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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6년 전, 그러니까 막 남대륙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무렵이었다.
담청은 서란의 저택 근처에 씨앗을 하나 심었다.
그 정체는 바로 초대형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곧잘 생존했다.
장기간 방치해도 잘 버틴다는 뜻이었다.
담청이 키우기에 이보다 적절한 식물은 없었다.
실제로 초대형 선인장(16살)은 주인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도 여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참고로 담청은 그 동안 물을 딱 두 번 줬었다.
잉어 사료는 안 까먹고 하루에 다섯 번씩 꼬박꼬박 준다는 걸 고려하면 일부러 이러나 싶기도 했다.
어느덧 선인장의 키는 50m까지 자랐다.
완전히 성장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슬슬 식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그렇다고 밑둥을 뎅강 자르는 건 아니었다.
서란은 칼을 선인장 표면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리고 궤적이 원을 그리도록 칼날을 움직였다.
요령껏 힘을 주자 뽕 하는 소리와 함께 선인장의 속살이 원뿔 모양으로 분리됐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담청이 말했다.
“언제 봐도 놀라운 손재주로구나.”
등 진군도 동감하는 얼굴이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조각칼을 자주 다뤄서 그런 걸까요?”
서란의 현란한 칼 솜씨가 선인장을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냈다.
“자, 다 됐습니다. 드세요.”
담청과 등 진군은 선인장 속살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서란도 한 조각 집어서 맛을 봤다.
선인장에서 왜 수박 맛이 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용과 거인도 실존하는 세상이니 그러려니 했다.
서란이 수박과 선인장의 차이점에 대해서 고뇌하고 있을 무렵, 담청과 등 진군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청의 얘기를 듣던 등 진군이 질문했다.
“사막거인이요? 남대륙에 거인이 산다는 말씀이십니까?”
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용암 목욕도 하면서 즐겁게들 지내더구나.”
“거인들의 신장은 어느 정도였나요?”
“키? 대붕이 본체의 두 배가 좀 안 됐을 게다.”
등 진군은 저 멀리 서 있는 식산대붕의 본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장 차이를 고려하면 선계에 서식하는 거인족과는 완전히 별개의 종족이겠군요.”
담청은 전에 본 선계의 광경을 떠올리며 말했다.
“선계의 거인족이라면 키가 구름까지 닿는 커다란 녀석들을 말하는 것이냐?”
“예, 맞습니다. 선계 고유종이죠.”
“확실히 신장 차이가 많이 나긴 하는구나. 같은 종족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야.”
등 진군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그래도 정말 신기하네요. 하계에 그 정도 크기의 거대종이 존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거든요.”
“아하, 천지영기의 농도 때문이로구나.”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서란이 입을 열었다.
“등 진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뭐가 궁금하신가요?”
“오죽문과 금작파가 선계로 비승한 다음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을까요?”
우화 의식을 치르던 도중, 산맥 전체의 천지영기가 제단에 집중된 일이 있었다.
덕분에 서란은 일시적으로나마 선계 수준의 영기 농도를 체험하게 됐다.
그 결과 걱정이 하나 생겼다.
등 진군은 살며시 웃더니 말했다.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짐작이 되는군요. 선계의 수도문파들과 경쟁조차 안될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풍부한 천지영기와 수행 자원, 수준 높은 공법 등으로 누적된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으신 거죠?”
“아무래도 걱정이 되죠. 선계에서는 의식 없이도 화신기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하도 천지영기가 풍부해서...”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영근 자질이나 선골 자질을 개선시켜 주는 영과도 드물긴 하지만 존재하죠. 심지어 비경 의식을 치를 때도 하계처럼 최적의 시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게 모두 선계의 영기 농도 덕분이죠.”
그야말로 축복받은 수선 환경.
서란의 표정은 급격하게 의기소침해졌다.
비승한 이후 선계 토박이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미래가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등 진군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죽문과 금작파의 앞날에는 탄탄대로가 열려 있으니까요. 전부 류 수사님 덕분입니다.”
“제 덕분이요?”
“그럼요,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릴까요?”
서란은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등 진군은 질문을 하나 던졌다.
“류 수사님께서는 속세 출신이라고 하셨죠? 오죽문에 입문한 건 몇 살 때였습니까?”
서란은 공녀가 된 다음 해에 왕 수사를 만났다.
“열다섯 살에 입문했습니다.”
“축기에 성공한 나이는?”
