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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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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접수는 순식간에 끝났다.
이후에 허름한 영업장으로 돌아온 서란과 곧은 줄기는 사이 좋게 앉아서 한담을 나눴다.
미목대회는 가을까지 이어진다.
함께 출전하는데 서로 서먹서먹하면 곤란했다.
얘기를 나눈 결과, 곧은 줄기의 나이는 이백 살이 조금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편하게 말을 놓으라며 곧은 줄기가 부탁했고, 서란도 흔쾌히 수락했다.
가짜 나이로 오 년 가까이 살아온 서란은 어느새 설정에 반쯤 잡아먹힌 상태였다.
곧은 줄기의 어깨에 앉아있던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미목대회는 평가 기준이 어떻게 돼?”
“미모 점수와 무용 점수를 합산해서 순위를 결정해요. 심사위원은 속성별로 한 분씩 총 다섯이죠.”
“아, 그랬구나.”
곧은 줄기가 의아한 듯 물었다.
“혹시 모르셨나요? 정원사분들은 다들 아시던데.”
“나 정원사 등록한 지 한 달도 안 됐어.”
“말 그대로 초보자셨군요. 그런데 미목대회에는 갑자기 왜 참가하시는 건가요? 신규 정원사들을 위한 작은 대회도 많은데, 처음부터 이렇게 큰 대회는 부담스럽지 않으신가요?”
서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천년토영목이 가지고 싶어서 참가하게 됐어.”
“어쩐지, 그래서 별이 되게 해준다고 광고를 하셨던 거군요. 삼등만 해도 천년오행목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으니까.”
서란은 못 알아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그리고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친해지는 단계라서 대화가 종종 끊기고는 했다.
서란과 곧은 줄기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새로운 화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찾은 건 서란이었다.
“그런데 미목대회에는 무용 점수도 있다고 했잖아. 혹시, 춤은 출 줄 알아? 예전에 배웠다던가.”
곧은 줄기도 곧장 화제를 받았다.
“예, 백 년 전부터 틈틈이 연습했어요.”
“대단하네, 백 년 전이면 저번 미목대회가 열린 해부터 준비한 거잖아. 올해에 출전 안 했으면 엄청 아쉬울 뻔했겠다.”
곧은 줄기가 웃었다.
“헤헤, 그러게요.”
서란도 웃었다.
“헤헤.”
다시 한 번 침묵.
서란이 다시 물었다.
“혹시 춤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어, 그건 좀 부끄러운데요.”
“어차피 대회 나가면 무대 위에서 춰야 하잖아.”
“진짜 그러네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곧은 줄기는 쭈뼛거리며 일어나더니, 서란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춤추기 시작했다.
무반주 무용이 끝난 뒤, 서란이 박수를 쳤다.
“와, 잘한다! 연습 진짜 많이 했나 봐?”
“남에게 보여주는 건 처음인데, 괜찮았나요?”
“응, 정말 예쁘더라. 그런데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지고 춤췄으면 좋겠어. 약간 주눅 든 표정이더라. 그거 말고는 완벽했어.”
“자신감, 그렇죠. 무용 선생님도 매번 그러셨는데,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되네요.”
“걱정하지 마, 내가 예쁘게 꾸며 줄게. 장식도, 가지치기도 나한테만 맡겨. 너는 일등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용 연습에만 힘을 써.”
곧은 줄기가 물었다.
“일등이요? 우리 목표는 삼등이 아니었나요?”
서란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삼등? 전혀 아닌데?”
“그러면 어째서 별로 만들어 드린다는 광고 문구를 내세우셨나요? 삼등이 목표라는 뜻 아니었나요?”
“별은 무슨 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거야?”
곧은 줄기는 서란의 표정을 보고 깨달았다.
이 사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참가했구나.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미목대회.
백 년마다 가장 아름다운 나무를 뽑는 대회.
성별에 따라서 남성 부문과 여성 부문이 있다.
같은 속성끼리 치르는 예선전을 거치고, 예선 상위 오등까지 본선에 진출한다.
본선에 모인 스물다섯 오행인면목들끼리 미모와 무용으로 일등, 이등, 삼등을 가린다.
일등은 태양을 상징하는 일미목.
이등은 달을 상징하는 월미목.
삼등은 별을 상징하는 성미목.
미목대회 관련으로 ‘별이 되었다.’라는 건 흔히 ‘삼등을 차지했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구였다.
서란은 이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자신에게 쏟아졌던 무관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목이 터져라 소리쳤던 광고 문구는 당신을 삼등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괴상한 의미였다.
관련 지식이 있는 오행인면목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외침이었던 셈이다.
또 하나 배운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저번 미목대회 일미목은 누구였어? 어떻게 꾸밀지 궁리할 때 참고하게 알려 줘.”
“전대 일미목은 불타는 가지라는 화영인면목이었어요. 무용 실력도, 꾸민 미모도 뛰어났죠. 최연소 일미목인데, 정말로 굉장하지 않나요?”
“불타는 가지? 그게 이름이야?”
“예, 맞아요. 화영인면목이던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는데, 항상 자랑스러워 했어요.”
“그래? 자세히 알고 있네, 혹시 둘이 친해?”
“아뇨, 딱히 그런 사이는 아니고... 그냥 어쩌다 얘기를 나눈 적이 있을 뿐이에요.”
“그렇구나.”
다시 침묵이 오고, 화제가 변했다.
둘은 어두워질 때까지 얘기하다가 잠에 들었다.
