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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던지고 제 이름과 소속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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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다. 명예로운 결투를 위한 선언. 오늘 내가 피를 흘린다면 그것은 오직 너희의 창칼로 하여금이요, 나의 검에 묻을 피 역시 오직 너희의 것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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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를 내포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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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이어진 명예로운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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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언을 나진이 입에 담은 순간 습격자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렸고, 또 누군가는 탄식을 내뱉었으며······ 한때는 왕국의 기사였던 클라우스는 쓴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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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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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선언이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기에 오히려 그 선언은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클라우스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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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습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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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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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 도청, 함정, 암행, 습격··· 명예와는 거리가 먼 것들을 얼마든지 감행했으므로. 심지어 그것은 일대일이 아닌 다수가 한명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습격에 명예가 있을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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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기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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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예스럽게 여겨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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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수치스러워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에겐 불명예와 수치를 짊어지고서라도 이루어야 할 목표가 종종 생기곤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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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모인 모두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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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인질이 잡혀서, 누군가는 제 목숨을 저당 잡혀서, 또 누군가는 주군의 명예가, 동료의 명예가 걸려 이 자리에 서게 됐다. 더러운 사냥개와 암살자로 전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이들은 이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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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건 자신들의 사정일 뿐이다. 저 청년에게 이해를 바라선 안 되는 일. 지금의 자신들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습격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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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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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년은 이것이 명예로운 결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선언이 비록 스스로의 각오를 다잡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한들, 그 선언에 답해야 할 의무가 기사에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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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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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가 들고 있던 창으로 땅을 내려찍었다. 제 가슴팍을, 심장이 위치한 자리를 주먹으로 찍으며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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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라우스 아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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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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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한때나마 기사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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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선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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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아 왕국의 다섯 번째 날개, 푸른 날개 기마병의 지휘관 클라우스 아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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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장은 끝나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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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료들은 진창에 처박히고, 신의 이름 아래 이단으로 낙인찍혀 명예를 잃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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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종자 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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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날개 기마병의 여정은 그리 마침표를 찍어선 안 된다. 그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 명예를 내던지리라. 진창에 이 한 몸을 처박을 각오는 얼마든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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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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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가 들어 올린 창으로 나진을 겨누었다. 비록 이 전투에 명예가 없을지언정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은 있었다. 창칼을 맞대기엔 충분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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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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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를 시작으로 한때는 기사였던 이들이, 한때는 명예를 품었던 이들이, 저마다의 소속과 신분을 밝혔다. 그리 외치며 그들은 나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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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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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을 바라보며 자세를 다잡을 뿐이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얕게 내려앉은 숲속에서 검기가, 오러가, 마나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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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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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어느 소드 마스터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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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란, 인간의 범주는 넘어섰으나 초월의 경지에는 닿지 못한 이들이라고. 그것은 초월에 이른 소드 마스터의 입장에서야 비웃음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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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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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는 이미 인간의 범주는 까마득히 뛰어넘은, 상식을 벗어난 강자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 증거가 지금 나진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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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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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 그러나 폭탄이 터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클라우스 아텐이 땅을 박찬 것이다.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땅이 뒤흔들리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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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병의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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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 없는 기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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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속의 기사, 클라우스 아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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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불리던 기사의 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클라우스가 땅을 박찬 순간부터 그는 한 마리의 말에 올라탄 기마병이요, 전장을 휩쓰는 전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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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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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을 부릅뜨고 몸을 내던졌다. 조금 전 마차를 습격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 대응하기보다 나진은 회피를 선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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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콰직, 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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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답이었다. 클라우스가 나진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순간, 휘몰아치는 풍압에 나진은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뒤늦게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이 부러지고 끊어져 내려앉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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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구르며 일어선 나진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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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가 지나간 길을 따라 모조리 박살 나 있는 거목들을. 땅에 찍힌 클라우스의 발자국을. 그리고 저 멀리서 다시 ‘쿠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방향을 전환한 클라우스가 다시금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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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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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의 적은 클라우스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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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검과, 제롤드의 검이 맞부딪쳤다. 대검을 다루는 악마 사냥꾼이자 소드 시커인 제롤드 오톤.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나진은 제 무릎이 내려앉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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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가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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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비틀며 나진이 제롤드의 압박에서 빠져나왔다. 