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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455 lines
14 KiB
Markdown

담청의 외침이 비명처럼 울려퍼졌다.
“서란!”
추락하던 서란은 해수면에 처박혔다.
그리고 물거품과 함께 가라앉았다.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담청과 독안룡이라고 무사하지는 않았다.
며칠 동안 지속된 싸움으로 모두가 만신창이였다.
하지만 승패는 명확해 보였다.
담청의 여의주는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
반면에 독안룡은 비교적 여력이 남아 있었다.
지독한 무력감이 담청을 옥죄었다.
식산대붕이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서란과 담청은 훈련했던 합격술을 비처럼 쏟아냈다.
그때마다 독안룡은 최소한의 피해로 대응했다.
준비해 둔 전술이 바닥난 뒤에는 난타전뿐이었다.
점차 격화되던 교전이 후반부에 접어 들었다.
전투의 양상은 사실상 서란과 독안룡의 일대일 결투로 변모했다.
담청은 도저히 그 둘을 따라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란은 더욱더 빠르고, 강하고, 예리해져 갔다.
독안룡의 예측을 월등히 상회하는 성장 속도였다.
지극히도 비상식적인 광경이었다.
독안룡은 온 신경을 서란에게 집중했다.
저런 불가해 요소는 반드시 제거해야만 했다.
담청이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결국 패배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서란은 이미 쓰러졌고, 담청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혼자서는 결코 독안룡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
담청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힘을 끌어모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일격이나마 먹여 줄 셈이었다.
그런데 독안룡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담청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해저로 가라앉는 서란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돌연, 독안룡의 시선이 담청을 향했다.
그리고 한마디했다.
“어린 용이여, 이곳을 떠나라.”
자기 귀를 의심한 담청이 되물었다.
“떠나라고?”
“그래, 보내 주마. 목적한 바는 이루었으니까.”
“목적? 내 여의주를 노린 게 아니었다는 거냐?”
독안룡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금 서란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담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독안룡은 여의주를 세 개나 지니고 있었다.
용이 가질 수 있는 여의주는 보통 하나뿐이었다.
설마하니 양도받았을 리는 없고, 나머지 두 개는 다른 용을 죽이고 빼앗았을 터였다.
그래서 담청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독안룡의 말이 자신을 가리킨 것이리라 생각했었다.
네 번째 여의주를 손에 넣어서 천겁을 이겨내고 억지로 승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걸 목적으로 세상의 중심에서 자신들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냥 보내주겠다니?
여의주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때, 어떤 번뜩임이 담청의 뇌리를 스쳤다.
우화 의식을 통해 영물로 거듭나는 화신기 수사.
태성기부터 경지 체계를 공유하는 용과 인간.
서란의 특출나게 거대한 원영과 금단.
담청의 시선이 독안룡을 향했다.
용을 죽이고 여의주를 모으는 독안룡.
담청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독안룡.
오직 서란만을 바라보는 독안룡.
담청색 용안에 과거의 기억이 비쳐졌다.
무의식적으로 여의주를 종속시켰던 놀라운 재능.
원한다면 용이 될 수도 있었던 천고의 기회.
존귀한 존재가 되고자 영생마저 마다했던 소녀.
담청의 사고는 한순간에 결론까지 닿았다.
비약에 비약을 거쳐 도출된 탓에 추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예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답은 아니었다.
독안룡은 모종의 방법을 통해 서란의 금단과 원영을 여의주로 바꿀 작정이었다.
바로 그것이 서란에게 예정된 끔찍한 최후였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었다.
담청이 소리쳐 물었다.
“그렇다면 나를 곱게 보내주겠다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도 방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나를!”
“이유?”
“그래, 손 안에 다 들어온 여의주를 포기하는 이유! 굳이 나를 살려 줄 이유가 있냐는 말이다!”
독안룡은 잠깐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글쎄, 모르겠군.”
담청은 말문이 막혔다.
독안룡이 한 말의 진위 여부는 가릴 수 없었다.
같은 용에게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용안의 권능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배가 부른 포식자의 변덕?
도망칠 때 등 뒤를 노리기 위한 기만?
아니면 위협조차 되지 않는 약자에 대한 무관심?
