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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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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나진은 별다른 의뢰를 수행하지 않은 채 시간을 낭비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들이 보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행동했다.
언제 올지 모를 습격자에 두려워하는 겁쟁이.
내부 사정을 아는 이들에게 ‘그렇게’ 비추도록 나진은 연기했다. 하지만 그리 연기하는 몇주의 시간을 나진은 결코 허비하지 않았다. 카론과 로젤린, 그리고 멀린과 나눈 대화를 곱씹으며 나진은 반추했다.
제 내면과 심상을.
근 반년간 나진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하나의 사건으로 하여금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고, 자그마치 18년의 세월 동안 지키고 살아왔던 규칙을 제 손으로 박살 내고 오랜 둥지를 벗어나 비상했다.
육신은 그 급격한 변화를 따라왔지만.
나진의 영혼은 변화를 따라오지 못했다.
영혼과 육신의 괴리. 그것이 나진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으며, 나진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 괴리가 무엇으로 하여금 발생했나? 지난 몇주간의 고뇌 끝에 나진은 그 답에 가닿는데 성공했다.
얼추 윤곽이 잡혔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나진은 알고 있다.
답이란, 깨달음이란 것은 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골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것 만으로 답을 손에 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인간의 성장에는 언제나 극적인 상황이 필요한 법이니.
「나는 시작에 불과할 거다.」
「교단이 부릴 사냥개는 많거든. 몹시도.」
「지치지도 않고 널 죽이려 들겠지.」
때마침 여기 좋은 기회가 있다. 얼마 전까지는 위기였을지언정, 이제 그것은 둘도 없는 기회가 되었음을 나진은 확신했다.
“나진.”
나진이 감았던 눈을 떴다.
“준비는 됐어요?”
눈을 떠보면, 제 앞에는 금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앉아있다. 디에타. 그녀의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질문을 던졌고 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마쳤습니다.”
카프만 테오시스는 말했다.
누가 사냥꾼이 되고 누가 사냥감이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가 남긴 하나의 문장을 나진은 진정으로 긍정했다.
준비는 마쳤다.
이젠, 사냥감과 사냥꾼을 뒤바꿀 시간이었다.
2.
“하나, 제롤드 오톤.”
디에타가 손가락을 펼쳤다.
“본래 악마들의 땅에서 활동하던 악마 사냥꾼. 허나 모종의 이유로 전장에서 은퇴. 은퇴이후 행적이 묘연했으나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동 중인 것을 확인.”
집무실의 테이블 위에는 네 장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서류에는 초상화와 함께 간략한 정보가 쓰여 있었는데, 디에타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경지는 소드 시커. 무장은 대검.”
그녀가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둘, 클라우스 아텐. 과거 프롤레아 왕국의 기마부대의 지휘관이었으나, 해당 부대의 해체 후 잠적. 무장은 3미터 가량의 랜스. 경지는 소드 시커급.”
세 번째 손가락.
“셋, 바사우스 말렉. 마경과 인접한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군인. 무장은 쌍검. 경지는 소드 시커급.”
마지막으로 넷.
“넷, 타일러 베르카니만. 군 이탈자를 처형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 해체 부대의 수장. 무장은 대궁. 경지는 소드 시커급.”
네 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친 뒤 디에타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녀가 테이블에 놓인 서류들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현재까지 발견한 인원은 대략 이 정도에요. 그 외에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이 열댓명 정도 있는데, 소드 시커급은 아니에요.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강자는 ‘반드시’ 제 경지와 정보를 제국에 보고해야 하는데··· 해당하는 부분이 없었거든요.”
그녀가 나진에게 서류 한장을 더 건넸다. 서류에는 로브를 눌러쓴 누군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나마 눈여겨볼 건 이 인물인데, 이 자에 대한 정보는 없어요. 신원도 경지도 미상이에요.”
그리 말하며 디에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소드 시커급이 최소 넷, 소드 엑스퍼트급이 열? 어지간한 귀족가 기사단이 단체로 움직여도 이것보단 덜할걸요? 아르베니아 공작가가 보유한 소드 시커가 셋인데, 이건 뭐······.”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작정하고 당신을 죽여버리겠단 거네요. 이 정도로 초강수를 둘 줄은 몰랐는데.”
디에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사하면서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는 듯, 혀를 내두르는 디에타를 바라보며 나진 역시 놀라움을 느꼈다. 다만 그 놀라움의 방향은 디에타의 것과 조금 달랐다.
