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2 KiB
깊고 어두운 심해 밑바닥.
용궁을 중심으로 해저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방을 장식하는 발광 산호 때문에 눈이 부시다.
하지만 고개만 들어 올리면 바로 심해의 어둠이 보인다.
심해에 잠든 어인족의 도시.
대결계로 바닷물을 밀어내고 지어진 도시.
영원한 어둠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빛의 도시.
이 불야성이 바로 어인 교단의 본부였다.
서란과 담청이 도착한 곳은 용궁 심처였다.
호화롭지만 동시에 비밀스러운 밀실이었다.
서란은 의심의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봤다.
귀한 영초를 아낌 없이 사용한 식사.
혹시 여기에 맹독이 들어있는 건 아닐까?
아니다, 용과 고위계 수사에게 독은 무용지물이다.
최고급 발광 산호를 사용한 거대 조각상.
그렇다면 저 안에 암살자를 숨겨 놓았나?
아니다, 도시 전체가 덤벼도 승산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짐작조차 안 갔다.
연회가 시작되었지만 명탐정 서란은 절대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스스로를 홍린어라고 소개했던 일등 신도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멀쩡히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서란의 소매에 뭘 집어넣은 것이었다.
황당해서 소매 안을 보니 주괴가 들어 있었다.
최상급 법기 재료 중 하나인 성백은이다.
지상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고,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나 조금 들어있는 희귀한 금속이었다.
이렇게 묵직한 주괴의 형태로 존재하는 건 상식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물론 안목 없는 서란은 모를 일이었다.
“왜 제 소매에 이런 걸 집어 넣으십니까?”
홍린어가 시치미를 뚝 뗐다.
“집어 넣다니요, 무엇을? 제가요?”
“아니, 방금...”
막 반박을 하려던 서란이 입을 다물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반대쪽 소매도 무거워진 탓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옆자리 어인이 태연하게 앉아서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확인해 봤더니 역시나였다.
이번에도 성백은 주괴가 서란을 반겨줬다.
소매치기도 아니고 소매넣기였다.
서란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차라리 비수로 옆구리를 찔렸어도 이 정도로 황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맞은편을 바라보니 담청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소매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았다.
순간, 어떤 직감이 서란의 뇌간에서 번뜩였다.
이거 혹시 뇌물인가?
폐쇄적인 장소, 은밀한 접대, 비싸 보이는 물건.
서란의 좌뇌 우뇌가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쳤다.
존귀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수선을 시작한 서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분연한 일갈을 날렸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뇌물들, 당장 도로 가져가십시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 마니아 류서란은 뛰어난 후각으로 범죄와 음모, 혈흔의 잔향를 맡았다.
여기서는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표명해야만 한다.
욕심에 휘둘리는 순간 간악한 모사꾼에게 코가 꿰여 조종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서란이 예전에 본 영화에서는 그랬다.
설득 천재 홍린어가 이번에도 세 치 혀를 놀렸다.
“뇌물이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선금입니다, 선금. 이전에 산호 대들보를 고쳐준다고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만 급한 마음에 다소 부적절한 장소에서 건네 드렸을 뿐입니다.”
서란이 곧장 대꾸했다.
“그러면 그 망가졌다는 산호 대들보 좀 보여주세요. 걱정되신다니 제가 고쳐드리죠. 지금 당장.”
“그럴까요? 자, 가시죠.”
홍린어가 앞장서자 서란이 곧장 뒤따랐다.
걸음걸이에 맞춰서 힘차게 휘젓는 두 팔.
하지만 주괴 때문에 무거워서 축 늘어진 서란의 소매는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다.
산호로 지어진 용궁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걷던 홍린어가 대들보 하나를 가리켰다.
“저게 바로 제가 말했던 대들보입니다.”
“금이 잔뜩 가서 부서지기 직전이라더니, 도대체 어디가 망가졌다는 거죠?”
“저기입니다, 저기. 잘 보세요.”
자세히 보니 미세한 흠집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대들보는 우주 망원경이 아니다.
그리고 우주 망원경이라고 해도 현미경으로나 보일 저런 빗금은 수리 안 하고 그냥 방치할 것 같았다.
토목 공사 경력 일 년, 류서란이 보기에 저 대들보는 천 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멀쩡하군요.”
홍린어는 전문가의 견해를 겸허하게 수용했다.
“정말로 다행이군요. 저희가 건축은 문외한이라서 잘 몰랐습니다. 이제 연회장으로 돌아가시지요.”
못마땅한 표정으로 돌아온 서란이 발견한 건 반듯하게 쌓아 놓은 성백은 주괴 더미였다.
“이건 또 뭐죠? 뇌물?”
“보수 공사 잔금입니다.”
“제가 뭘 고쳤던가요?”
“잘못 말했군요, 자문료입니다.”
정말 만만치 않은 강적이었다.
식사가 끝난 일행은 용궁 구경을 시작했다.
용궁인데 용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궁금해진 담청이 옆에 있던 교주에게 물었다.
“용은 어디 있느냐?”
뇌물이 가득 담긴 손수레를 밀던 교주가 대답했다.
“제 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담청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나 말고 용궁에 사는 용을 말하는 것이다.”
“용이요? 용궁에는 용이 없습니다.”
서란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인족은 용궁을 보여준다고 했지 용이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용을 기대했던 담청이 화를 냈다.
