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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은 인형술이 굉장히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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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그걸 제외한 나머지가 대부분 도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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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배움의 거리에서 인형술 강의만 주구장창 들었던 주된 이유는 본인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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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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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 오행인면목들이 너무 잘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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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은 무작위 속성을 지닌 채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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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영기를 타고나면 화영인면목, 목영기를 타고나면 목영인면목, 대충 이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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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 내에 다섯 속성 영목이 모두 존재한다고 해서 명칭이 오행인면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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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들은 미용과 건강을 위해서 종종 가지치기를 하곤 했는데, 그 부산물이 바로 오행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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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백 년 이상이면 백년오행목, 천 년 이상이면 천년오행목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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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탐냈던 천년토영목은, 천 년 넘게 산 토영인면목이 잘라낸 곁가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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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 표층부를 지배하는 거대 영목들이 산수 집단의 출입을 막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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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크고 둔한 나무 종족의 손으로는 만족스러운 가지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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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들에게는 인간 정원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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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와 이발하는 손님의 관계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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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들은 만족스럽게 가지치기를 끝내고,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온 곁가지들을 정원사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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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영목 입장에서는 곁가지였지만, 사람이 보기에는 통나무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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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도, 오행인면목도 행복한 공생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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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중에 유통된 오행목은 대부분 인형을 제작할 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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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재료가 목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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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을 생물로 만드는 게 인형술의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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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생물의 일부였던 목재야말로 최고의 인형 재료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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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오행인면목의 목재는 어떤 속성의 법력과 만나도 반발하지 않고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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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주제에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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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법력은 화영목을, 정금법력은 금영목을 사용하면 효율 감소 없이 인형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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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이라는 법술에는 순수 법술적 특징과 순수 법기적 특징이 혼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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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형이란 만드는 인형술사의 실력이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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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재료의 품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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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동대륙에서 인형술이 주류가 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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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과 범용성, 심지어 한계점까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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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을 안 쓰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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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여타 법술과 법기 따위는 대부분 사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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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술사는 점차 증가했고, 너도나도 오행목을 차지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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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비극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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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 고약한 어떤 거대문파가 문제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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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한 가지치기가 아니라, 거대 영목 멱따기를 통해서 오행목의 대량 확보를 시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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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행인면목을 죽이고, 해당 문파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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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잔하게 가지치기를 왜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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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뎅강 쳐버리면 오행목이 복사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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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빨리 해라, 재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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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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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통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나도 땅을 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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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옆에서 보니까 굉장히 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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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거대문파 연합이 대수림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사상 초유의 비극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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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 그대로 대자연과 싸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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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가득한 고위 법술을 무더기로 얻어맞고 고위계 수사들조차 파리목숨처럼 죽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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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의 주인된 입장에서는 희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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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들은 방어 전쟁에서 완승한 뒤, 수도문파를 모조리 대수림 밖으로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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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비실비실한 산수들은 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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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해 줄 정원사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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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본곡이라는 중립 도시가 탄생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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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일단 예술의 거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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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들이 모여 사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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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을 하며 파트너를 물색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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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조합에 가서 영업 신고를 하자, 접수 업무를 보던 조합원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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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조합 정식 정원사로 등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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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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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입하시면 광고비 지원과 임대료 할인 혜택도 적용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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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하면 가지치기 보상을 전부 경매장에 우선 매각해야만 하는 조항도 있잖아요.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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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인형 재료가 필요해서 정원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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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조합 혜택이 아무리 좋아도 오행목을 경매장에 넘겨야하는 조건이라면 수락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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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란은 비조합원 정원사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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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업장을 마련하기 위해서 담당자에게 가자마자 사회의 쓴맛을 톡톡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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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지는 조합원에게만 허용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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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건물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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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도 조합원 전용 임대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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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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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으로 가입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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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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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강사 생활로 많은 부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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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합원이 아닌 탓에 번화가 대신 인적이 드문 골목 안쪽에 영업장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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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무리 많아도 허가가 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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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 광고를 신청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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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광고판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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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설치 담당자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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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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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러면 중간 크기는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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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간판 정도는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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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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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조합에 가입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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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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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조합 녀석들은 굉장히 끈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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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문파의 후원으로 유지되는 이 집단은 돈 주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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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를 계속 조합원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서 경매장에 넘기는 오행목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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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조합은 말로만 산수 집단이지, 사실상 거대문파의 산하 기관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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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 출입이 금지된 거대문파도 이들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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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자본력으로 예술의 거리 주요 지점을 독차지한 뒤, 차별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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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들은 이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어서 더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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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란은 입간판 하나만 겨우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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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널빤지로 만든 허접한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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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옐로카드가 마구마구 누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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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영업장까지 가면서 속으로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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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보드게임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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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하나 통째로 차지하면 통행료 두 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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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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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면서 허름한 영업장을 정리하고, 입간판에 광고 문구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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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별로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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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정원사 류서란이 예술의 거리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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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누구 하나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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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마감까지 고작 열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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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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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문구가 적힌 조그만 팻말 하나 들고 번화한 거리로 가서 홍보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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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비행 광고가 금지된 탓에 작은 키를 보완하려고 팻말을 번쩍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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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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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있는 바오밥나무보다 몇 배 이상 거대한 오행인면목들에게는 서란이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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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코끼리 귀에는 전혀 안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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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광고판만 내걸 수 있었다면, 이런 차가운 무관심을 겪을 일도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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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눈 오는 날, 거리를 방황하던 성냥팔이 소녀의 심정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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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점차 시무룩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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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만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사람은, 관심이 없으면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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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울리던 목소리도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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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누군가 서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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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미목대회에 참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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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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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뿌리로 된 두꺼운 두 다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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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뒤로 젖힐수록 줄기, 팔, 얼굴과 머리 위로 자란 풍성한 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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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나무 거인, 오행인면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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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소심해 보이는 얼굴로 우물쭈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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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혹시 아니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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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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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참가자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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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나무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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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마친 서란이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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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행인면목은 입만 우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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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냥 서란이 먼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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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에 참가하실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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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들릴까 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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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상대에게도 들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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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 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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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돌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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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죄송합니다. 방금 한 질문은 잊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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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떠나가려는 오행인면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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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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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은 또 시키는 대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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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목대회에 참가하고 싶으신 거 아닌가요?!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와 함께 대회에 참가합시다! 저도 아직 짝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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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말을 고르던 오행인면목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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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원래는 마음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영 자신도 없고, 주제 넘은 짓 같아서요. 아무튼 귀찮게 해서 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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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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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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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줄기나 가지도 굵고, 아무튼 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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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충분히 멋진 나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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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오행인면목의 미의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기 나름대로 솔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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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있는 거대 영목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멋진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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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들은 나무 거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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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어떤 점이 멋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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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즉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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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가 꼿꼿한 게 정말 나무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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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대답을 듣고 굉장히 동요하던 오행인면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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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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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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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이 한 번 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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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문에 당신까지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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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저도 초보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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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서란의 정원사 경력은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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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이 발견되기 전에 심심풀이로 잠깐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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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참가 신청부터 하고 연습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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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고민하던 오행인면목은 결심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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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함께 미목대회에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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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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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통성명부터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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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곧은 줄기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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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류서란이에요!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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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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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인면목이 작은 손짓으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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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손인사 대신 팻말을 힘차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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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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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별로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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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정원사와 소심한 나무는 짝꿍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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