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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319 lines
13 KiB
Markdown

하늘에서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머리를 잃은 용의 사체가 망망대해에 쓰러졌다.
붕괴된 암석 거신 또한 그 옆에 몸을 뉘었다.
마치 거대한 봉분처럼 보였다.
서란은 돌무더기를 헤치고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바다에 빠진 담청도 첨벙첨벙 헤엄쳐 왔다.
둘은 만신창이가 된 채 잔해의 섬에서 재회했다.
서란은 슬픈 눈으로 담청을 바라봤다.
빛을 잃은 뿔, 텅 빈 하단전, 사라진 뇌영근.
역시나 혼원법력의 출처는 담청의 여의주였다.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닷물로 흠뻑 젖은 머리칼을 쥐어짜던 담청이 돌연 피식 하고 웃었다.
서란의 심정을 헤아린 모양이었다.
담청이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렇게 됐구나.”
“담청 님, 저 때문에 여의주가...”
“그게 왜 네 탓이겠느냐, 내가 결정한 일인 것을. 그리고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늘도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서란이 말했다.
“다시 만들 수는 있는 거죠?”
“글쎄, 잘 모르겠구나.”
“그럴 수가...”
용이 품을 수 있는 여의주는 오직 하나뿐이다.
미완의 여의주를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경우라면 오랜 시간을 들여 다시 만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여의주를 제 손으로 깨부순 경우에는 새로 만드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담청은 차가운 비를 맞으며 말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다. 너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하지만 그렇게나 선계에 가고 싶어 하셨잖아요.”
“아니,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선계의 풍경이 아니었다.”
서란이 되물었다.
“그게 아니었다고요?”
“그래, 예전에 서란 네가 이렇게 물었었지? 어째서 수행을 시작하였느냐고.”
“예, 그랬었죠...”
이름 없는 용으로 존재하던 과거의 일이었다.
물난리를 만난 잉어는 연못을 나와 용이 되었다.
여의주를 잃어버린 용 또한 동굴을 나왔다.
그리고 많은 변화를 겪었다.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다던 소녀와 만났다.
그저 어린 용이었던 소용녀는 이름을 얻었다.
바다로 가 어인족의 신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인연을 만난 끝에 여의주를 완성했고, 소중한 인연을 지키기 위해 승천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비로소 눈을 뜬 기분이었다.
담청은 천공이 아닌 친구를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평생을 적막한 동굴 속에서 지냈다. 수직굴 너머로 보이는 비좁은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지. 하루빨리 여의주를 완성하고 선계로 승천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유 따위는 고민해 본 적도 없었어.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승천을 갈망했던 건 선계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고독하기 그지없는 동굴, 그 답답한 어항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야. 나는, 나는 외로웠던 거다. 하늘은 혼자서 날기에는 너무나도 광활했으니까.
영물 중의 영물이니, 천공의 대리자니, 풍우와 뇌운의 주재자니 고고하게 굴었지만 나는 그저 외톨이였어. 용은 홀로 온전한 존재라며 강한 척 했지만, 사실은 누군가와 함께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래서 승천을 갈망했던 거다. 선계에는 나와 같은 존재가, 용이 있을 테니까.”
빗발은 점점 굵어졌다.
서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머리에 떨어진 빗방울이 이마를, 눈가를, 뺨을, 턱을 지나 바다로 돌아갔다.
잠시 침묵하던 담청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나는 괜찮다. 너를 구할 수만 있다면 여의주도 아깝지 않다. 내가 정말로 바랐던 건 승천 같은 게 아니라 인연이었으니까. 전부 네가 가르쳐 준 것이다. 게다가...”
담청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가지 못했다.
별안간 서란이 자신을 끌어안은 탓이었다.
가녀린 육체가 품 안에서 간헐적으로 떨렸다.