“···이걸 다 어떻게 찾아냈습니까?”
이걸 다 어떻게 찾아냈는지.
그간 나진도 ‘수상한 움직임’과 시선을 감지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엑스퍼트급 몇 명과, 소드 시커급 하나 정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초인적인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러나 디에타는 나진보다 더 많은 이들을, 더 정확하게 낚아채 내는 데 성공했다. 나진과 같은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말했잖아요. 여긴 제 영역이라고.”
그런 나진의 놀라움에 디에타는 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캄브리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구사하는 건 제 상단이에요. 제가 뿌린 금화는 하룻밤이면 도시를 한 바퀴 돌고도 남거든요. 그런 유통망을 구축하고, 이 도시의 물자를 장악하는데 5년이 걸렸으니까요.”
금화를 삼키는 뱀이 펼쳐놓은 그물.
“소문을 모으고, 미끼를 던지고, 정보 꾼을 모으고, 다시 그들에게 금화를 풀어 소문을 만들어요. 그걸 몇차례 반복하다 보면 걸러지거든요. 얼추.”
그녀가 손바닥 위에 백금화를 굴렸다.
“제 아무리 소드 시커급이라 한들 이 경우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이에요. 교단과 소통할 수단이 있다고 한들 제한돼 있겠죠. 제 아무리 그들이 뛰어나다 한들······.”
디에타가 히죽, 미소 지었다.
그녀가 제 눈동자와 귀를 툭툭 건드렸다.
“눈과 귀는 한 쌍뿐이잖아요? 그에 비해 제 눈과 귀가 되어주는 정보꾼이 몇 명이라 생각해요? 심지어, 그들은 저 자신이 정보꾼이란 자각도 없을 텐데?”
도시 전체가 자신의 눈과 귀다.
디에타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 그들을 낚아냈는지에 대해 엿들은 나진은 혀를 내둘렀다.
-나진.
‘예, 멀린.
-내가 이런 말 잘 안 하는 거 알지? 근데, 너 지금 앞에 있는 애는 적군으로 두지 않는 게 좋겠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멀린의 말에 나진은 공감했다.
디에타가 아군이라서, 그리고 자신의 첫 친구라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으니까. 디에타를 적으로 돌렸다간 몹시도 까다롭고 섬뜩한 일을 당할 것만 같다고 나진은 확신했다.
“디에타가 제 친구라 정말 다행이네요.”
“갑자기요?”
“네, 갑자기.”
디에타가 피식 웃었다.
“뭐, 아무튼 간··· 한번 낚았으면 그다음 정보를 얻는 일은 간단해요. 소드 시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건 생각보다 되게 쉬운 일이거든요.”
“쉬운 일이라면?”
“소드 시커는 위험요소가 될만한 강자. 국가 입장에선 철저하게 관리하진 않더라도 ‘알고는’ 있어야 하는 강자들이에요. 소드 시커가 작정하고 난장판을 치면 영지 하나 말아먹는 건 순식간이니까요.”
그러니 기사단장이든, 부대의 지휘관이든, 어떻게든 감투를 씌우고 관리하에 두고자 하죠. 그렇게 말하며 디에타는 어깨를 으쓱였다.
“소드 시커급의 강자쯤 되면 여기저기서 활동한 기록과 신분, 인적 사항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있거든요. 뒤를 조금만 파봐도 우수수 나와요. 뭐, 제국의 로열 가드나 최전선의 특무대, 레인저 정도가 예외 사항인데······.”
디에타가 심드렁히 말했다.
“그들마저도 은퇴하면 예외는 없어요. 카프만 테오시스도 은퇴하자마자 정보가 다 공개됐잖아요? 그건 일종의 견제이기도 해요. 엄한 짓거리 할 생각 말라고. 그리고 현역 로열 가드와 특무대는··· 교단이 무슨 짓을 써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고요.”
낚싯바늘을 놓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 그다음은 빠르게 마무리 지었노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
“당신이 소드 시커에 오른다 하더라도, 상대는 최소 소드 시커 넷과 엑스퍼트 열댓명이에요. 혼자서 상대하기란 몹시도 어려운 적이죠.”
인정해야 했다. 나진의 생각보다 교단은 많은 수를 보내왔고,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계획을 짜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대답했으면, 바로 멱살 잡으려 그랬어요.”
나진이 쓰게 웃었다.
