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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335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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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상대는 외견만 보면 서란보다 어려보였다.
하지만 절대로 인간이 아니었다.
결단기 수도자에 버금가는 정순한 법력과 머리에 달린 나뭇가지처럼 생긴 사슴뿔이 그 증거였다.
소녀가 고함쳤다.
“네 녀석이 훔쳐간 여의주의 주인이시다!”
서란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여의주라면, 혹시 용?”
비와 바람, 구름과 번개를 자유자재로 부리며 하늘을 고고히 떠도는 전설 속 영물이 용이었다.
용이 인계를 벗어나 온전히 승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여의주였다.
한마디로 여의주는 용의 내단이었다.
용이 말했다.
“그래, 이 몸이 바로 그 용이시다! 그러니까 빨리 여의주 내놔!”
그러더니 서란의 멱살을 열심히 흔들었다.
“캑, 캐핵!”
목이 졸린 서란이 열심히 죽는소리를 냈다.
깜짝 놀란 용이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막혀 있던 호흡이 재개됐다.
들숨에 들어온 신선한 공기가 곧장 혈액을 타고 뇌로 달려갔다.
서란이 즉시 지난 기억을 되짚었다.
여의주라고 하니까 분명히 둥근 구체려니 싶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풍경 속에서 어떤 형상이 툭 튀어나왔다.
진흙탕에서 주웠던 수정 구슬이었다.
“잃어버리셨다는 여의주라는 게 혹시 이 정도 크기를 가진 수정 구슬인가요?”
서란에 다급하게 제 주먹을 쥐어 보이며 물었다.
“맞아, 분명히 그 정도 크기였어.”
용이 살짝 당황한 채 대답했다.
원래 용이 생각했던 여의주 도둑 체포 현장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뻔뻔하게 발뺌하는 파렴치한에게 끔찍한 벌을 내려주는 게 도보 여행 도중 곱씹었던 계획이었다.
여의주라는 천고의 보물을 훔쳐간 주제에 이토록 고분고분하게 실토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말입니다.”
서란이 수정 구슬을 줍게 된 경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용은 일단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서란의 해명을 경청했다.
곧 모든 전후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의 원흉은 용이 손수 만든 제단이었다.
손재주가 부족해서 약간 허술하게 마감된 건축물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버렸다.
바위산을 대굴대굴 굴러내려간 여의주는 진창에 빠졌고, 표면을 감싼 진흙이 절연체 역할을 했다.
결국 번개를 담지 못하고 그냥 불완전한 여의주로 남게 된 것이었다.
용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랬구나... 전부 내 잘못이었어...”
서란이 크게 좌절한 용을 격려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번개야 다시 담으면 되죠. 제가 상자에 잘 보관해 놨어요. 돌려드릴 게요.”
몸을 떨던 용이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땅에서 주운 여의주를 다시 돌려 주겠다고?”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라면 주운 사람이 여의주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그리고 용은 다른 이의 여의주를 빼앗으면 영원히 승천할 수 없었다.
당연히 몰래 훔치거나 거짓말로 속여서 건네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용은 솔직하게 말했다.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용이 실수로 흘린 여의주는 주운 사람이 임자다. 너는 신선이 되겠다고 수행하는 수도자가 아니더냐. 그런데도 돌려주겠다고? 여의주만 있다면 손쉽게 선계에 갈 수 있는데도?”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의주를 만드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대충 육백 년 정도...”
“그러면 저도 필요 없어요. 아마 마음이 불편해서 수행에 방해가 될 것 같네요. 게다가 저는 천재니까 여의주 같은 거 없이도 비승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번 생에는 승천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하던 용이 눈물을 끌썽이며 말했다.
“정말, 정말로 고맙구나...”
“자, 어서 가요.”
서란과 용은 사이좋게 오죽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몇 걸음 걷다가 용이 철퍼덕 엎어졌다.
반평생은 물속에서, 나머지 절반은 하늘에서 살았더니 직립 이족 보행에 너무 서툴렀다.
마치 서란이 만든 점토인형 같았다.
서란은 강한 연민을 느꼈다.
“여의주를 잃어버려서 날지 못하게 되신 건가요?”
“그래, 맞다.”
여의주를 분실한 용은 더이상 날지 못한다.
그렇다면 잉어와 다를 바가 없는 셈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고작 튀어오르기뿐이었다.
서란이 쪼그려 앉아 등을 보이며 말했다.
“타세요.”
용은 입고 있던 거적때기 밑자락을 들추며 서란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땅꼬마가 땅꼬마를 목말 태우는 진풍경이었다.
서란의 목덜미에 차가운 살갗이 닿았다.
흠, 뿔이 있길래 수컷인줄 알았는데 암컷이었군.
작은 의문을 해결한 서란이 근처에 추락한 석연화로 달려가서 냉큼 올라탔다.
*****
방문패 발급소 앞에서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방문패를 발급할 때 필요해서 그러는데요.”
용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홀로 완전한 용에게는 이름 같은 건 불필요하다.”