담청은 서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게다가 아직 승천이 불가능하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 몇백 년쯤 뒤에 난데없이 선계에서 재회하게 될지도 모르지. 설령 인계에 남는다고 해도 어인족과 함께라면 더는 외롭지 않을 터이니 그리 슬퍼할 필요 없다.”
둘은 한동안 서로 끌어안은 채 비를 맞았다.
담청은 서란의 체온을 느끼며 생각했다.
역시, 변온 동물인 용에게 인간의 체온은 너무나 뜨거웠다.
지나치게 탐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화상을 입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서서히 비가 그쳤다.
*****
겨울비가 완전히 멎었을 무렵, 긴 포옹이 끝났다.
서란은 간간이 훌쩍거리면서도 담청을 향해 마주 웃어 주었다.
그리고 불청객이 난입했다.
난생처음 듣는 미성이 말했다.
“다 끝났으면 이 몸이 얘기해도 되겠느냐?”
서란과 담청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용족 특유의 사슴뿔과 청록색 눈동자, 그리고 눈부신 미모를 지닌 묘령의 여인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만 빼면 굉장히 낯이 익었다.
명탐정 이인조는 순식간에 해답을 도출해 냈다.
초상화랑 똑같이 생겼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서란과 담청이 동시에 외쳤다.
“전대 용신!”
“전대 용신!”
반투명한 전대 용신의 혼백이 말했다.
“어린 용, 아니지... 이름이 담청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대가 어인족의 새로운 신인 모양이군.”
담청은 깜짝 놀라 외쳤다.
“그걸 어떻게 안 것이냐!?”
“후후후, 실로 간단한 문제로다. 어인족을 언급한 걸 듣고 어림짐작했지, 마침 용족이기도 하고.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그대들의 영혼에 새겨진 백연향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뭐라고!”
경악에 빠진 담청 대신에 서란이 물었다.
“백연향로라면, 용궁 심처에 보관되어 있던 향로 형태의 법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대가 떠올린 그 물건이 맞다. 어인족이 해저 어딘가에서 주웠다며 이 몸에게 바쳤었지.”
“관찰만으로도 저희가 향로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는 겁니까?”
전대 용신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 몸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지. 오랜 세월 동안 백연향로를 연구했으니까.”
“그래도 정말 놀랍네요.”
“흠, 인간 치고는 꽤나 예리한 안목을 지녔구나. 잠깐, 이게 아니지... 하마터면 목적을 망각할 뻔했군... 이 몸이 그대들에게 말을 건 이유는 거래를 제안하기 위함이다.”
서란이 물었다.
“거래요?”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저 담청이라는 용에게 말이지.”
“담청 님한테요? 무엇을 원하시나요?”
전대 용신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나는 여의주를 완성한 뒤부터 줄곧 어인족과의 동반 승천을 연구해 왔다. 그대들에게 동반 승천의 법술을 알려 줄 터이니 어인족을 선계로 데리고 가다오. 보수는 충분히 주마.”
“하지만...”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담청이 끼어들었다.
“내 여의주는 이미 산산조각 났다.”
“괜찮다, 이 몸의 여의주가 거래 보수니까.”
“뭐라고오오!”
전대 용신이 손짓하자 해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여의주가 부상했다.
두 개는 독안룡의 잘린 머리와 함께 명계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세 번째 여의주는 그렇지 않았다.
하도 정신이 없었던 탓에 잠시 깜빡하고 있었다.
서란이 물었다.
“여의주를 양도해 주시겠다고요?”
“그래, 빼앗은 게 아니라 양도받은 것이니 천겁을 두려워 할 이유도 없겠지? 여의주가 귀물이긴 하다만 어인족을 선계로 보낼 수만 있다면 전혀 아깝지 않다. 망자가 된 처지이기도 하고.”
“망자...?”
전대 용신은 자신의 오른손을 보여 주었다.
손가락 끝부터 조금씩 희미해지는 중이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안되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언급하는 상황에서도 전대 용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혼백이 심각하게 손상됐다. 흉수가 죽은 이후부터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하더구나. 도구랍시고 꽤나 험하게 다룬 모양이야.”