담청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그걸 눈치챈 모양인지 독안룡이 말을 이었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로군. 아, 내가 뒤쫓아갈까 봐 걱정되는 건가? 그렇다면 이대로 승천해라.”
“뭐라고?”
“승천문은 몇 달 간격으로 열린다. 그리고 며칠 간만 유지되지. 조만간 닫힐 터이니 떠나라. 그러면 내 추격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겠지.”
말을 마친 독안룡은 무심히 몸을 돌렸다.
쓰러진 서란에게로 다가가려는 듯 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이 터 올 무렵의 세상.
우측에는 선계로 향하는 용오름.
좌측에는 천천히 멀어지는 독안룡.
담청은 문득 고독함을 느꼈다.
드넓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어린 용의 담청색 용안이 천공을 응시했다.
시야 가득 펼쳐진 수평선이 세상을 이등분했다.
보랏빛 하늘에는 승천문이 보였다.
그리고 새까만 바다에는 죽어가는 친구가 있었다.
하늘과 지상으로 반분된 세상, 승천의 이유.
참으로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과거 여의주를 잃어버렸던 그 순간부터 어린 용을 지독히도 괴롭혀 왔던 잡념이었다.
나는 어째서 승천을 바랐는가.
그저 용으로 태어난 숙명이었던가.
아니면 스스로도 모르던 바람의 발현이었는가.
여의주를 잃어버렸을 때도.
여의주를 되찾았을 때도.
마침내 여의주를 완성했을 때도.
미루고 또 미뤄 온 답이었다.
애써 외면했지만 물음은 끈질기게도 쫓아왔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과 닫히려는 승천문 사이에서 드디어 덜미를 잡혔다.
하늘이 어린 용에게 묻고 있었다.
너는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섰느냐고.
도망치고 또 도망친 끝에 더이상 도망칠 곳이 사라진 지금에서야 던져진 물음.
무엇을 위하여.
막 동굴을 벗어났을 무렵의 어린 용이었다면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어린 용의 여의주가 요동쳤다.
법력의 파동을 감지한 독안룡이 고개를 돌렸다.
“무의미한 발버둥이다, 어린 용이여.”
담청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어린 용이 아니다.”
독안룡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
힘의 파동은 점차 격렬해지고 있었다.
오색의 별이 연신 비명을 질렀다.
과부하된 여의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독안룡은 담청의 의도를 깨달았다.
“승천을 포기하고 평생 땅을 길 작정이더냐!”
대답이 돌아왔다.
“나 담청, 친구를 버리고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졸렬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직후 담청의 여의주가 폭발했다.
산산조각 난 별의 파편이 바다로 쏟아졌다.
서란이 가라앉은 장소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승천문.
뒤집힌 채 하늘에서 바다로 내리꽂히는 용오름.
경악에 물든 독안룡의 표정.
바람을 벗고 해수면으로 추락하는 소용녀.
그리고 서란이 눈을 떴다.
*****
세상에는 잠력을 폭발시키는 법술이 존재했다.
사용자의 수명이나 경지,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희생한 대가로 잠깐이나마 막대한 힘을 손에 넣는 방식이었다.
담청이 한 행동도 그와 유사했다.
태성기 수사가 보유한 오색의 별, 영성은 무한한 혼원법력의 원천이 되는 기관이었다.
담청은 미래영겁 동안 누릴 수도 있었던 힘을 지금 이 순간으로 모조리 당겨 온 셈이었다.
엄청난 손실률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총량 만큼은 독안룡을 압도할 정도였다.
밀려드는 법력 속에서 서란의 의식이 부상했다.
서란은 격추되는 그 순간까지도 독안룡을 쓰러뜨리기 위한 방법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절히도 바랐던 수단이 손에 들어왔다.
서란은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쳤다.
법력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도 오래 붙잡아 둘 수는 없을 터였다.
같은 혼원법력일지라도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란은 즉석에서 법술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혔던 모든 법술이 해체됐다.
그리고 가능한 조각조각 나눠진 법술의 구성 요소들이 찰나에 하나로 모였다.