“바로 다음 해, 열여섯이었습니다.”
등 진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호라, 1년 밖에 안 걸리셨군요.”
“수선 자체는 열 살에 시작했습니다.”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셨다면서요. 하급 영석조차 없었겠군요. 그리고 농사를 돕고 나면 수행할 시간이나 있었겠습니까? 하루에 수행하는 시간이 네 시진(8시간)도 안되는데 그게 어떻게 수선입니까?”
서란과 담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초대형 선인장 아래로 보이는 드넓은 저택.
금영영이 중정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등 진군의 질문은 계속됐다.
“결단기와 원영기에 도달한 건 언제죠?”
“결단기는 20살, 원영기는 35살입니다.”
“입문하고 바로 다음 해에 축기기, 그리고 4년만에 결단기, 또 15년 뒤에는 원영기까지 도달하셨네요. 심지어 원영기부터 화신기까지의 오채지심 수행은 30년도 채 안 걸렸고 말이죠.”
서란의 나이는 올해로 64세가 됐다.
숫자로 나열해 보니 얼마나 빠른지 체감됐다.
화신기 수사의 수명이 2천 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말이 안됐다.
서란은 등 진군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렸다.
“아니, 제 경지 상승 속도가 그 정도로 빠르다고요? 선계 수도문파들과의 격차를 뒤집을 정도로?”
“여전히 감이 안 잡히시는 모양이군요. 하긴, 이해는 됩니다. 하계에서 비승한 수도문파들은 하나같이 선계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품고 있었으니까요.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낙원이라느니, 오영근자도 숨만 쉬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느니 하는 식이죠.”
“에이, 제가 그 정도는 아니죠. 등 진군한테 몇 년을 배웠는데 선계에 대한 환상이라니요.”
등 진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면 선계 태생의 일영근자는 평균적으로 몇 살에 축기기에 도달할까요?”
“글쎄요... 열일곱?”
“정답은 스무 살입니다.”
서란은 납득이 안됐다.
20세 축기기면 오죽문과 금작파 등 거대문파 소속 일영근자의 평균과 다를 바 없었다.
선계와 하계의 영기 농도 차이가 몇 배인데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등 진군이 서란의 궁금증을 풀어 줬다.
“류 수사님께서는 일영근자라는 이유로 문파의 집중 투자를 받으셨죠? 영석이나 단약 같은 거요.”
“예, 기둥뿌리 좀 뽑았죠.”
“그래서 선계와 하계의 일영근자가 비슷한 시기에 축기기 수사가 되는 겁니다. 선계의 수도문파가 적게 투자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계의 수도문파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투자하는 탓이죠. 물론 깨달음 문제도 관련이 있습니다. 선계에 산다고 누구나 현명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서란이 질문했다.
“선계에서는 다음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 시간이 몇 배씩 증가하나요? 인계는 얼추 다섯 배 정도거든요.”
“세 배 정도입니다.”
서란은 암산을 시작했다.
열 살에 입문해서 스무 살에 축기기, 10년.
수행 시간이 3배씩 증가한다면 결단기까지 30년, 원영기까지 90년, 화신기까지 270년.
전부 다 더하면 선계 태생의 일영근자는 410살에 화신기에 도달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선계 태생 일영근자는 평균적으로 410살에 화신기 수사가 되는군요! 제 경지는 선계를 기준으로 해도 6배 이상 빠른 상황! 이제 좀 안심이 되네요!”
등 진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410살이 아닙니다. 1400살입니다.”
“예? 10년, 30년, 90년, 270년 아닌가요?”
“270년이 아니라 1260년입니다. 원영기에서 화신기로 넘어가는 오채지심 수행에 걸리는 시간은 하계나 선계나 비슷합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죠. 선계의 천지영기가 풍부하든 말든 오영근 조화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서란은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면...”
“예, 축하 드립니다. 류 수사님께서는 선계 평균보다 20배 가량 빠른 속도로 경지를 올리고 계십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20배... 20배...”
한동안 중얼거리던 서란은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 힘차게 외쳤다.
“야호!”
미래에 대한 불안을 모두 떨쳐 버린 서란의 미소는 여름날 따가운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하지만 선계에 가려면 일단 비승을 해야 하는 법.
세상의 중심에서 2천 년 넘게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는 독안룡부터 어떻게 할 필요가 있었다.
서란과 담청, 등 진군은 머리를 맞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