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11 lines
11 KiB
Markdown
311 lines
11 KiB
Markdown
|
|
봄이란 시작의 계절이다.
|
|
|
|
방학이 끝나서 글방 선생 호혜문은 바빠졌다.
|
|
|
|
지난 겨울, 마감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숙제를 해치웠던 금영영도 금작파로 끌려갔다.
|
|
|
|
날림으로 대충 만든 과제물 때문이었다.
|
|
|
|
서란도 인형술 공부를 시작했다.
|
|
|
|
목표는 자동성을 지닌 정통파 인형 제작이다.
|
|
|
|
아쉽지만 수동 조작은 한동안 봉인할 생각이었다.
|
|
|
|
사파 결과물이라면 이미 충분했으니까.
|
|
|
|
예전에 대여한 인형술 입문편, 기본편, 숙련편을 서란은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
|
|
|
깜빡하고 반납하지 않았는데 장서각에서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
|
|
|
아마도 빌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듯 했다.
|
|
|
|
인형술이 얼마나 비주류 법술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
|
|
입문편은 인형술사가 인형을 직접 조종하는 것이다.
|
|
|
|
수동 조작이라면 서란의 전문 분야다.
|
|
|
|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 여포라고 할 수 있었다.
|
|
|
|
기본편은 자동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
|
|
|
인형술사가 미리 입력해 놓은 논리 구조에 따라서 인형이 스스로 움직인다.
|
|
|
|
서란이 혀로 할짝거리다가 직립 이족 보행의 쓴맛을 보고 나뒹굴었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
|
|
|
숙련편은 한층 심화된 내용을 다룬다.
|
|
|
|
여기까지 도달한 인형술사는 자기 인형에게 특수 능력마저 부여할 수 있었다.
|
|
|
|
시야 공유나 자동 수복, 심지어 의사소통 능력이 부여된 인형도 존재했다.
|
|
|
|
서란이 예상하기로는 학습인형연구서를 읽으려면 우선 숙련편부터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
|
|
|
마찬가지로 숙련편보다는 기본편이 더 먼저였다.
|
|
|
|
즐거운 직립 이족 보행 시간이 찾아왔다.
|
|
|
|
서란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
|
|
|
“왜 멀쩡히 걷지?!”
|
|
|
|
점토인형이 갑자기 사람처럼 정원을 누볐다.
|
|
|
|
예상치 못한 성공에 서란은 두려워졌다.
|
|
|
|
갑자기 찾아온 행운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
|
|
|
서란은 서둘러서 복제품을 제작했다.
|
|
|
|
똑같은 형태, 똑같은 논리 구조를 가진 인형이다.
|
|
|
|
하지만 두 인형이 보여준 모습은 전혀 달랐다.
|
|
|
|
서란이 다시 한번 외쳤다.
|
|
|
|
“왜 움직이다가 말지?!”
|
|
|
|
똑같이 걷던 복제 점토인형이 가만히 멈췄다.
|
|
|
|
조금 더 참고 기다렸더니 다시 동작하기는 했다.
|
|
|
|
다만 서란이 바라던 결과는 아니었다.
|
|
|
|
점토인형이 돌연 문워크를 시작했다.
|
|
|
|
앞으로 걷는 인형과 뒤로 걷는 인형을 바라보며 서란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
|
|
|
“도대체 왜?”
|
|
|
|
하지만 인형술은 비주류 법술이다.
|
|
|
|
인형이 왜 이러는 건지 물어볼 사람도 전무했다.
|
|
|
|
머리털 나고 이 정도로 외롭고 서러웠던 적이 드물었다.
|
|
|
|
혼자서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해오신 겁니까, 인형애호가 선생님...
|
|
|
|
서란은 문득 인형애호가를 떠올렸다.
|
|
|
|
새삼 인형술 불모지인 서대륙에서 목각인형을 탄생시킨 대단함이 존경스러웠다.
|
|
|
|
서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
|
|
|
하늘 저편에서 인형애호가(노인, 상상화)가 빵끗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
|
|
|
*****
|
|
|
|
서란은 인형술을 가르쳐줄 사람이 간절했다.
|
|
|
|
그래서 찾다가 찾다가 담청에게 갔다.
|
|
|
|
정확히는 담청이 아니라 괴전파 수신기인 사슴뿔이 서란의 목적이었다.
|
|
|
|
“담청 님, 혹시 뿔을 잠깐만 빌려주시겠습니까.”
|
|
|
|
정원 연못에서 잉어들과 즐겁게 헤엄치던 담청이 화들짝 놀라서 반문했다.
