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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근 없는 이를 지칭하는 말은 범인이다.
그리고 선골 없는 이를 지칭하는 말은 범골이다.
서란은 선골 미보유자, 즉 범골이었다.
담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선골이 없다고?! 그렇다면 서란은 영원토록 신선이 될 수 없다는 뜻이냐?!”
등백월이 물 흐르듯 부정했다.
“그건 아닙니다. 영근이 없으면 무슨 수를 써도 수도자가 될 수 없지만, 선골 좀 없다고 신선이 못 되는 건 아니니까요.”
“아, 그런 것이냐?”
“그렇습니다. 물론 선골 보유자에 비해서 경지 상승 속도가 확연히 느린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명이 끝나기 전에 다음 경지로 올라갈 수만 있다면 신선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범골임에도 기연을 여럿 만나 신선이 된 경우도 있으니까요.”
담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불행 중 다행이로구나.”
“오히려 행운일 수도 있습니다.”
“행운이라고? 범골로 태어난 것이?”
등백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가지고 있던 선골이 사라진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류 수사님은 여전히 찬란한 재능을 품고 계십니다. 만약 진짜 범골이면 더 좋죠. 선골만 얻으면 더욱 빠른 속도로 경지를 올리실 수 있을 테니까요.”
담청은 예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는데 성공했다.
“아참, 그러고 보니 그대가 예전에 그런 얘기를 했었지. 선계에 가면 부족한 선골 자질을 보완할 수단이 있다고.”
“수단은 많습니다. 체질을 개선시켜 주는 선과를 먹거나 비슷한 효능을 지닌 공법을 익혀도 되죠. 아니면 그냥 재능에 의지해서 진선경까지 도달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어차피 환골탈태를 거치면 선골 자질의 차이가 무의미해지니까요.”
“그렇다는구나, 서란. 혹여나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만 하거라. 선과든 공법이든 함께 찾아줄 테니까.”
충격적인 검사 결과에 망부석처럼 굳어 있던 서란이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해요, 담청 님.”
“우리 사이 아니더냐.”
“그것도 그러네요.”
팔짱을 낀 채 고민하던 등백월이 말했다.
“사실, 아직 범골이라고 확정된 건 아닙니다. 검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너무 희귀해서 여태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선골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희끼리 따로 확인해 보도록 하죠.”
서란이 물었다.
“검사 이외에도 선골 유무를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아, 혹시 체질을 바꿔주는 선과를 먹거나 공법을 익히는 방법인가요? 범골이라면 새로운 선골이 생길 테니까?”
“그건 너무 위험한 방법이군요. 한번 선과나 공법을 통해서 체질을 바꾸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류 수사님이 진짜 범골이라면 별 탈 없을 테지만, 혹시라도 알려지지 않은 선골을 지니고 계시면 문제가 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재능이 크게 퇴보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선골이 퇴보하는 경우도 있나요?”
등백월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죠. 부주의하게 넣은 향신료 한 줌이 요리 전체의 풍미를 해치는 건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수선 또한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어떻게 확인을 하시려고요?”
“저한테 범골만 익힐 수 있는 공법이 있습니다. 그걸 한번 익혀 보시죠. 그래서 배워지면 범골이고, 아니면 선골 보유자인 겁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안됩니다. 태성기 공법이거든요.”
고위계 수사의 경지는 운무기부터 태성기, 광홍기, 은한기까지 네 단계로 구분된다.
서란이 지금 운무기니까, 한 단계만 올리면 됐다.
결국 돌고 돌아서 수행이었다.
서란은 무명공법을 열심히 수련했다.
열흘 연속 철야 수행을 마친 서란이 임시 수련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서란은 현재 기분이 매우 좋았다.
등백월에게 배운 무명공법 덕분이었다.
극단적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성질과 특유의 유연한 법력 운용 방식, 그리고 자체적인 완성도까지.
그야말로 서란의 마음에 쏙 드는 공법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무명공법의 창안자를 직접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서란은 하늘에 올라 극광제도를 내려다봤다.
여기저기 늘어선 건물, 섬 사이를 바삐 오가는 비행 법기,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어인족.
임시 수련실 안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열흘이지만, 군도는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서란은 찾고 있던 대상을 발견했다.
등백월과 담청이 손바닥만 한 섬에서 여유롭게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서란은 섬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등백월이 서란을 발견하고는 인사했다.
야자수 두 그루 사이의 그물 침대에 누운 채였다.
까만 색안경을 쓰고 있었다.
담청은 백사장 쪽에 있었다.
얼굴만 밖으로 내놓은 채 모래 찜질 중이었다.
마찬가지로 까만 색안경을 쓰고 있었다.
서란은 등백월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경매장에 맡긴 선과가 팔렸다면서요?”
“예, 오늘 새벽에 낙찰됐다더군요. 시해선끼리 가격 경쟁이 붙은 모양인지 제 예상보다 훨씬 비싸게 팔렸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와, 단위 뭐야...”
