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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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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출입 금지 처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발굴 현장 주위를 얼쩡거린 지 한 달.

서란은 마침내 발굴 현장 임시 보조가 됐다.

말만 그렇고 사실상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고고학자들 입장에서도 별도리가 없었다.

침울한 얼굴과 깊은 한숨.

서란은 온몸으로 자기 의사를 표출했다.

나도 고대 유적이 구경하고 싶어요, 하고.

고고학자들은 매일매일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도 어엿한 서대륙 수도자들이었다.

순회 공사 도중, 서란이 보여준 지표면 뒤집기는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적이었다.

거산요지선공이라는 가공할 공법을 대성한 천재, 서란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과연 류서란이 품고 있는 호기심과 인내심 중 더 거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만약 서란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다면?

당장 고대 유적을 구경하겠다고 지표면과 고대 유적을 함께 들어올리기라도 한다면?

아니면 남들 몰래 땅파고 내려가서 누구보다 먼저 유적지 내부로 진입하기라도 한다면?

유적지를 발굴할 때는 지켜야할 절차가 많았다.

일단 지표면을 조사한다.

유적을 덮고 있는 토양 자체도 탐구 대상이었다.

심지어 대충 파묻은 쓰레기도 역사의 흔적이었다.

그 다음은 일부 구역만 우선적으로 발굴한다.

여기서 얻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고대 유적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지 결정한다.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서란이 지표면을 뒤집어 버린다면?

우선 토양과 유물들이 엉망진창 뒤섞인다.

지층의 순서와 두께, 다양한 토양의 성분, 유물의 분포 등 모든 고고학적 자료가 사라진다.

비슷한 연원을 지닌 다른 유적을 못 찾으면 그 시대와 관련된 모든 연구가 불가능해진다.

서란의 부주의한 행동 하나 때문에 인류 역사에 영원한 공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고학자들을 괴롭혔다.

결국 발굴 대장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류서란에게 임시로 출입 자격을 부여한 것이었다.

옆에 두고 직접 감시하겠다는 판단이었다.

발굴 대장은 서란에게 발굴 현장에서 지켜야하는 주의 사항과 행동 규칙을 속성으로 주입했다.

“보고 대상에 해당하는 범위는?”

임시 발굴 보조, 류서란이 대답했다.

“흙이 조금이라도 묻어 있으면 해당합니다!”

“대상과 접촉하기 전 필수 과정은?”

서란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직속 담당자에게 보고합니다!”

“직속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면?”

“구역 담당자에게 보고합니다!”

“만약 구역 담당자마저 부재중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만약 담당자의 허락을 받았다면?”

“그래도 만지지 않습니다!”

발굴 현장은 눈으로만 보세요.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강조, 또 강조했다.

서란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서란은 현장 규칙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고고학자들도 어느정도 안심한 상태였다.

그리고 사고란 원래 이런 순간에 찾아오곤 했다.

시험 발굴 도중, 어떤 고고학자가 말했다.

“류 수사, 그림자 때문에 어두워서 그러는데 대여섯 걸음만 물러나 주시지요.”

“예.”

서란은 곧이곧대로 여섯 걸음 물러났다.

첫 번째 불운은 고고학자의 부주의였다.

예전 같았으면 꼼짝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테니까.

서란은 시키는대로 뒷걸음질치다가 뭘 밟았다.

두 번째 불운은 고대 구조물의 높이였다.

지표만 살짝 깎았는데 벌써 상층부가 드러났다.

서란이 밟은 건 옥상에 있던 환기구 덮개였다.

세 번째 불운은 서란의 작은 체구였다.

환기구는 도둑이 신세 지는 비밀 통로가 아니었다.

서란이 아니었다면 빠지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네 번째 불운은 고위계 수사 특유의 방심이었다.

고통과 부상, 그리고 경계심은 불가분한 관계다.

서란은 덤덤한 얼굴로 환기구를 따라 추락했다.

다섯 번째 불운은 환기구의 구조였다.

요철도, 분기도 없이 이어진 일자형 통로였다.

서란은 어디 하나 걸리지 않고 쭉 미끄러졌다.

여섯 번째 불운은 뇌리에 새겨진 규칙이었다.

석연화도 안 가지고 있는 처지에 추락을 멈추고 싶으면 사지를 뻗어서 통로에 박아넣어야 했다.

서란은 유적지 파손 금지 규칙을 준수했다.

고대 유적의 환기구는 정말 길었다.