|
|
|
|
“내 뿔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는 것이냐? 용의 뿔은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손톱이 아니다.”
|
|
|
|
서란이 오해를 바로 잡았다.
|
|
|
|
“뽑아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물이 아니라 능력을 빌리겠다는 의미죠. 천기를 읽는 능력이요.”
|
|
|
|
서란이 떠올린 해결책은 지극히 현대인다웠다.
|
|
|
|
모르는 것이 있다면 검색 엔진에게 질문하기.
|
|
|
|
프로그래머들도 모르면 그냥 인터넷에 검색한다고 전생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
|
|
|
십년감수한 담청이 연못에서 기어나왔다.
|
|
|
|
“그래,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
|
|
|
화색이 돈 서란이 말했다.
|
|
|
|
“어떤 부분을 고쳐야 제 인형술이 발전할까요?”
|
|
|
|
담청이 즉답했다.
|
|
|
|
“글쎄다, 나는 모르겠구나. 혹시 알게 된다면 너에게도 말해주마.”
|
|
|
|
“아니, 천기를 읽어 보셔야지요. 왜, 녹용이 번쩍하는 그런 거 있잖습니까.”
|
|
|
|
“천기를 읽는 능력이란 하늘이 말해주는 비밀을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다. 다른 용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하늘에게 뭘 물어볼 능력이 없다. 무작정 기다리다가 운이 좋으면 쓸모 있는 정보를 얻는 방식이다.”
|
|
|
|
말을 마친 담청은 다시 연못으로 들어갔다.
|
|
|
|
실망한 서란은 터덜터덜 점토가 있는 곳으로 갔다.
|
|
|
|
그리고 다시 점토인형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
|
|
|
봄이 지나고 서란은 직립 이족 보행을 마스터했다.
|
|
|
|
이제부터는 점토만으로 인형을 만들 수 없다.
|
|
|
|
기능 향상을 위해서 비싼 재료가 필요한 시기였다.
|
|
|
|
하지만 서란은 걱정하지 않았다.
|
|
|
|
희귀한 소재? 얼마면 돼?
|
|
|
|
서란은 변신합체 삼두육비 거대인형 금강야차를 통해서 막대한 개발비를 손에 넣었다.
|
|
|
|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두렵지 않았다.
|
|
|
|
서란은 즉시 장서각으로 향했다.
|
|
|
|
벌써 퍼핏마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
|
|
|
하지만 서란이 개발비를 받는 일은 없었다.
|
|
|
|
불행하게도.
|
|
|
|
*****
|
|
|
|
지난해 가을, 가택연금이 끝난 장옥기는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장서각에서 일하게 되었다.
|
|
|
|
휴일조차 없던 가혹한 반년이 마침내 끝났다.
|
|
|
|
하지만 장옥기는 여전히 장서각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
|
|
|
이유는 그저 ‘재미있으니까.’였다.
|
|
|
|
문서 작성, 필사, 색인 정리가 재밌다는 의미였다.
|
|
|
|
낳고 기른 부모도 몰랐지만, 장옥기는 타고났다.
|
|
|
|
하늘은 그에게 강렬한 욕망을 갖게 했다.
|
|
|
|
심지어 재능까지 줬다.
|
|
|
|
먹물과 종이만 있다면 하루 종일도 가능하다.
|
|
|
|
그래서 근무 시간을 제멋대로 엿가락처럼 늘렸다.
|
|
|
|
출근은 누구보다 빨리, 퇴근은 누구보다 늦게.
|
|
|
|
장서각 각주는 수백 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유능하고 열정적인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
|
|
|
|
사회봉사 기간이 끝난 장옥기는 곧장 장서각 재경직 말단으로 발탁되었다.
|
|
|
|
쟁쟁한 지원자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쾌거였다.
|
|
|
|
장옥기는 전과자라는 패널티에도 불구하고 재경직 선발 배틀로얄에서 당당히 살아남았다.
|
|
|
|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지만, 예산을 다루는 부서에게는 명시적인 권한보다도 강한 힘이 있다.
|
|
|
|
그런 이유로 내부 구성원의 청렴함이 중요하다.
|
|
|
|
장옥기가 재경직 말단으로 뽑힌 이유였다.
|
|
|
|
물욕에 휘둘리는 사람이 사설 도박장을 몇 년 동안 무급으로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
|
|
전과 기록이 보증 수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
|
|
절대 횡령하지 않는 남자는 재경부로 출근했다.
|
|
|
|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기겁을 했다.