디에타가 낚싯바늘을 드리우고, 낚시를 시작했을 무렵 나진은 그녀와 함께 몇 가지 계획을 짰다. 그리고, 이 경우 그 몇 가지 계획 중 무엇이 최선인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
“물론, 이렇게 해도 여전히 위험한 건 변함이 없네요. 결국 당신이 어떻게 하냐에 달렸으니까요.”
그녀가 손바닥에서 굴리던 백금화를 튕겼다.
“그래도, 걸어볼 만한 도박 아닙니까?”
디에타가 튕긴 백금화를 나진이 낚아챘다.
“하여간.”
디에타는 못 말리겠다는 양, 나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에 나진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디에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승산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일뿐.
디에타와 나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는 서로 약속한 대로 움직여야 할 차례였으니까. 그렇게 행동하기에 앞서, 디에타가 나진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흐트러진 나진의 옷매무새를 정돈해 준 그녀가 나진의 가슴팍을 손등으로 꾸욱 눌렀다.
“다치지 좀 말고요. 네?”
“상대를 생각하면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한테······.”
디에타가 투덜거렸다. 길게 숨을 내뱉은 그녀가 나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죽지 마요. 이건 약속할 수 있죠?”
“그건 약속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럼 됐어요.”
디에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녀와요. 와서 인사하는 거 잊지 말고.”
3.
“움직였다.”
도시에 숨어든 교단의 사냥개들은 속삭였다. 그들은 도시의 각지에 흩어져 있으며, 도시의 외곽을 따라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했다.
교단의 사냥개가 되어 움직이는 이들의 수가 스물에 이르렀으나, 그들은 결코 한자리에 모두 모이는 법이 없었다. 둘에서 셋씩 모여 정보를 나누고 그 정보를 다시 아래로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사냥개들을 통솔하는 다섯의 강자.
자연스레 만들어진 위계 서열과, 명령권자.
명령권을 쥔 이들은 저마다의 전장에서 숱한 경험을 쌓았으며, 암습과 암살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은밀히 기회를 노렸다.
“일자는 12일 밤, 대상은 아흐메티 도로를 따라 북상한다. 의뢰를 수행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동행한 모험가들이 있으나 방해되진 않는다.”
의뢰에 참가한 이들의 명단을 입수했으니까. 그 명단에는 위험시되는 인물은 없었으니.
“이 장소에서 습격한다. 변수는 있어선 안 된다. 교단은 경고했다. 전력 차이를 뒤집을 변수를 지닌 인물이라고.”
소드 시커에 이르지 못한 애송이.
그 애송이를 잡기 위해, 소드 시커급 인력만 다섯이 투입됐다. 그러나 그 다섯은 교단의 판단을 불신하지 않았다. 악연으로 엮였든, 무슨 인연으로 엮였든 간··· 그들은 대사제 오를랑이 얼마나 지독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들은 입수한 정보를 교차해서 검증하고, 무엇보다도 디에타 상단의 개입을 눈여겨 확인했다. 교단이 건넨 정보에 의하면 의뢰 대상은 디에타 상단의 상단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없군.”
“이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단의 개입은 확인되지 않았다. 의뢰는 중앙 길드에서 발주된 것이었으며, 나진이란 이름의 청년은 ‘적색 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의뢰 수를 채우고자 도시의 바깥으로 나선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의뢰. 그리고, 그간 나진의 행동반경에 대해 수소문한 결과 상단주와의 접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시의 중앙에는 접근하지 못하지만, 나진은 이 도시에서 유명인이었으므로 그의 동향에 대해서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온갖 곳에서 나진에 대한 정보가 쏟아졌고, 그들은 그것을 수집했다.
물론 쏟아지는 정보를 과신해선 안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기적으로 모여 수집한 정보를 교차해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스물에 이르는 이들 모두가 ‘똑같은’ 정보를 얻었음이 확인된 순간 그들은 움직일 채비를 마쳤다.
사냥감이 둥지 바깥으로 나왔다.
이젠, 사냥꾼이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들은 저들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여겼으며 그 사실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가지진 못했다. 방심하진 않았으나 이쪽이 우위에 서 있노라고 생각한 까닭에.
그렇기에,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정보가 조작됐단 사실을.
누군가 만든 흐름에 휩쓸리고 있단 사실을.
제 목에 금빛 낚싯바늘이 꿰여있단 사실을.
그리하여, 사냥꾼과 사냥감이 뒤바뀌었단 사실을 말이다.