선불로 받은 경매 시작가와 경매장 이용 수수료를 제하고도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이었다.
서란과 담청 몫의 비승 지원금까지 더하면 당분간 자금 문제로 곤란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단말기를 주인에게 돌려준 서란은 백사장으로 향했다.
기척을 느낀 담청이 말했다.
“이 곳은 연중 내내 따듯하다고 하는구나. 계절이 여름뿐이라니,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어.”
“어쩐지 야자수 천지더라고요.”
“야자수라... 그러고 보니 지식으로만 접했지 직접 보는 건 또 처음이로구나.”
서란이 손짓하자 한줄기 바람이 야자열매 두 개를 나무에서 똑 떼어 가져왔다.
“담청 님, 야자열매 먹어 본 적 없으시죠?”
“오, 먹을 수 있는 것이냐?”
“그럼요, 한번 맛만 보세요.”
담청의 두 팔이 백사장 위로 불쑥 튀어나왔다.
서란은 엄지로 야자열매 껍질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담청의 손에 잘 쥐어 주었다.
서란이 먹는 방법을 알려줬다.
“물이랑 껍질 안쪽의 흰 부분을 드시면 돼요.”
담청은 구멍에 입을 대고 꼴깍꼴깍 소리를 냈다.
곧이어 야자열매를 껍질째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평생 치과 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서란은 자기 몫의 야자열매를 먹으며 청록색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범인을 유치할 생각이었다.
선계의 농후한 천지영기 덕분에 범인이 내뿜는 탁기를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극광제도가, 금죽문의 영역이 수도자와 범인으로 가득차는 광경이 벌써부터 기대됐다.
저멀리, 식산대붕 본체가 바다에 앉아 반신욕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비승 1년, 등백월이 수속성 비경 의식을 마쳤다.
기존에 있던 것까지 합쳐서 화수 이영근이 됐다.
기념품이랍시고 유리처럼 투명한 소라 껍데기를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
비승 10년, 호혜문이 결단기에 도달했다.
그녀의 나이 82세의 일이었다.
천무지체라는 선골을 보유한 사실도 밝혀졌다.
비승 18년, 장선화가 결단기에 도달했다.
그녀의 나이 58세의 일이었다.
정말 아쉽게도 선골 보유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비승 20년, 금영영이 결단기에 도달했다.
그녀의 나이 88세의 일이었다.
범골이었다.
참고로 금영영은 이영근자인 호혜문보다 몇 년은 먼저 축기에 성공했다.
그런데 정작 금단 형성 시기는 십 년이 늦었다.
호혜문이 선골 보유자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위계에서는 영근 자질이 훨씬 더 중요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선골 문제도 아니었다.
같은 일영근자이면서 선골이 없는 장선화보다도 경지 상승 속도가 느렸다.
심지어 금영영이 축기기 수사가 되었을 당시에 장선화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선계 평균보다 20배 빠른 서란의 경우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원래 말이 안되는 건 없는 법이었다.
자칭 대기만성형 인재 금영영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문제의 핵심은 결국 단말기와 천라지망이었다.
축기기 수사는 수은으로 목욕을 해도 멀쩡했다.
하지만 도파민 중독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금영영은 망령처럼 천라지망 곳곳을 배회했다.
게시판 갱신, 게시판 갱신, 또 갱신.
도파민으로 엉망진창 절여진 뇌는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갈망했다.
친구 걱정에 서란의 한숨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에휴...”
새로 심은 거대 선인장을 파먹던 담청이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영영이 때문에 그래요. 수행은 뒷전이고 온종일 단말기만 들여다보고 있잖아요.”
“그리 걱정할 이유가 있을까 싶구나. 그다지 재미도 없던데 말이지. 조만간 영영이도 질릴 게다.”
서란의 걱정과 달리 의외로 담청은 천라지망 중독에 빠지지 않았다.
동영상보다는 실물을, 앉아 있는 것보다는 외부 활동을 선호하는 아웃도어파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덕분에 금방 단말기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물론 금영영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서란은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저택으로 귀가했다.
입가에 선인장 즙을 잔뜩 묻힌 담청도 함께였다.
브런치를 음미하던 금영영이 인사했다.
“서란, 좋은 아침. 잘 잤어? 담청 님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서란과 담청이 마주 인사했다.
“응, 잘 잤지.”
“오냐.”
지금은 아침이 아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담청은 공을 챙겨서 놀러 나갔다.
서란은 수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문 너머에서 금영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당최 말이 안 통하네. 이런 사람들은 천라지망 못 쓰게 하면 안 되나?”
금영영은 오늘도 어김없이 수선 교류회에서 건실한 갑론을박을 주고 받는 중이었다.
주제는 ‘법기와 법술, 뭐가 더 강한가?’였다.
한 명의 연기술사로서 결코 질 수 없었다.
조상님의 명예를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