본디 법술이란 아무리 단순한 것일지언정 이렇게 마구잡이로 창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낭떠러지를 눈을 감은 채 질주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서란은 감각만으로 기적을 일으켰다.
날개를 잃은 담청이 해수면과 충돌했다.
그리고 대지가 몸을 일으켰다.
구름보다도 높이 솟은 머리와 전신을 갑옷처럼 두른 암석, 그것은 분명 신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대지에서 태어난 거신이 독안룡에게 달려들었다.
급속도로 붕괴하는 거체를 유지하느라 법술을 사용할 여력이 거의 바닥났다.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두 번째 기회는 없을 테니까.
천지를 뒤흔드는 거신의 포효, 그와 함께 초대형 법술이 발동됐다.
해저에서부터 솟구친 무수한 작살이 천공의 독안룡에게 쇄도했다.
회피가 불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한 공격이었다.
독안룡은 반사적으로 오색 운무와 결계로 전신을 감쌌지만, 평상시처럼 기민할 수는 없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법술이었던 탓에.
기나긴 교전으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탓에.
그리고 용이 제 손으로 여의주를 부순다는, 감히 상상조차 못해 본 광경을 목격한 탓에.
그 요소들이 독안룡의 대응을 아주 약간 늦췄다.
거신의 법술은 그 찰나의 빈틈을 파고 들었다.
그걸로 서란과 독안룡의 생사가 갈렸다.
수많은 작살이 결계를, 오색 운무를, 그리고 독안룡의 비늘을 관통했다.
명중과 동시에 작살 몸통과 대지를 연결하고 있던 사슬이 되감겼다.
작살에 달린 갈고리가 독안룡을 구름 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거신에게는 법술을 사용할 만한 여력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결국 최후에 의지할 건 가장 익숙한 도구였다.
독안룡은 무의미하게 발버둥치는 대신 법력을 끌어모아 근접전에 대비했다.
지금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었다.
마침내 거신의 간격이 독안룡에게 닿았다.
사용자의 체중을 고스란히 파괴력으로 전환하는 비전 무술, 거인살법이 작렬했다.
거신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어깨 부근에서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지던 속도는 말단부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손끝에 가서는 잔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비명을 지르는 대기.
마찰로 인해 백열하는 하박.
목표로 삼는 건 여의주를 쥔 오른팔.
창촉처럼 내찌른 거신의 관수가 목적을 달성했다.
용린과 골육이 피를 흩뿌리며 끊어졌다.
여의주를 쥔 오른팔이 하늘을 날았다.
독안룡은 직감했다.
작살을 맞은 순간부터 이미 패배한 셈이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에 좌절하진 않았다.
그런 건 독안룡이 살아온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본능으로만 작동하는 괴물이었다.
바다 요수로 태어나 투쟁 속에 살았을 때도.
호적수를 만나 군단과 오른쪽 눈을 잃었을 때도.
천겁을 맞고 승천에 실패한 채 추락했을 때도.
독안룡은 단 한 번도 좌절한 적 없었다.
나아가지 못하면 단지 죽어 가라앉을 뿐이었다.
죽음으로 나아가는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독안룡은 사납게 포효했다.
먼 옛날 위험한 바다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처럼.
창세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두 괴물이 서로를 향해 맹렬히 육박했다.
찰나에 수백, 수천 번의 공방이 오갔다.
그리고 낙하하던 독안룡의 오른팔이 해수면에 닿았을 무렵, 싸움이 끝났다.
거신의 수도가 독안룡의 목을 쳤다.
독안룡의 잘린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그러다가 뒤집힌 용오름에 휩쓸렸다.
그 끝에는 승천문과 교대하듯 열린 명계의 입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혈의 인력이 독안룡의 머리를 잡아끌었다.
남은 건 언제 끝날지도 모를 추락뿐이었다.
이천 년간 유예된, 참으로 공교로운 최후였다.
깊이 떨어질수록 하늘은 점차 좁아져만 갔다.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독안룡은 자문했다.
최후의 의문이었다.
자신은 왜 그토록 승천을 갈망했던가.
그러고 보니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맹목적으로 내달렸을 뿐이니까.
남은 시간이 부족해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 날, 한 세계를 종횡무진했던 독안룡의 패도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