매끄러운 환기구 표면, 완만하게 휘어진 곡선 궤도, 서란의 공기역학적 신체가 상승효과를 발휘했다.

인간 봅슬레이는 한계를 모르고 가속했다.

지표면에서부터 시작된 미끄럼틀은 유적 최하층까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총알 같은 속도로 하강하던 여정도 금방 끝났다.

환기구가 서란을 아래로 뱉어냈다.

착지 예상 지점에는 고대 전송진이 있었다.

이게 일곱 번째 불운이었다.

전송진이 번쩍 빛나고 서란의 모습이 사라졌다.

일곱 가지 불운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원래 이딴 식이었다.

유식한 말로 스위스 치즈모델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서란은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바라 마지않던 모험이었다.


다른 장소에서 서란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장 밑으로 내리꽂혔다.

전송 과정에서 운동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서란은 발밑에 있는 전송진으로 처박혔다.

지표면에서부터 시작된 추락이었다.

엄청난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됐고, 서란은 제대로 된 낙법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슈퍼히어로 랜딩, 그리고 착지 지점이 파손됐다.

고대 전송진이 작동을 중지했다.

서란도 전송진이 뭔지는 안다.

상고 시대보다 이전에 사용했던 이동 수단이었다.

고고학자들과 어울리면서 관련 지식을 배웠다.

상고 시대란 현시점에서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시대를 의미한다.

대충 지금으로부터 4만 년 정도 이전이었다.

보다 먼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전송진은 상고 시대에도 미지의 산물이었다.

4만 년 전에도 작동 원리를 해명하지 못했다.

당연히 지금까지도 로스트 테크놀로지였다.

망가진 전송진을 복구할 방법은 없었다.

서란이 박살난 전송진을 보며 말했다.

“큰일났네...”

아는 만큼 보이는 대형 사고였다.

전송진은 양쪽에 존재하는 두 개가 한 쌍이었다.

한쪽이 망가지면 다른 쪽도 쓸모가 없어진다.

작동 원리 해명을 위해서는 온전한 전송진 한 쌍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서란은 방금 드롭킥 한 방으로 고대 문명의 찬란한 유산 하나를 돌무더기로 바꿔버렸다.

덤으로 실전된 기술을 복구할 가능성도 제거했다.

진시황도 감탄할 반달리즘의 극치였다.

서란은 자리를 옮겨 자기가 만든 참상을 감상했다.

복잡한 전송 문양이 그려진 석재 바닥 위로 서란의 앙증맞은 손자국,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침묵하던 범인은 범죄 현장을 이탈했다.

영안술을 쓴 서란이 칠흑 같은 어둠을 누볐다.

외길을 따라서 걷다가 출구를 발견했다.

틈새로 들어오는 빛, 서란은 벽을 밀었다.

돌벽이 회전하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온통 돌로 만든 거대한 궁전이 보였다.

건물 사이사이로 거대한 나무들이 빼곡했다.

여기도 고대 유적인 모양이었다.

서란이 전송진을 밟았던 지하 유적과 달리, 이 장소는 하늘이 보이는 밀림 한복판이었다.

녹음으로 가득한 대자연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어지간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였다.

서란이 가진 건 지금 입고 있는 옷뿐이었다.

다른 법기들은 거추장스러워서 숙소에 던져놨다.

한마디로 비행 법기도 없이 사람 사는 곳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서란은 근처 나무 위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궁전이 위치한 곳은 약간 경사가 있는 땅이었다.

도대체 왜 평지를 놔두고 이런 괴상한 장소에 궁전을 지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잠깐 고민하던 서란은 길을 정했다.

고도가 높아지는 방향이었다.

높이 올라가서 주위를 살필 작정이었다.

서란은 흔적을 남기면서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고고학자들과 유적을 방문할 때 이 흔적으로 보고 찾아올 생각이었다.

급조한 암석 표지판이 우후죽순 솟아났다.

원숭이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서란은 이 거대한 수림에 질려버렸다.

높은 곳에서 어디를 봐도 온통 나무뿐이었다.

마치 녹색 바다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언제는 원숭이 요괴들이 달려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개량형 암석 폭탄을 몇 방 먹여줬다.

미친 원숭이 가족의 절반은 비료가 되고, 나머지 절반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실수로 전송진을 밟고 열흘이 지났다.

비료로 만든 원숭이가 세 자릿수를 돌파한 시점.

서란은 마침내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다만 조금 오래된 흔적이었다.

하반신 없는 망자가 서란을 반겨줬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서란이 영안술로 백골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망자는 생전에 결단기 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