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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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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란 시작의 계절이다.
방학이 끝나서 글방 선생 호혜문은 바빠졌다.
지난 겨울, 마감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숙제를 해치웠던 금영영도 금작파로 끌려갔다.
날림으로 대충 만든 과제물 때문이었다.
서란도 인형술 공부를 시작했다.
목표는 자동성을 지닌 정통파 인형 제작이다.
아쉽지만 수동 조작은 한동안 봉인할 생각이었다.
사파 결과물이라면 이미 충분했으니까.
예전에 대여한 인형술 입문편, 기본편, 숙련편을 서란은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깜빡하고 반납하지 않았는데 장서각에서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마도 빌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듯 했다.
인형술이 얼마나 비주류 법술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입문편은 인형술사가 인형을 직접 조종하는 것이다.
수동 조작이라면 서란의 전문 분야다.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 여포라고 할 수 있었다.
기본편은 자동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형술사가 미리 입력해 놓은 논리 구조에 따라서 인형이 스스로 움직인다.
서란이 혀로 할짝거리다가 직립 이족 보행의 쓴맛을 보고 나뒹굴었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숙련편은 한층 심화된 내용을 다룬다.
여기까지 도달한 인형술사는 자기 인형에게 특수 능력마저 부여할 수 있었다.
시야 공유나 자동 수복, 심지어 의사소통 능력이 부여된 인형도 존재했다.
서란이 예상하기로는 학습인형연구서를 읽으려면 우선 숙련편부터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숙련편보다는 기본편이 더 먼저였다.
즐거운 직립 이족 보행 시간이 찾아왔다.
서란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왜 멀쩡히 걷지?!”
점토인형이 갑자기 사람처럼 정원을 누볐다.
예상치 못한 성공에 서란은 두려워졌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서란은 서둘러서 복제품을 제작했다.
똑같은 형태, 똑같은 논리 구조를 가진 인형이다.
하지만 두 인형이 보여준 모습은 전혀 달랐다.
서란이 다시 한번 외쳤다.
“왜 움직이다가 말지?!”
똑같이 걷던 복제 점토인형이 가만히 멈췄다.
조금 더 참고 기다렸더니 다시 동작하기는 했다.
다만 서란이 바라던 결과는 아니었다.
점토인형이 돌연 문워크를 시작했다.
앞으로 걷는 인형과 뒤로 걷는 인형을 바라보며 서란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도대체 왜?”
하지만 인형술은 비주류 법술이다.
인형이 왜 이러는 건지 물어볼 사람도 전무했다.
머리털 나고 이 정도로 외롭고 서러웠던 적이 드물었다.
혼자서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해오신 겁니까, 인형애호가 선생님...
서란은 문득 인형애호가를 떠올렸다.
새삼 인형술 불모지인 서대륙에서 목각인형을 탄생시킨 대단함이 존경스러웠다.
서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저편에서 인형애호가(노인, 상상화)가 빵끗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서란은 인형술을 가르쳐줄 사람이 간절했다.
그래서 찾다가 찾다가 담청에게 갔다.
정확히는 담청이 아니라 괴전파 수신기인 사슴뿔이 서란의 목적이었다.
“담청 님, 혹시 뿔을 잠깐만 빌려주시겠습니까.”
정원 연못에서 잉어들과 즐겁게 헤엄치던 담청이 화들짝 놀라서 반문했다.
“내 뿔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는 것이냐? 용의 뿔은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 손톱이 아니다.”
서란이 오해를 바로 잡았다.
“뽑아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물이 아니라 능력을 빌리겠다는 의미죠. 천기를 읽는 능력이요.”
서란이 떠올린 해결책은 지극히 현대인다웠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검색 엔진에게 질문하기.
프로그래머들도 모르면 그냥 인터넷에 검색한다고 전생에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십년감수한 담청이 연못에서 기어나왔다.
“그래,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화색이 돈 서란이 말했다.
“어떤 부분을 고쳐야 제 인형술이 발전할까요?”
담청이 즉답했다.
“글쎄다, 나는 모르겠구나. 혹시 알게 된다면 너에게도 말해주마.”
“아니, 천기를 읽어 보셔야지요. 왜, 녹용이 번쩍하는 그런 거 있잖습니까.”
“천기를 읽는 능력이란 하늘이 말해주는 비밀을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다. 다른 용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하늘에게 뭘 물어볼 능력이 없다. 무작정 기다리다가 운이 좋으면 쓸모 있는 정보를 얻는 방식이다.”
말을 마친 담청은 다시 연못으로 들어갔다.
실망한 서란은 터덜터덜 점토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점토인형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봄이 지나고 서란은 직립 이족 보행을 마스터했다.
이제부터는 점토만으로 인형을 만들 수 없다.
기능 향상을 위해서 비싼 재료가 필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서란은 걱정하지 않았다.
희귀한 소재? 얼마면 돼?
서란은 변신합체 삼두육비 거대인형 금강야차를 통해서 막대한 개발비를 손에 넣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두렵지 않았다.
서란은 즉시 장서각으로 향했다.
