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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출입 금지 처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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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현장 주위를 얼쩡거린 지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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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마침내 발굴 현장 임시 보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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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그렇고 사실상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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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 입장에서도 별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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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울한 얼굴과 깊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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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온몸으로 자기 의사를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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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고대 유적이 구경하고 싶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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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은 매일매일 두려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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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어엿한 서대륙 수도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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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 공사 도중, 서란이 보여준 지표면 뒤집기는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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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산요지선공이라는 가공할 공법을 대성한 천재, 서란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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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류서란이 품고 있는 호기심과 인내심 중 더 거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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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서란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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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고대 유적을 구경하겠다고 지표면과 고대 유적을 함께 들어올리기라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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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남들 몰래 땅파고 내려가서 누구보다 먼저 유적지 내부로 진입하기라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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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발굴할 때는 지켜야할 절차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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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표면을 조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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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을 덮고 있는 토양 자체도 탐구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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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대충 파묻은 쓰레기도 역사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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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일부 구역만 우선적으로 발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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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얻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고대 유적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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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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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란이 지표면을 뒤집어 버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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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토양과 유물들이 엉망진창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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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의 순서와 두께, 다양한 토양의 성분, 유물의 분포 등 모든 고고학적 자료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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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연원을 지닌 다른 유적을 못 찾으면 그 시대와 관련된 모든 연구가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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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부주의한 행동 하나 때문에 인류 역사에 영원한 공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고학자들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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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발굴 대장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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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서란에게 임시로 출입 자격을 부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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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두고 직접 감시하겠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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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대장은 서란에게 발굴 현장에서 지켜야하는 주의 사항과 행동 규칙을 속성으로 주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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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대상에 해당하는 범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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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발굴 보조, 류서란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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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으면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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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과 접촉하기 전 필수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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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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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속 담당자에게 보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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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속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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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 담당자에게 보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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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구역 담당자마저 부재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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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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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담당자의 허락을 받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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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만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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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현장은 눈으로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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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강조, 또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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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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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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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현장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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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도 어느정도 안심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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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고란 원래 이런 순간에 찾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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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발굴 도중, 어떤 고고학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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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 그림자 때문에 어두워서 그러는데 대여섯 걸음만 물러나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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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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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곧이곧대로 여섯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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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불운은 고고학자의 부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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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꼼짝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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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시키는대로 뒷걸음질치다가 뭘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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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불운은 고대 구조물의 높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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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만 살짝 깎았는데 벌써 상층부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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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밟은 건 옥상에 있던 환기구 덮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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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불운은 서란의 작은 체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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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구는 도둑이 신세 지는 비밀 통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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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아니었다면 빠지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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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불운은 고위계 수사 특유의 방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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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부상, 그리고 경계심은 불가분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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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덤덤한 얼굴로 환기구를 따라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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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불운은 환기구의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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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철도, 분기도 없이 이어진 일자형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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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어디 하나 걸리지 않고 쭉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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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불운은 뇌리에 새겨진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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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화도 안 가지고 있는 처지에 추락을 멈추고 싶으면 사지를 뻗어서 통로에 박아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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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유적지 파손 금지 규칙을 준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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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적의 환기구는 정말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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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환기구 표면, 완만하게 휘어진 곡선 궤도, 서란의 공기역학적 신체가 상승효과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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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봅슬레이는 한계를 모르고 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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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에서부터 시작된 미끄럼틀은 유적 최하층까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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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같은 속도로 하강하던 여정도 금방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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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구가 서란을 아래로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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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지 예상 지점에는 고대 전송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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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일곱 번째 불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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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진이 번쩍 빛나고 서란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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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불운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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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원래 이딴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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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한 말로 스위스 치즈모델이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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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서란은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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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마지않던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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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소에서 서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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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장 밑으로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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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 과정에서 운동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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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발밑에 있는 전송진으로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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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에서부터 시작된 추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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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됐고, 서란은 제대로 된 낙법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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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랜딩, 그리고 착지 지점이 파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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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전송진이 작동을 중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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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전송진이 뭔지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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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시대보다 이전에 사용했던 이동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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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과 어울리면서 관련 지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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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시대란 현시점에서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시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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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지금으로부터 4만 년 정도 이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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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먼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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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진은 상고 시대에도 미지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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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년 전에도 작동 원리를 해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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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지금까지도 로스트 테크놀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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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전송진을 복구할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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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박살난 전송진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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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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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대형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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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진은 양쪽에 존재하는 두 개가 한 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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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이 망가지면 다른 쪽도 쓸모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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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 원리 해명을 위해서는 온전한 전송진 한 쌍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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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방금 드롭킥 한 방으로 고대 문명의 찬란한 유산 하나를 돌무더기로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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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실전된 기술을 복구할 가능성도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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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도 감탄할 반달리즘의 극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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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자리를 옮겨 자기가 만든 참상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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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전송 문양이 그려진 석재 바닥 위로 서란의 앙증맞은 손자국,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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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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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던 범인은 범죄 현장을 이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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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술을 쓴 서란이 칠흑 같은 어둠을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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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을 따라서 걷다가 출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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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로 들어오는 빛, 서란은 벽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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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벽이 회전하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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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돌로 만든 거대한 궁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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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사이사이로 거대한 나무들이 빼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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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고대 유적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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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전송진을 밟았던 지하 유적과 달리, 이 장소는 하늘이 보이는 밀림 한복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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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으로 가득한 대자연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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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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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가진 건 지금 입고 있는 옷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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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법기들은 거추장스러워서 숙소에 던져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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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비행 법기도 없이 사람 사는 곳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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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근처 나무 위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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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이 위치한 곳은 약간 경사가 있는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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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평지를 놔두고 이런 괴상한 장소에 궁전을 지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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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고민하던 서란은 길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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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지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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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올라가서 주위를 살필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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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흔적을 남기면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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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고고학자들과 유적을 방문할 때 이 흔적으로 보고 찾아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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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조한 암석 표지판이 우후죽순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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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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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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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이 거대한 수림에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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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어디를 봐도 온통 나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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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녹색 바다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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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원숭이 요괴들이 달려든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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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개량형 암석 폭탄을 몇 방 먹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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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원숭이 가족의 절반은 비료가 되고, 나머지 절반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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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전송진을 밟고 열흘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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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로 만든 원숭이가 세 자릿수를 돌파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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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마침내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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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조금 오래된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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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 없는 망자가 서란을 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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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서란이 영안술로 백골을 유심히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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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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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는 생전에 결단기 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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