맞대던 검이 사라진 순간,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놓아지듯 제롤드의 검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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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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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에 닿지 않았음에도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던 거목의 줄기가 쪼개졌다. 줄기가 박살 난 거목이 서서히 무너지고, 땅에 맞닿는 순간 땅이 뒤흔들리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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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작 흔들림 따위로 소드 시커의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는 법이다. 흙먼지를 걷어내며 제롤드는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무너진 나무를 박살 내며 클라우스는 질주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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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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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대를 직접 선정한 나진은 숨을 내뱉었다. 내뱉은 숨과 함께 나진이 눈을 뜬 순간, 그 눈동자에 핏발이 바짝 섰다. 나진의 심장이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박동했다. 쿵, 쿵, 쿵, 전신으로 흐르는 혈류가 가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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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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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검기가 요동쳤다. 거세게 솟구치는 검기의 주위로 틱, 티딕 소리를 내며 별무리가 반짝였다. 심상의 편린을 담은 검기가 어두운 숲속에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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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어선 육체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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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의 편린을 담아 빛나는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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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전력을 내보인 나진이 부드럽게 땅을 박찼다. 첫걸음은 부드러우나, 두 번째 걸음부터는 난폭하기 짝이 없다. 차례로 무너지는 나무들로 하여금 흔들리는 땅을 박차며 나진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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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솟아오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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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진 나무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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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뻗어나간 나무의 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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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나진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다. 소드 시커들보다 나진이 앞장설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환경이다. 계산할 것이 많고 변칙적인 움직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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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이런 지형을 활용하는 것은 나진의 특기였다. 새하얀 빛무리를 끌며 나진이 도약에 도약을 거듭했다. 눈살을 찌푸린 제롤드가 들어 올린 발로 땅을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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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하고 울리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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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제롤드의 검 위로 세찬 검기가 솟구쳤다. 숱한 악마들을 베어 넘긴 대검. 그 두꺼운 칼날이 잔상을 흩뿌리며 휘둘러졌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근력이 만들어낸 쾌속의 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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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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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의 나무들이 쪼개졌다. 나진이 발을 디디고 서 있던 나무가 무너지고, 그 위에 올라타 있던 나진이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그 추락을 놓치지 않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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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퍼트 일곱이 나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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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진의 움직임을 보고 일찍이 판단을 마쳤다. 자신들로선 나진을 죽일 수 없다. 그렇다면, 저 발목을 붙잡고 기동성을 빼앗아 시간을 번다. 그것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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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판단했다면 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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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진을 향해 검을 내지르고, 발목을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1초의 시간이라도 벌어낸다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클라우스의 창이 나진을 꿰뚫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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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리 생각했고, 클라우스도, 제롤드도 똑같이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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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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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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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던 나진이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마치, 처음부터 균형을 잃지는 않았단 것처럼. 공중에서 균형을 잡으며 착지함과 동시에 나진이 검을 휘둘렀다. 착지와 휘두르는 동작에는 구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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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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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퍼트들의 검이, 그 칼날에 두른 검기째로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가는 검. 박살 난 포위망과 드러난 허점. 직후 나진이 잔상을 흩뿌리며 움직였다. 너무나도 빠른 움직임을 엑스퍼트들은 인지하지조차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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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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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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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땐 칼에 베이고, 발에 걷어차이고, 어딘가로 내던져져 나무 기둥과 땅에 처박혀 있었다. 뼈가 끊어지거나 팔다리가 잘려 그들은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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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가 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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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퍼트들을 전장에서 배제한 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고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클라우스를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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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진해 오는 기마병을 향해 전력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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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이다. 짓밟힐 것이다. 정면으로 달려오는 나진을 바라보며 클라우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 덤벼봐라. 나의 창을 막아 내봐라. 그리 외치듯 클라우스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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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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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세운 창을 휘감은 오러, 검사에게 있어 검기와도 같은 것. 그것은 거대한 송곳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클라우스의 심상에 자리 잡은 풍경은 그가 어렸을 적 보았던 기마병들의 용맹한 돌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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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저 스스로가 하나의 창이 된 듯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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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의 심상이 담긴 오러가 너울 쳤다. 그 오러에 답하듯 나진도 땅을 박찼다. 최고속도에 도달한 순간 나진이 땅에 발을 내려찍으며 자세를 낮췄다. 가속이 실린 검을 클라우스를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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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가가가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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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날과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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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와 검기가 서로를 물어뜯었다. 땅에 내려찍은 나진의 발이 흙무더기를 퍼 올리며 뒤로 밀려났다. 그리 하염없이 밀려나는 가운데 나진은 이를 악물고 검을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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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끝과 칼날이 어긋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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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똥을 튀기며 창칼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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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확, 하고 살점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진과 클라우스가 교차한 순간 클라우스의 창이 나진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스친 것만으로도 구멍이 뚫리고 피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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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 흘리는 것은 나진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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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을 스쳐 지나간 클라우스가 촤아아악, 소리를 내며 방향을 틀었다. 방향을 튼 그가 제 옆구리를 움켜쥐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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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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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교차하는 순간 나진은 창을 움켜쥔 클라우스의 손을 노렸다. 만일 클라우스가 창의 궤적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엄지와 함께 손의 절반이 날아갔을 터. 제 옆구리를 내주고 상대의 손을 뺏어가겠다는 전략에 클라우스는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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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하고 클라우스는 깊게 파인 제 옆구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살을 짓뭉개 상처를 봉합하며 클라우스가 나진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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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습격할 때의 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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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나진이 보인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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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아텐은 나진에 대한 평가를 한단계 높였다. 제 눈앞에 있는 것은, 소드 시커에 근접한 엑스퍼트가 아니다. 눈앞의 청년은 검기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소드 시커와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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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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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미 소드 시커급의 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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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느낀 것은 클라우스뿐만이 아니다. 