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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과 서대륙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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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를 사이에 둔, 두 대륙을 횡단하는 건 정말 험난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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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원양 항해 자체가 반쯤 자살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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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육지가 보이는 곳까지만, 이게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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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몇 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항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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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인지를 초월한 규모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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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콜롬버스는 신대륙 찾겠다고 두 달 보름 항해했다가 선상 반란을 겪을 뻔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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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겁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바다 위에 드리워져 있던 미지의 장막도 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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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참지 못하는, 용감한 탐험가들의 희생으로 쌓아올린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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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찾은 해로를 안전한 바다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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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준비와 적절한 수행, 그리고 강인한 의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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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만 있다면 바다란 더 이상 세계를 나누는 높디높은 장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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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분열된 사대륙을 묶어 주는 연결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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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기 위해 틈틈이 바다 관련된 강의를 들을 때마다, 서란은 매번 같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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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주 여행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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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기간 항해, 머나먼 목적지, 텅 빈 공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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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바다는 닮은 점이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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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생각도 그쪽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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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륙에 편지를 보내기 위한 수단을 궁리하던 서란이 로켓을 떠올린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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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 로켓에 편지를 담아서 서쪽으로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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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표류된 사람이 유리병 안에 편지를 넣고 망망대해로 던지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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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대륙 간 로켓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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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성공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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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연료가 바닥날 수도, 비행 요수나 폭풍우를 만나서 격추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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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나치게 대범해진 서란의 사고 방식은 이 정도 난관에 좌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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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이 낮으면 물량공세를 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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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태본곡을 잠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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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장 동대륙 최서단으로 날아가서 어떤 바위섬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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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방에는 수도문파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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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지난 일 년 동안 태본곡에서 배운 인형술 관련 지식을 총동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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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거리를 생각하면 수많은 기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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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화로 무게를 줄이고, 추진 기관 연비를 개선하고, 소량의 자가 충전 기능까지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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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죽순 로켓의 크기는 무릎 높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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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서대륙으로 보낼 물건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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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장 서쪽으로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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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넣고, 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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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일련의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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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에 익숙해질수록 양산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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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래에는 몇 호흡만에 하나씩 발사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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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로 사용된 바위섬은 갈수록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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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도 어느새 끝나고,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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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망망대해로 로켓 쏘는 것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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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섬을 전부 깎아서 없애버린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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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하나는 도착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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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태본곡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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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는 전했으니, 공부를 재개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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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 로켓들은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며 셀 수 없는 고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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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 기관 오작동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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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인 법력이 고갈된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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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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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를 만난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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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에 직격해버린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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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요수와 충돌한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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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 빨려들어간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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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용의 손아귀에 붙잡힌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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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력에 휘말린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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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소수의 로켓만이 서쪽 바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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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끝내 육지에 도착한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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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다 된 로켓들이 우수수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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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은 계속해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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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이 깊어질수록 사방은 점차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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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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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빛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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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어둠을 밝히는 불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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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 산호로 이루어진 웅장한 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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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살고 신앙에 죽는 어인족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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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인 교단의 심해 본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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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정기 순례를 떠나려던 어인족 무리 위로 석재로 만든 이상한 원통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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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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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를 얻어맞은 일등 신도, 홍린어가 정체불명의 해양쓰레기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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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성지에서 본 죽순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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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던 와중, 돌연 원통이 반으로 쪼개지며 구슬을 하나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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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린어는 구슬을 유심히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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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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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법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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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삼아 법력을 불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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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대뜸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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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공녀, 이웃나라로 끌려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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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동쪽으로 멀리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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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떠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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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온 마차는 부서진 지 오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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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기다리는 서쪽이 그리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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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공녀, 고향으로 발길을 내딛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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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린어는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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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모신님의 음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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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의 정체는 서란이 만든 인형 부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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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력을 주입하면 녹음된 소리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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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명명하자면, ‘류서란의 골든 레코드’ 정도가 적절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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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대신 노래를 선택한 건 보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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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다른 사람이 주워서 가사를 확인해도 제대로 된 의미 파악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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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 제작 방법은 인형술 