서란이 물었다.
“부활조차 할 수 없는 겁니까? 독안룡 때문에?”
“눈이 하나뿐이라서 독안룡인가? 참 재미있는 표현이로군. 아무튼, 그대의 말이 맞다. 이 몸은 곧 죽는다. 그래도 그대들 덕분에 이지를 상실하기 전에 죽을 수 있겠군. 감사를 표해야겠어.”
전대 용신이 부드럽게 손짓하자 여의주가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오색의 별이 담긴 여의주가 담청의 품에 안겼다.
공명과 함께 사라진 뇌영근이 돌아오고 한줄기 돌풍이 담청의 몸을 휘감았다.
멍하니 허공을 부유하던 담청이 다급히 외쳤다.
“여의주를 이렇게 선뜻 양도하다니! 내, 내가 독안룡 못지 않게 사악한 용이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대가 아끼던 어인족을 착취하는 악신이면 어쩌려고!”
“하하하, 이 몸은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흉수의 손에 사로잡힌 채로 말이지! 남을 위해 승천마저 마다한 그대가 어인족에게만 모질게 굴 것 같지는 않구나! 게다가 이 몸은 천재 중의 천재, 뛰어난 안목으로는 천하에 따라올 이가 없지!”
“하지만 용에게 여의주가 갖는 의미는...!”
그때, 전대 용신이 돌연 고개를 돌렸다.
명계의 입구가 존재하는 방향이었다.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가 방금 막 떨어졌다.
전대 용신이 큰소리로 웃었다.
“이런, 명계가 손짓하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이제 어인족의 미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지! 참고로 이 몸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죽음조차도 손쉽게 극복해 보일 테니까! 그럼 이만, 아하하하하!”
전대 용신은 유쾌하게 웃으며 명계로 퇴장했다.
하지만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제외하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공혈로 모습을 감춘 이후에도 전대 용신의 웃음소리 만큼은 꽤나 오랫동안 메아리쳤다.
뒤늦게 공혈 내부에서 두 가닥 뇌전이 솟구쳤다.
전대 용신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뇌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란과 담청에게 직격했다.
뇌전 안에는 동반 승천의 법술이 담겨 있었다.
서란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 그 딱딱한 표정, 설마 웃고 있던 건가?
초상화에 묘사되어 있던 자애로운 미소가 사실은 최대한 활짝 웃은 상태였다고?
일기에서는 분명 부드러운 얼굴이 어쩌고 하지 않았었어?
글로만 접했던 전대 용신은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면모를 지닌 여성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대면하니 느낌이 좀 달랐다.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내면은 더없이 유쾌했고, 자기애 또한 대단한 여자였다.
본인이 작성한 탓인지 기록물에는 주관적인 견해나 왜곡이 다량 첨가된 모양이었다.
서란은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담청과 독안룡, 전대 용신을 차례차례 떠올렸다.
어쩐지 용족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것만 같았다.
전대 용신이 떠나고 급속도로 어색해진 분위기, 눈치를 보던 서란이 입을 열었다.
“이만, 돌아갈까요?”
“그러는 것이 좋겠구나. 그런데 대붕이는 언제 일어나는 것이냐?”
“곧 동면 상태에서 깨어날 거예요.”
또다시 침묵.
담청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무튼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로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선계로 가는 것만 남았어요! 모두 함께 말이에요!”
“그래, 맞다! 전대 용신에게 여의주도 양도받았고, 잠력을 격발한 후유증도 딱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담청의 왼쪽 뿔이 뚝 하고 부러졌다.
“어...?”
“아...!”
서란과 담청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땅바닥에 떨어진 뿔을 바라만 봤다.
하지만 둘이서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밑동부터 부러진 뿔이 도로 붙는 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담청이 아니라 독각룡이 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