“그러면 그냥 용녀님이라고 부를게요.”
“그래, 좋을 대로 하거라.”
접수대로 간 서란이 말했다.
“이 분은 용녀님이십니다. 사정이 있어서 오죽문에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피곤에 찌든 담당자가 물었다.
“성함이 용녀입니까?”
“그냥 별명입니다.”
“이름 없음. 그러면 종족은 사람입니까? 겉으로 봤을 때는 아닌 것 같은데요.”
서란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영물입니다.”
“음, 종족은 영물. 체류 기간과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방문 목적은 지인을 만나는 것이고, 체류 기간은 사흘 이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인에게 방문, 기간은 사흘 이내. 잠시 얼굴 좀 확인하겠습니다.”
서란이 무릎을 한껏 굽히자 용과 담당자가 시선을 마주칠 수 있었다.
꽤나 작군.
담당자는 시답지 않은 감상과 함께 방문객의 특징을 기억했다.
머리에는 사슴뿔.
홍채는 엷은 청색.
굉장히 작음.
그런 다음 열심히 서류를 작성했다.
방문 기간, 체류 목적, 종족은 영물.
보증인은 축기기 수사 류서란.
이름 없음, 별명은...
별명이 뭐였더라?
용녀 어쩌고였었나?
그게 아니라 어쩌고 용녀였던가?
접수 창구 밖으로 고개를 모로 내민 담당자가 용을 올려다봤다.
용녀, 조그마한 용녀.
담당자가 눈을 번뜩였다.
맞다, 소용녀라고 했었지?
곧장 나무패에 소용녀라는 글자를 새겼다.
잠시 후 담당자가 패를 내밀었다.
소용녀가 방문패를 받아서 자기 뿔에 묶었다.
딱히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고 그냥 습성인 것 같았다.
서란은 용녀를 어깨에 짊어지고 귀가했다.
곧장 이층으로 올라가서 기념품 상자를 뒤집었다.
그러니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왔다.
나무 열매 씨앗, 금강호용자의 비늘, 발광석 두더지-인간 조각상, 금영영과 짝으로 구매한 삿갓 등등 많은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중에서 투명한 수정 구슬을 집어들어서 머리 위로 전달했다.
“여기 있습니다, 용녀님!”
“드디어!”
소용녀가 불완전한 여의주를 받고 기뻐했다.
당장 법력을 불어넣어서 공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의주가 소용녀의 혼원법력을 거부했다.
깜짝 놀란 소용녀가 여의주를 유심히 들여다 봤다.
투명한 수정 구슬 내부에 노란색 법력이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곧장 눈에 힘을 주고 내려다보니 정토법력으로 전신이 가득찬 서란이 보였다.
여의주가 새로운 주인에게 종속된 모양새였다.
소용녀의 뿔이 찰나에 번쩍 빛났다.
용은 천기를 읽을 줄 아는 영물이다.
가끔은 사슴을 닮은 그 뿔로 하늘과 교신해서 삼라만상에 관한 다양한 비밀을 내려받기도 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피뢰침과 비슷한 원리였다.
순간적으로 천기를 읽은 소용녀는 깨달았다.
서란의 천부적인 영기 감응 능력이 원인이었다.
하늘까지 닿을 믿기지 않는 재능이 무의식적으로 여의주를 종속시킨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진창에 빠진 여의주를 서란이 발견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소용녀는 금방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함께 깨달았다.
그래서 서란에게 물었다.
“내게 여의주를 돌려주겠다던 그 결심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느냐?”
서란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예? 여의주라면 이미 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여의주가 이미 너를 진정한 주인으로 선택했다. 그냥 평범한 물건 넘기듯 건네준다고 종속 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요?”
“여의주를 완전히 통제한 뒤에 소유권을 넘길 필요가 있다.”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소용녀가 진지하게 답변했다.
“여의주를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용뿐이다. 반대로 여의주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면 용이 될 수도 있지. 네가 나에게 여의주를 돌려준다는 건 용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포기한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단순히 용이 분실한 여의주를 이용해서 수행 속도를 가속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여의주에게 자격을 증명하면 서란은 화신기 수도자가 아니라 용이 되어 승천할 수도 있었다.
수도자의 최종 목표인 영생을 손에 넣는 것이다.
소용녀가 다시 한번 물었다.
“이래도 결심이 변하지 않았느냐? 모든 수도자가 추구하는 영생을 포기하고 고작 작은 선행을 하겠다고? 너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잠시 침묵하던 서란이 되물었다.
“용녀님은 어째서 수행을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그저 본능적으로, 용이 된 뒤에는 오로지 승천을 위해서 수행했다.”
“그렇다면 역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영생을 마다하고?”
“예.”
소용녀의 용안이 서란을 응시했다.
용의 눈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다.
서란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소용녀가 멍하니 물었다.
“어째서?”
“저는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용녀님의 꿈을 좌절시키면서까지 영생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다지 내키지가 않네요.”
말을 마친 서란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소용녀는 서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