 마라. 몸을 곧게 펴라. 자신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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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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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수액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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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은 줄기의 차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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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 너머에서 관계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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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번 참가자, 무대 뒤에서 대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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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외길을 따라 무대 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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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정원사도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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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뒤흔드는 긴장감도 최고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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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리깔리고, 무거운 장신구가 그녀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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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다져 놓은 의지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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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연습한 무용 동작마저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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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의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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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무대 위에 올랐지만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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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춤을 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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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신청했던 반주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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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안 돼! 최소한 부끄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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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가루가 된 용기를 그러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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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땅을 기던 시선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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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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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관객석에 불타는 가지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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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로 짧은 찰나, 무수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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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여기에 있지? 자기 예선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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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랑 예선전 날짜가 다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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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뭘 위해서 목속성 예선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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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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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르겠지만, 불타는 가지가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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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동경해 온 대상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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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로 곧은 줄기의 태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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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뇌이던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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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보지 마라. 몸을 곧게 펴라. 자신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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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한 시선, 곧은 자세, 그리고 자기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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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이내 자신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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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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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에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밝은 광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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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정한 치장 방향성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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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줄기와 가지란, 곧 체격적 우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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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곧은 줄기는 평균보다 높은 체고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운동성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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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부분을 전면으로 내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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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우선 곧은 줄기의 곁가지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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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수룩하던 가지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머지는 석재 기둥을 중심으로 높이 엮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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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길쭉하게 솟은 잎사귀와 가지, 그 꼭대기에는 돌로 조각한 둥지와 인면조 조각상이 얹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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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오행목 심사위원들은 곧은 줄기의 독특한 치장 양식에서 굉장한 파격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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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평균을 웃돌던 체고는 석재 장신구에 엮어 올린 가지 덕분에 한층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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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거부터 큰 키란 비범함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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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마치 지상에 내려온 여신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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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무용 동작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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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길쭉한 줄기와 가지가 움직일 때마다 잔뜩 묶어 놓은 장식 천이 형형색색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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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라면 진작에 중심을 잃었을 장신구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동작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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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함 속에 감춰진 눈부신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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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파격적 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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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짓무르도록 연습한 무용 기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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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경하는 태양 곁에 서겠다는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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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기 전부를 불태우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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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탈진한 상태로 관객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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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불타는 가지도 박수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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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째 예선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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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곧은 줄기는 돌아가서 죽은 듯이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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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남은 예선전 일정도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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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 참가자 곧은 줄기, 본선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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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살벌한 경쟁률을 뚫고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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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속성 예선전 최종 등수는 일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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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정말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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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잖아, 너 예쁘다고! 곧은 줄기, 네가 올해 참가한 목영인면목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야! 예선전 일등이라니, 출발이 굉장히 좋아! 본선에서도 이대로만 가자! 일등까지, 일미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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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일등이라도 맡겨 놓은 것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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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곧은 줄기가 미목대회 본선에서 높은 등수를 차지할수록 서란의 이득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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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에게 수여되는 천년오행목은 단 하나였지만, 이등에게는 각기 다른 속성 세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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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녀가 일미목이 되기라도 하면 천년오행목 다섯 종류를 전부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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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화수목금토 다섯 가지, 오속성 천년오행목으로 만든 변신합체 거대인형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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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란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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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오행인면목이 선보인 놀라운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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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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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 점수와 무용 점수를 합산한 천년오행목 심사위원들이 미목대회 최종 순위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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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삼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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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영인면목, 곧은 줄기. 삼등, 성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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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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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성미목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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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산산조각 난 서란만 혼자 중언부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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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일등은? 내 화수목금토 천년오행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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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대회 절차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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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인면목, 흐르는 잎사귀. 이등, 월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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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은 저번 회차 대회와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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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인면목, 불타는 가지. 일등, 일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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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마지막 절차, 상패 수여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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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목을 중심으로 좌우로 선 월미목과 성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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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예로운 칭호가 새겨진 상패가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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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하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도중, 옆자리의 불타는 가지가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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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전히 자세가 곧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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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옆자리에게만 들릴 작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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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은 줄기는 분명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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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전율이 줄기와 가지를 타고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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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냥 예의상 한 말이 아니었어.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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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음성으로 곧은 줄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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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당신이 봤던 별이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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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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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듣고 충격받은 곧은 줄기에게, 불타는 가지는 어린 시절처럼 시원스레 웃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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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태양처럼 빛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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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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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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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금방 기운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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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회복 탄력성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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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삼등 성미목이 된 것도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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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는 아쉬워하지 않고 현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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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천년토영목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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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목재건마는, 마치 점토처럼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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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전에 있는 토영근이 천년토영목과 감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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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토영목의 농밀한 토영기에 과할 정도로 심취한 서란에게 곧은 줄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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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남성 부문 미목대회 본선인데, 함께 보러 가실래요? 불타는 가지도 같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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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 될 것 같아. 가 봐야 할 곳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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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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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잔뜩 눌려 발갛게 변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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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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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급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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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외유가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더 있으면 정들어서 떠나기 힘들어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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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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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원사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영원히 변할 수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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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고맙지, 천년토영목도 얻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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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곧은 줄기는 현격한 체구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서로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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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라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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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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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먼 미래에는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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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은 수천 년을 살아요. 계속 기다릴 테니까, 반드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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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꼭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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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이라는 짧은 인연을 끝으로, 서란과 곧은 줄기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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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종족을 초월한 아름다운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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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멋진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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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무명으로 미목대회에 첫 출전해서 성미목을 탄생시킨, 파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가지치기 및 치장 솜씨로 화제 몰이를 한 신규 정원사 류서란’을 찾아온 오행인면목 손님들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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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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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영업장 앞에는 팻말이 하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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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류서란, 오늘부로 폐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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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밀려 들어오는 상황에서 사공이 노를 안 젓고 나룻배에서 냅다 뛰어내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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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인상적인 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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