강의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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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서란이 작사, 작곡한 신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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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는 공물로써 담청에게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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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내용을 확인한 뒤 수뇌부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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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문 수뇌부가 또 소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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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이 넘는 결단기 수사가 모인 조용한 공간, 선명하게 울리던 서란의 자작곡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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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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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는 어렵지 않게 숨겨진 전언을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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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에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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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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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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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들어보니 돌아오는 중인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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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해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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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그렇다면 몇 년 이내로 돌아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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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소식을 전했다면, 지금은 반 정도 왔을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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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좀 안심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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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문 수뇌부는 크게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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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마지막 부분을 ‘지금 서대륙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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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란이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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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수미상관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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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아직도 태본곡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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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한 뒤, 서란(26세)은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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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까지만 공부하고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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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인형술을 오죽문에게 선물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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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사겸사 영석도 좀 벌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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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 서란(27세)은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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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공부하면 뭔가 보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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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탐험대 투자도 성공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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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환향해서 오죽문에 보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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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봄, 서란(28세)이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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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루해. 영 들을 만한 강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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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진을 밟고 날아와서 올해로 오 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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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본곡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인형술 강의만을 찾아서 배움의 거리를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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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하루에 강의를 일곱 개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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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배울 수 있는 지식은 벌써 모조리 습득해버린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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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극심한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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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숨겨진 인형술 비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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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예시로는 동대륙 거대문파들이 대대로 지켜 온 비전 지식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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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지인은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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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란은 할 일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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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기 강의도 옛날에 때려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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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투자 대성공 덕분에 알량한 노동 소득 따위는 필요가 없어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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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기기 수사들이 울부짖든 말든 영석 갑부가 된 서란은 손톱만큼도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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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오직 공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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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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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변하든 말든 태본곡에 틀어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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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여기가 고향처럼 느껴질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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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인형술 실력은 수직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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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던 심화편까지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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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술 사용이 가능한 인형조차 제작할 수 있는, 진정한 인형술사가 됐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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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빈둥 놀다가 문득 오죽문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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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만 들렀다가 집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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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산더미 같은 영석을 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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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막대한 물량을 전부 들고 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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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하게 경매장에서 보다 작고 비싼, 고가치 소형 품목으로 바꿔 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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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림 밖에 위치한 묘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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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룡문이 지배하는 속세왕국으로, 동대륙 최대 규모의 경매장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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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단원표가 만난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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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최고 등급 경매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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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을 가려 받는 곳이지만, 태본곡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강사는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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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된 좌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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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거대문파 소속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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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결단기, 간혹 원영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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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문파의 대리인으로서 참석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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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에 열중하는 사이, 경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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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물건은 단약이 든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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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하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수명도 몇 년 정도 늘려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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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이 굉장히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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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가장 먼저 수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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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도자들도 계속해서 가격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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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던 입찰 경쟁 끝에 단약은 어떤 거대문파의 대리인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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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다소 아쉬웠지만, 금방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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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첫 번째 물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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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나올 더 좋은 경매 물품을 위해서 자금을 아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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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는 계속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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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영수의 알, 천 년 이상 된 영초, 대수림 심층부에서 가져온 고대 유물, 최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법기, 우연히 인계에 떨어진 법보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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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란은 눈으로만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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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돈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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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세 번째 경매 물건은 천년토영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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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주제에 토영기를 머금고 있어서 토속성 인형의 주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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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에게 너무 절실한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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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곧장 입찰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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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찰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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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전재산마저 지불할 각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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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매장에서는 돈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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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토영목의 주인은 이번에도 거대문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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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낙찰가는 서란의 전재산보다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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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무리 부유해도 수천 년 된 거대문파의 재력에는 당해낼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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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경매가 끝날 때까지 서란은 빈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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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쓸쓸하게 경매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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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문파들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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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천년토영목이 너무 가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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