*****
그날 밤, 곧은 줄기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녀는 어릴 적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자 치고는 굵은 줄기와 가지, 그리고 항상 주눅 들어 있는 표정까지.
곧은 줄기는 굉장히 소심한 나무였다.
또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말실수를 지나치게 염려하느라 말수도 적었다.
자신은 평생 외롭게 살 팔자라며, 지레 포기한 채 예쁘고 자신만만한 또래들을 부러워했다.
불타는 가지도 그중 하나였다.
활활 타오르는 아름다운 가지, 자신과 다르게 매끄러운 줄기,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
오십이라는 어린 나이 때문에 미목대회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태양처럼 빛났다.
저런 미목과 자신은 결코 같은 자리에 설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하지만 우연히 그럴 기회가 생겼다.
항상 추종자를 몰고 다니던 불타는 가지와 언제나 혼자 있는 모습만 보이던 곧은 줄기.
두 나무는 어쩌다 한자리에 단 둘이 남게 됐다.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곧은 줄기는 멍하니 불타는 가지를 바라봤었다.
불타는 가지가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왜 그러니?
곧은 줄기는 곧장 사과했다.
‘미, 미안해... 네가 너무 예뻐서...
불타는 가지는 시원스레 웃더니 말했다.
‘그래? 좋게 봐줘서 고마워. 너도 정말 예뻐.
당황한 곧은 줄기가 물었다.
‘어, 어디가?
질문을 받은 불타는 가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세가 참 곧아, 별처럼 빛날 자질이 보여.
‘고, 고마워...
대화 전후에 있었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불타는 가지와 나눈 대화만은 백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곧은 줄기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꿈이 끝나고, 곧은 줄기가 잠에서 깨어났다.
어릴 적 본 불타는 가지의 옛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백 살이 되자마자 미목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점수 차로 일미목이 되었다.
눈부신 미모와 아름다운 춤사위.
미목대회에서 일등을 한 뒤 보여준 의연함.
그야말로 태양처럼 빛나는 나무였다.
그 광경이 곧은 줄기를 사로잡았다.
대회가 끝나고 곧장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 백 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한 연습은 곧은 줄기를 훌륭한 무용수로 만들어 줬다.
불타는 가지에 대한 동경이 그녀를 바꿨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발짝을 내딛지 못했다.
불타는 가지처럼 되고 싶어!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를 보고 별이 될 자질이 있다고 했어!
혹시 그저 예의상 칭찬했던 건 아닐까?
미목대회에 나가고 싶어!
괜히 나갔다가 비웃음거리만 되는 건 아닐까?
곧은 줄기는 변화를 바랐지만, 두려웠다.
결국 생각이 복잡해진 그녀는 산책을 나갔다.
적막한 밤 거리를 걸으며 쉬고 싶었다.
거대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리고 곧은 줄기는 봤다.
환한 보름달 아래, 자기와 함께 미목대회에 참가할 정원사가 보였다.
서란은 늦은 시간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달빛을 조명 삼아 점토를 만지고 있었다.
서란이 잠에서 깬 곧은 줄기를 보고 말했다.
“아, 혹시 나 때문에 시끄러워서 깼어?”
“아뇨, 마침 잠이 안 와서...”
“난 또, 다행이다.”
서란은 방금 전까지 하던 일을 계속했다.
뿌리로 된 다리, 줄기와 가지, 그리고 얼굴.
가까이서 본 점토는 곧은 줄기를 닮아 있었다.
곧은 줄기가 물었다.
“이런 한밤중에 뭘 하고 계셨나요?”
서란이 대답했다.
“너를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있었어.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는 곧고 튼튼한 줄기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게 좋을 것 같아. 너는 단점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말 멋지거든.”
“그래서 잠도 안 자고?”
“응, 도저히 잘 수가 없더라고.”
“그랬군요.”
자리를 떠나는 곧은 줄기에게 서란이 물었다.
“어디 가?”
“잠깐 산책을 좀...”
곧은 줄기는 한참 동안 멍하니 걸었다.
그녀가 서란과 만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평소처럼 시선을 내리깔고 걷다가, ‘당신을 별로 만들어 드립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던 정원사가 눈에 들어왔다.
별이라는 문구를 보고 저도 모르게 물었다.
‘혹시, 미목대회에 참가하시나요?
변하고 싶다는, 별이 되고 싶다는 갈망 덕분에 간신히 용기를 내서 건넨 물음이었다.
말을 꺼내고 곧장 후회하기도 했다.
서란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면 미목대회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곧은 줄기는 아까 본 서란의 얼굴을 떠올렸다.
점토를 주무르던 서란의 얼굴은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본인을 향한 게 아니었다.
그건 곧은 줄기를 향한 확신이었다.
곧은 줄기는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과거, 불타는 가지는 이렇게 말했다.
‘자세가 참 곧아, 별처럼 빛날 자질이 보여.’라고.
최근에 만난 서란은 이렇게 말했다.
‘줄기가 꼿꼿한 게 정말 나무다워요!’라고.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둘 다 같은 말이었다.
여자 치고는 굵은 줄기와 가지, 소심한 성격.
곧은 줄기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녀에게 믿음을 가졌다.
곧은 줄기의 내면에서 열망이 피어올랐다.
끝내 별이 될 수 없을지라도.
그들의 칭찬이 그저 겉치레였을지라도.
실수를 해서 비웃음거리가 될지라도.
곧은 줄기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기로 했다.
변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빛나기 위해서.
별이 되기 위해서.
월광에 가려졌지만, 밤하늘에도 별은 있었다.
예선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