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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준비 1개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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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의 일상에도 슬슬 규칙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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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방향성은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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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거의 기계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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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공부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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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야간 특강을 뭐 그리 많이 듣는지 새벽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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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건 담청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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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실기 강의를 마치면, 언제나처럼 귀가해서 씻고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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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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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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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야간 특강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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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마치 신데렐라처럼, 자정만 되면 집에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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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에 남은 건 담청과 수행원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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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행원들의 존재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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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험생은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를 한 자루씩 지니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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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수행원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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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밤 늦게까지 공부할 것이니 공연히 방해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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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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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가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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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들은 공손한 자세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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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무도 담청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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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밤놀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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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살금살금 창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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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얼마나 날았을까, 눈이 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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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상청도의 권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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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입장료를 걷는 직원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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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매표소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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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소매에서 백금 팔찌를 꺼내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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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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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귀빈용 백금 팔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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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없이 곧장 놀이 기구에 탑승하고, 어떤 공연이든 귀빈석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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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런 특권을 맛보면 어린이용 무료 입장 팔찌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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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유원지를 제 집처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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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보름 넘게 방문했지만 전혀 질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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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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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지 운영 위원회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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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은 지불한 금액 만큼의 행복을 돌려주는 멋진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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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담청은 굉장히 부유한 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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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한 종족의 신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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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해변에 앉아 모래성이나 지으면서 노는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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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담청은 유원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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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오전 강의 중에 조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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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배덕감마저 한낱 조미료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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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 신분으로 노니까 한층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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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직원들의 배웅을 뒤로한 채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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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금살금 자신의 방 창문을 넘다가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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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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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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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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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여기 앉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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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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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러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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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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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요 앞에 산책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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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조용히 담청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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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매에서 단말기를 꺼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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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안에는 담청의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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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용담의 천라지망 누리집에 올라온 ‘이달의 최다 방문 어린이 고객’이라는 제목의 정면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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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눈가를 검게 칠해 놓은 편집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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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왼쪽 뿔이 부러진 ‘담ㅇ’이라는 이름의 용족 어린이가 선계에 둘씩이나 존재할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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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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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망덕한 유원지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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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용담 직원들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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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사진 올리기 전에 몇 번이나 물어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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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 감자 먹는 데 정신 팔려서 건성건성 듣고 그러라고 한 건 담청 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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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땀을 뻘뻘 흘리며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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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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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청도에 가신 게 맞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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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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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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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들을 필요가 없겠네요. 생각해 보니 요즘 오전 강의 시간에 자꾸만 졸고 그러시던데, 전부 이유가 있었군요. 담청 님, 공부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지났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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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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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목조목 뜯어보면 하나같이 정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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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서란 입장에서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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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못한 담청이 반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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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는 원래 법관 고시 같은 거 준비하고 싶은 마음 없었다! 서란 네가 반쯤 억지로 시킨 것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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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이 수행도 안 하고 놀기만 하시니까 그랬죠! 게으름뱅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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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이, 이 독불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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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치한 말다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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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는 안 봐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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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구사 능력이나 순발력 면에서 담청은 서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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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담청이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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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나가라고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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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 얘기 안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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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이제 말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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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서란을 방 밖으로 밀어낸 뒤 문을 쾅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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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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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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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에 대고 뭐라 뭐라 소리치려던 순간, 서란은 다수의 인기척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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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자 잔뜩 긴장한 수행원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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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잔뜩 움츠러든 목과 어깨, 필사적으로 윗사람의 안색을 살피는 눈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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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서란이 짓던 표정이 딱 저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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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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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쏘아붙이려던 가시 돋친 말도 도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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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냥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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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지만 거리는 고시생으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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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강의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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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을 꽤나 오래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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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인파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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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강의는 자체 휴강인 셈 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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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공부할 기분도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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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개울이 하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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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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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받아서 저도 모르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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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차가운 물 속에서 혼자 씩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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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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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을 위해서 그랬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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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몰라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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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머리가 좀 식자 다른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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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고시 공부가 하기 싫으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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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의견을 여쭤 본 적이 한 번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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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내 생각만 밀어붙였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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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소매에서 단말기(완전 방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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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켜자 ‘이달의 최다 방문 어린이 고객’이라는 제목의 정면 사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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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담청은 정말 해맑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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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한동안 담청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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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의 미소를 보는 건 거의 한 달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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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은 줄곧 침울한 모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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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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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싸움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담청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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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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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끼나 걸렀더니 굉장히 허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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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나선 담청은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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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도중 몇 겹의 벽 너머로 서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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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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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옳다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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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울다 지쳐 잠들기 전까지 ‘그때 이렇게 받아쳤으면 서란이 아무 말도 못했을 텐데...’ 비슷한 생각을 마구마구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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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내 시뮬레이션 완료, 이제는 아까처럼 쉽게 당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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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나 아직도 화 많이 났어요’하는 발소리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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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란의 사과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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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 님, 아침에 있었던 일은 정말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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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응? 뭐라고 그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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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잘못에 대해서 사과드리고 싶어요. 돌이켜 보면 그럴 만한 일이 전혀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졌었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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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사과는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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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언변으로 서란을 압도한다는 담청의 상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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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응어리진 감정은 꽤나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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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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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나는 다 이해한다. 요즘 좀 이상하긴 했지만, 비승하고서 생활 환경이 급변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응,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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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내일은 진료소에 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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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니까 나도 함께 가 주마. 절대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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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이윽고 화해의 포옹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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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담청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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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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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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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서란과 담청은 진료소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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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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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상청도에 큰 게 하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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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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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의심되는 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일명 PTS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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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목이나 독안룡 같은 강적과 목숨을 걸고 싸운 경험이 정신에 충격을 준 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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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문적인 심마 감정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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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소 직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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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서란 님, 3번 검사실로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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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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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차례네요. 갔다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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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검사 잘 받고 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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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담청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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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겨진 담청에게 지나가던 직원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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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건강 검진 받으러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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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검진? 그게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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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르시는군요. 건강 검진이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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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 건강 검진은 전 종족의 수도자를 대상으로 백 년마다 한 번씩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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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물론 도원향이 만든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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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소 직원은 어차피 무료니까 온 김에 하고 가라며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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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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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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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담청은 긴장한 채 진료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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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안쪽에는 의사 한 명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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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서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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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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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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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라! 내가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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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고개가 이번에는 담청을 향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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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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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남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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