벌써 퍼핏마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서란이 개발비를 받는 일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
지난해 가을, 가택연금이 끝난 장옥기는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장서각에서 일하게 되었다.
휴일조차 없던 가혹한 반년이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장옥기는 여전히 장서각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유는 그저 ‘재미있으니까.’였다.
문서 작성, 필사, 색인 정리가 재밌다는 의미였다.
낳고 기른 부모도 몰랐지만, 장옥기는 타고났다.
하늘은 그에게 강렬한 욕망을 갖게 했다.
심지어 재능까지 줬다.
먹물과 종이만 있다면 하루 종일도 가능하다.
그래서 근무 시간을 제멋대로 엿가락처럼 늘렸다.
출근은 누구보다 빨리, 퇴근은 누구보다 늦게.
장서각 각주는 수백 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유능하고 열정적인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
사회봉사 기간이 끝난 장옥기는 곧장 장서각 재경직 말단으로 발탁되었다.
쟁쟁한 지원자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쾌거였다.
장옥기는 전과자라는 패널티에도 불구하고 재경직 선발 배틀로얄에서 당당히 살아남았다.
어느 집단이나 마찬가지지만, 예산을 다루는 부서에게는 명시적인 권한보다도 강한 힘이 있다.
그런 이유로 내부 구성원의 청렴함이 중요하다.
장옥기가 재경직 말단으로 뽑힌 이유였다.
물욕에 휘둘리는 사람이 사설 도박장을 몇 년 동안 무급으로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과 기록이 보증 수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절대 횡령하지 않는 남자는 재경부로 출근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기겁을 했다.
하늘같은 선배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던 탓이었다.
“문파에 돈이 없다고!”
“어쩌죠, 선배? 예산이 바닥났어요...”
“파산이다! 우린 다 파산할 거야!”
“오늘 아침, 류 수사가 인형 개발비를 신청했습니다. 액수가 만만치 않은데 이 일을 어쩌죠?”
“뭐, 인형?! 너 지금 미쳤어?!”
“가서 절대로 못 준다고 해!”
“그거 주면 오죽문 진짜로 망한다고!”
시간이 지나자 다른 부서에서도 사람들이 달려왔다.
“빨리 예산 좀 주세요! 이 어음 오늘까지 안 막으면 부도에요! 문파 신용이 박살난다고요!”
“지금 수목전에 영석이 없어서 영초랑 영목이 전부 고사 직전이에요! 죽기라도 하면 복구하는데만 수백 년은 더 걸려요!”
“비상, 초비상! 미궁언서용 비축 식량이 고갈 직전이에요! 당장 다른 문파에서 수입 안 하면 지하자원과 교환할 식량이 바닥납니다! 이건 협정 위반과 관련된 외교 문제라고요!”
흡사 예언 속에 등장하는 종말의 날이었다.
수천 년 역사의 장엄한 수도문파가 위태로웠다.
문파 재산을 횡령하는 도둑놈들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도둑은 류서란 한 명뿐이었다.
오죽문의 최연소 결단 의식에 위기감을 느낀 적대적 수도문파들이 이렇게 저주했었다.
조급한 결단 의식은 실패하고 이번 손실을 복구하는데 족히 수백 년은 걸릴 것이라고.
간절한 그들의 저주는 정확히 절반만 맞았다.
서란은 가볍게 결단에 성공했다.
그 대신 오죽문이 파산 직전에 몰렸다.
예정된 문파 비승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부도 직전인 어음은 당장 눈앞에 놓여 있었다.
재경부 구성원들은 잘못이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스스로가 엘리트임을 증명했다.
신기에 가까운 자금 돌려막기로 오죽문의 파멸을 예정보다 뒤로 늦췄으니까 말이다.
물론 영원히 늦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구경조차 못해본 서란의 인형 개발비는 예산 부족이라는 타당한 사유로 증발해버렸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갔냐고 물으면 재경부 사람들은 손을 들어서 서란을 가리킬 게 분명했다.
오죽문, 파산 선언까지 앞으로 몇 개월.
*****
소인배들은 창고에서 금품이나 훔친다.
하지만 진정한 도둑은 나라에 망조를 가져온다.
거대 문파를 빈사 상태로 몰아넣은 고금제일 대도, 류서란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
정든 오죽문 식구들의 얼굴이 연신 떠올랐다.
이러다 문파 망하면 어쩌지?
뿔뿔이 헤어지는 건가?
문파 비승으로 보답한다는 내 다짐은?
결국 아침까지 한숨도 못 잤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서란은 자고 있던 담청을 깨워서 오죽문을 나섰다.
대결계를 지나서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국경에 도착해서 출국 절차를 밟았다.
고혈만 빨아먹다가 외국으로 도망친 게 아니다.
외화벌이를 위한 소녀 가장 무브였다.
수선계 국제 시장 한 구석, 누군가 외쳤다.
“토속성, 수속성 한 명씩 타세요!”
서란이 재빨리 일어나서 외쳤다.
“저요!”
수도자 인력 시장은 여느 때처럼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