“그러면 왜 이름을 용궁이라고 지은 것이냐! 용도 안 사는 궁전이면서!”
교주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전에는 계셨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리고 어인 교단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았다.
약소한 종족, 용의 은혜, 종교 창시 등등.
어인족이 어떻게 심해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구연동화 한 편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인 교단은 지금의 성세를 이룩했지요. 하지만 수십 년 전, 용신님께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신 겁니다. 신을 잃은 교단의 신도들은 점차 타락해 갔습니다.”
말을 마친 교주는 서란과 담청을 뚫어져라 봤다.
담청이 물었다.
“그래서 나보고 새로운 신이 되어 달라는 거냐?”
“예, 그렇습니다.”
“그런 귀찮은 일을 내가 왜 하겠느냐.”
교주가 말했다.
“이제는 주인이 없어진 용궁을 드리겠습니다.”
담청이 즉답했다.
“신 노릇도 괜찮을 것 같구나!”
깜짝 놀란 서란이 담청을 만류했다.
“정말로 하시게요?”
“못할 건 또 뭐냐.”
“담청 님 이름을 빌려서 나쁜 짓을 한다던가...”
“그때는 벌을 내리면 그만이다.”
당사자가 괜찮다니 서란도 할 말은 없었다.
신이 난 교주는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품위 유지 조항, 초상권에 관한 조항, 계약 조건 변경 절차에 관한 조항 및 기타 여러가지 사항이 적혀 있었다.
서명과 지장을 통해서 담청은 용신이 되었다.
사본을 만들어 담청에게 건네준 교주가 이번에는 서란에게 물었다.
“수사님께서는 신이 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서란이 황당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용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주는 영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커다란 금단을 지니셨는데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용신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신도 괜찮습니다.”
“교단에 신이 둘씩이나 필요한가요?”
“위험 관리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주시죠. 하나보다는 둘이 안전하죠. 한 분이 승천해도 다른 한 분이 계시니까요. 그리고 저희 어인 교단은 일신교라고 엄격하게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이참에 그냥 다신교하죠.”
“아니...”
서란은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제대로 된 종교가 맞나?
신이 필요하면 종족 불문으로 모집하는 거야?
종교치고는 지나치게 탄력적인 거 아닌가?
홍린어도 계속 서란에게 속삭였다.
“수사님, 어인 교단에는 신이 필요합니다.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계약서에 서명을 해주세요. 지금이라면 특별히 정기 공물 이외에도 엄청난 비정기 공물을 바치겠습니다.”
지금 냄비를 주문하면 냄비 하나 더 준다는 홈쇼핑 광고가 떠오르는 발언이었다.
함부로 계약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란이 극렬하게 저항했다.
“저는 절대로 신이 되지 않을 겁니다! 잘 생각해보니까 이거 교단이랑 운명 공동체로 묶이는 거잖아요! 교단이 잘못하면 나도 같이 욕먹고! 싫어, 오늘 처음 본 교단을 뭘 믿고! 이거 놔! 내 소매에 주괴 좀 그만 집어 넣어!”
협상의 귀재, 홍린어는 한 발 물러났다.
큰 요구를 거절당하면 작은 요구를 들이밀어라.
다들 알고도 당하는 그녀의 필살기였다.
“그렇다면 일일 체험은 어떠신가요?”
“일일 체험?”
“예, 일단 하루짜리 단기 계약을 맺고 신으로 살아 보시죠.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드시면 다음 날에 그냥 철회하시는 겁니다. 물론 일단 받으신 계약금은 다시 돌려주실 필요 없습니다.”
서란은 일단 동의했다.
설득당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거절했다가 다시 귀찮아지기는 싫어서 그랬다.
결국 며칠 이내에 해약하지 않으면 계약 기간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일일 체험 계약을 맺었다.
어차피 까먹지 않고 해지하면 그만이다.
서란은 자신있었다.
예전에 OTT 구독 끊는 거 잊어버리고 이 년 동안 생돈 날린 경험은 이미 기억 속에 없었다.
홍린어는 서란을 데리고 보물창고로 갔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이리저리 돌렸다.
문을 열기 전, 홍린어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계약금은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얼마면 되냐는 질문에 서란이 대충 대답했다.
“적당히 주세요, 적당히.”
“알겠습니다.”
홍린어가 보물창고 문을 열었다.
거기에 보관된 건 단순한 재물이 아니었다.
그건 눈에 보이는 압도적인 설득력이었다.
긴급 수혈로 위기만 간신히 넘긴 수도문파의 입장에서는 가뭄 도중 내린 단비처럼 간절한 보물.
아껴 먹으면 원영기까지 먹고도 남을 영약.
인형술 수련에 필요한 수많은 희귀 재료.
일등 신도 겸 금고지기 홍린어가 선언했다.
“자, 이제부터 전부 수사님의 것입니다.”
어인 교단 역사상 최고의 교섭 전문가, 신이 내린 설득의 천재,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협상가, 홍린어가 보물창고 열쇠를 건넸다.
서란은 열쇠를 공손히 받았다.
계약 해지 같은 불경한 단어는 잊어버렸다.
신이 되어 돌아온 서란에게 담청이 물었다.
“아까는 교단이 잘못하면 욕을 같이 먹네 어쩌네 하지 않았느냐?”
“저 류서란, 오죽문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일신의 오욕마저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있습니다!”
어인 교단은 신을 둘 얻었다.
대지모신 류서란과 용신 담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