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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접수는 순식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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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허름한 영업장으로 돌아온 서란과 곧은 줄기는 사이 좋게 앉아서 한담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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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는 가을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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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출전하는데 서로 서먹서먹하면 곤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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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나눈 결과, 곧은 줄기의 나이는 이백 살이 조금 넘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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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편하게 말을 놓으라며 곧은 줄기가 부탁했고, 서란도 흔쾌히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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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나이로 오 년 가까이 살아온 서란은 어느새 설정에 반쯤 잡아먹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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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의 어깨에 앉아있던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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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목대회는 평가 기준이 어떻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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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 점수와 무용 점수를 합산해서 순위를 결정해요. 심사위원은 속성별로 한 분씩 총 다섯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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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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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가 의아한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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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르셨나요? 정원사분들은 다들 아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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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원사 등록한 지 한 달도 안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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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초보자셨군요. 그런데 미목대회에는 갑자기 왜 참가하시는 건가요? 신규 정원사들을 위한 작은 대회도 많은데, 처음부터 이렇게 큰 대회는 부담스럽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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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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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토영목이 가지고 싶어서 참가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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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그래서 별이 되게 해준다고 광고를 하셨던 거군요. 삼등만 해도 천년오행목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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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못 알아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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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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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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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지는 단계라서 대화가 종종 끊기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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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곧은 줄기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새로운 화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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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찾은 건 서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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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목대회에는 무용 점수도 있다고 했잖아. 혹시, 춤은 출 줄 알아? 예전에 배웠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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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도 곧장 화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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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백 년 전부터 틈틈이 연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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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네, 백 년 전이면 저번 미목대회가 열린 해부터 준비한 거잖아. 올해에 출전 안 했으면 엄청 아쉬울 뻔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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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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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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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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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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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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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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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춤 한번 보여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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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건 좀 부끄러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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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대회 나가면 무대 위에서 춰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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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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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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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쭈뼛거리며 일어나더니, 서란을 땅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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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춤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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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반주 무용이 끝난 뒤, 서란이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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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잘한다! 연습 진짜 많이 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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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보여주는 건 처음인데, 괜찮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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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정말 예쁘더라. 그런데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지고 춤췄으면 좋겠어. 약간 주눅 든 표정이더라. 그거 말고는 완벽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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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그렇죠. 무용 선생님도 매번 그러셨는데,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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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 내가 예쁘게 꾸며 줄게. 장식도, 가지치기도 나한테만 맡겨. 너는 일등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용 연습에만 힘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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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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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이요? 우리 목표는 삼등이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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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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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 전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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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째서 별로 만들어 드린다는 광고 문구를 내세우셨나요? 삼등이 목표라는 뜻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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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무슨 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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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서란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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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참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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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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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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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마다 가장 아름다운 나무를 뽑는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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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에 따라서 남성 부문과 여성 부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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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속성끼리 치르는 예선전을 거치고, 예선 상위 오등까지 본선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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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에 모인 스물다섯 오행인면목들끼리 미모와 무용으로 일등, 이등, 삼등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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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은 태양을 상징하는 일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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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은 달을 상징하는 월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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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은 별을 상징하는 성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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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 관련으로 ‘별이 되었다.’라는 건 흔히 ‘삼등을 차지했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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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이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자신에게 쏟아졌던 무관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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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터져라 소리쳤던 광고 문구는 당신을 삼등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괴상한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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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식이 있는 오행인면목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외침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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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배운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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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번 미목대회 일미목은 누구였어? 어떻게 꾸밀지 궁리할 때 참고하게 알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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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일미목은 불타는 가지라는 화영인면목이었어요. 무용 실력도, 꾸민 미모도 뛰어났죠. 최연소 일미목인데, 정말로 굉장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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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가지? 그게 이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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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맞아요. 화영인면목이던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는데, 항상 자랑스러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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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자세히 알고 있네, 혹시 둘이 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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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딱히 그런 사이는 아니고... 그냥 어쩌다 얘기를 나눈 적이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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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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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침묵이 오고, 화제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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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어두워질 때까지 얘기하다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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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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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곧은 줄기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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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그녀는 어릴 적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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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치고는 굵은 줄기와 가지, 그리고 항상 주눅 들어 있는 표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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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굉장히 소심한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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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말실수를 지나치게 염려하느라 말수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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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평생 외롭게 살 팔자라며, 지레 포기한 채 예쁘고 자신만만한 또래들을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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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가지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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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활 타오르는 아름다운 가지, 자신과 다르게 매끄러운 줄기,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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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라는 어린 나이 때문에 미목대회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태양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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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미목과 자신은 결코 같은 자리에 설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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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연히 그럴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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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추종자를 몰고 다니던 불타는 가지와 언제나 혼자 있는 모습만 보이던 곧은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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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는 어쩌다 한자리에 단 둘이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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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곧은 줄기는 멍하니 불타는 가지를 바라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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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가지가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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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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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곧장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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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안해... 네가 너무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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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가지는 시원스레 웃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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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게 봐줘서 고마워. 너도 정말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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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곧은 줄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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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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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은 불타는 가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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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가 참 곧아, 별처럼 빛날 자질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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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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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전후에 있었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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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타는 가지와 나눈 대화만은 백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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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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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끝나고, 곧은 줄기가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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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본 불타는 가지의 옛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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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백 살이 되자마자 미목대회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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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압도적인 점수 차로 일미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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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미모와 아름다운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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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에서 일등을 한 뒤 보여준 의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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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태양처럼 빛나는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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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이 곧은 줄기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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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끝나고 곧장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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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 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한 연습은 곧은 줄기를 훌륭한 무용수로 만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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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가지에 대한 동경이 그녀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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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막 한 발짝을 내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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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가지처럼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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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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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별이 될 자질이 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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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저 예의상 칭찬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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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에 나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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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나갔다가 비웃음거리만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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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변화를 바랐지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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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생각이 복잡해진 그녀는 산책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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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밤 거리를 걸으며 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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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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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은 줄기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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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보름달 아래, 자기와 함께 미목대회에 참가할 정원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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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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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조명 삼아 점토를 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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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잠에서 깬 곧은 줄기를 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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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 나 때문에 시끄러워서 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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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마침 잠이 안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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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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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방금 전까지 하던 일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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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로 된 다리, 줄기와 가지, 그리고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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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점토는 곧은 줄기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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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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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밤중에 뭘 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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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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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있었어.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는 곧고 튼튼한 줄기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게 좋을 것 같아. 너는 단점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말 멋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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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잠도 안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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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도저히 잘 수가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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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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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떠나는 곧은 줄기에게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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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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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산책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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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한참 동안 멍하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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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서란과 만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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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시선을 내리깔고 걷다가, ‘당신을 별로 만들어 드립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던 정원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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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라는 문구를 보고 저도 모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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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미목대회에 참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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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고 싶다는, 별이 되고 싶다는 갈망 덕분에 간신히 용기를 내서 건넨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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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꺼내고 곧장 후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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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면 미목대회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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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아까 본 서란의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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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토를 주무르던 서란의 얼굴은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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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믿음은 본인을 향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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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곧은 줄기를 향한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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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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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불타는 가지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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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가 참 곧아, 별처럼 빛날 자질이 보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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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만난 서란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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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가 꼿꼿한 게 정말 나무다워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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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둘 다 같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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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치고는 굵은 줄기와 가지, 소심한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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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녀에게 믿음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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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의 내면에서 열망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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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별이 될 수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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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칭찬이 그저 겉치레였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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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해서 비웃음거리가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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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줄기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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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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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빛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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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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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에 가려졌지만, 밤하늘에도 별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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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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