제롤드 또한 똑같은 감상을 느꼈다. 이미 엑스퍼트 일곱은 전장에서 이탈됐으며, 남은 것은 둘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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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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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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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와 제롤드의 시선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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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직감했다. 저 청년은 무모한 싸움을 걸어온 것이 아니다. 소드 시커 둘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기에 저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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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응해주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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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결투마저 선언된 와중이다. 이것저것 아낄 것은 없었다. 클라우스가 창을 쥔 손을 비틀었다. 끼릭,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3m가량의 창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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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을 휩쓰는 기마병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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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적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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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뒤바뀐 분위기를 느끼며 나진은 숨을 내뱉었다. 무언가 붙잡히려 하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잡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진은 클라우스와 제롤드를 시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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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투가 패자의 오만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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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승자의 자신이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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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결정짓는 건 자신의 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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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검사란 검으로 증명하는 자를 말했으므로. 나진의 검 위로 피어오르는 검기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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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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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검을 휘두르던 바사우스 말렉은 어느새부턴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검을 한번 맞부딪칠 때마다 그의 몸에선 핏물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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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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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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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 아스칼로가, 강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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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져 나온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그의 옷은 이미 핏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뒤로 크게 밀려난 바사우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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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일 거라곤, 상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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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난 바사우스에게 로젤린이 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화살과 마법이 그녀를 향해 쏫아졌다. 하나하나가 위력적이기 짝이 없는 공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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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 그리고 카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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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은 제 손에 든 단검을 한 바퀴 돌리더니, 서로 맞부딪침으로써 그 모두를 무력화시켰다. 검과 검을 맞부딪친 순간 울려 퍼지는 메아리. 메아리를 타고 증폭된 그녀의 검기가 투사체를 문자 그대로 갈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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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급의 사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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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클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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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의 보조를 받고 있음에도 로젤린의 발을 묶어두는 게 고작이다. 그 사실에 바사우스는 이를 갈았다. 소드 마스터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세 계단. 그중 발아(發芽)라는 계단 하나를 올랐을 뿐인데도 차이가 이만큼이나 벌어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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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검을 쓰는 소드 시커라길래 좀 기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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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은 여유롭게 바사우스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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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실망인데? 뭐 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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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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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도발에 바사우스가 비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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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여유롭게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로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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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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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목적은 네 발을 붙잡는 것이다. 시간만 끈다면 목적은 이루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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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승리 조건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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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합류하지 못한다면 그 청년은 죽는다. 확실하게 죽겠지. 어쩌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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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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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부릴 것은 네가 아니라,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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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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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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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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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길 왜가? 내가 합류를?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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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 아스칼로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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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뢰 내용은 늬들 발목 잡고 늘어지는 거지, 그 애송이를 지키는 게 아냐. 겸사겸사 느그 모가지야 잘라버리는 것도 생각 중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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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거기까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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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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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내 도움이 필요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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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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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전이 시작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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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은 나진과 다시 한번 마주했었다. 그리고 그때 로젤린이 보았던 나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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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완성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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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정말로 딱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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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들어가 있는 고치에는 이미 금이 가 있었다. 고치를 깨고 우화(羽化)하기까지 단 한 걸음만이 남아있었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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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송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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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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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가 되기 전부터, 이미 검기 빼고는 소드 시커에 밀리는 게 전혀 없는 놈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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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애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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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엑스퍼트인 주제에, 소드 시커와 맞먹는 걸 넘어서 이겨 먹으려 하는 애송이다. 그런 애송이가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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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딱했다간 훅 간다. 그 애송이가 아니라, 늬들 말야. 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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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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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기준으로 설명되는, 소드 시커와는 전혀 다른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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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 아스칼로는 그렇게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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