|
|
|
|
하늘같은 선배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던 탓이었다.
|
|
|
|
“문파에 돈이 없다고!”
|
|
|
|
“어쩌죠, 선배? 예산이 바닥났어요...”
|
|
|
|
“파산이다! 우린 다 파산할 거야!”
|
|
|
|
“오늘 아침, 류 수사가 인형 개발비를 신청했습니다. 액수가 만만치 않은데 이 일을 어쩌죠?”
|
|
|
|
“뭐, 인형?! 너 지금 미쳤어?!”
|
|
|
|
“가서 절대로 못 준다고 해!”
|
|
|
|
“그거 주면 오죽문 진짜로 망한다고!”
|
|
|
|
시간이 지나자 다른 부서에서도 사람들이 달려왔다.
|
|
|
|
“빨리 예산 좀 주세요! 이 어음 오늘까지 안 막으면 부도에요! 문파 신용이 박살난다고요!”
|
|
|
|
“지금 수목전에 영석이 없어서 영초랑 영목이 전부 고사 직전이에요! 죽기라도 하면 복구하는데만 수백 년은 더 걸려요!”
|
|
|
|
“비상, 초비상! 미궁언서용 비축 식량이 고갈 직전이에요! 당장 다른 문파에서 수입 안 하면 지하자원과 교환할 식량이 바닥납니다! 이건 협정 위반과 관련된 외교 문제라고요!”
|
|
|
|
흡사 예언 속에 등장하는 종말의 날이었다.
|
|
|
|
수천 년 역사의 장엄한 수도문파가 위태로웠다.
|
|
|
|
문파 재산을 횡령하는 도둑놈들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
|
|
|
도둑은 류서란 한 명뿐이었다.
|
|
|
|
오죽문의 최연소 결단 의식에 위기감을 느낀 적대적 수도문파들이 이렇게 저주했었다.
|
|
|
|
조급한 결단 의식은 실패하고 이번 손실을 복구하는데 족히 수백 년은 걸릴 것이라고.
|
|
|
|
간절한 그들의 저주는 정확히 절반만 맞았다.
|
|
|
|
서란은 가볍게 결단에 성공했다.
|
|
|
|
그 대신 오죽문이 파산 직전에 몰렸다.
|
|
|
|
예정된 문파 비승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부도 직전인 어음은 당장 눈앞에 놓여 있었다.
|
|
|
|
재경부 구성원들은 잘못이 없었다.
|
|
|
|
그들은 오히려 스스로가 엘리트임을 증명했다.
|
|
|
|
신기에 가까운 자금 돌려막기로 오죽문의 파멸을 예정보다 뒤로 늦췄으니까 말이다.
|
|
|
|
물론 영원히 늦출 수는 없었다.
|
|
|
|
그렇게 구경조차 못해본 서란의 인형 개발비는 예산 부족이라는 타당한 사유로 증발해버렸다.
|
|
|
|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
|
|
|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갔냐고 물으면 재경부 사람들은 손을 들어서 서란을 가리킬 게 분명했다.
|
|
|
|
오죽문, 파산 선언까지 앞으로 몇 개월.
|
|
|
|
*****
|
|
|
|
소인배들은 창고에서 금품이나 훔친다.
|
|
|
|
하지만 진정한 도둑은 나라에 망조를 가져온다.
|
|
|
|
거대 문파를 빈사 상태로 몰아넣은 고금제일 대도, 류서란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
|
|
|
|
정든 오죽문 식구들의 얼굴이 연신 떠올랐다.
|
|
|
|
이러다 문파 망하면 어쩌지?
|
|
|
|
뿔뿔이 헤어지는 건가?
|
|
|
|
문파 비승으로 보답한다는 내 다짐은?
|
|
|
|
결국 아침까지 한숨도 못 잤다.
|
|
|
|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
|
|
|
서란은 자고 있던 담청을 깨워서 오죽문을 나섰다.
|
|
|
|
대결계를 지나서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
|
|
|
국경에 도착해서 출국 절차를 밟았다.
|
|
|
|
고혈만 빨아먹다가 외국으로 도망친 게 아니다.
|
|
|
|
외화벌이를 위한 소녀 가장 무브였다.
|
|
|
|
수선계 국제 시장 한 구석, 누군가 외쳤다.
|
|
|
|
“토속성, 수속성 한 명씩 타세요!”
|
|
|
|
서란이 재빨리 일어나서 외쳤다.
|
|
|
|
“저요!”
|
|
|
|
수도자 인력 시장은 여느 때처럼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